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너희가 나쁜 게 아니야

얘들아, 너희가 나쁜 게 아니야10점
미즈타니 오사무 지음, 김현희 옮김/에이지21

2009/11/22 – [생각하기/출간계획 및 생각 다지기] – 위기의 10대와 대화하기
2009/12/07 – [보고 듣고 읽고 그리고 느끼다/사회과학] – 억눌린 자들과 대화하기 – 파올로 프레이리, 페다고지
2009/10/03 – [보고 듣고 읽고 그리고 느끼다/에세이] – 뿌리부터 말라가는 아이들의 이야기 – 대한민국 10대를 인터뷰하다

지금은 군대 이야기를 주력으로 하고 있게 되었지만, 처음 대학원에 진학할 때의 목표는 ‘위기의 10대’들과의 페다고지를 꿈꿔왔다. 그들이 꺾였던 날개를 다시금 펴게할 수 있는 계기로의 ‘문화’를 생각했고 그것이 내 문화연구라는 학문에 들어오게 된 계기였다. 매일 뒷골목에서 담배를 피우고 침을 뱉고 술을 마신다는 어떠한 어른들의 ‘전형적’인 묘사들 말고도 그들은 너무나 다양한 감수성과 자질을 가진 이들이다. 그건 내 10대의 경험들이 증명한다. 그들의 그 다양성이 펼쳐나지 못했던 것은 “알만한 것들”로 이름붙이는 기성세대들의 시선과 훈육이었다. 학교가 재미있을리가 없었고, 그들의 가정사도 그들에게 재미가 없었을 때 그들이 찾는 건 또래집단 뿐이었다. ‘탈선’이라는 건 늘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희망’이라는 건 학교 바깥의 10대에게 사치였다.

그 ‘희망’을 빼앗는 건 어른들이다. 마치 20대를 88만원 세대로 만드는 ‘재생산’의 메커니즘을 386이 ’20대 개새끼론’의 이데올로기를 통해 만들고 있듯이. 미즈타니 선생은 그러한 시선들을 거부한다. “만약 꽃을 활짝 피우지 못하고, 그대로 시들어버리거나 말라버리는 아이가 있다면 그것은 분명 어른들의 잘못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 피해자다.”(p.37) 미즈타니 선생은 ‘밤의 선생’으로 그들을 그냥 차분히 만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바른 길’을 계속 던진다. 거기엔 분명 계몽의 시선이 있다. 그리고 ‘약물치료’를 권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또 하나의 근대적 시선들이 있다. 하지만 그러한 ‘방법’의 문제보다 그가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모습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내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은 사실 아주 평범하고 귀여운 소년들이다. 그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초콜릿 파르페와 아이스크림을 주문하더니 갑자기 얌전해졌다.”(p.44) 그를 아이들이 따르는 것은 그의 ‘방법’ 때문이 아니고 아이들의 ‘다른 모습’들을 발견해 주고 그것들의 맥락에서 대화를 해주는 방식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 ‘교육’은 단순한 교정이 아니고 ‘치유’다. 야간고등학교 교사를 하면서 거리에서 만난 그들을 보면서 미즈타니 선생이 처음 하는 일은 그의 맥락을 살피는 일이고, 일단 가장 그에게 곤경이 되는 일들을 ‘어른’으로써 해주는 일이다. 그건 꼰대가 “시건방진 놈”이라고 꾸지는 것과 다르다. 미즈타니의 품이 생기고 그가 전설이 되는데에는 그 역시 어렸을 때의 꼬였던 맥락이 있고 이 이야기들에 공감을 했다. “풍요롭게 사는 사람들과 가난하게 사는 자신의 삶을 비교하면 슬퍼지게 된다. 그러나 가난함 그 자체는 결코 불행이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가난해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나는 그 사실을 어릴 때부터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p.116) 이런 말들은 예전에 들었을 때 손발이 오그라든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지금은 그 말들이 왜 필요한 지를 좀 알 것 같다. 오히려 ‘회복’을 중심으로 사회를 진단할 수 있다. 치유하지 않는 사회를 비판할 수 있는 것이다. 적대를 조장하는 사회를 비판할 수 있는 것이다.

2009년 2학기 잠시 연세대학교와 서울시 주관의 청소년 문화프로그램 <사이프로그램>의 한 파트인 ‘얘.너.나’라는 프로그램을 참여관찰 한 적이 있다. 거기서 ‘얘.너.나’가 “얘들아, 너희가 나쁜게 아니야”라는 걸 프로그램이 끝날 때 쯤에야 알았다. 이 책이라도 좀 읽고, 마음의 준비라도 좀 하고, 그 아이들과 마음을 열고, 좀 다른 태도를 취했더라면 더 나은 대화가 가능했을까? 때늦은 후회도 좀 든다. 나는 언젠가 위기의 누군가에게 미즈타니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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