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원 세대의 우정과 환대의 공간 만들기- 우석훈,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2009, 레디앙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10점
우석훈 지음/레디앙

 2009/09/24 – [Reviews / Previews/Films] – 20대가 만든 20대 다큐멘터리 영화 ‘개청춘’ 상영회
2007/12/10 – [Reviews / Previews/Social Science] – 김영하의 ’88만원세대’ 이야기
2008/02/13 – [Reviews / Previews/Social Science] – 우석훈의 퍼즐 읽기 – <음식 국부론 – 도마 위에 오른 밥상>, 2006
2008/02/25 – [Reviews / Previews/Essays] – 희망을 말할 준비를 하자(우석훈 지승호, <우석훈, 이제 무엇으로 희망을 말할 것인가>, 시대의창, 2008)
2008/02/25 – [Reasoning/Articles] – 우석훈과 지승호의 대화중.. 20대, 지식인에 대한 대화..
2008/06/16 – [Reviews / Previews/Social Science] – 우석훈, <촌놈들의 제국주의="">, 2008</a>
2008/06/20 – [Reviews / Previews/Social Science] – 직선들의 대한민국 – 문제는 우리들의 미학이다!
2009/01/21 – [Reviews / Previews/Essays] – 88만원 세대의 간지나게 살아가는 법 – 허지웅, <대한민국 표류기=""></a>
2009/02/19 – [Reasoning/Constructive Thought] – 20대여! 이제 우리의 말을 하자!
2009/04/14 – [Reviews / Previews/Social Science] – 그래, 다시 마을이다! – 조한혜정, <다시 마을이다="">, 또 하나의 문화, 2007</a>
2009/08/27 – [Reviews / Previews/Social Science] – 우정과 환대의 지식 공동체 – 조한혜정 외 : 교실이 돌아왔다, 2009 </td> </tr> </table>

88만원 세대, 새로운 프레임의 출현

‘이태백’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던 순간부터 살며시 뭔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청년실업’의 문제가 슬몃슬몃 기어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의미에 대해서 전통적인 사회과학의 저자들은 그것들을 정확하게 어떠한 개념으로 던지지 못했다. ‘불안정노동’이라는 말을 몇 몇이 썼었지만 그걸 엮어서 단일한 저작으로 묶어내지 못했다. 우석훈은 2007년 박권일과의 공저 <88만원 세대>를 통해 그 이야기를 한다. 20대의 평균임금 세전 금액 88만원. 우석훈은 ‘공포 경제학자’ 혹은 ‘호러 경제학’을 하는 경제학자로 불리게 된다. 새로운 프레임이 생겼다. 때 아닌 ‘세대론’ 논쟁이 붙기 시작했다. 40대인 386과, 20대의 세대 문제로 환원해버린 프레임에서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고, 20대의 ‘속성’을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논쟁의 흐름과 상관없이 ’88만원 세대’라는 말은 더 확고하게 각인이 되었다. 가장 슬픈 20대를 대변하는 말이 ’88만원 세대’가 되었다. 현실을 설명하는 새로운 프레임 하나가 탄생했다. 20대는 ’88만원 세대’라는.

우석훈의 ’88만원 세대’ 개념은 사회과학자가 어떻게 개념을 만들어야 하는 지에 대한 모범적인 사례다. 기존의 이론체계에서 정해진 개념을 이식시키는 것이 아니라, 1차 자료의 ‘재구성’을 통해서 현실에 대한 감을 잡아가면서 만드는 개념. 그렇기에 그 말은 기존의 이론체계를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파급력이 셌다. 이미 주어진 이론체계를 이용하는 식의 비평의 용어가(사실 비평이 꼭 그런 것도 아닌데 최근 한국에서 이택광을 위시한 이론가들은 그러한 방식을 채택하는 듯 하다) 그 이론체계들의 ‘궤’를 모를 때마다 난점에 부딪히고 그 때마다 대중에게 “물어보던가, 책을 읽어라”라고 말할 때 현실에 대해 감을 잡아서 만들어낸 용어들은 어쨌거나 대중에게 쉽게 이해되고 각인된다. ’88만원 세대’를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그 말은 20대를 설명하는 말이 되었다.

