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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좌파의 바람이 불려면? – 조현연, 한국 진보 정당 운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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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진보 정당 운동사 – ![]() 조현연 지음/후마니타스 |
조현연 선생을 며칠 전에 만났다. 사실 조현연에 대한 기억은 ‘한정연(한국정치연구회)’에 대한 아련한 기억과 함께 물려있다. 정치학을 공부하던 학부 때 대학원에 진학하면 꼭 ‘한정연’에 가입해서 활동하겠다고 생각했었다. 그건 최장집, 김세균, 손호철으로 이어지는 ‘진보적’ 정치학에 대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었고, 다른 한 편으로는 내가 맑스주의자이면서 사회과학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당시 내가 보기에는 맑스주의의 이론을 한국정치와 함께 사고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전부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냥 ‘맑스’하면 가슴에 전율이 오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손호철의 <근대와 탈근대의="" 정치학="">을 읽으면서 ‘정치경제학’을 하겠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물론 조금 다른 입장으로 변했다. 어쨌거나 ‘한정연’에 관심이 있던 시절 조현연의 글을 읽으면서 그가 깨나 젊을 거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알고 봤더니 81학번 이었다. 깨나 젊을 거라는 생각에는 그가 ‘열려’ 있다는 생각이 있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냥 내 맘대로 생각했던 시간들이었다. 김원과 비슷한 또래일 거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p>
만나서 종로 1가 근처의 막걸리 집에서 한 잔을 하고 후속으로 2차는 맥주를 마시는 자리로 이어갔다. 별 갖가지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옆에 같이 동행했던 B는 그에게 여성주의의 문제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토론을 걸기 시작했고 내가 원래 물어보려던 ‘인민노련’ 그리고 80년대의 급진노동운동에 대한 이야기는 좀 가다 말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확인한 것은 그가 80년대에 어디에서 운동을 시작했었는지에 대한 것 정도였다.
책을 읽으면서는 80년 대의 그의 포지션에 대해 잊게되었다.
진보 정당 운동사
한국전쟁 이후 부터 2008년의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의 분당까지 가는 시간에 대해 그는 간결한 평가를 한다.
그런데 왜 정당일까? “물론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풀뿌리 정치와 생활 정치, 작은 공동체 운동 등 다양한 종류의 운동 정치도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고 또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그런 운동의 흐름들이 정당정치를 경시하거나 무시하는 방법으로, 그리하여 정당정치와의 열린 소통이 단절된 채 정당정치를 대체하는 하나의 대안으로 진행된다면 결과적으로 그것은 기성의 헤게모니를 안정적으로 유지시키는 하나의 기제로 가능할 위험성이 상존한다.“(p.297)
그는 한국의 진보 정당 운동의 역사의 궤적을 ‘역사적 단절기(한국전쟁~1980.5)’ / ‘정치적 모색기(~1987)’ / ‘정치적 실험기(1988~1996)’ / ‘독자적 정립기(1997~2004)’ / ‘새로운 모색기(2004~)’로 구분한다.
조봉암의 진보당, 1980년대의 운동의 재정립, 진보정당 실험과 그 때마다 계속되는 ‘비판적 지지’의 망령, 그리고 운동 세력 내의 주사파의 깽판 등을 그는 정확하게 보여준다. 물론 그는 주사파의 깽판에 대해 마지막까지 절제하지만 민주노동당의 2004년 이후의 경로에서 보이는 ‘일심회 사건’ 등과 종파주의 사건들에 대해 언급할 때 감정의 절제는 무너진다. 물론 나 역시 그 때 제대로 무너졌던 순간들이 있었다. 나는 사회당원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제대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들에 벌어졌던 ‘용산 지구당 사건’과 당권을 장악했던 주사파들의 패권에 대해선 정말 기겁을 했었다.
2002년 사회당과 민주노동당의 합당 이야기가 나왔을 때 함께 제기되었던 ‘반조선노동당’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그 때문에 일이 계속 어긋났어야 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민주노총’과 ‘북한’이라는 ‘두 개’의 성역에 대한 조현연의 문제제기는 늘 옳다.
하지만 그러한 정파의 문제를 떠나 한 가지는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가 있다. 사실 2004년 이후 좌파가, 진보(난 ‘진보’라는 표현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가 다시 지지를 상실했던 것은 그들의 ‘급진성’ 때문이 아니고, 그것은 오히려 ‘구체적 맥락’ 즉 지역사회에 있는 구멍가게에서 먼지털이를 털어대며 과자와 담배와 술과 음료와 등등의 것들을 팔고 있는 아줌마와의 대화의 부재, 그 대화에서 도출되어야 했을 ‘일상의 정치’, 그러한 ‘일상의 정치’를 거시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전지구적 신자유주의 메커니즘과 함께 연동하여 풀 수 있는 대안들의 제출의 부재 때문이라는 거다. 지역사회는 늘 진보정당이, 좌파정당이 가장 가까이에서 살펴보며 뭔가를 해볼 수 있는 공간이었음에도 늘 그들은 ‘중앙’으로 또 ‘국회’로를 연호했던 조급함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곤 했다. 물론 이는 위에 언급한 ‘정파’의 문제와도 연류되어있다. 관계의 선후를 구태여 따지자면 ‘정파주의’의 파괴력이 더 컸었지만, 그 때 반드시 수호해야 했었던 것이 있었다는 사실은 부인될 수 없다.
다시 좌파의 바람이 불려면?
2010년 지자체 선거가 다시 시작된다. 나는 진보신당 당원이고 서울시장에 출마할 노회찬을 지지할 계획이고, 또 동시에 진보의, 아니 좌파의, 인민노련이 로망으로 가졌던 ‘급진노동운동’의 꿈이, ‘사회주의’의 상상력이 발휘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진보신당의 지지율 1%. 답보상태를 유지하고 있고, 어떤 국면을 통해서든 그 답보상태가 극복되지 않으면 올 한 해 이후 진보신당을 다시 볼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이 되긴 한다. 정답은 나도 잘 모르겠다. 사실 당 정치에 크게 개입해본 적도 없긴 하지만. 어쨌거나 한 가지는 어렴풋이 알 것 같다. 그건 그들의 정치가 지역에 착근하지 않는 이상 ‘내일’은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거다.
오바마가 시카고로 들어가던 순간, 강기갑이 사천으로 다시 내려가던 순간, 조승수가 울산 북구로 다시 가던 순간. 거기에서 이야기는 다시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호남에서 민주당이 선전하는 것은 그들이 토호에 호소하는 것도 있지만, 그 동안 다져놓은 민주당의 작업이 반드시 토호만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끈끈함’을 너무 종종 좌파들이 우습게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전농을 그냥 주사파 조직이라고 치부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들이 주사파인게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농민들과 함께 있는 지. 같이 ‘정주’하면서 ‘마을’을 꾸리고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에 대해 이제 다시 구상을 해봐야 할 시점인 것 같다. 그리고 그것들을 어떻게 ‘정치’로 전환할 건지의 문제가 정당의 문제가 아닐까.
물론 노빠나 국민참여당의 기획을 넘어서는 것도 거기에서 시작되어야 할 거다. 이 글에서 구태여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을 듯 싶다.
조현연 선생의 책을 읽으면서 다시금 좌파의 로망을 어떻게 ‘구체적 현실’과 함께 만나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다시금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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