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인 그녀는 알아버렸다, 우리는 알긴할까? – 발레리 줄레조, 아파트 공화국

아파트 공화국10점
발레리 줄레조 지음, 길혜연 옮김/후마니타스

한 숨에 읽을 수밖에 없었다. 철커덩 하는 소리가 들린다. 프랑스인 그녀는 한국의 아파트 현상이 신기해서 살펴보았고 <아파트 공화국="">을 통해 그 이야기를 펼쳐낸다. 프랑스에서 아파트단지라는 것들은 게토화된 ‘슬럼’인데, 도대체 왜 한국에서는 ‘강남’과 ‘아파트단지 거주’가 ‘부’의 상징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p>

토건세력와 합작한 국가는 ‘중산층’으로 하여금 아파트를 선택하게 했다. 반포, 사당-우성, 마포-래미안, 압구정-현대, 잠실-주공, 둔촌-주공 등. 늘 거닐면서 바라보는 한국의 아파트단지들이 더 끔찍하게만 보일 것 같다. 1970년 4월 8일 와우아파트가 무너졌다. 박정희의 눈에 잘 보이게 하기 위해 김현옥은 일부러 청와대에서 바라볼 수 있는 신촌 근처에다가 와우아파트를 지었다. 하지만 부실공사의 결과 와르르 무너졌다. 덕택에 와우아파트 옆에 있던 건물에 살던 엄한 사람들도 같이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


잘 몰랐던 사실이지만 1970년대 이전까지 한국에서 아파트라는 것이 ‘중산층’의 기호와는 상관없는 것이었다. 종암아파트, 와우아파트는 연탄을 때야했고, 상수시설도 좋지 않았고, 화장실도 불편했다. 구태여 잘 사는 사람들이 갈 필요가 없었다.

그것들이 역전된 것은 반포 아파트 단지 덕택이었다. 22평에서 80평형까지 들어선 아파트는 ‘부’의 상징이 되었다. 중앙난방에 엘리베이터가 달린 집. 그리고 정부는 그곳에 우선적으로 ‘신중간계급’을 유치하기 시작했다. ‘특별법’의 명목으로 토건최적화 빌드를 쌓기 시작했다.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SOC 사업도 슬슬 힘이 달려가는 와중 재벌소유의 거대 건설사들은 곧 이어 아파트 건설에 뛰어들었다. 압구정 현대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어느날 부터 아파트가 중산층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계속 이어지는 ‘재개발’, ‘재건축’, ‘도시계획’ 프로젝트는 토건 경제를 GDP 성장의 두배로 30년 동안 키워버렸고. 그에 편승하는 ‘떳다방’등의 복부인들과 영합한 부동산 업자들은 ‘부동산 불패’ 신화를 이끌며 부의 축적을 도왔다. 재개발은 되었지만 거기에 원주민들은 들어가지 못했다. 딱지는 부동산 업자에게, 복부인에게 넘어가기 시작했다. 아파트 값은 천정부지로 솟구쳤다. 점잖은 서울 토박이들도 이제는 아파트를 선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기세를 몰아 1970년대 이후 주택 건설의 70% 이상이 아파트로 집중되었다. 드라마 역시 현대적 삶과 아파트를 결부시켰다. 모델료가 가장 비싼 광고는 아파트 광고다. 故 최진실의 이혼과 결부되어 굉장히 시끄러웠던 광고가 알고보면 아파트 광고였다.

삶의 양식이 재편되었다.  “전통적인 도시 소구역은 ‘아무개 어머니’, ‘아무개 아버지’등 사람의 호칭이 집단 내 위치에 따라 결정되는 테크노니미 공간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테크노니미 공간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알며, 각자의 지위나 직업을 안다. (……) 이와는 달리
아파트단지에서는 골목이 사라지고 세대에 따른 공간들이 생겨났다. 노인정에는 노인들이 모이고, 유치원에는 유아들이, 놀이터는 하교
길의 어린이들로 붐빈다. 주거 공간의 합리화는 아파트단지 안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공간에 격리되는 세대 간의 분리로 나타나는
반면, 신공덕동의 골목길에서는 여러 세대들이 함께 모이는 차이가 있다
“(pp.224-225). 그렇다면 이 현상은 ‘서구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파트는 여하튼 현대적이다”(p.178). 이 구호를 넘지 못한다가 줄레조의 결론이다. 한국사람들은 ‘상징’으로 아파트를 소비할 뿐이다. 좌식과 입식이 섞여서 우리는 아파트에서 살고 있지 않나. “첫째, 한국의 아파트는 르 코르뷔지에식의 ‘살기 위한 기계’가 아니다. 르 코르뷔지에식 ‘살기 위한
기계’는 산업사회의 산물이었지만, 한국의 아파트는 산업화를 위한 도구였을 뿐이다. 1931년 당시 프랑스는 도시 인구가 농촌
인구를 능가할 정도로 이미 농경 사회가 아니었다. 둘째, 두 사회가 경험한 사회경제적 변화의 폭과 리듬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랐다. 서구 근대주의자들이 산업화 이전 전통 사회와의 단절을 강하게 열망했다면, 한국에서는 그 발전의 속도가 엄청났기에 이미
‘옛날로부터의 해방’을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면서 과거를 처박아 놓고 미래를 더 열망했다
“(p.167).

