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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부터 말라가는 아이들의 이야기 – 대한민국 10대를 인터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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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0대를 인터뷰하다 – ![]() 김순천 지음/동녘 |
2008/03/31 – [Reviews / Previews/Social Science] – 위기의 학교 – 배틀로얄의 시대가 온다! |
김순천, 공감하는 인터뷰어
김순천이 인터뷰했던 <우리들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 줘="">를 읽은 적이 있다. 김순천은 반찬 값을 벌려고, 아이들 학원비를 마련하려고 까르푸 시절부터 일했던 이랜드의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한편의 완결된 글로 만들어냈다. 지승호의 인터뷰가 인터뷰이의 모든 자료를 꼼꼼히 살펴서 엮어내는 그런 인터뷰라면, 김순천의 인터뷰에는 ‘공감’이 있다. 인터뷰이는 타자화되지 않는다. 객관성과 중립성은 다 말장난이 된다. 모든 것이 끌어나오는 그런 인터뷰가 글로써 나온다. 그게 김순천의 힘이다. </p>
그녀는 르포작가로 분류되곤 한다. 그 르포는 예전에 종군기자들이 스타크래프트 하듯이 현장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고 <여기 사람이="" 있다="">로 집약되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 그녀가 10대를 만났다. 10대와 눈높이를 맞추겠다는 이야기다. 김순천과 10대는 공감했고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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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0대. 불안과 우울과 배제
흔히들 대한민국 10대에 대해서 어떤 담론들이 펼쳐져 있을까? 아마 ‘입시’에 관한 이야기들일 것이다. ‘대치동 엄마의 입시전략’으로 대표되는 386 엄마들의 극성스러움의 ‘실험 동물’이 되어버린 아이들의 이야기가 가장 잘 알려진 이야기일 것이다. 다른 한 편에는 ‘교실 붕괴’라는 익히 알려진 현상이 존재한다. 최근 조한혜정 선생의 <지구촌 시대의="" 문화인류학=""> 수업 조교를 맡고 있는데 1~2학년이 주인 학생들의 이야기들(연세대학교 인문/사회계열 학생들이 가장 많다)을 종합해 보면 일반고(非 특목고)의 수업 시간에 5명 정도를 제외한 30명 정도는 자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p>
수업 시간에 졸지 않고 학원 수업과 과외 수업까지 완수해내는 ‘엄친아, 엄친딸’들은 어떤 생각들을 가질까? 그들은 전교 1등을 해도 불안하고 마음이 좋지 않다. 늘상 경쟁이 내면화되어있고 이미 교실에 있는 친구들을 밟고 죽여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친구들과 수다를 떨면서 자기 규제를 한다. 노는 것에 대해 통제를 한다. 누가 물으면 당연히 경쟁해서 살아남아야 하고 자신들은 살아남을 거라고 믿고 있지만 사실은 오들오들 떨고 있고 특목고의 상당수와 인문계 고등학교의 상위권 학생 상당수가 이미 정신병력을 10대에 갖게 된다.
그 바깥에 자고 있는 아이들은 어떨까. 그들에게 학교의 수업은 자신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이미 20%가 학업을 포기한다. 고3이 되면 19%(인문계), 12.8%(자연계)가 학업을 포기한다. 고3이 되어 대학에 가겠다고 버둥대면서 공부를 다시 시작하는 것인데 그들에게 학업의 공간이 열리긴 한 것일까. 그리고 이 지수도 사실은 고3때 직업반을 걸러내고 남은 이들의 수치이기 때문에 사실상 큰 차이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 수치들은 모두 인문계 고등학교를 기준으로 작성된 것이기 때문에 실업계 전체를 포괄한다면 대한민국의 고등학교 교육의 완전한 실패를 표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학업 포기자의 비중이 계급화 되어있다는 것이다. 저소득 계층의 1학년 학업 포기율은 32.1%다. 고3의 경우도 36.7%(인문계), 35.7%(자연계)다. 유전유학, 무전무학이다. 정확하게 한국에서의 교육이 계급의 세습, 신분의 세습임을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는가. 수업은 진학률을 높이기 위해서 철저히 상위권 위주로 돌아가고 ‘인성교육’이 박살난 건 이미 20년 쯤도 더 된 이야기가 아닐까.
