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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 강박에서 벗어나도 뉴라이트는 비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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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9 – [생각하기/출간계획 및 생각 다지기] – 20대여! 이제 우리의 말을 하자!
2009/04/02 – [보고 듣고 읽고 그리고 느끼다/사회과학] –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촛불을 다시 생각하기(당대비평 기획위원회,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 산책자, 2009)
2009/10/01 – [보고 듣고 읽고 그리고 느끼다/영화를 보다] – 개같은 청춘? 열어보자 청춘! 개청춘!
2010/01/27 – [보고 듣고 읽고 그리고 느끼다/에세이] – 88만원세대 단결은 없거든? – 단편선, 전아름, 박연, 요새 젊은 것들
’20대 논객’, ’20대 저자’, ’20대 필자’ 많은 타이틀들의 정점에 있는 이들이 있다. 다들 알고 있는 한윤형, 김현진, 허지웅, 노정태 뭐 이쯤 될 것 같고 거기에 <요새 젊은="" 것들="">에 나오는 박가분 등을 추가하는 방법도 있겠다. 붕가붕가레코드의 곰사장과 김현진, 허지웅은 30세 이상이므로 여기서 빼야할까? </p>
어쨌거나 지금까지 그 타이틀을 달고 있는 모든 20대 중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이는 한윤형이다. <당비의 생각=""> 시리즈와 <MBC, MB氏를 부탁해> 등과 같은 공동 저작들에 있어서도 꾸준하게 글을 쓰고 있으며, 단독 저서도 두 권을 갖고 있는 것을 보면 더 이제 말할 것은 없다. 물론 김현진이 20살부터 꾸준히 책을 쓰고 있고 저서는 더 많다고 말할 수 있지만 한윤형과 비교할 경우 좀 경우가 다르다. 어쨌거나 ‘논객’이라는 타이틀을 붙인다면 한윤형이 단연 돋보인다. </p>
<뉴라이트 사용후기="">는 굳이 ‘뉴라이트’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민족주의’ 등에 대한 늘 건드리면 열폭하기 쉬운 주제를 섬세하게 잘 해친 최초의 저작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더 섬세하게 학술적으로 만질 수 있는 윤해동 같은 ‘탈근대주의’ 역사학자들이 있으나 그들은 대중적인 필치로 쓰지 못한다. 대중적인 필치가 가능한 것은 한윤형이 노리는 포지션 자체가 ‘학자’가 아니라 ‘상식인’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논쟁 축에서 방법이 전선 대 전선이 아니라, 전선 바깥에서 기존의 전선의 허무함을 폭로하고 다른 축으로 논의를 끌고 갈 수 있음을 한윤형의 <뉴라이트 사용후기="">는 명확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이것이 ‘Brand-in-new’는 아니라 말할 수 있는 것은 사실 민족주의 문제에 관한 논쟁들에서 늘 시끄러웠던 주사파와 386의 애국주의자들의 축에서 벗어난 이들이라면 생각해볼 수 있는 지점이었기 때문이다. ‘진보'(그는 좌파의 포지션과 좀 다르다)가 취해야할 스탠스가 21세기에 온 다면 한윤형 정도의 포지션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p>
학부 때 신복룡 선생의 수업을 들으면서 김구가 극우파라는 이야기, 이승만과 ‘형님-아우’했다는 이야기 등을 <한국 분단사=""> 시간에 들은 적이 있었다. 김구의 얼굴 상과 노무현의 얼굴 상이 같아서 ‘크게 사고칠 인간’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노인의 객쩍은 소리’라고 생각했었지만, 기존까지의 민족주의 역사학이 가르쳐 준 함의들이 얼마나 알량한지를 그를 통해 느낀 적이 있다. 그리고 주사파들이 학부 1~2학년들에게 읽히는 <다시 쓰는="" 한국="" 근현대사="">(다현사)를 읽을 때의 알량함도 떠오른다. 사실 진실은 늘 ‘구성’될 따름이고 복수의 진실들이 경합한다. 그것은 다른 시선으로 교착 상태에서 끊임없이 갈등할 수밖에 없는 어떤 진실을 달리 구제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한윤형은 그 점에서 성공적이다. </p>
뉴라이트는 ‘민족주의’의 관점을 버리자고 하지만 그들이 결국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민족주의’를 쥐게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 “그건 민족주의가 아니다” 혹은 “그게 민족주의다”라는 논쟁의 교착상태를 영리하게 풀었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라 말할 수 있으며, 블로그와 예전 안티조선 우리모두, 진보누리에 나오는 가벼운 필치로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 굉장하다. 이 책 한 권이면 뉴라이트와 붙을 수 있다. 구태여 학술적으로 가지 않더라도 최소한 그들의 ‘이데올로기’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동시에 거기에 대해 기존의 진보적 역사학 혹은 강만길을 위시한 진보적 민족주의자들이 언성 높이기 외의 다른 비판이 불가능한 지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이제 ‘민족주의’의 낡은 칼을 벼려 칠 수 있는 상대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울분’이라는 것들이 어떤 식으로 다른 방향으로 엉뚱한 칼을 던지는지 ‘민중담론’, ‘국개론’, ’20대 개새끼론’ 등의 형태로 전치됨을 보여주는 것은 굉장한 매력이다.
장점이 많은 책이다. 다만 늘 한윤형의 글에서 느끼지만 ‘상식인’이라는 포지션은 늘 불안하고 위태위태하다. 한윤형은 ‘좌파의 관점에서 ~라는 점은 수용할 수 있지만’하면서 그러한 중간자의 입장을 사수하려하한다. 그런데 사실 좌파에 대한 우파에 대한 진보에 대한 보수에 대한 규정들 역시도 분기하고 있는 것이고, 그 분기의 강도에 따라서 한윤형의 입장도 함께 분기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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