88만원 세대의 현재와 미래 – 각개약진과 불안.

우석훈이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를 출간한다고 했을 때 난 ‘결자해지’를 떠올렸다. 뭔가 뾰족한 ‘수’라도 기대했다. 나 역시 ’88만원 세대’의 복판에 걸려있기 때문이다. 82년생. 영화 <개청춘>을 만든 영화집단 반이다의 감독들과 동갑인 나는 얄짤없이 그들과 공동의 운명에 놓여있다. 대학교 1학년 때 술을 같이 먹던 녀석 W와 S가 있었다. 매주 모여서 담배를 같이 태우며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술을 먹으며 우리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했다. 뭔가 잘못 되었다고 이야기했었다. 하지만 그들은 어느새 부동산 감정평가사 자격증을 따고, 공인회계사가 되어 ‘잘 나가는 길’을, 뭔가 잘못된 상황에서도 ‘좀 더 잘 버는’ 방식을 택했다. 나 혼자 남았다. 난 그 길 바깥이 있을 것이라며 계속 ‘잘 버는’ 방식과 상관없이 살아왔다. 난 잘 살고 있나, 그 친구들은 행복한가. 술 자리에서 만나는 그들의 얼굴을 뒤덮고 있는 깊은 피곤은 꼭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 반이다의 <개청춘>의 승희와 민희와 인식을 떠올려 본다. 계약직 작가 승희와, 고졸 백화점 직원 민희와, 알바인생 인식. 그리고 내 CFA를 준비하면서 희망을 찾아가고 있는 내 동생. 모두 희망을 이야기 하지만 그건 어쩌면 ‘단꿈’이다. 어떻게 해도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 어쩌란 말인가. 그냥 각자 가고 있다. ‘각개약진‘을 꿈꾼다. </p>

하지만 각개약진이 온전히 모두에게 가능하지 않을 거라는 것도 모두 안다. “부자 되세요!” 앞에 빠져있는 ‘주어’가 우리 모두가 아니라는 것도 다 안다. 그 말을 하면서 오히려 서로 부자가 아닌 사실을 환기시키고 있는 것이다(p.47). 신자유주의적 질서가 강요하는 경쟁이 살아남는 일부만을 남겨둔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기 최면을 통해서 이겨내려 한다. <시크릿>이나 <행복한 이기주의자="">,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를 읽고 <이기는 습관="">을 익히려 한다. 이기지 못할 확률이 높다는 것도 사실 잘 안다. 그러면서도 읽는 건 불안해서다. 외로워서다. 요약하자면 “내 몸은 신자유주의에요“(p.53). </p>

<88만원 세대>가 그 불안의 경제적 구조에 대해 말했다면,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는 조금 더 20대의 곁에 다가가 그들을 관찰한 모습들을 보여준다. 각자는 “너무 힘들어요.” 혹은 “죽겠어요.”라고 말하는데, 집단으로의 20대는 “우린 괜찮아요, 전 정말 열심히 공부할 수 있어요, 믿어 주세요!”라고 말한다. 실질적으로 정책 수요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책 요구는 없는, 일종의 딜레마 상황이다(p.152). </p>

진 짜기 – 20대의 공간 확보

우석훈은 ‘진’을 짜자고 한다. 개개인의 ‘각개약진’은 언제나 사회적인 권력과 부를 장악하고 있는 명박과 그의 동맹군에 의해서 ‘각개격파’ 당하기 일쑤다(p.85). 홀 몸으로 한 명 한 명 조자룡처럼 싸우기에는 힘이 부치다. 게다가 ‘매니저 맘’에 의해서 자라온 20대, 5지 선다 ‘시나공'(시험에 나오는 공부법) 말고는 다른 대응법을 모르는 20대는 홀로 싸울 수 없다. 그리고 그 대응법조차 모르는 이들은 더욱 더 파편화되어 사회 음지에 있다. 이런 20대들을 우석훈은 ‘난쟁이들’이라고 한다. 이 난쟁이들의 ‘연대’를 어떻게 끌어낼 것인가. 그게 바로 ‘진’이다.

