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의 경영논리가 꼭 맞는 건 아니다

일본전산 이야기6점
김성호 지음/쌤앤파커스

부대에서 있었던 일이다. 2006년 한 해 공군에 몰아닥친 ‘6시그마 운동’은 굉장했다. 매 부서마다 그에 부합하는 업무 목표들을 세우고 매주매주 최일선의 상사 이상의 실무진부터 가장 윗선의 사령관까지 모여서 ‘혁신 계획’을 만들곤 했다. ‘혁신’에 관련한 파워포인트를 예쁘게 만드느라 퇴근도 못하는 장교들과 부사관들이 매일 씨발씨발하며 담배를 피워대고 있었다. 그리고 2007년 참모총장이 바뀌고 나서 ‘6시그마 운동’이야기가 쏙 들어가 버렸다. 내가 자대를 옮겨서 그랬던 것일까. 그 때의 혁신들은 얼마나 ‘혁신’을 이끌어냈을까. 적당한 때가 되면 꼭 사고는 터지곤 했다. 혁신의 부족 때문일까.

어쨌거나 첨단의 논리와 구조조정의 논리가 판을 치고 있다. ‘잘 되는 기업’이 어딘지는 잘 모르겠는데, 잘 되려면 하여간 경비삭감을 위하여 인원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논리는 마치 ‘신앙고백’처럼 된 느낌이다. 경영학을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잘은 모르지만 내 귀에도 들리고 이미 고등학교만 졸업한 내 친구들도 그 말은 알아듣는다. IMF 구제금융 이후 십 몇 년동안 전국민이 그 말을 알아듣는다. 29살인 내 친구도 며칠 전 회사가 어려워지자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퇴직금 몇 푼 더 받아보자고.

그런데 과연 ‘잘 되는 기업’은 어떨까. 한국에는 특별한 샘플이 없는 것 같다. 한국은 삼성과 몇 몇 대기업. 그리고 그에 하청하는 업체들로만 이루어진 것 같다. 그 문제에 대한 지적은 뭐 달리 더 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그를 통해 파생되는 효과 중 하나만 지적할 수 있겠다. 그건 기업들의 ‘롤 모델’이 없다는 것이다. 한동안 불었던 벤처바람은 DJ정부가 스러지면서, 미국 실리콘밸리의 IT버블이 꺼지면서 사라져버렸다. 대덕의 R&D 단지에서 세워졌던 작은 규모의 벤처기업들은 어느 순간 하청이 되어버리거나 대기업과의 경쟁을 통해서 사그라들어버렸다. 중소기업이라는 말은 ‘하청 기업’이라는 말로 어느 순간 왜소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길이 없어 보인다.

어쨌거나 덕택에 20대들의 취업 시장에 진입하는 ‘전략’ 자체도 대기업에 들어가서 목숨 부지하고 살아남거나, 혹은 ‘가늘고 길게’ 살 수 있는 공무원과 공기업을 선택하는 전략이 되었다. “시발. 안 되면 장사라도 하면 될 것 아냐?”라고 말했던, 혹은 ‘창업’을 이야기했던 진취적 20대는 이제 점차 사라지고 있다. 다른 방식으로 ‘잉여’처럼 사는 일들이 오히려 더 대안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을 놓고 볼 때 나가모리 사장과 일본전산의 이야기는 여러가지 시사점을 준다. ‘첨단 경영기법’으로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비용을 최소로 절감하는 경영전략, 그리고 슘페터식으로 ‘창조적 파괴’를 하는 것들이 경전처럼 되어버린 지금, 어떻게 보면 ‘전근대적’인 경영방식으로 회사를 건사하고, 아니 점차 공세적으로 전진하고 있는 기업이 있는 것이다. 부도 직전의 회사들을 인수하여 ‘정리해고’ 없이 살려내고 다시 흑자로 전환하는 일본전산의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평상시에 직원들에게 일하라고 호통치지 않고, 직원들을 혹독하게 훈련시키고 공부시켜 경쟁력을 갖추게
해주지 않고,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면 은근슬쩍 ‘정리해고’ 카드나 내미는, 그런 경영자는 경영자 자격이 없다!
“(p.6) “나가모리 사장은 ‘남들보다 두 배로 일하라’, ‘주말도 없이 일하라’, ‘신입 사원 주제에 쉴 생각을
하다니’, ‘해결하지 못하면 죽는다고 생각하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다. 요즘 같은 파트너십 경영 시대에는 맞아죽을
소리다”(p.8).

