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가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이유

전쟁을 팝니다6점
켄 실버스타인 지음, 정인환 옮김/이후

2009/12/11 – [보고 듣고 읽고 그리고 느끼다/사회과학] – 군대가 없으면 나라가 망할까? – 하승우
2009/11/06 – [생각하기/출간계획 및 생각 다지기] – 2학기 논문 계획 – 남성의 군대 경험의 재구성, 문화예술 페다고지
2009/11/06 – [생각하기/출간계획 및 생각 다지기] – 군대에 대해 여자가 물어볼 때의 남자의 대답은?

결국 버락 오바마도 아프간의 덫에 빠졌다. (최근 인터뷰) 미국의 비둘기파/자유주의자/민주당원에게 이는 좀 충격적으로 비쳐질 것 같다. 그 장단에 놀고 있는 이명박은 덜 황당하지만 대략 5년 전으로 돌아가 본다면 노무현의 “파병에 반대하지만 어쩔 수 없이 파병한다”라는 소리를 듣는 것과는 비슷할 수도 있을 것같다. 하지만 그 때 당시 노무현이 욕을 먹은 것과 지금 오바마가 욕을 먹는 것에는 사실 약간의 차이가 있다. 대한민국의 미국의 차이가 있다. 미국은 누구나 아는 ‘군산복합체’의 나라가 아니었던가.</p>

사실 그 이야기도 좀 식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디테일은 별로 공개되어 오지 않은 듯하다. 이를테면 가장 미국의 외교정책에 대해 비판적으로 설명한다는 노엄 촘스키가 미국이 어떻게 다른 나라의 독재자들을 어떻게 도와왔는지는 여러 책에서 설명하지만 미국내 분파들의 움직임을 실감나게까지 표현하는지는 좀 의문이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좌파 ‘저너리스트’ 켄 실버스타인의 <전쟁을 팝니다="">는 여러모로 그 상세한 상황들을 알려준다. </p>

이제 냉전은 끝났고 소련은 없다. 한동안 프란시스 후쿠야마 같은 이들은 <역사의 종언=""> 등을 통해서 이제 자유민주주의의 적이 없어졌다고 선언하고 설쳐대곤 했다. 하지만 이건 좌파들이 기분 나빠할 소리일 뿐만 아니라 미국내 우파들에게도 ‘돈 떨어지는 소리’였다. ‘가시적인 적’이 없을 때 미국은 경제의 위기를 느꼈다. 마치 로자 룩셈부르크가 말하는 ‘비자본주의 지역의 소멸 = 자본주의의 붕괴’ 시나리오처럼 말이다.

</span>실제로 1987년부터 1994년 사이에 미 국방부의 신규 무기 도입 예산은 56퍼센트나 떨어졌다. 레이건 행정부의 군비 증강
사업이 절정에 이르렀던 지난 1986년 미 국방부는 387대의 전투기를 도입했으나, 1998년에는 겨우 33대를 사들였을
뿐이다(p.38).


우파들은 곧 ‘역사가 종언’되었다는 둥의 헛 소리를 하면 죽는 다는 것을 깨닫고 군사적 위협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록히드 마틴 등 군수업체의 지원이 큰 밑거름이 되었다.

지난 1997년과 1998년 동안 ‘보잉’, ‘록히드마틴’, ‘노스롭그러먼’, ‘레이시온’ 등 4대 군수산업체는 약 4백만
달러의 정치자금을 정치인과 정당에 뿌렸다. (……) 지난 1998년 당시 4대 군수산업체를 위해 뛰고 있는 로비스트는
250여 명을 넘어섰다. 연방 정부를 상대로 이들이 뿌려 대는 로비 자금은 1998년 한 해 동안에만 무려 2,200만 달러에
이르었다(p.25).


 ‘중국위협론’이 대두되고 곧 이어 ‘불량국가'(Rogue State)의 위협에 대해 역설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라크를 1990년 침공한다. 사실 알고보면 후세인이 미국의 지원을 받아 세력을 유지했다는 것은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이다.</p>

그리고 새로운 무기체계에 대한 도입을 말하고 그 예산을 정부로부터 따내곤 했다. 그것의 실효성은 아무 상관이 없다. 또 국내에서 수요가 마땅치 않으면 수출을 강화하기 위한 로비가 시작되었다.

</span>1999년 말을 끝으로 보잉의 내수 물량은 멈춰 섰으며, 이 때문에 보잉은 F-15 전투기 국외 판매를
위해 이스라엘, 그리스,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등과 적극 접촉했다. 전투기 국외 판매가 워낙 중요했기 때문에 1999년 클린턴
행정부는 록히드가 미 공군이 보유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성능이 개량된 F-16 전투기를 아랍에미리트 연합에 판매하는 것을
허용했다(pp.64-65).


원체부터 무기상들은 국적에 관계없고 진영에도 관계가 없었다. 그들은 상호 적대국 모두에게 무기를 팔기도 했다. 

1966년 메렉스는 파키스탄에 F-86 전투기 90대를 팔았다. 한 해 앞서 인도와 파키스탄은 교전을
벌였고, 이 때문에 나토는 당시 두 나라에 대해 무기 금수 조처를 내려 둔 상태였다. 파키스탄이 합법적으로 전투기를 구매할 수
없었기에, 이란의 샤 왕조가 대신 자국이 전투기를 구입하는 것처럼 나서 주기로 했다(p.163). 당시 미국은 좌파 쪽으로
기울던 인도보다 파키스탄을 선호했다(p.163). 나중에야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인도 정부가 분노한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었다.
인도 정부를 달래기 위해 나선 메르틴스는 전설적인 ‘죽음의 상인’ 바질 자하로프조차 놀랄 만한 일을 해냈다. 인도 정부에 즉각
시호크 전폭기 수십 대를 팔아넘긴 것이다(p.164).


