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바깥으로 나가는 법 – 루이 알튀세르, 재생산에 대하여

재생산에 대하여8점
루이 알튀세르 지음, 김웅권 옮김/동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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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살에 읽은 알튀세르, 29살에 읽는 알튀세르

루이 알튀세르의 <재생산에 대하여="">를 읽는다. 2010년 봄학기 <문화연구입문> 수업(이택광)에서 알튀세르가 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같이 모여 세미나 하는 첫 책으로 <재생산에 대하여="">를 선정했다.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ISA Ideological State Appratus 혹은 AIE appareils idéologiques d’etat) 때문일 것이라 추정을 해본다. </p>

22살 때 알튀세르를 처음 읽었다. 책의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당시에는 책을 그냥 눈으로 훑던 시기였다) 도입부에서 알튀세르의 ‘비장함’이 생각난다. 프랑스에 도대체 ‘맑스주의 이론가’가 있나? 이탈리아에는 그람시가 있고 독일에는 맑스 이후에도 로자 룩셈부르크가 있었다. 그런데 도대체 프랑스는 뭐람 말인가. 다시 맑스주의를 정초하는 알튀세르의 ‘비장함’이 문체에 오롯이 새겨져 있었다.

난 그 이후에도 맑스주의의 계보의 ‘정통’을 따르지 않고 맘대로 읽었었다. 알튀세르를 떠나 네그리와 하트를 들뢰즈와 가타리를 읽었고 지금은 그람시가 더 내게 그럴듯 해 보인다. 22살의 읽었던 알튀세르는 내게 너무나 어렵고 강고한 맑스-레닌주의자였는데, 29살 새해가 시작되었을 때 읽은 알튀세르의 <재생산에 대하여="">를 읽을 때 나는 마치 에세이나 소설책을 읽는 듯 했다. 그의 감정선을 주목해서 읽게 되고, 그의 오리엔탈리즘적인 발언들이 거슬렸다(pp.51-52). “예컨대 우리는 인도와 19세기 중국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그러니까 사회적 계급들은 포함하고 있었지만(설령 이 계급들이 인도처럼 카스트의 형태로 은폐되어 있었다 할지라도), (우리의 오류가 없는 한 우리가 알기로는) 과학은 없었던 이 사회들이 우리가 엄밀한 의미의 철학이라 부르는 것을 경험했는지 우리는 자문할 수 있다“(p.51). “우리가 잠정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이른바 인도 혹은 중국의 대문자 철학의 본질이라는 이 문제가 플라톤 이전의 그리스 ‘철학들’의 문제와 동일한 종류라는 점이다“(p.52). 그리고 그의 문투에 실려있는 이론적인 ‘확고함’들에서 불안의 징후를 읽게 된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p>

알튀세르는 1948년 프랑스 공산당에 가입해서 죽을 때까지 당적을 유지했다. 그의 모든 이론은 프랑스 공산당의 역사와 떼어놓을 수 없다. 서구 맑스주의자들에게 늘 딜레마는 아마 자본주의의 정점에서 ‘혁명’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변화’만 일어났다는 점이었을 것 같다. 1969년에 <재생산에 대하여="">가 출간되었는데 그 전 해 1968년 파리는 ‘혁명’의 분위기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프랑스에서 ‘사회주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알튀세르는 이 책에서 여전히 낙관하는 듯 상황으로 보인다. “머지않아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매우 심각한 위기를 포함해 가능한 모든 돌발 사태들을 통해 혁명은 이제 오늘의 구호가 될 것이다. 1백 년이 지나면, 아니 아마 50년만 지나도 세계의 모습은 변하게 될 것이다. 혁명은 지구 전체에서 승리를 거둘 것이다“(p.34). </p>

혁명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

혁명은 왜 이루어지지 않는가. 맑스의 자본에 나오는 생산력-생산관계-생산양식의 하부구조와 상부구조(국가/법-이데올로기)의 문제들에 대한 해설은 특별하게 언급할 것이 없다. 토대라는 말보다 ‘하부구조’라고 말하는 것이 잠깐 눈에 띨 뿐이다. 그리고 ‘억압‘과 ‘착취‘를 명확하게 구분해야한다는 알튀세르의 강조는 옳다. 이를테면 늘 국가가 ‘몽둥이’만 동원하는 것은 아니므로. 그리고 그것과 공장에서의 ‘작업 속도’와 ‘작업량’, ‘노동시간’의 착취라는 것은 다른 양상으로 작동하는 것이므로 그렇다. 알튀세는 이 부분을 세밀하게 보지는 않는다. 작업장의 미시정치는 푸코나 브레이브만에 의해 정교하게 분석되었다. 어쨌거나.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적인 모순은 생산에서 벌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에 대한 궁극적인 폐절은 생산의 현장이라는 하부구조가 최종심급인 것도 맞다. “자본주의 사회 구성체가 수반하는 국가의 억압 형태들을 포함해 그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의 뿌리는 자본주의적 착취 관계인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의 물질적 토대이고, 생산 자체가 착취에, 따라서 자본의 확장된 생산에 종속되어 있는 착취 체계이다“(p.74).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 AIE, ISA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더럽게 착취를 하는데 사람들이 개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가 단결하지 않는다는 것, 공산당이 힘을 못 쓴다는 것. 도대체 왜! 알튀세르의 간절함이 느껴진다. 그것의 실마리를 풀기 위해 알튀세르는 1)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에 대한 이론과, 2)이데올로기에 대한 일반이론을 정립하려 한다.