나가모리가 말하는 기업의 가장 중요한 존재이유가 ‘고용’이란다. 그 말에서 또 아련한 향수를 느낄 수도 있겠다. 동시에 구닥다리라 말할 수도 있다. “그는 기업의 존속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을 ‘고용’이라고 꼽는다. 직원들이 꿈을 실현하고 그 분야
최고의 전문가로 거듭나도록 이끄는 것이, 기업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 다음이 ‘이윤
추구’다
(p.23). 도대체 이건 뭔가.

전문적인 인재를 받아서 전문적인 영역에 배치하고 엄청난 ‘내부 경쟁’을 통해서 정글처럼 만들어서 회사를 운용하려는 전략과는 정 반대의 전략을 나가모리 사장은 쓴다.”일본전산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업무 능력과 전혀 차원이 다른, 정말이지 지독하다 할 정도의 역량을
직원들에게 요구합니다. 사실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했고 그런 공부밖에 한 적이 없으니 회사엘 들어가도 당연히 그 일밖에 할 수
없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게 특별히 무능력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요. 하지만 이 회사엘 들어오고 나니 그게 정말
대단한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p.33).

또 거기다가 나가모리가 추구하는 회사를 운용하기 위한 규칙인 3Q, 6B는 1960년대 현대건설에 걸렸을 법한 단어들이다.

3Q – 좋은 직원(Quality Worker), 좋은 회사(Quality Company), 좋은
제품(Quality Products)

6B – 정리, 정돈, 청결, 단정, 예의, 소양(p.118).

어쩌면 지금 기업들이 겪는 곤궁이라는 것들은 ‘기본’의 문제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일머리에 대한 강조들은 뭔가 지금의 기업문화에서 놓치고 있는 점들을 지적해준다. “물론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수리력이나 이해력이 뛰어나다는 반증이다. 하지만 공부하는 머리와 일하는 머리는
다르다. 그리고 회사란 모름지기 일하는 머리를 키우도록 장치를 두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전산의 직원 교육은 ‘고졸 수준의
보통 사람을 우수한 인재로 만드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p.192).

다만 지적하자면 후기자본주의의 맥락에서 ‘고용없는 성장’이라는 것들이 만연한 상태에서 개개기업들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로 일본전산의 방법을 취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일본전산의 경우 처음부터 ‘모터’에 한정된 개발을 해서 그 분야로 몰입하여 성공한 경우지만, 한국에서 그런 방식으로 한 군데 ‘틈새’를 공략하려 할 경우 5년 안에 취하게 될 사태는 대기업과의 특허권분쟁이거나 아니면 대기업에서 다른 방식으로 기술유출을 시도하는 일들일 것이다.

다시 한국의 이야기로 돌아와보면, 요즘 대기업들에서 매니저맘의 새끼들을 뽑지 않으려 한다 한다. 몇 달 전 강연에서 만났던 글로벌 헤드헌터는 요즘에 있어 ‘저주받은 스펙’은 대치동 학원가 출신에 외고 나와 SKY나온 인재라고. 자기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인재를 이제 더 이상 기업들이 선호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력서 우수하고 점수도 괜찮은데 회사에 뽑아놓고 보면 써먹을 수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일면의 진실을 담아주는 이야기로 생각되었다. 일머리와 공부머리는 어느 정도 다르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지금의 고용위기라는 것들이라는 ‘구조적 양상’을 함께 펼쳐놓고 생각해 본다면 지금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기업에 들어가 일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오히려 입구entry 시장이 열리지 않는 것 아닐까. 20대들이 ‘스펙 귀신’에 홀려있는 것도 본인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건 아니다. 선후본말이 전도되면 이야기가 안 풀린다. 기업들이 토익점수를 요구하기 시작하면서 영어학원이 바쁘게 마케팅을 하고 대학생들이 취득하기 시작한 것이다.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전후반기의 대학가를 비교해보면 여러가지 시사점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상태라면 들어가서 목숨빼고 뭐든 바칠 20대들은 굉장히 많아졌다. 그리고 그들이 나가모리의 일본전산 같은 회사에 들어간다면 굉장한 시너지를 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알아서 잘 하는’을 말하는 대기업의 내부경쟁 시스템보다 늘 ‘스펙’에 찌들어 있는 20대들에게 더 좋은 형태의 기업 문화는 일본전산 식일 수도 있겠다.

문제는 다층적으로 얽혀있고, <일본전산 이야기="">는 몇 가지 시사점들을 주는데. 한 가지는 지금의 한국 대기업의 경영방식들이 고용구조라는 눈으로 볼 때에 있어서도 최적의 방법이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우석훈이 <조직의 재발견="">을 통해서 지적했던 바와도 같다. 물론 기업은 본인들의 생존을 위한 최적의 수법을 모색할 것이고 그 길에서 어떤 방법들이 열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의 길은 좀 아닌 것 같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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