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가슴에 사무치는 죽은 젊은 원혼들의 목소리

돌아오지 않는 내 아들8점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엮음/삼인

 2010/04/10 – [일기장/하루 하루의 기록] – 예비군 훈련 참관기
2010/04/03 – [보고 듣고 읽고 그리고 느끼다/문학] – ’70년대 생들’의 군대 이야기
2010/03/05 – [보고 듣고 읽고 그리고 느끼다/실용서] – 2005년 이전의 육군 이야기
2010/03/02 – [보고 듣고 읽고 그리고 느끼다/실용서] – 군대에 대한 고정관념 바깥의 군대 생활 이야기
2010/02/21 – [보고 듣고 읽고 그리고 느끼다/에세이] – 친구에게 들었을 뻔한 군대 이야기. 언제까지 할꺼냐.

군대에 대해 한국 사회에서 이야기하려면 웬지 모를 울컥함 부터 치미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훈련소에서 ‘엄마’와 ‘애인이름’을 외치면서 훈련병들이 울 수밖에 없는 무의식. <진짜 사나이="">라는 군가에서 “부모형제 나를 믿고 단잠을 이룬다”라는 가사 밑에 깔려있는 무의식. 그리고 누군가 자신들의 군생활을 수월하게 말할 때 치밀어 오르는 반감 밑에 깔려있는 무의식. 그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거기엔 ‘억울함’이 있다. </p>

많은 예비역들은 알고 있다. 어느 날 위병소가 무너져 버려 함께 근무하던 동기가 죽었을 때의 허망함. 훈련받다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했던 선임이나 후임의 딱한 사연 등등. 거기에는 폭력적이고 무식하고 권위적인 군대의 ‘병폐’들이 존재한다. 군대는 분명 변화하고 있지만 그 안에서 겪게되는 ‘억울함’은 겪은 이들로 하여금 변화하지 않는 마음 속의 군대의 확고한 상을 만들어 준다. 이를 단순히 착시현상이라 말할 수도, 이데올로기의 효과라고 말할 수도 없다. 거기에는 본인들이 직접 혹은 곁에 있는 사람들을 체험한 ‘경험’이 있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군가산점제’에 대해 ‘열폭’할 수밖에 없고, 여성들의 군대에 대한 ‘문제제기’가 ‘힐난’으로 받아들여진다. 그 속은 사실 잘 모를 수 있다. 아니 안 다고 해도 손쉽게 그 바깥의 사람이 쉽게 말할 수는 없다. 문제는 그 경험의 당사자인 ‘남성 예비역’들이 말하지 않거나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들은 엄청난 트라우마를 만들고 다른 방향으로의 비뚤어진 반응들을 군대와 관련된 이야기들에 만들어 낸다.

누군가는 말해야 하는데. 다른 이들이 그 감정에 대해 말할 수 있다면 누구일까. 안타깝게 특별하게 ‘사건’으로 겪지 않은 이들이 가장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특별법에 의해 설립된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군의문사위원회)’의 기록은 군대에서 의문사한 군인들의 가족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그들의 맥락에서 들려지는 이야기들은 또 한 번의 ‘매개'(의문사위원회 인터뷰어의 해석)을 거치기는 하지만 그래도 개략적인 군대가 갖고 있는 ‘폭력성’과 그를 체험하는 사람들의 ‘억울함’에 대해 알 수 있게 해 준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 “군대 갔다 와야 사람된다.”는 말에 대해 이 가족들이 들려주는 말은 단순히 ‘못나서’ 군대에서 ‘도태된’ 사람들의 이야기로만 치부해야 할까?

“군인 안 보내야 혀요. 돈만 있으면 다 빼 버려야 혀. 돈으로 아들 살 수 있는 것
같으면 우리도 사고 싶어요. 내 친구들이 그랫어요. ‘야, 니가 힘쓰고 빽 좀 써서 공익 같은 거, 좀 편한 걸로 빼 주지
그랬냐’ 하고. 나는 절대 그렇게 생각을 안 했어요. 신일이 군대 갈 때 내가 그랬어요. 군대가서 고생 좀 해봐야 니가 부모도
알고 가정도 알고 사람도 되는 거라고. 내가 정말 바보 같은 짓을…….”
“(p.28)
“텔레비전을 보면 매번 군대가 좋아졌다, 군대가 변했다는 얘기를 떠들잖아. 난 그거 하나도 안 믿어.
군대 깊숙이 자리 잡은 폐쇄성과 폭력성이 사라지기 전에는 변했다는 말을 하면 안 돼. 지금도 한 해에 백 수십 명씩 군에 간
아이들이 자살로 주검이 돼서 부모 품으로 돌아와. 정말 군대가 변했다면 군대에서 죽어 나오는 아이들이 계속 있어서는 안 되는
거잖아. (……) 그걸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국가가 오히려 유족들 앞에 무릎을 꿇지는 못할망정 아이들을 죄인 취급하고 명예
회복도 시켜주지 않은 이 상황. 이게 지금의 대한민국 군대의 현주소야.”
“(pp.98-99)

“군대 보낼 때도 그놈은 식겁해 봐야 된다, 기합도 받아보고 해야 된다, 이 생각만 했는 기라. 빠따도 좀
맞아 보고 고생 좀 해라, 성격도 좀 고치고, 어리한 사람도 군대 갔다 오면 빠릿빠릿해지고 그런 거 아인가배. 그런 생각만
했지, 병든 거는 모르고…….”
“(p.292)