그리고 아파트 건설은 ‘신화’일 뿐 ‘당위’가 아니다. 사실 인구밀도는 아파트 지역이 더 ‘낮다’. 따라서 아파트가 과밀인구의 대안이라는 말은 완벽히 허구다. 그 말이야 말로 ‘토건 마피아’들이 지어낸 거짓말에 불과하다. 그리고 저평형을 선호하지 않는 건설은 결국 맑스가 말했던 ‘본원적 축적’의 탈취 국면과 똑같은 효과를 만든다. 돈 없으면 꺼져라 이거다. 그래서 많은 서민들이 딱지를 팔고 성남으로 하남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남는 것은 중산계급의 ‘섞이기 싫은 감정’ 하나 뿐이다. “이러한 상호 혜택의 구조 때문에 한국의 도시 중산층과 중간계급 일반이 아파트단지를 중심으로 하층의 사회계층으로 공간적으로
분리될 수 있었다. 주거 공간의 획일화를 너무도 쉽게 수용하는 한국인들의 문화적 무관심은 이렇게 해서 허용되었다. 한마디로 말해
한국의 아파트단지는 권위주의 산업화의 구조와 특성, 여기서 비롯된 계층적 차별 구조와 획일화된 문화양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이자 그 산물이라 할 수 있다
“(p.148).

문제는 이제 곧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15년 안짝으로 80년대 지었던 아파트들의 노후화가 일어날 때 그들의 공간은 어떻게 재편될 것일까? 그리고 더 이상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의 ‘유동자금’이 있을까? ‘4대 강’을 파고 그 전의 구상이 ‘한반도 대운하’였던 것은 사실 이제 더 이상 국내 건설을 통한 이윤축적이라는 것이 한계에 도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며칠 전 친구는 요즘 건설사에서 몇 년 후에 뭐 할지 생각해 보라는 고위간부의 ‘농담’을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용산의 경우에서도 발견되었지만, 이제는 ‘물리적 충돌’은 필연적이다. 국가는 평화롭게 재개발을 ‘재개발조합’과 함께 할 수 없을 것이다. 서울의 서민들은 이미 1960년대 이후로 계속 주변으로 밀리고 있는 상황이고, 더 이상 밀릴 곳이 없을 지경이고 그들에게 남는 선택이 비닐하우스밖에 안 보일 때 그들이 눈이 뒤집히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아, 물론 1988년 서울은 72만명을 쫓아낸 기록이 있다. 하지만 이제 수도권에 72만명을 수용하기도 빠듯해 보인다. “죽거나 혹은 지키거나“의 상황만이 남았다.

경제의 재편이 되어야 할 시점. 이는 두 가지를 한국 사회에 제기 한다. 하나는 탈신자유주의적 경향이고, 또 다른 하나는 탈토건적 경향인데. 이 두 가지를 여전히 부여잡고 가고 있는 이명박 정부가 참 대단하다. 물론 노무현-김대중 모두 이 방향에서 ‘역진’을 해 본 적이 없다. 이를테면 노빠들이 “노무현이 부동산은 잡으려 했다”라고 말하면 “지랄한다”라고밖에 대답할 수 없다. 뉴타운을 추인했던 것은 이명박 만의 힘인가? 만약 그렇다면 새만금은? 골프장 건설은?

어떤 게 좋은 길인지에 대한 합의는 이끌어낼 수 없지만 최소한 ‘완전히 아닌 것’에 대한 합의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가능한 듯 보이는데. 1990년대에 한국에 들렀던 프랑스인 여성 발레리 줄레조는 그것을 “알아버렸다”. 사실 한국에서도 알아버린 지는 꽤 되었을 것 같다. 하지만 토건주의에는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고 있다.

한국의 많은 건축가들과 사회과학자들과 도시계획자들이 침묵했던 40년의 세월이 있었다. 여전히 그들은 침묵 중이다. 그들이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들이 다른 패러다임의 아키텍처를 짜지 않는 이상 한국의 서울과 수도권은 이렇게 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