지방의 학교 아이들은 똑같이 공부하면서도 학원 교육에서 배제되어있기 때문에 ‘트렌디’한 입시 정책을 따라잡지 못하고, 지잡고(!)라는 담론의 희생양으로 ‘고교등급제’ 덕에 대학 진학에도 곤란을 겪는다. 내신 등급 1.3%의 혜원이는 덕택에 재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인문계와 특목고생만이 10대가 아니므로 그렇다. 담양 공고를 다니는 근태와 동준이의 이야기를 들으면 지방 공고를 다니는 아이들의 ‘꿈’이 얼마나 짓밟히기 쉬운지를 느끼면서도 지켜줄 수 없는 안타까움에 가슴이 먹먹하다. 기능장 자격을 따기 위해 방학임에도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실습을 한다. 기능장을 따고 자격증을 따고 취업하면 20대 후반이면 사장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듣고 ‘대학’보다 ‘취업’이 더 현실적으로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에 가는 것이 더 가치있다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한정된 정보’를 말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다 알고 고른 사람의 선택에 대해 가타부타 할 것은 없다. 하지만 그들이 10대에 알고 있는 세상에 대한 정보와 대치동 엄마의 정보망과 첨단 학원 산업이 제공해주는 세상에 대한 정보치를 갖고 있는 아이들을 과연 같은 지평으로 평가하는 것은 합리적인가. 담양 공고의 아이들이 비정규직을 손쉽게 해고하는 하이닉스에 취업했다고 생각했을 때 그 아이들이 느낄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더 나아가 학교 바깥에 있는 10대에게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정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10대에 가출한 아이들은 여기저기 알바 현장에서 월급을 못 받고, 꺾기(유휴 시간에 바깥으로 고용주가 놀러가라고 한 뒤 그 시간치 시급을 깐다)등에 노출되어있다. 주유소에서 일 못하고 돈 떼이고, 여기저기 아이들과 전전하다가 결국 마주치게 되는 것은 10대 여성의 경우 주로 성매매다. 여자 아이들은 성매매 때문에 법원에 들낙날락하게 되고, 10대 남자 아이들은 주위에서 벌어지는 사건 사고의 책임을 뒤집어 쓰곤 한다. “어느 학교 다녀”에 대답할 수 없으면 순식간에 시민권도 박탈 당한다. 그들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다. 여자친구의 싸움에 휘말린 덕훈이는 보호감찰을 받으며 한 시간 단위로 집에 있는 지를 감시당하곤 했고, 전화를 한 타임만 놓쳐도 수배상태가 되는 상황이었다.
뿌리부터 말라가고 있다. 10대가 죽어간다. 불안해서 떨고 우울해서 죽고 싶고 바깥으로 자꾸면 밀려나간다.
이제 너희들을 위해 촛불을 켤 때야!
지금의 10대의 불안, 우울, 그리고 배제를 보면서 작년의 일이 떠오른다.
작년(2008년) 촛불소녀를 보면서 386은 딸내미들을 응원하면서 뛰어나갔다. 아이들이 다치면 안된다며 예비역 20대들은
스크럼을 짰다. 하지만 ‘촛불소녀’ 담론을 만들었던 <나눔문화>나 386이나 예비역이나 모두 10대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하지 못했고 10대가 떠난 자리에서 386과 예비역은 ‘폭력/비폭력 논쟁’을 하면서
‘다함께/일반 시민’의 경계를 나누면서 명박 산성 앞에서 흩어졌다. 진이 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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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소녀들이 만들어낸 담론은 어느새 386이 진입하면서 무화되기 시작했고 남은 것은 촛불소녀 사진 하나 뿐이었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은 없어지고 어느 순간 운동권 ‘어르신’들이 단상을 만들고 발언하기 시작했다. 촛불의 역동성도 꺼지고 소녀들은 어느새 엄마들의 손에 이끌려 다시 학원으로 갔다. 그리고 끌고 갈 엄마가 찾지 않는 아이들은 흩어진 스크럼에서 전경들과 싸우다가 유린당했다.
광우병 이야기에서 그치지 말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펼치는 것을 40~50대 부모 세대는 굉장히 두려워한다. 부모 세대는 그걸 막기 위해 유기체적인 신체의 시간을 끊어버리고(놀거나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고), 머리를 자르고 교복을 입혔다. 억눌린 아이들은 경쟁을 강요당하면서 또 다른 한편에서 영리한 아이들은 내면화하고 공부 잘하는 애들과 나머지의 골은 원치 않았지만 깊어져 버렸다. 이건 너희들 탓이 아니야.
10대 자신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김순천은 그걸 몇 안 되게 끌어내었다. 이제 끌어진 목소리들을 10대들이 서로 읽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필요가 있다. 사실 알고 보면 공부를 잘하는 친구나 아니거나 실업계거나 학교 바깥에 있거나 모두 공통적으로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계 때문에 힘든 거니까 말이다. 인터넷을 통해서, 싸이를 통해서, 메신저를 통해서, 문자 메시지를 통해서 10대들은 이미 공교육과 사교육의 시공간적인 경계를 횡단하며 자신들의 네트워킹을 하고 있다. 무슨 말을 해야할 지만 생각해 보면 된다. 최소한 지금처럼 살면 모두 불안해서 아프고 우울해서 죽고 싶을 꺼니까, 그건 싫은 거 아닌가. 그 이야기를 하면 될 것 같다.
어른들이 끌어주는 ‘대리인’ 방식을 취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그들의 ‘집합적’ 연대와 행동없이 크게 바뀌진 않는다. 프랑스에서는 10대가 가장 과격하게 투쟁을 한다잖는가.
10대들아. 이제 너희들을 위해 촛불을 켤 때야!
책을 읽고 너무 아팠는데 나보다 더 아플 것 같은 그네들에게 어떻게든 희망을 찾는 일에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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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0대를 인터뷰하다 – ![]() 김순천 지음/동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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