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다가 ‘알만한’ 가족극으로 왜 빠졌을까. – 정이현, 너는 모른다

너는 모른다6점
정이현 지음/문학동네
 2008/02/27 – [보고 듣고 읽고 그리고 느끼다/문학] – 여자가 쓰는 ‘사랑’의 진실 – 정이현, <낭만적 사랑과="" 사회="">, 문학과지성사, 2003</a>
2008/03/13 – [보고 듣고 읽고 그리고 느끼다/에세이] – 정이현, <풍선>, 마음사랑, 2007</a> </td> </tr> </table>

정이현에 한 동안 꽂혔었고, 이번에도 출간되었고 집었다. 드라마에서 <달콤한 나의="" 도시="">를 할 때에 열광한 건 물론 50%가 강짱 덕택이었지만, 정이현이기도 했던 건 사실이다. 도시 중산층 여성의 감수성을 이해한다는 게 쉽지가 않은데 정이현은 좀 뭔가 ‘진실’에 가깝다는 생각을 했던 거다. 내가 <보그>와 <엘르>와 <보그걸>과 <엘르걸> 그리고 <바자>, <코스모폴리탄>, , <나일론>을 지금부터 모두 연구하는 맘으로 읽는다고 했을 때 뭔가 보기는 할 거다. 하지만 난 ‘그녀들로’ 살지는 않는다. 정이현에게 기대하는 것은 그거다. 서울 토박이,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여자. 이제 39살이지만. 그 삶을 좀 알 것 같았다. </p>

<너는 모른다="">를 읽는다. 흡입력은 여전하다. 서사를 타고 가는 데 있어 군더더기 하나도 없다. 책을 놨다가 몇 시간이 지나도 본 궤도까지 오르는데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너는 모른다="">는 어쩌면 “알만하다”라는 말을 드는 중산층의 ‘진실’을 좀 보려한 시도라고 말해도 될 듯 하다. 거기에 ‘화교’라는 특수한 장치가 등장하지만 내가 보기에 밍이 구태여 대만 사람일 필요가 있을까 싶다. 정이현이 타이베이와 중국을 여행다닌 건 아니었을까. 서래마을의 빌라(이거야 말로 ‘진정한’ 상류지향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 아파트의 한계를 본 건가? 정이현은 어디에 살고 싶을까)에 사는 중산층 가장 김상호. 그는 어딘가 수상하게 돈을 많이 벌어온다. 오파상. </p>

그리고 ‘세컨드’ 부인 옥영. 대만 출신 화교 2세였기 때문에 5년 간격으로 한국과 대만을 오가야 하는 신세기 때문에 김상호와의 만남은 그냥 ‘알만하다’. 거기에 김상호와 전처와의 자식들 은성과 혜성. 아비를 참기 힘든 은성의 반항기를 이해할 수 있고, 혜성의 침착함 또한 유추가 가능하다. 김상호와 옥영 사이의 딸인 유지가 어떤 역할 인지도 유추할 수가 있다. 그들은 ‘알만한’ 집안이고 ‘그럭저럭’ 살았을 것이다. 유지가 사라지지 않았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늘 위기는 현 상태의 진단에 있어 요긴하다. ‘알만한’. 특별히 부럽지 않지만 그럭저럭 살 것 같은 그들이 서로에 대해 얼마나 이해했는가. 표면적인 문제는 풀리지 않고, 구성원들은 나름의 방식대로 문제에 대응하지만 결국 확인하는 것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서로 확인하지 못했던 ‘다른 문제들’ 뿐이었다. “너는 모른다”라고 말할 때 정이현은 가족도 서로 간에 잘 모른다는 것만을 보이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영화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에서의 ‘쿨’한 버전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구태여 정이현이 ‘유지’를 통해서 가족을 얼기설기 엮어내는 결말은 좀 맥이 빠지게 만들어버렸다. 뭔가 더 ‘화끈한’ 걸 바라는 내 취향이 문제인걸까. <지붕뚫고 하이킥="">의 에피소드들이 끝날 때 나타나는 집의 바닥 밑에 깔려있는 ‘스멀스멀’하고 ‘슬몃슬몃’한 무언가보다 약하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가족이 첨예한 ‘협상’과 ‘전투’의 장이다가 구태여 ‘we are the world’ 분위기로 갈 줄이야. 정이현은 늘 애를 태워놓고 우파의 결론으로 도달하고야 만다. KBS 주말 연속극 같이 말이다. </p>

“알만한” 것에 대해 가치관을 흔들어 놓고 ‘착한’ 결론을 내어버려 결국 “알만한” 상태를 유지하는 방식이랄까. 그래서 TV 연속극에 쓰였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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