국가는 맑스의 말처럼 “자본가들의 집행기구”이기도 한데 그 자세한 양상에 대한 분석은 알튀세르 이전에 몇 몇에서 시도되었지만 국가에 대한 본격적인 분석의 시작은 알튀세르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봐도 틀린 말은 아닐 듯 싶다. 알튀세르는 국가의 이데올로기적 작동을 두 가지 층위로 본다. 1)억압적 국가기구(군대,경찰) 2)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 억압적 국가기구는 국가원수로부터 행정부로 또 각급으로 이어지는 ‘직할’선을 타고가는 일원화된 기구인데,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AIE)는 양상이 다르다. AIE는 복수이고 그것들은 국가기구에 ‘직접적’으로 편입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하나의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는 제도들 · 조직들과 이에 상응하는 규정된 실천들로 이루어진
체계이다. 이 체계의 제도들 · 조직들 · 실천들에서 국가 이데올로기의 전체 혹은 부분(일반적으로 어떤 요소들의 전형적인
결합)이 구현된다. 하나의 AIE에서 구현된 이데올로기는 각각의 AIE에 고유한 물질적 기능들 속에 ‘뿌리내림’을 토대로 이
AIE의 체계적 통일성을 확보해 준다. 이 기능들은 이 이데올로기로 환원될 수 없지만 그것에 ‘버팀목’ 역할을 해준다
“(pp.135-136).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가 잘 작동하지 않을 때 국가는 늘 억압적 국가기구를 작동시킨다. 이를테면 시민사회내에 좌파가 많아졌다고 국가가 진단할 경우 손쉽게 전경들로 진압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계급적인 것이 된다.

억압적 국가기구에 의해 ‘자기 보전’이 된 AIE들은 나름의 실천을 지속한다. 하지만 AIE들에 직접적인 물리력이 작동되지 않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대항 이데올로기’들의 실천이 가능한 장이 열린다. 이를테면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를 선취하기 위한 진지전이 가능한 것이다. 사실 그람시의 진지전/기동전과 알튀세르의 AIE/억압적 국가기구에 대한 투쟁은 하나의 대구를 이룬다.

AIE가 무서운 것은 거기에 계급 투쟁의 결과들이 반영되지만 동시에 그것들을 포획하여 지배계급의 ‘프레임’으로 사건들을 재구성할 수 있는 도구들이 구축되어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법을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이전의 AIE들에서 남아 있는 것은 민중에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대신에, 새로운 AIE들이 마땅이 되어야 할 거대한 ‘공산주의 학교’를 작동시키는 대신에, 사실 낡은 부르주아 혹은 소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민중에게 계속해서 주입시킨다. 옆에는 이 이데올로기와 어울리지 않는 새로운 요소들이 있고 자신들에게 이 새로운 요소들을 주입하라는 명령과 사명이 떨어져도 말이다“(p.153). 심지어 이렇게 소련에서도 늘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의 잔존은 그들을 괴롭히곤 했다.

알튀세르가 이러한 이야기를 하면서 대표적인 AIE로 ‘학교’를 꼽은 것은 상징적이다. 나중에 문화연구 그룹에서 폴 윌리스가 <학교와 계급재생산="">을 말하면서 결국 ‘노동계급’을 찍어내는 학교교육을 말하는 순간이나, 푸코가 <감시와 처벌="">을 통해 근대적 ‘훈육’ 방법을 말하는 순간과 묘하게 맞물린다. 그런데 다시 생각을 해보면 역사적 시점을 생각해볼 수 있는데 그건 파리의 1968년 덕택이 아닐까. 역설적이게도 그나마 프랑스의 교육이 가장 ‘아방가르드’를 많이 만들어내곤 했다. 물론 그들 역시 사르코지에 무기력하기도 했지만. </p>

알튀세르는 계속 AIE 안에 편입되어있는 프랑스 공산당에 대한 생각들을 끊임없이 정세와 엮어서 말한다. 의회주의에 편입되어있으면서도 그 ‘외부’를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내게는 1990년대 인민노련이 ‘신노선’으로 전향했을 때의 고민이나 아니면 초창기의 ‘혁명적 대중조직’이라는 위상이 갖고 있는 의미들과 맞물려 있다. 알튀세르에게는 극도의 경계감과 피로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1968년 학생들의 ‘급진성’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경직된 프랑스 공산당의 입장 때문에 더 그랬으리라 생각한다. ‘당내 비판자’라는 위치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알튀세르는 원래 <재생산에 대하여="">가 1권이었고, 2권은 자본주의에서의 계급투쟁이라는 것을 계획했었는데 2권은 결국 쓰지 못했다.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가 너무 강고해서 였을까? 그보다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심층 연구를 하면서 결국 철학적으로 더욱 깊이, 그리고 무의식에 대해 연구하면서가 아니었을까. 발리바르 등에게서 보이는 경향은 그러한 심증을 더 확고하게 해 준다. </p>

