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생들’의 군대 이야기

군대 이야기6점
김종광 지음/자음과모음(주)

나는 세대론을 완전히 신뢰하는 것은 아니지만 각 세대가 체험한 ‘경험’은 분명 시대별로 나뉜다는 것에는 흔쾌히 동의할 수 있다. 이를테면 스무살에 한국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느냐를 가지고 의미있는 이야기들을 할 수도 있다. 또 금융위기 당시에 몇 살이었는지를 가지고도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이를테면 97년에 26살 대학교 졸업반이었던 남자들에게는 1학기 2학기의 온도가 달랐을 것이다.</p>

군대에 대한 이야기들도 ‘세대’에 따라 굉장히 다르다. 물론 제대하고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나고 나면 마치 다들 똑같은 군대를 다녀온 것처럼 이야기하기 일쑤가 되지만, 사실 “요즘 군대 편해졌네!”라고 외칠 때는 ‘편하고’ ‘안 편하고’를 떠나서 달라졌음이 분명 존재한다. 부대에서 인터넷 하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던 내 또래들(82년생부터 그 이전)과 할 수 있었던 이들의 경험이 다르고, 부대에서 맞지 않았던 군번들(약간의 편차를 감안해도 대체로 05군번 이후)과 맞았던 군번들의 경험이 다르다. 이걸 잘 묶어내면 몇 개의 범주도 나눠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휴가 나온 군인들(특히 육군과 해병대)끼리 서로의 전투복을 보면서 어떤 게 더 ‘A급’인지, 전투화의 광낸 상태로서 자신들의 프라이드를 재고 있을 때, 옆에서 ‘민간인’의 눈초리가 말을 건다. “아, 군인이다!” 딱 그 ‘민간인’의 눈초리가 한국에서 군대에 대한 논의들을 덮게하는 힘이다. 그리고 남자들도 군대에서 제대한 지 몇 년이 지나면 사실 군대 이야기는 주된 화제는 아니게 된다. 한 번 나오면 끝없이 이어질 수 있는 안주거리일 뿐.

김종광은 70년대생들이 대체로 공감할 ‘세대의 기억’으로 군대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이 안에는 그 때의 정황들을 확인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런데 군대가 닥쳐오니까 미우나 고우나 해병대가 당기더라고요. 요새는 어떤지 몰라도, 저희 때는 해병대 정도는
가줘야 ‘진짜 사나이’라고 착각하는 청년들이 많았어요. 나도 그랬던 거죠.
“(p.11) 이러한 이중 감정은 몇 년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갖고 있었으나 이제는 거의 사그라들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몸이 약한, 동작이 굼뜬, 펜대만 잡았을 것 같은…… 나 같은 사람의 훈련소에서의 감정도 탁월하게 보여준다.

학교
다닐 때도 줄 맞추기나 단체 운동에서 항상 틀리는 구멍이어서 집단이라면 학을 떼었는데, 집단 그 자체인 군대라니, 도살장 끌려가는
소돼지 기분으로 입대했고, 역시나 훈련병으로 살아보니, 제대로 하는 훈련이 없어 허구한 날 고문관 소리나 듣는다. 군인의 생명
총이라도 잘 쏘면 좋겠는데, 영점사격에서조차 명중을 못 시킨다. 영점도 못 잡는 군인은 군인도 아니라는데! 아, 자대 가면
죽었다!

이렇게 자신감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는 녀석들은 염라대왕 대면 앞둔 사오정처럼 자대 갈 일을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
“(p.78)

나는 이게 싫어서 군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물론 군대가 갖고 있는 폭력에 대한 반대가 더 컸지만. 그리고 군대와 ‘유전무죄’에 대한 생각들, 군가산점제에 대한 이중적인 생각들이 마구 나오는데. 아마 대체로 많은 사람들이 ‘병역비리’를 참지 못하는 이유와 여자들의 군대 이야기에 대해 ‘열폭’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내 사촌 이내 친척 중에는 중령 이상 간부는커녕 소위도 없었다. 시장 이상급 공무원은커녕 7급공무원도
없었다. 9급공무원은 한 명 있다. 국내 10대 그룹 이사급은커녕 10대 그룹에 면접 봐본 이도 없었다. 내 사촌 이내
친척 중에는 의사도, 변호사도, 검사도, 교수도, 의원도 없었다. 내 친척들은 농사를 짓거나 소돼지를 키우거나 중소기업도 못
되는 업체의 월급쟁이거나 소규모 자영업자였다. 그래서 나는 호구조사 때 한 번도 일어서보지 못했다
“(p.88).