하지만 20대가 싸울 방식이 꼭 386들의 ‘민주집중제’나 아니면 다른 기존의 대의제 조직일 필요는 없다. 그것들은 나름의 역사성을 띠고 지금의 관점에 기계적으로 대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 20대가 갖고 있는 의사소통의 방식은 수평적으로 가고있는 것일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p.90).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는 것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사실 이렇게 구성된 20대들의 연대는 쉽게 유지되기 어렵다. 겹겹이 쳐진 한국의 주류사회의 ‘진지’들이 있기 때문이다. 각 ‘세대’들의 진지가 있고, ‘지역’의 진지가 있고, ‘토건국가’의 진지가 있고, 신자유주의적 질서를 강요하는 자들의 진지가 있다. 게다가 20대들을 묶어내려 해도 어느새 강남의 20대들은 강남과 비강남을 분리하여 사고하곤 한다(p.104). 이것은 신자유주의 체제가 강요하는 ‘몸’의 완성이기도 하지만 20대 사이의 신뢰의 붕괴라고도 볼 수 있는 거다. 그 이유를 우석훈은 ‘공포’와 ‘불안’이라고 지적한다. “이것은 어쩌면 지난 10년간 우리가 한 발만 옆으로 가도 죽을 수 있다고 교육한 결과인지 모른다”(p.105)

하지만 여전히 한국은 일본처럼 ‘빽빽’하게 질서가 짜여진 사회가 아니라고 한다. 그렇기에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정치’가 싫다는 이명박이 ‘정치인’의 최정점인 대통령이 되지 않았나(p.108).

오히려 이제 대안들을 찾아볼 수 있다. 대안들을 살펴보기에 앞서서 지금까지 제출된 몇 가지를 훑어본다. 그건 조한혜정의 ‘마을‘에 대한 담론들과 이진경과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노마디즘‘ 담론들에 대한 검토다. 조한혜정의 ‘마을’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20대가 마을을 이룰 수 없는 상태이기에, ‘공포’를 먼저 극복해야 하기에 기각된다. ‘노마디즘’에 대해서는 사실상 유목민들도 부족을 이루고 마을을 이룬 상태였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했다며 지금의 상태에 적용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조한혜정의 논의보다 더 앞서간 논의라는 것이다. 순차적으로 이야기를 해볼 수 있다.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바로 지금의 포위망을 뚫는 방법이고, 잃어버린 영웅들의 노드를 회복하는 동시에 우정과 환대의 공간인 20대들의 마을을 다시 만드는 길이다(p.116).”

두 가지의 ‘진’의 경로가 제시된다. 시민운동을 활용하는 법정당(정치)을 활용하는 방법. 기존의 ‘대리인’ 운동으로 진행되어왔던 시민 운동 안에 20대의 여지는 그리 넓지 않다고 한다. 오히려 자신들의 ‘당사자 운동‘으로서의 시민운동이 제기된다. “매달 1만 원 정도 후원할 수 있는 1만 명의 20대“를 확보하자고 한다(p.121).

정당운동에 대한 언급은 기존의 최장집과 많은 논자들도 지적했던 점이지만 우석훈은 ‘지역정치’ 혹은 ‘지방정치’에 중점을 둔다. 지방자치단체 선거 중에 기초의원부터 시작하자는 거다. 기존 ‘중앙’에서 시작했던 386의 선거라는 것이 결국 중앙의 논리에 포섭되었던 것들을 떠올려 볼 수 있다. 가장 가까운 자신의 공동체에서부터 시작하는 ‘지방정치’야 말로 20대가 독자적인 자신들의 목소리를 펼칠 수 있는 공간이 아닐까.