이데올로기는 무의식적으로 주체를 호명한다. 그것은 데카르트가 “Cogito Ergo Sum”을 말할 때 사실상의 주체를 담보로 하는 신을 필요로 했던 반쪽짜리 주체였던 것처럼, 혹은 니체가 죽이려 했던 그 ‘신’에 대한 이야기와 좀 맞물리고 이러한 이야기들의 맞물림은 결국에 알튀세르로 하여금 근대적 주체에 대한 물음과 탈근대적 관점을 말년에 지니게 했을거라는 생각도 좀 해보게 된다. ‘우발성의 유물론’. 사실 잘 모르지만 그 문제에 부딪혔던 건 아닐까. 어쨌거나 주체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호명되고 ‘자발적’으로 이데올로기적 실천들을 한다. 이데올로기에 외부는 없다.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의 폐절이 아니라 ‘혁명적 이데올로기’ 즉 다른 대안적 당파성의 이데올로기를 통한 이데올로기의 ‘탈중심화‘(p.304)를 말하게 된다.

책의 부록에 나오는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에="" 대한="" 노트="">는 좌파들의 AIE에 대한 비판에 대한 대답들이다. 프랑스 공산당 내부나 혁명주의자들은 알튀세르에게 기능주의자라면서 어떻게 프랑스 공산당이 AIE에 편입되어있냐고 비난하곤 했는데. 알튀세르는 공산당이 AIE의 ‘부품’이라고 표현했다고 반박하면서 AIE 역시도 계급투쟁의 결과들이 반영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문제는 알튀세르가 나중에도 ‘계급투쟁’의 문제들을 온전히 정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의도였든 아니었든. </p>

자본주의 바깥을 상상할 수 있을까?

책을 덮으면서 도대체 알튀세르의 이론으로 자본주의의 바깥을 상상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결국 혁명적 맑스주의자들의 이데올로기도 AIE라는 프레임 자체는 추인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이데올로기의 바깥은 없는 것일까.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모든 사람들의 구체적 일상들은 늘 ‘위반’과 ‘포섭’에서 왔다갔다 하지 않나 싶다. 어느 날은 법규를 ‘위반’하고 어느 날은 법규를 준수한다. 대형기획사의 아이돌을 좋아하면서도 동시에 어느 날에는 ‘브로콜리 너마저’를 듣게 되는 날도 있다.

대중은 그리 만만하지 않고 나름의 구체적 맥락들에서 나름의 실천들을 하면서 산다. 그것이 ‘계급투쟁’의 맥락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지 아닌 지에 대한 여부와는 상관없다. 그리고 그러한 나름의 실천의 맥락들은 가시화되지 않았고, 그것들의 ‘의미부여’들은 종종 새로운 실천들의 장을 열어제끼곤 했다. 2008년의 촛불을 연 것은 이슈로는 ‘계급이슈’와 상관없는 ‘광우병’이었고 그 방식도 전통적인 맑스주의의 방식과 상관없는 여고생/여중생들의 <버디버디>와 각종 싸이 커뮤니티 등이었다. 우발적인 맥락들이 뻗쳐나가는 순간에 대해 전통적인 좌파들의 대응들은 자주 산통을 깨곤 했다. ‘오래된 습관’들을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p>

난 오히려 대중들의 자발적 맥락들에 대한 ‘가시화’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을 한다. AIE에 포섭되어있고 학교에 열심히 다니고 직장에 열심히 다니면서도 계속 미끄러지는 그 ‘갈증들’ 그리고 그 ‘갈증들’을 풀어내고 있는 맥락들의 가시화. 대중의 분노를 네트워킹할 수 있는 ‘기민함’. 아무래도 구조보다는 ‘행위’에 늘 방점이 찍혀있기 때문에 내가 알튀세르를 점점 더 관심없어 하는 지도 모르겠다. 알튀세르의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은 정밀했지만 그에게서 다른 목소리를 찾기는 힘들었다. 더 읽어보면 뭔가 길이 열릴까? ‘당의 지도’ 같은 표현들이 거슬리는 걸 보면 나와 정통파 맑스레닌주의 사이에는 장강이 흐르는 것 같다. 난 확실히 구좌파는 아닌듯 하다.

요새 ‘옳다/그르다’라는 말에 대해 점점 헛웃음이 나온다. 근대적 이분법 자체가 슬슬 나에게 있어 기각되기 때문일까. 새롭게 대중들의 구체적 맥락을 읽어내고 그들과 대화하고 함께하기. 프레이리를 읽었던 순간들을 떠올려 본다. (2009/12/07 – [보고 듣고 읽고 그리고 느끼다/사회과학] – 억눌린 자들과 대화하기 – 파올로 프레이리, 페다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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