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 들었을 뻔한 군대 이야기. 언제까지 할꺼냐.

악랄가츠의 군대이야기4점
황현 지음/바오밥

 2010/02/11 – [생각하기/출간계획 및 생각 다지기] – 군대 3부작 개시
2010/01/03 – [생각하기/출간계획 및 생각 다지기] – 군 생활, 책 1000권, 출간 계획
2009/12/26 – [생각하기/출간계획 및 생각 다지기] – 군대와 계급 재생산 – 군대 이야기 중간 정리
2009/12/11 – [보고 듣고 읽고 그리고 느끼다/사회과학] – 군대가 없으면 나라가 망할까? – 하승우
2009/11/06 – [생각하기/출간계획 및 생각 다지기] – 2학기 논문 계획 – 남성의 군대 경험의 재구성, 문화예술 페다고지
2009/11/06 – [생각하기/출간계획 및 생각 다지기] – 군대에 대해 여자가 물어볼 때의 남자의 대답은?

육군-100특기의 군대의 추억

아무 장소 아무 시간에 20대 중후반의 남자들이 하는 군대 이야기는 대체로 똑같다. 훈련한 이야기, 축구한 이야기, 갈굼 당한 이야기와 갈군 이야기. 간부 이야기하면서 부득부득 이를 갈기도 하고. 하지만 제대하고 나서는 서로 형, 동생이란다. 그런 이야기들은 점차 강고한 ‘남성연대’들을 만들어내기도 하며 여자들과는 다른 세계를 형성한다. 물론 이러한 경험의 축에는 육군 전투병과 병사로서의 경험들이 들어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을법도 하다. 100일 휴가 나온 친구와 일병 휴가 나온 친구, 상병, 병장 휴가. 그리고 휴가 말고 외박 나온 친구들의 이야기들은 사뭇 결들이 다르다. 그리고 제대했을 때 종합해서 나오는 이야기는 똑같은 시점을 이야기해도 서로 같지 않다.

요컨대 남자들의 군대이야기는 ‘사후해석’의 가능성이 높다. 이등병 휴가 나왔을 때 잔뜩 얼어가지고 고참들에 대한 분노가 가득차 있을 때와 병장 때 이미 자신들만의 왕국을 건설한 이의 이야기가 다르다는 것이다. 문제는 제대는 병장 이후에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 입대 이전인 남자후배들에게 “씨발, 그 까이꺼 그냥 까라면 까면 되는 거 아냐. 사실 군대가 가장 좋았다”라는 이야기가 가능하다. 동시에 여자들에게 “내가 나라 지키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니?”하고 설레발을 치기도 한다. 예비역의 안정감과 ‘후일담’이 합쳐져서 벌어지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후일담’에 대해 읽게 될 때 우리는 군대의 ‘진실’을 봤다고 섣불리 말할 수 없다. 이를테면 이것은 ‘성공신화’에 대한 해석의 문제에서도 동일하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한 CEO나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들이 ‘결국 승리’했기 때문에 그들의 말이 다 진실이라고 해석하곤 한다. 하지만 같은 경로로 갔다가 나자빠진 사람의 수가 훨씬 더 많다. 그들에게 ‘특별한 1%’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적용된다는 보장이 없다.

군대 이야기에 대한 ‘후일담’들은 조금 다른 효과들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군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딱한 시선’과 ‘저능아’로 꽂아대는 시선이 동시에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좀 다른 경험을 군대에서 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사소해지기 일쑤가 된다. 세상에는 육군만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동시에 모두 육군만 다녀온 것처럼 이야기들은 꽉 차있다. <남녀탐구생활> 국군의 날 특집에 나왔던 이야기가 육군일 수밖에 없다. 더 문제는 지금 발생하는 모든 일들이 ‘다 알 만한’ 일로 읽힌다는 것이다. 아무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 </p>

악랄가츠의 군대 이야기 – 전형적인 형들의 이야기

<악랄가츠의 군대="" 이야기="">는 다음view 군대 이슈의 랭킹 1위를 달리고 있는 악랄가츠가 출간한 책이다. 가츠는 나이로 따져보자면 나보다 한 두 살 정도 어려보인다. 그는 2005년에 군대를 갔고 2007년에 제대를 했다. 내가 생각하는 한국군대의 변화의 맥락으로 보자면 그 변화의 한복판의 시점이다. 그런데 아무 것도 달라보이지 않는다. 그는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 “유난히 걷는 것을 싫어하던 나. 그런 내가 강원도 전방의 소총수로 2년간 군생활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죽도록 힘들고
괴로웠지만, 군대도 엄연히 사람이 사는 곳이었고 그곳만의 매력이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전우들과 부대꼈고, 사회에서는
좀처럼 경험할 수 없는 수많은 사건들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벌어졌다. 내가 경험한 군대는 선배들이 말한 것처럼 무섭기만 한곳이
아니었다. 웃음이 있었고 사랑보다 진한 전우애도 있었다
“(pp.8-9). 그는 군대를 도대체 참을 수 없는 사람들을 어떻게 해석할까. “요즘도 가끔씩 그 녀석이 생각난다. 정말 문제가 있는 친구라면, 군대보다 더 험난한 사회에서 밥은 먹고
다니는지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만약 우리 모두가 짐작했던 것처럼 그 모든 것이 연기였다면, 그래서 이득을 본 그 몇 개월이 그
녀석의 인생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까 생각해본다. 반대로, 잃어버린 나의 2년이 과연 손해이기만 한걸까 자문도 하게 된다. 멀쩡한
어깨를 탈골시켜 군대를 빠진 청년들의 소식을 접하게 되는 요즘, 그 녀석 생각을 더 자주 하는 것 같다
“(p.150). </p>

