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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당비의 생각]좌파는 군대에 대해 어떻게 묻고 대답할 것인가?
온라인 당비의 생각(http://dangbi.tistory.com/54)에 기고된 글입니다.
앞으로 몇 차례 당비의 생각에 군대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안 그래도 천안함 사태로 군대에 대한 불신과 상호 엇물림이 있는 것 같은데, 그 이야기도 꺼내볼 수있겠지요.
좌파는 군대에 대해 어떻게 묻고, 대답할 것인가?
두 권의 책이 있다. 『악랄가츠의 군대 이야기』와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을 군대에서 배웠다』이다. 앞의 책에는 노무현 정부 시절 문화관광부 장관을 역임했던 김명곤이 추천사를 썼다. 그러면 이쯤에서
우리는 ‘비슷한’ 이야기일 거라고 추측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훈련소에서 “엄마!”를 외쳤던 이야기와 훈련을 받으면서 겪었던
고충, 그 외에 ‘카타르시스’라는 측면에서 건빵 먹던 이야기, 뽀글이를 끓여먹던 이야기, 축구한 이야기들. 이런 이야기들은 동시에
한국 사회에서 기성세대들이 군대에 대해 말할 때 등장하는 “사내자식은 역시 군대를 갔다와야해”라는 말과 대구를 이룬다.
『악랄가츠의 군대 이야기』는 그 전형성을 충족하는 이야기들을 펼친다. 그것들은 “대한민국의 건강한 남아”라면 알만한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을 군대에서 배웠다』는 전혀 다른 이야기들을
한다. 책의 저자들은 군대에 “끌려가지” 않았다. 102보충대, 306보충대에 가서 전방으로 가거나 논산훈련소로 가서 육군이
되는 것이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군대를 갈 건지에 대해 전략적인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학원 수강’을 해 ‘공인영어점수’를 획득하거나 ‘통역/번역 능력’을 키우기도 한다. 군대에 가서도 ‘그들’은 사뭇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그들은 고참이 무섭거나 훈련이 고된 것에 대해 크게 의미 부여를 하지 않는다. 그들은 주말 시간에 부대 인터넷방에서
‘싸이질’을 하거나 ‘스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공부를 한다. 하루 일과시간 짬짬이, 그리고 일과
이후의 ‘연등 시간’등도 그냥 보낼 수 없는 시간이다. 그들은 그 순간에도 ‘학습’을 한다. 그들이 얻고자 하는 군대 생활의
‘영예’는 군사주의적인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남성성’이 아니다. 그들은 ‘무식한’ 신체에 대해 조롱한다. 외려 그들은 군대에서
‘스펙’을 쌓고 ‘경력 관리’를 하길 바란다. 그리고 ‘고시 합격’, 수능시험을 다시 치러 획득하는 ‘학벌 세탁’,
‘공인영어시험 고득점’ 등을 준비한다. 제대 후 복학해서 ‘학교 적응’하려 하는 예비역들을 그들은 혀를 끌끌 차면서 무시한다.
그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을 군대에서 배웠다』는 그들의 자기 서사를 보여준다.
여기에는 명료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어떤 위계에 따른 구분이 분명하게
존재한다. 그냥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육군 전투병으로 기어이 가지 않는 그들은 예전의 ‘병역거부자’들이
아니다. 이들에 대해 도대체 감을 잡지 못하는 상황. 그것이 바로 현재 한국 사회에서 ‘군사주의’와 ‘평화’ 문제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데 좌파들이 무기력한 지점이다.
‘대한민국의 건강한 남아’라면 모를만한, 군대 잘 다녀온
‘그들’?
