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영웅 서사는 짜증나서 더 못보겠다. 모든 걸 다 알고 있고 어떤 걸 해야하는 지 알고 하는 남자. 그를 알아주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서 희생하는 멋진 남자. 그런 남자들의 이야기는 신물이 난다. 오히려 내가 좋아하는 영화의 남자들은 직업과 상관없이 자신의 밑바닥을 드러내주고 거기에서 어떤 대답들을 보여주거나, 뭔가 거창한 걸 실제로 할 수 없는 남자들이다. </p>
<우아한 세계="">의 송강호가 후자를 대변한다. 기러기 아빠로 아이들과 아내를 외국에 보내놓고 그 돈 송달을 위해서 조폭일을 열심히 하는 송강호. 그리고 기껏 그 고충을 나눌 수 있는 순간은 친구와 담배 한 대 나눠 필 때 뿐이다.</p>
<거북이 달린다="">의 첫 씬은 전형적이되 잘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애들 담임 선생을 만나 이야기를 하는데, 소방수 아빠가 ‘아버지 교실’ 시간에 소방차를 데리고 왔다는 말에 발끈하여 빽차와 닭장차를 가지고 오고 호신술 등을 가르쳐주겠다는 김윤석. 그런 용도로 동원되는 것을 알면서도 애들 ‘기’를 살려주겠다는 아빠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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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만큼 구체적으로 아이들을 돌보지도 못하고 돌보지도 않는 남자이지만, 어떻게 해야할 지도 모르고, 애들 버릇을 버리든 말든 만 원짜리 한 장을 덮석 주어 애들 경제관념을 흐려버리는 아빠 김윤석. 매니저 맘의 시대에 ‘연상’ 아내에게 기가 눌려 밖으로만 겉 도는 남성성 강인한 직업에 비해 찌질한 김윤석. 그것들을 그대로 드러내 주기 때문에 좋다.
지딴에는 열심히 살아보려 하고, 한 껀 올려서 애들 뭔가 해주려고 했다가 정직 먹고, 아내에게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놈 취급 당하지만, 섹스를 하려다가 찢어진 아내의 팬티를 보고 눈물 나는 이 남자의 그 맘은 누가 이해해 줄 수 있을까. 그냥 그런 식으로 살 게끔 둔 건 아닐까. 이 찌질한 남자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나? ‘찌질하다는’ 면들의 경계 가르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오히려 나는 마지막에 영웅이 된 그가 집에서 다정한 남성으로 변하기를 바랬고, 굳이 제복을 입고 와서 아이들에게 멋진 직업인으로서와 더불어 ‘남성성’을 다시금 회복한 아빠로 돌아오는 그의 모습이 짜증이 났다. 궁상스러워도 아이들을 잘 돌보고 아내와 잘 알콩달콩 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건데, 오히려 그게 안 된다면 뭔가 다른 맥락을 던져주기를 바랬던 건데.
감독은 그 순간에 좀 머뭇거렸던 것은 아닐까. 왜 구태여 ‘회복된 남성’의 신화를 다시금 꺼냈을까. 질문이 드는 영화였다. <우아한 세계="">에서 아무것도 해먹을 줄도 모르고 라면이나 끓여먹으며 아이들 생각에 눈물짓는 송강호가 오히려 더 좋았던 기억을 떠올려 본다. 3년이 더 지났는 데 왜 이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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