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88만원세대 단결은 없거든? – 단편선, 전아름, 박연, 요새 젊은 것들
![]() |
요새 젊은 것들 – ![]() 단편선.전아름.박연 지음/자리 |
2007년 우석훈과 박권일의 <88만원세대>가 나온 이후 ’20대 담론’이라는 게 등장했고 숱한 논객들이 한 번씩은 이를 쑤신 것 같다. 조선일보의 사회부장이 먼저 물었고, <88만원세대>의 서평은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이 썼고, 우석훈은 20대 이야기만 나오면 TV에 나갔고, 박권일과 변희재, 한윤형은 ’20대’에 대한 이야기들로 2009년 초반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촛불의 현장에 등장하지 않은 ’88만원세대’를 보면서 김용민은 ’20대 개새끼’론을 말하기도 했다. 논쟁의 장에서 난 하여간 군인이었기 때문에 ‘정치적 중립’을 하고 있었다. 사실 ‘공세적 글쓰기’라는 말로 드립질이나 하고 있었다.
논쟁들은 몇 가지가 정리가 되었는데. 확실하게 아는 것은 다음 정도인 듯하다.
1. ’88만원세대’의 ‘세대론’이 지칭하는 게 도대체 뭔가? – 20대가 ’80년대생’을 말하는 것일까? 우석훈과 박권일에게 있어 ’88만원세대’는 현시점에서의 20대였다. 그리고 ’20대’를 지칭할 때는 ‘경제인구 진입’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저자들의 의도인 것 같다.
2. 386들이 ‘세대론’을 갖고 하는 모든 이야기는 결국 20대에 대한 ‘프레임 선점’의 권력관계를 갖는다. 20대는 자신들의 이름으로 뭐라 불러달라 한 적이 없다. 김용민의 ’20대 개새끼론’이나 변희재의 ‘실크로드 세대론’이나, 심지어 우석훈의 ’88만원세대’도 20대가 원해서 불린 호칭이 아니다. 386 서사는 20대에 대해 자기들이 규정해놓고 들었다 놨다 하는 중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은 20대를 잘 모른다. 아니 20대인 나도 20대를 잘 모르겠다. 사실 어느 정도의 일관성을 ‘세대’를 통해서 볼 수는 있겠지만, 그것들이 그들을 과연 정의할 수 있는 언어이긴 한가? 그리고 자꾸 ‘세대론’을 말하면서 세대 그 자체가 더 다른 의미들을 생산하지 못하는 이른바 ‘하위주체subaltern’의 문제가 발생한다. 20대는 스스로 말하지 못하는 구도에 빠져들고 있다. ‘당사자운동’을 말하는 것도 심지어 ‘386지식인’ 우석훈이다. (물론 이는 선의에 대한 추정과 아무 상관이 없다.)
결국 덫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20대들의 자기서사부터이다. 그리고 20대들의 ‘각기 다른’ 목소리들이 여러 맥락에서 펼쳐나서 더 이상 규정할 수 없는 ‘복수성’을 갖추는 수밖에 없다. 김사과의 <풀이 눕는다="">의 ‘풀’과 ‘나’같은 아티스트들부터 그 말고도 다른 맥락들에서 ‘별 일 없이’ 사는 사람들의 목소리들이 수를 놓는 게 먼저다. </p>
한 편, 20대에 대한 ‘보편적 목소리’를 끌어내는 시도는 늘 실패하는 것 같다. 사실 그런 ‘보편적 목소리’ 자체가 부재한 건데, 386이 이해를 못하는 것도 아마 그 맥락일 거다. 하지만 ‘전또깡’이라는 가시적 적이 있었던 세대와 적이 보이지 않는 세대가 어찌 같을까. <요새 젊은="" 것들="">의 저자들도 그 문제에 부딪혔고 결국 다른 길을 찾았고 성공적이다. “우리는 ‘앞가림’ 좀 잘하고 있는 친구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정규직 취업하고, 결혼 제때 하고… 이런
앞가림 말고 실제로 자신의 ‘삶’에 대해 앞가림 잘하고 있는 친구들, 삶을 자율적으로 잘 꾸려나가고 있는 친구들 말이다. 이런
친구들이 대개 (여러 의미에서) ‘섹시하다’는 것도 있었지만, 보다 본질적으로 ‘앞으로 우리 세대가 부모님 세대와 똑같은 삶의
방식을 선택하기는 불간으할 것’이라는 시각이 투영된 결과이기도 했다“(pp.12-13).
</p>
한윤형, 곰사장, 김지윤, 박가분, 김사과, 장석종, 박용준, 좋아서 하는 밴드, 반이다가 인터뷰이로 출연(? 참여!)한다. 사실 인터뷰이들 한 명 한 명을 놓고 볼 때 다 맘에 드는 건 아니다. 이를테면 김지윤의 퐝당한 ‘다함께식’ 역사인식은 정말 옆에 있었다면 잘근잘근 씹고 싶을 정도다. ‘고대녀’로 소환되는 방식도 짜증이 난다. 그리고 박가분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 그의 이야기 그 자체는 재미있지만 그가 말하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분명 더 논해 봐야한다(근데 그는 군복무 중이다. 말할 수 없는 상황은 나야말로 정말 100% 공감한다. 나도 그래서 이 서평질을 하기 시작한 거니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의 장점이 사라지는 건 절대 아니다. ‘자기’ 목소리 아닌가. 그리고 또 하나, 20대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다는 거. 그 장점 하나만큼은 굉장하다. 사실 다들 알면서도 ‘글’로 그리고 ‘책’으로 써지지 않았기 때문에 또 당하는 측면도 있었기 때문이다.
김사과가 본 386세대는 너무나 정확하다. 구태여 학적 언어를 빌지 않아도 말이다. “자유롭게 하라고 하면서 막상 정말 자유로운 것은 못 참고, 애들 되게 무시하고. 자유롭게 하라고
해도 내 말대로 하라는 것밖에는 안 되죠. 그러니까 사실은 그냥 기성세대인 거예요. 옛날에 운동했다는 자부심은 있지만, 실제로는
애들 다 유학 보내고 맛있는 것 먹는 것 좋아하고(p.155)”. “386세대는 이명박이 삽질 생각하는 것이랑 똑같이 ‘단결’하는 것이 머리에 박히신 것 같아요“(p.156).
박가분이 “먼저 저희 세대 중에 저자로서의 권위를 가지는 사람이 나와야 한다고 봐요”(p.135)라고 했는데 그 말에 대체로 동의한다. 다만 ‘권위’라는 말을 좀 달리 바꾸면 좋을 것 같고(그는 나보다 훨씬 어린데 더 꼰대의 말을 쓴다), 그러한 ‘저자’는 예술가, 창작자, 문화생산자 일반으로 확장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 역시 모두 아는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역시 중요한 건 그러한 생각들이 ‘발굴’되었다는 사실이다.
88만원세대의 단결은 없다. 386세대 식으로 풀리지 않는다. 다만 각자 나름의 맥락을 잘 헤쳐나가고 그것들을 누군가는 발굴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들을 통해 다른 맥락들을 또 만들면 된다. 그 뿐이다.
</p>어쩌면 20대의 다양한 양상들은 ‘비가시화/가시화’의 문제 때문에 더 안 보이는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왜’에 대해 질문해야 할 것 같고, 계속 ‘가시화’하는 작업은 이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건 인터뷰로 그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요새 젊은 것들’이 꼰대들이 감잡을 수 없는 선에서 계속 지껄이고 선을 밟고 넘어다녀야 좀 뭐래도 달라지지 않을까.
</p>
from 단편선의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