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과 교육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강준만은 답이 없다.

입시전쟁 잔혹사8점
강준만 지음/인물과사상사

2009/10/23 – [생각하기/요즘 일어난 일들] – 개천에서 용 안 난다 – 권영길 의원의 대한민국 교육 불평등 지도
2009/10/03 – [보고 듣고 읽고 그리고 느끼다/에세이] – 뿌리부터 말라가는 아이들의 이야기 – 대한민국 10대를 인터뷰하다

내가 출판 에디터라면 강준만의 책의 각주는 모두 후주로 밀 것이다. 책을 읽는데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주들은 읽은 자료를 명시하고 있다. 며칠 전 어떤 후배와 했던 이야기지만 “~일보 yy년 mm월 dd일자”와 어떤 책 몇 페이지인지만 나와있다는 것이다. 그냥 강준만의 책을 읽을 때는 본문만 보면 되겠다는 이야기다. 이는 달리 말하면 얼마나 많은 자료를 강준만이 잘 다루는지를 보여준다. <입시전쟁잔혹사>도 마찬가지이다. </p>

강준만의 장점은 읽기 쉽다는 것이다. 직장인들이 술자리에서 논쟁하기 위한 자료로 강준만을 활용하는 것은 늘 괜찮은 선택으로 보인다. ‘팩트’에서 일단 잘 안 밀리니까. 강준만은 조선시대부터 2008년까지의 한국에서 입시라는 것들이 어떻게 진행되고 어떤 병폐들을 만들어왔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각개약진 공화국="">이라는 책에서도 지적했었지만, 사회적으로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늘 개개인의 이익을 위해 각자뛰는 현상 그 자체가 문제를 야기한다고 지적한다. 동시에 한국에서 일극구조, 즉 중앙으로 모든 것이 깔대기를 꽂은 듯 빨려들어가는 구조를 지적한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는 역사적으로 점점 강화되어왔다. </p>

지역으로는 서울을 중심으로, 대학으로는 서울대를 중심으로 모든 서열이 짜여있다. 그리고 이 중심으로 가려는 노력들이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입시광풍과 부동산 열풍과 연계되어 있다. 사회적 재생산의 영역에서 교육과 학벌은 카르텔을 구축하고, 자신들의 학력자본을 날 것 그대로의 ‘계급’으로 전유하고 있다. 그리고 계급은 다시금 경제적 부를 통하여 자신들의 자녀를 내부자 집단으로 집어넣기 위한 갖은 수를 다 쓰고 있다. “대치동이 학원 1번가로 등장하면서 당연히 강남의 명문대 진학률도 월등히 높아지기 시작했다. 2000년도
서울대 정시 모집에서 서울 출신 합격자 1,000여 명 중 강남 8학군 출신은 50.6%였다. 서울시내 25개 구별 일반 고교의
서울대 진학률은 100명당 강남구가 2.7명, 서초구가 2.5명으로 가장 높았고, 강북 지역의 한 구는 0.25명으로 강남구의
10분의 1에도 못 미쳤다
“(p.211). 세계적으로 거의 유일무이한 현상이다. “전반적으로 일본 대학은 “관은 도쿄대, 재계는 히도츠바대, 게이오대, 학계는 교토대, 언론계는 와세다대”
등의 식으로 각기 특화돼 있다. 도쿄대는 노벨상 수상자를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한 반면, 교토대는 많은 수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는 것도 일본 대학의 다극구조를 잘 말해준다. 또한 일본 인구가 남한 인구의 3배에 가깝지만, 도쿄대의 학부, 대학원 학생
수는 서울대보다 4,000명이 적다
.””(p.300)

쉽게 이야기를 해보자. 개천에서 용이 안 난다는 것이다. 게다가 용 말고 다른 짐생들은 먹고 살 걱정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개천과 사막, 그리고 천상밖에 없다고 해야할까. 그나마 먹고 살만한 온대 기후는 없다는 것이다. “학력 간 소득격차는 노무현정부 들어 더욱 심해졌다. 2003년 이전 통계까지 파악할 수 있는 도시 근로자
가구를 대상으로 한 분석에서 김대중정부(1998~2002년)시절 대졸 가장과 고졸 가장 가구 간 소득격차는 월평균 71만
1,260원(이하 상반기 기준)이었지만 노무현정부(2003~2006년) 들어선 111만 6,500원으로 40만 5,240원이나 더
벌어졌다. 비율로 보면 대졸 가장 가구의 소득이 100%일 때 고졸 가장 가구의 소득은 김대중정부 시절엔 75.6%였지만 노무현
정부 들어선 71.9%에 그쳤다
“(p.256).

