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군대에 대해 여자가 물어볼 때의 남자의 대답은?
남자들의 군대에 대한 이야기는 늘 남자에게 하느냐, 여자에게 하느냐에 따라서 다른 것 같다. 남자들끼리 모여 군대에서 ‘힘들었다’라는 말은 보통 잘 들리지 않는다. 그냥 ‘어떤’ 군생활을 했느냐에 대해서 서로 위계를 만들어서 비교할 뿐이다. 쉽게 생각해보자. 10명의 예비역을 모아놓고 누구의 군생활이 가장 힘들었냐고 싸워보기로 하자. 대신 신분은 같게 하자. 밤새고 싸워도 정리가 될까? 해병대가 가장 힘들었다고 할 떄 특전사 통신병이 지랄하고, 걔가 짱 먹으려고 하는 순간, 매일 밤샜다는 행정병이 이야기를 한다. 그러다가도 유격 행군 다 다녀왔다고 약간의 뻥카가 보태지고 서로 힘들다고 하다가 결국 정리는 “다 힘들었어. 어쨌거나 제대했잖아?”하면서 옆에서 아직 파들파들 떨고 있는 100일 휴가 나온 녀석에게 “아, 그 날짜 남았으면 나 같으면 자살하겠다”라며 퉁을 치고 끝이 난다.
그런데 여자가 물어보는 순간. 갑자기 ‘군대의 정석’ 버전이 쏟아져 나온다.
남자들끼리 모여서는 오히려 군가산점이나 이런 이야기에 대해서 좀 편하게 이야기하고 구태여 필요하지 않다는 결론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가도, 여자들 앞에서 군대 이야기를 하기시작하면 이야기가 닫히기 시작하는 거다. 여자가 군대에 대해 물어볼 때 대략 두 가지 반응인 것 같다. “아, 힘든 기억” 다른 하나는 “뭐 그까짓 군대”. 전자와 후자는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같은 지점을 지목하고 있다. 전자는 군대가 힘들었다는 것을 툭 까놓고 이야기하는 것이고 후자는 군대라는 곳은 힘들지만 자신이 ‘더 남자답기에’ 그리 어렵지 않았다는 언설이다. 엎어치나 매치나 결국 별 차이가 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거기에는 ‘솔직한’ 남자들의 군대에 대한 생각들이 잘 묻어나지 않는다. 쪼다들의 자기 자랑이 이어질 따름이다.
공식적인 남자들의 대답은 ‘육군병-전투병과’의 프레임에서 나온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남자들의 군생활이 단일한가? 뭐 이를테면 “제대만이 살길” 이거까지는 그래도 이해할 수 있겠지만, 다들 마치 매일 같이 군용텐트를 친 것 같지만 그걸 안 해본 군인도 최소한 1/3은 된다. 65만 현역 중 50만을 제외한 15만은 무조건 안 한다(해군, 공군, 해병대). 그리고 육군이라고 다 텐트치고 사는 거 아니다. 육군 군종, 의무병, 등등등. 군 바깥을 보자. 공익근무요원과 특례업체, 연구원, 게다가 신검 5급 이하 면제와 제2국민역까지 하면? 사실상 남자들과 ‘육군병-전투병과’ 체계가 딱 대다수라고 말할 수는 있을까? 뺑끼로 군대 안가도 티도 안 날 만큼 많은 인구가 태어나던 시절도 있었다. 군대를 안 가는 사람과 가는 사람이 비등비등한 60년대까지의 시절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가부장제가 예쁘게 찍어내는 ‘남자 연대’ 속에서 ‘육군병-전투병과’의 프레임이 나오지만 뭐 사실 그게 그리 구체적인 이야기도 아니라는 거다.
그리고 ‘매니저-맘’의 시대에서 신자유주의적 ‘자기계발서’를 보듯이 선택으로 군대를 가는 남자들은 이런 ‘육군병-전투병과’를 마친 인간들을 완전 무시한다. 남자들끼리는 사실 알고보면 부러워한다. “짧게 다녀온다”는 것에 대해서 가치를 크게 부여하지 않는다면 장교에 대해서도 일단 부러워한다. 카투사, 공군 장교, 의무소방, 통역병. 정 안되어도 공군병(헌병, 방포, 급양 제외하고) 가려고 하는 남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6주 외박과 그 사이 사이 연가와 특박을 합쳐서 2주~4주 사이에 한 번씩 나온다고 쿠사리 먹고 있는 병사들은 무시당하고 있긴 한건가? 전투복 입고 여자친구 데리고 다니는 군인들을 보면서 혀를 끌끌차고 “집에 가서 옷 갈아입지”라고 말하는 장교들은 신촌, 홍대, 강남역에서 주말마다 술을 마시고 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거 아닌가. 군대에서 자격증 마구 따서 제대하는 것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군대에 가면서 서울 4년제 대학을 다니는 이들이 선택하려는 필승 군대 자기계발 카드가 아니던가. 아니면 책을 엄청나게 읽던가. 아니면 TOEIC/TEPS/TOEFL을 따거나. 이들에게 군가산점까지 걸어주면 그냥 주워먹는 거다.
군대의 경험은 남자들에게 대체로 힘들었다. 하지만 단일하지는 않다. 군대가 사회보다 더 편하다는 걸 아는 남자들은 수두루 빽빽이다. 군대에서 잘 쉬었다는 사람들도 도처에 깔려있다. 위의 이야기들을 여자들이 잘 모를 따름이다. 아니 못 들었기 때문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