또 <가난뱅이들의 반란="">의 마쓰모토 하지메가 이야기했었던, 또 <성난 서울="">의 저자 아마미야 카린이 제시했던 프리터 노조, 알바 노조가 한국에서도 가능함을 보여준다. 2인 이상이면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고, 기업별 노조가 아닌 것도 법적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반 노조 형태로 학교 주위에서 일하는 대학생들을 엮어내고 10대와 대학에 가지 않은 알바생들과 연대하기. 새로운 축 하나를 더 던진다고 할 수 있다. </p>

노동권, 주거권, 보건권, 교육권 – 어떤 이슈를 던질 건가

20대들이 어떤 이슈를 던져야 유의미한 지점들을 얻어낼 수 있을까? 우석훈의 전작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에서 백미는 미국과 래칫(역진 금지)나 최혜국 조항을 포함할 거면 차라리 거기다가 이민 조항 포함하여 ‘노동권’을 넣자고 했던 구절이다. 협상가로써 생활했던 경력들은 구체적으로 당장 명확해지는 핵심들을 짚어내는 장점을 이번에도 보여준다. </p>

네 가지의 권리를 이야기한다. 먼저 노동권이다. 노동 ‘형태’는 유연적으로 하되 고용에 관한 보장을 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임금체계를 좀 더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두 번째는 주거권이다. 부동산 거품이 문제가 되던 순간들에 선진국의 대도시들은 ‘사회적 주거‘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미분양된 공간들을 ‘기숙사’와 ‘학생 아파트’로 활용했다(p.157). 현재 지방에서의 많은 아파트들이 미분양 사태를 맞고 있는데 그에 대한 대안과 동시에 20대의 ‘주거권’을 같이 이슈로 던지는 거다. 세 번째는 복지권이다. 프랑스는 1인당 GDP 5천 불 시대에 ‘문화 복지‘개념을 공공 복지의 개념에 넣었다. 또한 무상 의료의 개념이 잡혀있다. 우파의 15년 집권기에도 이러한 틀은 크게 변하지 않았는데 이 이슈 역시 20대를 위해 시급하다 말한다. 마지막으로는 교육권이다. “지자체에 더 많은 예산을 배정하고, 일종의 ‘교육 쿠폰’ 같은 것들을 통해서 20대를 중심에 놓고 평생 교육 체계를 대폭 강화하면, 20대들의 경제적 삶을 실제로 지원하는 효과가 있을뿐더러, 지금까지 말로만 외치던 지식경제의 기반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 한다(p.160).

그리고 남은 이야기로 ‘징병제’에 대한 이야기와 지역경제에 대한 이야기, 젠더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징병제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가 ‘파병’을 억제하기 위해서라는 주장이 이색적이다. 물론 이것들이 당장 이루어 질 거냐 아닐 거냐의 논쟁을 할 경우 ‘환상적’으로 보일 수는 있겠다. 하지만 이미 ‘불안정 노동’이라는 상황이, 그리고 사회의 노동의 가장 취약한 쪽으로 가라앉고 있는 20대의 상황이 이미 환상적 아닌가?

우정과 환대의 공간 만들기

우석훈은 당장 필요한 것은 “혼자라야 마음 편하다.”는 친구들을 불러낼 수 있는 우정과 그 친구들을 환대할 수 있는 밥상 공동체라고 말한다(p.171). 돈이 없고, 집이 없고, 결혼을 못하는 3무 세대, ’88만원 세대’를 뛰어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밥상 공동체’라는 점을 이야기할 때 예수가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했던 장소로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간 것만 같다. 가장 기본적인 욕구들이 어찌 될 지 모른다는 협박 때문에 공포를 느끼고, 그 공포 때문에 모두를 적대시하게끔 되는 건 아닐까.</p>

