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화 conscientization

#1

1980년대 <해방전후사의 인식="">를 읽거나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고서 대학생들의 의식이 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좀 뒤의 세대들은 박세길의 <다시쓰는 한국현대사="">, <한국경제의 뿌리와="" 열매="">, <껍데기를 벗고서="">를 읽고 처음의 인식들을 만들었던 것 같다. 1990년대에는 NL은 비슷한 궤적으로 읽어왔던 것 같고, PD는 <청년을 위한="" 한국현대사=""> 정도를 읽었을까. 90년대의 PD들이 무엇을 읽었는 지는 잘 모르겠다. 맑스-레닌주의가 기각된 상태에서 뭘 읽었을까. <철학의 철학사적="" 이해="">(철철이), <전태일 평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난쏘공, 조세희) 정도였을까? (좀 더 아시는 바가 있으면 댓글 좀 주시믄)

2000년대 학습-교양서적의 시대가 붕괴하기 시작했다. NL은 여전히 <다시쓰는 한국현대사="">와 <역사에세이> 정도를 읽었던 것 같고 PD는 <제2대학>에서 만든 자료들을 읽거나 <철학에세이> 정도를 읽었던 것으로 보인다. 시대와의 단절은 이쯤 생긴 듯하다.

의삭화, conscientization이라고도 하고 radicalization이라고도 하는 것 같은데. 의식을 갖추든, 운동권 빨갱이가 되든 어쨌거나 그 문제가 2000년대 이후는 완전히 증발해버린 듯하다. 80년대의 교재로 90년대의 운동권 선배들이 2000년대 학번을 ‘학습’시키는 시대가 있었던 셈이다. 운동권은 이미 소수였고 소수 인자를 양성해보려 했으나 2000~2001년에 열렸던 NL의 전성기(남북정삼회담, 6.15 선언) 잠깐을 제외하면 늘 그들은 ‘의식화 과정’에 실패했다.

운동권 차원의 논의 바깥으로 나가보자. 대학생들이 의식화의 순간을 맞기는 하는가? 스펙경쟁의 과다는 다시 다른 축으로 보면 의식화의 공간이 대학에 열리지 않는 이야기로도 설명할 수 있다.

#2

386이 돌아왔다. 제대로 된 386 지식인 몇 명이 요즘 좌파 정체성으로 다시 그러한 ‘의식화’의 작업을 하려하는 듯하다. 예전의 고답적인 맑스-레닌주의도 아니고, 주체사상은 확실히 아니고, 다른 방식의 어떤 주체들을 만들어내려는 것 같다. 그리고 한 동안 그 작업을 했던 다른 기존의 좌파/진보들의 방법에서 벗어나려 한다. 이를테면 홍세화, 강준만, 손석춘 류에서 좀 벗어나서 스펙세대에게 접근하려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더 핫하고 씨닉하고 명랑하게 접근하는 것 같다. 그들은 그전의 그러한 사람들의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지형을 못 읽어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뭐 이를테면 ‘무식한 대학생’이라는 홍세화의 호명이나, 진보와 개혁을 구분 못하고 그냥 백과사전류 지식을 쏟아내는 것이나, 여전히 ‘진보대연합’을 말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이다. 그 지적은 맞다. 좀 다른 접근도 맞다.

그들은 의식화 프로그램의 방법론의 문제를 말하곤 한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다른 방법이 더 나을 수도 있다. 문화 생산자 개념으로 접근하거나 사회적 기업을 말하거나 뭐든 그 전의 군대조직처럼 하는 방식, 엘리트주의적인 방식으로 하는 것보다 나을 수는 있겠다.

문제는 새로운 좌파 지식인들이 너무 급하거나 그들에게서 80년대의 의식화의 ‘앗쌀함’의 조급이 종종 느껴진다는 것이다. 몇십 년동안 켜켜이 온 몸에 신자유주의와 토건국가의 결이, 혹은 중간계급화의 각인이, 또는 찌질한 스펙경쟁에 몸이 세뇌된 이들이 순식간에 변할 수 있을까. 좋은 선생을 만난다고 빠른 시일에 바뀔 수 있을까? 그건 좀 어려운 것 같다. 수십 년동안 대학에서 대학생 ‘아이들’을 잡고 포기하지 않고 페다고지를 실천하는 선생도 대학생들을 많이 바꾸지는 못한다.

#3

또 다른 문제는 그나마 몇 명 남은 선택된 ‘의식화된’ 인자들이 과연 그 만큼 좌파적이거나 진보적인 주체로 변했는가이다. 요즘 권인숙의 <대한민국은 군대다="">를 읽었다. 80년대 ‘번개를 맞는 듯한 경험’을 통해서 의식화되어 학생운동의 주요 인자가 되었던 인민노련 출신의 여성 김상인의 사례를 접한다. 그녀는 지적으로 의식화되었고,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현장에서 열심히 활동했고 한 번도 자신이 주류 담론에 기성 질서에 대해 도전적이 아니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한 번도 민족주의를 버리지 않았고 또 다른 애국을 했다. 그녀는 한 번도 가부장제를 버리지 않고 남자 후배들의 속옷 빨래를 해 주었다. 그녀는 한 번도 수직적 위계를 의심하지 않고 군대화된 조직 문화를 비판하지 않았다. 언제나 조직이 개인보다 중요했다. 그녀가 맑스-레닌주의를 받아들였다고, 그녀가 사회주의를 갈망했다고, 그녀가 노동자들과 함께 했다고 그녀는 온전한 의식화를 경험했다고 말할 수 있나?

80년대는 젠더관점에서는 실패했다. 이러한 여성주의의 운동권의 문제제기는 틀린 것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운동권 전체가 문제라는 이야기는 물론 아니다. 한계의 지적일 따름이다.

또 다른 차원에서 ‘온전한 의식화’라는 말 자체에도 문제제기가 가능할 것이다.

어쩌면 ‘의식화’에 대한 생각 자체가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 가르치려는 생각들이 문제일 수도 있다. ‘페다고지’는 선생과 학생이 함께 배우며 변하는 것 아닐까. 상호과정은 어디에 있을까. 선생이 학생들에게 답답할 때 마찬가지로 학생들도 선생에게 답답할 수 있다. 서로 몸이 풀리지 않을 것일 거다. 어쨌거나 스텝이 엉키는 느낌을 종종 발견한다. 천천히 지치지 않고 집요하게 가는 방법. 어디에 없을까?

프레이리의 <페다고지>에서 그는 어떻게 ‘의식화’의 문제에 접근했을까. 요즘 내 화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