그리고 강준만은 이러한 입시전쟁의 잔혹한 상황에서 죽는 이들로서의 10대를 보여준다. “2006년 3월 18일 청와대 인터넷 사이트 열린마당에 글이 올라왔다. 제목은 ‘죽음의 트라이앵글: 누가 우리를 미치게 만드는가’
였다. 같은 제목의 동영상이 실린 사이트 주소와 ‘제발 더 이상의 희생을 막아주십시오’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고교생들을
중심으로 빠른 속도로 퍼진 이 동영상은 2008년 대입은 내신-수능-대학별 고사로 이뤄진 ‘최악의 삼각형’이라고 주장하면서 정부와
교사들-학원 업자들-대학의 담합을 맹공했다
“(p.258). 내가 노무현 정부를 참아줄 수가 없는 것이다. 그의 무지막지한 ‘진정성’과 그의 참모인 386들의 ‘얄팍함’이 누구를 죽이고 있었는지 노빠들은 도대체 알 수가 없을 것이다. “2005년 10월 11일 대통령 노무현은 청와대에서 제2기 교육혁신위원 25명에게 위촉장을 수여하면서
“사교육은 특별히 욕심을 내서 특별한 재능을 키우기 위한 것”이라며 “대학을 가기 위해, 필수 과제를 위해 사교육을 받는 일은
10년 내에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어림도 없는 허풍이었다. 이런 허풍과 비현실적인 발상 때문에 노 정권은 과거 어느
정권보다 더 사교육을 비대하게 만든 정권이 되고 말았다
“(p.243).

몇 가지만 더 지적해 볼 수 있겠다. 내신성적을 통한 대학입시가 아이들을 좀 쉬게 할 수 있을까? 노무현은 그렇게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덕택에 고1 교실부터 ‘친구’가 사라졌다. 모두 ‘적’이 된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에요”라는 말을 믿는 10대는 이제 대한민국에 없다. 그 구도에서 빠져나가려면 대학을 포기하거나 학교를 나가면 된다. ‘정상적’ 경로에서 ‘친구’를 만들라는 것은 10대들을 정신분열로 빠지게 한다. 아, 물론 상대평가를 내려놓으면 그것이 가능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그럴 경우 고등학교들은 ‘내신 부풀리기’를 실천하기 시작할 것이다. 곧 이어 대학들은 내신에 대해 불신하게 되고 ‘고교등급제’가 강화될 것이다. 강준만은 이러한 점들을 풀기 어려운 ‘난제’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강준만은 문제의 해결 대안을 SKY 대학의 학부 축소 쪽으로 잡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논쟁에 대해 드는 인상은 이 역시 지독한 엘리트주의적이라는 생각이다. 이를테면 최정점에 있는 엘리트들의 최적배분의 구도를 깨야 뭔가 바뀐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그들 바깥의 90% 이상의 집단에 대한 ‘교육’에 대해 놓겠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이를테면 직업교육이나, 전문대교육을 이수한 자들에 대한 다른 방식의 정착을 유도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지방대의 문제는, 전문대의 문제는 SKY대학의 문제를 푼다고 풀리는 것이 아니다. 좀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원인’은 SKY 출신의 사회요직 독과점에 있는데, 우리는 원인은 방치하거나 악화시킨 채 ‘증상’과만
싸우고 있다
“(p.316). 나는 그 ‘원인’을 다른 방식으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는 “다수의 ‘지잡대’ 생과 그 이하 학력”의 사람들의 ‘말’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를테면 <여성시대>에 사연을 보내는 사람들의 메시지를 묶어내는 ‘사회적 힘’들이 없기 때문이라고 본다. 강준만이 말하는 ‘지역주의’와 ‘지방은 식민지’라는 테제에 동의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누구를 후려치는 논쟁은 늘 소모적으로 끝나기만 하고 다른 방향들을 제시하지 못했고 강준만은 늘 한국사회 논쟁의 중심에 20년간 있었지만 그가 어떤 문제를 풀었는지에 대해서 전혀 이해를 못하겠고 그 역시 자신의 문제를 이해를 못하는 것만 같다. 그리고 그게 강준만의 한계인 것 같다. ‘소수자 감수성’이 필요하다고나 해야할까. 강준만의 이런 문투는 언제나 ‘떡밥’이다. 물지 않는 것이 한국사회에서 ‘현실감각’을 찾는 방법이다. “나는 서열이 유동적이 되면 계급적 불평등의 폐해가 사라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학생과 서민층의
고통이 다소 경감될 수 있으며, 여러모로 나라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계급적 불평등의 폐해를 사라지게 하려는 김상봉의
목표에 비추어 그런 효과는 대단히 불만족스러운 것임에 틀림없겠지만, 문제는 실천 가능성이다
“(p.240). 모호한 당위와 팩트가 막 섞여버린 테제가 탄생한다. ‘실천 가능성’ 역시 강준만 머릿속의 문제다. </p>

어쨌거나 강준만의 책들은 그가 엮어낸 자료들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훌륭하다. 그의 주장은 이제 너무 구닥다리지만.

이제 부디 자료집(!)만 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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