이런 무기상들과 이들에 대한 이야기만 해도 좀 알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좀 더 놀라운 것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군대. 즉 ‘아웃소싱’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이제 전쟁에서 가장 위험한 부분들은 군대에 의해 진행되지 않는다. 그것들은 민간 용병에 의해(예전 같이 어둠의 공간에 숨어있는 조직이 아니다. 이미 주식회사의 형태로 존재한다.) 진행된다. 그리고 용병은 미국에게(그리고 그 외의 강대국들에게) 엄청난 이점을 준다.

미 국방부 입장에선 군사훈련 프로그램을 민간 업체가 떠맡게 되면서 얻을 수 있는 이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다른 나라의 상황에 개입하고 있다는 비판에 대한 확실한 변명거리를 만들 수 있고, 미군을 파병하지 않으면서도
영향력은 유지하면서 상황을 관리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p.216). 다른 측면에서 볼 때, 민간 업체는 한 국가의 군대 전체를
훈련시킬 수 있다. 반면 미 국방부의 국제군사 교육훈련 프로그램은 기껏 수십 명을 훈련시키는 수준이다. 엠피알아이는 지난
1997년 온두라스에서 266명의 병사와 장교를 훈련시켰다(p.217).


정부 입장에선 민간 업체를 고용할 경우, 계약을 맺은 업체 직원이 현지에서 적대 세력에게 붙잡히거나
숨지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정치적 타격을 전혀 입지 않는다는 점이 보다 큰 매력일 것이다. <솔져오브포춘>의 로버트
브라운은 바로 이 때문에 자신이 오래 전부터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미국도 외인부대를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느껴왔다며, “프랑스
정부는 자식을 잃은 부모들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p.218).</span></span>

이러한 상황에서 군대는 무엇일까. 훈련도 민간 업체에 의해서 진행되곤 한다. 군대는? 군대 자체의 성격이 변하는 것이다. 뭐랄까. (이 부분에 대해서 나오미 클라인의 <쇼크 독트린="">이 좀 힌트를 줄 듯 하다) 곧 다시 예전처럼 군대는 국내의 치안을 담당하고 억압을 담당하는 ‘통치의 수단’으로 바뀌게 되는가. 여러가지 가능성이 있을 듯하다. 이미 기회구조는 열렸다.</p>

그리고 이러한 군수업체, 무기거래상, 용병주식회사는 계속 재생산된다. 그것들은 바로 퇴역한 군대 인사들의 ‘회전문’ 덕택이다.</span>

군 내부에선 퇴직한 장교들의 일자리를 알아봐 주는 걸 의무처럼 여기고 있다. 군이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일자리는 당연히 군수 업체다. (……) 메르세데스-벤츠 같은 고급차를 몰고, 2천 달러가 넘는 고급 양복에
구찌 구두를 신고, 롤렉스 시계를 차고 있을 게다(p.243).


한국에서 방사청에 대해 육사 출신 장성들이 그토록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자기들끼리의 ‘회전문’을 방해하고 예전처럼의 ‘이익’을 획득할 수 없기 때문은 아닐까. 미국만 그렇진 않을꺼 아닌가. 이러한 상황에서 안보의 불안은 늘 필요할 수밖에 없고 미국에서는 MD체계를 위해,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위해, 이라크 전쟁을 위해 늘 동원되었고 재향군인회는 늘 거기에서 지지를 하고, 이러한 상황들이 사회의 보수화를 추동하곤 했다. 무기체계에 돈이 들어가면 들어갈 수록 더욱더 위협은 가중된다. 네오콘들은 2000년대 초반 내내 전 미국을 돌아다니며 불안을 확산시켰고 국방 예산은 늘 복지 예산의 2배를 넘었다.</p>

냉전시대의 ‘불안’이라는 것은 늘 가시적인 것이었고 소비에트 러시아와 쿠바와 몇몇 ‘공산진영’에 한정되어있었다. 하지만 ‘탈냉전’기 전쟁의 위협은 늘 적들을 ‘생산’하거나 ‘발명’해내는 것으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전쟁의 기능조차 신자유주의의 ‘사유화'(privatization)의 논리에 의해 ‘민영화’되고 미국의 저소득층을 제외한 나머지에게 전쟁은 CNN이나 FOX가 보여주는 ‘스펙터클’쇼에 불과하다. 용병이 전쟁도 슬슬 해주기 시작하고. 하지만 문제는 그 돈은 다 시민들에게서 나간다는 것이다. 미국의 복리후생의 수준이 마이클 무어가 <시코>에서 지적하는 그 수준을 면할 수 없는 것이다. </p>

칼을 녹여 보습을….

다시 말해야 하는 시점.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 대한 면밀한 이해는 늘 필요하고 켄 실버스타인은 그러한 점에서 굉장히 고급정보를 제공한다. 네오콘을 ‘정치경제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하고, 글라트와 메르틴스라는 전설적 무기상을 기억하게 한다.

마지막 질문 하나는 떠오른다. 오바마는 눈 뜨고 당했을까, 아니면 눈 감고 따라간 걸까. 아마 눈을 떠도 할 수 없었을 것 같고, 눈을 감는 게 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어쨌거나 미국은 다시금 전쟁의 국가로 간다. ‘노벨 평화상’도 큰 힘이 없다. 전쟁을 막기 위한 스웨덴의 장치가, 알프레드 노벨의 의지가 한 번 또 무위로 돌아간다. 좀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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