하여간 지존파 살인범 말이 맞다. 유전무죄! 군대도 마찬가지다. 돈 있으면 안 갈 수도 있지만, 돈
없으면 무조건 가야 하는 것이다. 총리의 경우도 어쨌거나 돈이 있어서 미국 유학도 가능했을 테다. 자꾸 신종 플루 생각나게 하는
신종 병역 비리자도 돈이 있으니까 그 황당한 지랄이 가능했을 것이다. (……)
생각할수록 분하다. 정당한
사유에 의거한 군미필자에게도 약간의 악감정을 갖기 십상인 군필자들의 공통점은 무엇이겠는가. 정당한 사유 없이, 돈이나 배경을
등에 업은 비리로 면제를 받았거나 공익근무를 했던 이들에게 적개심이라 해도 좋을 분노를 느낀다는 것이리라
“(p.116).

그리고 하도 떨어지니 이 나라의 미래를 이끌어갈 아기씨들을 생산할, 젊은 아가씨들에 대한 적개심이
불타올랐다. 그 아가씨들 중에는 나의 베필이 있을지도 모르는데도 말이다.
치사하지만 군필자에게 주는 가산점 몇 점
때문이었다. 작년 10월 국정감사 때 병무청이 군가산점제 부활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또 한 번 논란이 격심햇는데, 끝없는 논란은
당연하다. 공무원만이 유일무이한 안정적인 직업으로 굳어진 신자유주의 시대, 나이 제한마처 철폐되어 너도 나도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세상이고, 공무원시험의 당락은 겨우 몇 점 차이로 결정되니, 병역 의무이행자에 대한 우대 ‘군가산점’은 겨우
몇 점이 아니라, 수많은 인생의 진로를 짓뭉개는 핵폭탄급 점수다
“(p.279).

80~90년대 대학생들이 운동권에게 많이 느꼈던 감정은 ‘부채의식’이었다. 아니 ‘부채의식’까지는 느끼지 못하더라도 최소한의 ‘도덕적 우위’는 운동권들이 쥐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네 멋대로 해라’라는 신세대 담론이 개입해서 좀 다른 양상들이 벌어지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대체로 학교에서 학생회는 몇 번의 위기로 부서질 때까지 그런 ‘도덕적 우위’를 가졌었다. 이는 전혀 의심되지 않았으며 별달리 질문에 붙여지지 않았다. 이와 군대를 다녀온다는 것에 대한 남성들끼리의 ‘공통 지각common sense’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은 굉장히 많은 부분에서 군대에 대해서 다른 경험을 한 사람이 많았으나 그들은 이야기할 수 없었다. 90년대까지는 최소한 그랬다. ‘부익부 빈익빈’,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참아주지 않는 도덕적 응징이 가해졌기 때문이다. 군가산점 때문에 ‘월장’을 테러하는 시도가 발생했던 것에도 그런 맥락이라 볼 수 있다. 사이버 테러가 아직 온전히 잘 형성되지 않던 시절인데도 그게 가능했던 것은 그만큼의 강렬한 반응을 보여준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세대인 김종광의 자기 서사같은 소설은 노빠들이 종종 보여줄 것만 같은 ‘울분’과 동시에 사그라들게 만드는 ‘먹고사니즘’의 ‘냉소’와 묘하게 맞물린 정서로 펼쳐질 수밖에 없다. 386의 ‘승리 서사’와는 좀 다른 ‘울분’이랄까. 그들은 대체로 ‘정의로운 방향’의 이야기를 하지만 여전히 ‘계몽주의’의 덫에서 빠져나오지는 못하고 있어 보인다. 김종광은 공감을 위해서 <군대 이야기="">를 썼지만, 이 책은 군대에 대한 공감보다는 그 당시 군대 생활의 특징을 많이 보여준다는 점에 더 많은 무게가 실리는 것 같다. 특히 강릉 잠수함 사건에 대한 이야기들은 그러한 특징을 더욱 더 잘 보여준다. 선배들이 왜 그런 맥락에서 ‘군대 이야기’를 하는지에 대해 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이 소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군대에 대한 한 ‘기억’이라고 말할 수는 있을 것 같다. </p>

하지만 처음에 이야기 했듯이 내 또래의 군대 경험과 내 아래 또래의 군대 경험은 판이하게 다른 양상이다. 즉 소설 속에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마음 가짐을 갖고 ‘자기계발’과 ‘스펙 쌓기’를 하면서 초,중,고를 보낸 또래들이기 때문에 전혀 다르다. 같이 묶이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하지만 그것들에는 분명 단절점을 보여주었던 몇 몇의 징후가 있다. 우리 시대의 군대 이야기는 아직 계속 진행중이다. 계속 또 단절되면서도 어떤 것들은 유지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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