일련의 중요한 시간들을 떠올려 보자. 2001년 12월에 ‘여호와의
증인’처럼 종교적 신념에 따른 이유가 아닌, 오로지 군대의 폭력성에 대한 거부를 이유로 오태양이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그
이듬해부터 나동혁 ․ 염창근 그리고 숱한 사람들의 병역거부가 이어졌다. 당시 사회당을 비롯한 좌파 세력들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권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 등을 만들면서 이에 대응했다. 이어 2005년에는 군대의 ‘성격’ 자체가
바뀌어 버린 일련의 사건들이 벌어졌다. 1월에 육군논산훈련소에서 훈련병들에게 오물을 먹인 중대장 사건이 있었고, 그해 6월에는
휴전선 감시초소(GP)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졌다. 그후 군에 대한 ‘민주화’ 요구들이 일어났다. ‘병영 민주화’가 어느 정도
수준에서 진척되었다. 윤광웅 장관이 직접 지도에 나섰고, 군생활에 대한 예비역들의 기억 서사에 “(군대에서 고참에게) 맞지는
않았다”라고 말하기 시작한 것도 그 시점과 맞물린다. 그리고 2007년 대체복무를 도입하겠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다. 또
군복무기간 단축으로 2014년까지 병사들의 군생활이 18개월로 단축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군대를 체험하는 한국의 남성들의
서사는 분명하게 변하고 있다. 2005년이라는 상징적인 변화 시점을 기준으로 군대 경험은 상이하다. 게다가 병과별 ․ 배속지별
경험도 크게 다르며, ‘다들 가고 싶어 하는’ 카투사 ․ 공군장교 ․ 공군병 ․ 의무소방의 군대 경험과 육군 ‘일빵빵(100)
특기’ 소총수들의 경험은 명백하게 다르다. 그 차이들에 이 글의 문제제기의 실마리가 있다. 이를테면 ‘명문’ 대학생들과 지방대생은
같은 군대를 가지 않는다. 같은 훈련소를 가도 전혀 다른 보직을 받곤 한다. 이건 단순히 ‘빽’의 문제가 아니라 ‘군대에
대처하는 그들의 자세’와 ‘그들을 맞아들이는 군대의 자세’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이 부분은 다음 기회에 언급할 계획이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좌파들은 여전히 맥락을 붙잡지 못하고 있다. 군대에
대한 담론들은 ‘대한민국은 군대’이기에 ‘군사주의’로 읽어내고, 남녀 성별위계를 통해 ‘가부장제’를 양산하는 것으로 읽어낸다.
문제는 ‘어떤’ 군사주의, ‘어떤’ 가부장제인 것인데 그 차이들과 그 차이들을 만들어내는 변화의 맥락은 읽지 않는다. 거기에는
군대에 대한 강한 근대적 서사에 대한 선입견이 깔려 있는 것이다. ‘억압적 국가기구’이거나 ‘가부장제를 양산하는 남성성의
훈련기구’ 등 말이다.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구체적 양상은 보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덕택에 군대에 대한 주요 담론들은
우파들이 선점하게 되었다. 우파들은 군대에서 ‘씩씩한 남자’ 뿐만 아니라 ‘영리한 남자’들까지 선점해버렸다.
좌파의 ‘발본적 사유(radical thinking)’는 늘 중요하다.
하지만 여기에는 분명하게 ‘실천’의 문제가 엮여 있다. 이는 ‘구체적 현장’을 놓치지 말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좌파들은 군대에
관한 문제에서 늘 지지부진하고 구체적인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자유의 의지’가 ‘자기계발의 의지’로 되어버리고
나서야 ‘자기계발서’를 씹고 있는 것처럼, 군대가 굉장히 많은 모순들과 틈새들을 만들어버려서 근대국가의 ‘국민개병제’가 박살이
나버리는 이 순간에도 특별한 문제의식은 발견하지 못하는 것 같다. 앞으로도 가츠와 군대 잘 다녀온 ‘그들’의 이야기들은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대중의 ‘열폭’은 더 증가하여 ‘군가산점제’ 같은 이슈만 나오면 여성들에 대해 파시즘적인 대응들은 더욱더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그 쟁점들 앞에서 여전히 ‘선량한 얼굴’을 가지고 ‘평화’를 외치는 것만으로 과연 문제를 풀 수 있을까.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제는 질문 자체가 바뀌어야 하고 마찬가지로 나름의 대답 역시 바꿔야 한다. 좌파는 군대에 대해 어떻게
묻고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