그의 생각들은 평균적인 한국 남성들의 관점에서 볼 때 너무나 ‘건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육군 블로그인 <아미누리></a>에 연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가 접했던 많은 문제들에 대해 ‘문제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멍-하다. 지금 이 사람들이 우리 앞에서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불과 몇 시간 전에 나랑 웃으며
이야기하던 녀석이 죽었단다. 넋을 놓고 앉아있는데 대대장과 중대장이 들어왔다. 그리고 이제 곧 헌병대, 기무사, 사단에서 들이닥칠
테니 모두 마음 단단히 먹고 다 같이 힘을 내야 한다고 했다. 사실 그런 조사 따위는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그들이 믿든 안
믿든 우리는 서로 떳떳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걱정한 것은 조사관들이 아니라 양일병의 부모님과
가족들이었다. 연락을 받고 부산에서 올라오고 계시는 중이라고 했다. 우리가 아무리 떳떳해도 그 분들을 당당하게 뵐 수 있을까?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벌써부터 두려웠다
“(p.176). </p>

아니 당시에는 그렇게 바라봤을 것 같다. 그건 그가 계급이 상승하고 진급에 따르는 ‘권력’의 맛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거기에 대해 전혀 경계감이 없다. “나는 진급해도 별로 애들 안 갈궜어”하는 변명조차도 없다. “나는 분대장으로서 최강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극강의 존재, 그게 바로 분대장이다. 후임들은 감히
함부로 바라볼 수도 없는 존재이자 두려움, 공포, 선망, 부러움의 대상이다. 하지만 분대장을 단 지도 어언 한 달이 넘어가자
흥미가 없어졌다. 이등병 때는 분대장 되는 날만 바라보고 버티고 버텼는데, 막상 되고 나니 별로 다를 게 없다. 오히려 시간이 더
안 가고 지루할 뿐이다. 뭔가 새로운 활력소가 필요해. 군대에서 새로운 것은 없다
“(p.206).

달리 군대를 읽는다면?

가츠의 책을, 그리고 가츠의 글을 읽으면서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들은 이제 군대에 가서 얼렁얼렁 국방부 시계가 가길 기다려야 한다는 진리 뿐이다. 군대의 문제 같은 건 드러나지 않는다. 그는 분명 여러가지 문제들의 징후를 보여주었다. 같이 있던 병사가 자살하는 사건. 어이없이 군 위생검열 때문에 청소를 해야하는 일들. 어쩌다 날아온 미군 여군 대위를 보면서 히히 거리는 문제들. 만연한 군대에서의 ‘면피성’ 군기잡기. 여기엔 군대가 보여주는 적나라한 모순들이 드러난다. 하지만 드러날리는 없다.

여러가지 생각들을 해 본다. 가츠와 함께 있었던 병사의 눈에 비춰진 군대는 어떠했을까. 의병제대한 그 친구의 눈에 비춰진 군대는 어떠했을까. 또한 가츠의 ‘악랄함’ 덕택에 끌려온 그 일병은 어땠을까. 그들은 모두 ‘어리버리’한 병들이었을까, 아니면 ‘적응 못하는’ 병들이었을까, 또 아니라면 ‘적응 하기 싫은’ 병들이었을까. 골치아프니까 생각하지 말까?

골치아파 생각하지 않고 일단 몸 편하게 제대하자 전략을 채택한 것들이 군대 문제가 적체되고 풀리지 않는 이유 중에 하나일 것이다. 군대에서 벌어지는 문제는 누가 알아서 해결해 주지도 않는다. “몸 건강한 게 최고”라는 말 뒤에 숨어있는 의미를 다들 알지 않는가.

게다가 이러한 경험들을 비웃는 이들도 상당히 많고, 이러한 경험이 싫어서 다른 곳으로 빠진 이들도 적지 않다. 그들의 경험은 무화되어 버린다. 모두 수렁에 들어가라가 가츠 식의 이야기의 ‘현실적’ 결론이 되어버린다. 가츠는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고 많은 이들이 동의할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도대체 동의할 수가 없다. 그게 바람직하지도 않을 뿐더러, 피할 수 없는 것도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문제는 순전히 가츠만은 아니다. 가츠는 전형적인 한국에서 군대를 바라보는 남자들의 시선을 대표한다. 오히려 문제는 이러한 주체들을 양산하는 군대와, 다른 방향의 ‘예외’들을 허용하는 군대. 이 두 가지의 어정쩡한 양립이 아닐까 한다.

또 다른 차원에서 묻자면. 가츠의 이야기는 내 친구들, 아니 내 선배들, 아니 삼촌들에게 듣던 군대 이야기다. 이제는 재미도 없어진다. 언제까지 이 이야기만 할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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