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의 독점. 센세이션의 추구. – 솔로이스트 저평가에 대해

2009/11/28 – [보고 듣고 읽고 그리고 느끼다/영화를 보다] – 솔로이스트 Soloist (2009)
‘솔로이스트’ 실화가 주는 감동 못 살렸다 – 무비조이


요즘 <문화예술의 사회학="">이라는 과목을 공부하면서 비평에 대한
반감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영화를 어떻게 선택하는가를 바꾸고 있는지가 궁금했었다. 네이버나 다음의 랭킹들이나 영화 관련
블로거들(비평의 용어를 빌지 않는 평이한 어투로 쓰는)의 글들을 참조하여 영화를 선택하는 것인데 거기에는 어느 정도의 장치들이
있다. 블로거들의 글이야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 다양한 경향이고(그냥 기사를 올리는 경우, 영화사 사이트를 뒤지는 경우, 보고
리뷰를 쓰는 경우 등), 문제적인 것은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털의 랭킹들인데. 영화사에서는 초반 1주일을 잘 버티기 위해 엄청난
물량 공세를 한다. 사실 그것도 어느 정도는 밝혀져있다. 하지만 잘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영화와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는 공간을
발견하게 된다. ‘무비조이’같은 블로그형 웹진 말이다. </span>


오늘 영화 <솔로이스트>를 보고 짧은 감상평을 실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집에 들어와 살펴보니 트랙백과 댓글들이 달려있었다. 트랙백에 걸려있는 사이트 ‘영화사이트 무비조이’의 리뷰를 유심히 살펴보게 된다. </span>사이트의 기사를 읽다가 좀 희한 했던 건 ‘댓글’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테러를 당한 적이 있었던 것일까? 댓글도 안 달리는 블로그형 글쓰기는 도대체 뭘까? 대화를 거부하고 ‘교시’를 내려주시는
것일까? 다음 v는 어떻게 이런 매체에서도 가능한 걸까? 이해를 할 수가 없다. 게다가
읽다보니 좀 아니다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가 내게 좀 거슬렸을까?</p>

 원문 : http://www.moviejoy.com/qnam/view.asp?db=qna&num=1366 </p>

하지만 영화에서 감동적인 모습이 돋보이지 않는다.</b>

영화 <솔로이스트>는 분명 좋은 원작을
가지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원작소설은 실화이기도 하다. 이런 장점 때문에 관객들에게 큰 감동을 주는 영화가 될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작품에서 전해주는 감동은 생각만큼 크지 않다. 무엇인가 상당히 알맹이가 빠진 이야기들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두 사람이 나누는 교감이 진정으로 이해되어야하는데 <솔로이스트>에서 이런 부분이 상당히 미흡하다. </p>


작품에서 가장 큰 감동코드는 하루하루 바쁜 일상에 지쳐가던 LA타임즈 기자 스티브 로페즈가 정말 계획치 않은 장소에서 나다니엘
에어스를 만나면서 변화해가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이 우연한 만남을 통해 어떻게 정서적으로
공감하고 서로에게 위안을 받게 되는지 관객들이 알 수 있다면 분명 이 작품에서 전해준 이야기들이 감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UPI 코리아, All Right Reserved


하지만 이 작품은 두 사람이 나누는 정서적 공감이 너무나 밋밋하다. 왜 그렇게까지 스티브 로페즈가 나다니엘 에어스에게 큰 공감과
정서적인 위안을 받게 되는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두 사람이 보여주는 음악을 통한 공감조차도 너무나 단조롭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영화에서 큰 축을 이루어야할 가장 기본적인 골격자체가 단단하게 토대를 구축하고 있지 못하다는
의미다. 이렇게 두 사람이 나누는 정서적 공감이 큰 호응을 얻기 힘들게 되면서 영화는 감동보다는 지루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높아진다.

뛰어난 배우들의 연기마저도 빛바래다.

