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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람시를 읽다가 발견한 인민노련 – 김현우, 안토니오 그람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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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그람시 – ![]() 김현우 지음/살림 |
2009/08/24 – [일기장/하루 하루의 기록] – 데뷰 : 우석훈과의 공저 작업 – 인민노련
2009/11/17 – [보고 듣고 읽고 그리고 느끼다/사회과학] – 386세대 경험의 재구성 – 김원, 잊혀진 것들에 대한 기억
2009/11/15 – [보고 듣고 읽고 그리고 느끼다/사회과학] – 6월 항쟁을 당신들이 했다고? 아니거든요? – 김원, 87년 6월 항쟁
2009/11/11 – [보고 듣고 읽고 그리고 느끼다/사회과학] – 진짜 좌빨들의 시대는 안 왔거든? – 이광일, 좌파는 어떻게 좌파가 됐나, 메이데이, 2008
버스타고 학교 가는 길, 집에 오는 길에 너무 졸립지 않은 책들을 집어서 읽는 편이다. 이를테면 헤겔은 버스에서 읽을 수 없는 책이다. 니체는 사람마다 편차가 큰 편이고, 맑스는 정치 팸플릿 같은 작은 책자들은 그나마 좀 읽을만 하다. 한국사람이 직접 쓴 책이라면 누가 썼어도 졸지 않고 읽기는 한다. 오늘은 들뢰즈의 책 한 권을 숙제라서 읽고 오다가 종점까지 자버렸다. 앉아서 읽으면 사실 읽을 만 한데, 버스에서는 죽어도 못 읽겠다.</p>
어제와 학교를 오갈때, 그리고 오늘 학교 갈 때 김현우가 쓴 <안토니오 그람시="">를 읽었다. 예전에 산 책 버리기도 좀 아깝고. (그런 식으로 집에 쌓여있는 책이 500권은 되겠다.) 어쨌거나 읽다가 재미있는 구절들을 발견한다. 한국 사람이 어떻게 그람시를 읽는 지는 궁금했다. 원전주의자인 나는 원래 해석본을 잘 안 본다. 예전에 최장집과 임영일, 그리고 이내영이 썼던 글들을 읽었는데 <옥중수고>가 훨씬 재미있었다. 하여간 읽다가 재미있는 걸 발견했다. 주어와 보어만 바꾸면 그람시의 진단이 한국에도 그대로 들어 맞는다. 이탈리아 파쇼 정부 대신 전두환을. 사회당 대신 재야나 국본을. 노동총연맹 대신 국본을 넣어봤다(그 시절에는 전노협이나 민주노총이 없었으니까). 87년 진단을 그람시가 은유로 하고 있었나?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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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단락을 비교해 보자.</span>
“새로 취임한 남부 출신의 우파 수상 지올리티는 노동자들의 봉기에 매우 지혜롭게 대응을 한 셈이다. 러시아 혁명의 열기가 가시지
“전두환 정부는 노동자들의 봉기에 매우 지혜롭게 대응을 한 셈이다. 87년 6월 항쟁의 열기가 가시지 않은 이 때에 대중투쟁을
또 이런 건 어떨까.
“하지만 그람시 정치활동의 중심축은 점차 정당의 문제로 옮겨가는 조짐을 보이게 된다. 이제 과거의 사회당도, 현장 대중운동인 공장평의회 운동도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이 그람시에게 명확해졌기 때문이다”(p.25).
“하지만 인민노련의 정치활동의 중심축은 점차 정당의 문제로 옮겨가는 조짐을 보이게 된다. 이제 과거의 재야도, 현장 대중운동인 인민노련도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이 인민노련에게 명확해졌기 때문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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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은 이 때에 대중투쟁을 무력으로 진압하게 된다면 오히려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불러올 것이라는 생각에 노동총동맹의 지도부를
회유하고 타협하기로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1919년의 봉기는 노동총동맹의 경제적인 협상으로 제한되었고 토리노의 봉기는
고립되었다. 그람시는 이탈리아에서 당이 대중을 지도하고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이 당을 인도하고 교육했다고 한탄했는데,
노동총동맹의 지도자들과 사회당의 지도부들이 바로 그 꼴이었다. 그들은 들끓는 이탈리아 사회의 분위기와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pp.23-24).
무력으로 진압하게 된다면 오히려 민중혁명을 불러올 것이라는 생각에 국본을 회유하고 타협하기로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1987년의 봉기는 노동조합들의 경제적인 협상으로 제한되었고 인천, 울산, 창원, 안양, 안산의 급진적인 봉기는
고립되었다. 그람시는 한국에서 당이 대중을 지도하고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이 당을 인도하고 교육했다고 한탄했는데, 국본과 재야의 지도부들이 바로 그 꼴이었다. 그들은 들끓는 한국 사회의 분위기와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