우석훈이 20대와 ‘함께’ 만들고 싶은 세계가 인상적이다. “</span>내가 한국 20대들과 만들고 싶은 세계는 소설책도, 영화도 많이 볼 수 있고, 마음껏 꿈꾸며, 그것을 실현해 먹고살 수 있는 곳, 누구도 누구 위에 올라서거나 누구를 불행하게 하지 않으면서 자연과 어우러져 소박하게 살 수 있는 곳이다. 최소한 20대들이 창문이라도 달린 방에서 살고 지하나 반지하방에서 지상으로 올라와 살게 해 주고 싶다. 그리고 전 세대들처럼 인상 구기면서 살지 않고, 명랑하게 웃으면서 늘 재밌는 일들만 하면서 살아가게 해 주고 싶다. 배고프지 않고, 외롭지 않고, 잔인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사람들과 충분히 마음을 나누며 사는 삶. 이 정도의 소박한 꿈도 혁명 없이 가능하지 않단 말인가?“(p.176)</p>

그리고 20대들의 자기 기록들

마지막으로 우석훈과 조한혜정의 <문화기술지>와 우석훈의 방학 중 세미나를 함께 진행했던 20대들의 글을 읽는다. 백고은의 “</span>햇빛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남자친군 창창. 내 인생도 반짝?“(p.223)을 읽다가 눈물이 났다. 제1 금융권에서 빌린 돈의 이자를 갚지 못해 제2 금융권의 돈을 빌리고 하루 하루 알바를 뛰다가 대학을 졸업하게 된 순간에 그녀가 말하는 자기 고백은 이미 담담해진 목소리로 전해지지만 읽는 나는 계속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p>

그리고 ‘예쁜 여자’에 대한 자신의 컴플렉스와 그것을 겪어나가는 이야기를 해준 방영화의 글을 읽으면서 나와는 또 4~5살은 차이나는 대학생의 감성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을 했다. 또 세상이 자기에게 말 걸기 전에 먼저 자기가 세상에 말을 걸어보겠다는 당찬 서명선의 글을 읽으면서 그녀가 펼쳐나갈 연세대학교 생태선본이 어떤 모습일까가 굉장히 궁금해졌다. 언제나 패셔너블한 유재영의 패션좌파에 대한 이야기는 허지웅을 너무나 워너비하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스타일이 살아있는 글이었다.

내 나이 20대 초반에 이런 글들을 과연 쓸 수 있었을까 싶었다. 누구만 ‘작가로 탄생‘한 것이 아니고, 이렇게 잘 엮어만 주고 공간만 내준다면 누구든 훌륭한 글을 쓸 수 있음을 다시금 확인시켜주는, 후천적인 작가가 만들어 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로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가 자리매김 할 수 있을 것이다. </p>

그리고 그(녀)들의 이러한 글쓰기가, 또 그들의 행동들이 모여서 ‘진’을 짜고 지금까지 규정되어온 다른 방식의 ‘혁명’을 사유할 때 ‘혁명’의 실마리가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는 해 본다. 물론 그것이 나르시즘적인 경로로 빠질 수 있음은 언제나 경계해야 하지만.

어쨌거나 이제 또 하나의 진지가 이미 구축되었음의 선포를 본다. “우리는 지는 법이 없”지 않나. 나 역시 어떤 진지에서든 계속 싸움을 모색하면서 가 보겠다. 몇 가지의 경로들이 이 책을 통해 보인다. 그런데 참 우석훈을 당할 수 없는 것이 나 혼자만 개념화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들을 이 책을 통해서 다 펼쳐 놓고 있다는 것이다. 날로 먹을 수가 없다. 사회과학에서 담론을 만들 수 있는 저자의 힘을 다시금 느낀다. 뒤에 이어질 <사회과학 르네상스="" 사회과학="" 방법론="">을 기대해 본다. <생태 요괴전="">과 <생태 페다고지="">도. 물론 중요한 것은 내가 쓰는 것 같다. 내가 뭘 만드는 게 점점 더 크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 책 말미에 나오는 20대 중 한 명인 방영화의 자기 성찰하는 글을 첨부한다. 레디앙에 늘 상주하는 ‘페미년’을 참지 못하는 마초 좌파들아. 좀 사람 새끼처럼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다. </p>

</span>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10점
우석훈 지음/레디앙
</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