<솔로이스트>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두 주연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제이미 폭스가 연기력을 갖춘 배우라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분명 이 작품에서도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보여준 연기가 마음에 와 닿지 않는 것은 영화가 가지고 있는 밋밋한 구조가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무리 배우들이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다 해도, 작품 전체적인 포인트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벗어나 있다면,
그것만으로 좋은 영화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고 있다. </p>

현실이 가지고 있는 감동이 영화로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것은 이 영화를 연출한 조 라이트 감독의 연출 실패라고 해야 될 것 같다. 그는 <오만과 편견="">,
<어톤먼트>을 통해 연출력을 인정받은 감독임에도 불구하고, 이전 두 작품과 비교해봤을 때 <솔로이스트>는
별다른 특징이 없는 영화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조금만 더 두 사람이 나누는 교감을 관객들이 이해하기 쉽게 해놓았다면 이런
결과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을 해보면 아쉽다. </p>

이 작품에 대한 평가는 영화의 원작이 되는 <솔로이스트>는 감동이었지만 막상 영상으로 옮긴 <솔로이스트>는 평범하다는 이야기로 끝을 맺어야할 것 같다.</td> </tr> </tbody> </table>

본문으로 들어와서 살펴보면 ‘무비조이’의 주장의 요지는 영화 <솔로이스트>가 ‘원작’의 ‘감동’을 ‘평범’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p>

“</span>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이 우연한 만남을 통해 어떻게 정서적으로
공감하고 서로에게 위안을 받게 되는지 관객들이 알 수 있다면 분명 이 작품에서 전해준 이야기들이 감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 그렇게까지 스티브 로페즈가 나다니엘 에어스에게 큰 공감과
정서적인 위안을 받게 되는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두 사람이 보여주는 음악을 통한 공감조차도 너무나 단조롭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영화에서 큰 축을 이루어야할 가장 기본적인 골격자체가 단단하게 토대를 구축하고 있지 못하다는
의미다.”
게다가 “두 주연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제이미 폭스가 연기력을 갖춘 배우”인데 감독이 감동받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거다. <어톤먼트>와 <오만과 편견="">을 만든 조 라이트가 어쩜 이럴 수 있냐는 거다(사이트를 뒤지다 보면 <오만과 편견="">에 대한 평점은 8점으로 나와있다). 이제 블로거들은 ‘무비조이’의 기사를 읽고 재미도 5점, 작품성 6점이라는 평가를 보고 예약 리스트에서 <솔로이스트>를 빼버리는 거다.</p>

영화 <솔로이스트>는 말을 거는 영화다. 정답을 주지 않는다. 나다니엘 에어스와 스티브 로페즈는 자기 방식으로 산다. 스티브 로페즈가 권력이 더 있기 때문에 나다니엘 에어스를 리드하는 것일 뿐 ‘삶의 방식’을 바꾸려는 시도에 나다니엘 에어스는 강경하게 반응한다. 삶의 방식을 바꾸려는 것이 잘 되지 않고 서로 존중하게 만드는 것. 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span>어떻게 정서적으로
공감하고 서로에게 위안을 받게 되는지”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 상황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가 ‘감동적’이었던 것은 그들이 ‘감동적 상황’을 통해 공감했기 때문이 아니라 서툴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별로 빠르지 않고 특별하게 ‘센세이션’하지 않은 방식으로 공감했기 때문이다. 구태여 영화의 관습처럼 부풀려 이야기하는 것을 ‘연출’이라 생각하고 그것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연출의 실패’라 말하는 것은 어느 시절의 비평 ‘관습’일까?</p>

거기에서 영화에다 대고 “더 쌈빡하게 못해?”하는 아저씨들의 채근이 느껴진다. 뭔가 쌈빡하고 새끈한 걸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솔로이스트>는 적당하지 않은 영화다. 웃으면 코미디 영화이고 울어야 슬픈 영화고 섹스하면 섹시한 영화고 음악을 틀어야 음악 영화라는 즉물적인 반응. 뭔가 쌈빡한 ‘감동’을 바랄 때에는 <아마겟돈> 같은 영화를 추천하겠다. 대신 당신들의 그러한 감성으로 읽어낸 그 ‘감동’이 모든 감동을 대변하는 건 아니다. ‘감동’을 객관적인 양 표현하여 독점하지 말라. </p>

</span>

이렇게 다 알아듣게 써 줘야 좀 알아듣는 거?


물론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영화는 각각 달리보이고 평가는 늘 그 사람의 숫자만큼 다를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다가 ‘객관’적인 지표들을 가지고 ‘객관적인 비평’인냥 행세하는 것이야 말로 굉장한 이데올로기로 늘 작동한다. 자기들의 ‘감수성’을 ‘객관성의 지표’로 말하며 쉽게 ‘실패’로 단정짓는 행위를 보았을 때의 불편함. 난 그래서 불편했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