노 일병은 다시금 “전출 갈 수 있는 방법이 없냐”며 불안해했다.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는 면회실에
있던 간부에게 아들이 군대 생활을 힘들어 하니 조치를 취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처음에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하나뿐인 자식 망치는
게 아닌가도 싶었지. 그때까지만 해도 군대 생활도 못 버티면 사회 생활은 더 힘들어지는 법이라고 생각했거든. 하지만 어떡하겠어.
지금 당장 힘들어 하는 녀석을 보니까 ‘이건 아니다’ 싶더라고.”
“(p.89)

의문사한 군인들의 가족들은 백방으로 ‘진실’을 보고 싶어한다. 천안함 사태의 부모들과 그리고 그 사건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목소리가 무엇인가? 굉장힌 단순한 것이다. ‘진실’이다. 하지만 그들이 처음 마주치는 것은 국가권력의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조치이다. 날 것 그대로의 국가의 무지막지함이 그들에게 다가온다.

전쟁의 흔적은 너무도 잔인했다. 전쟁은 남편의 다리만 앗아 간 것이 아니라, 여느 가정이 흔히 누릴 수
있는 행복 또한 빼앗아 갔다. 남편의 죽음은 남은 네 식구에게 크나 큰 경제적 시련을 안겨 줬다. (……) 불행의 유전자는
대물림 되는 것일까. 남편과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짓밞은 죽음의 그림자는 첫째아들에게도 그 모습을 드러냈다. 조 씨의
첫째아들은 군대에서 식물인간이 됐고, 집에 온 지 두 달여 만에 숨을 거뒀다. 하지만 아들이 어쩌다 그리 되었는지 누구도 알려
주지 않았다. 소속 부대에서는 그저 사고로 입은 상해라는 말만 할 뿐이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누가 속 시원히 얘기해 줬으면
좋았으리라. 하지만 누구도 그녀의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p.174).

“내가 이건 구걸 조사라고 했어요. 왜 그랬냐면, 연류됐던 사람들, 동기들 다 사회에 나가 있잖아요.
그러니 헌병대에서 전화 걸어서 좀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하면, 저 족에서 퇴근 시간에 회사 앞 어느 다방에서 만납시다, 이래요.
그렇게 다방 구석에 앉아서 몇 마디 물으니 거기서 뭐가 나오겠습니까. 모래 땅에서 바늘 줍는 것보다 더
어렵지.”
“(pp.240-241)

가족들의 말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국방부는 그들의 방식대로만 일을 한다. 부대 안의 모든 요원들의 ‘입단속’이 시작되고, 현장은 철저하게 ‘세척’되며 가족들에게는 국방부 자신이 준비가 되어 ‘알리바이’가 생겨났을 때에만 일을 처리한 인상을 준다. 그리고 가족이 강경하게 나올 때 몇 십 만원의 돈을 준다거나, 꼬투리를 잡거나, 빨리 화장하고 장례식을 치르자는 식으로만 넘어간다. 언론에 대한 보도는 차단되지 않았으되 ‘비협조’로 일관하고 최종심에 올라갔을 때에야 쭈뼛쭈뼛 진실에 대해 쑥스럽듯이 밝혀준다. 이미 진실은 ‘반쯤’ 매장당한 후에야 겨우 겨우 등장할 수 있었다. 그게 50년 넘는 군의문사 군인의 가족들이 겪은 일이었다. 국민의 정부에서도 그 부분은 해결이 온전히 되지 못해왔다. 늘 목격자를 찾지 못해 가족들은 그들이 알고 있는 ‘절반의 진실’마저도 인정받지 못하고, ‘진실’이 밝혀졌을 때조차 국방부는 그들에 대한 ‘명예회복’을 더디게 준비할 뿐이었다.

가족들은 처음에는 ‘진정한 사과’를 원했다. 하지만 점차 그들이 지치게 되었을 때 요구하는 것은 ‘명예회복’이라도 해달라는 것이다. ““여기서도 편하지는 않을 거예요. 국립묘지에 가면 좀 편안해질까요? 그렇겠죠.”“(p.284) 하지만 이것은 ‘불가능한’ 임무에 가까웠다. 부르주아 민족국가는 통상 베네딕트 엔데슨의 『상상의 공동체』의 첫머리에 나오듯 ‘용사의 묘지’를 가지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만들어왔지만. 정작 ‘병영국가’에 가까웠던 대한민국은 군대 바깥으로 내쳐진 ‘死者’들에 대해서도 군림하려 들었었다. 이것이 그(녀)들의 ‘억울함’을 만들어낸 것이다.

가족인 그(녀)들의 목소리는 세상에 존재하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소외된 목소리였다. 『돌아오지 않는 내 아들』은 그 목소리를 들려준다. 그리고 좀 더 적극적으로 이 책을 읽는다면 현재의 ‘군대’라는 시스템이 어떤 ‘무언의 압력’을 통해 유지가 되고 있는지도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공포’를 토대로 운영되는 시스템. 하지만 그 틈새가 생겨나고 있고, 이는 ‘국민국가의 합의’를 통해서 혹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군대의 ‘변화하는 지점’의 ‘틈새’를 통해 계급적으로 양극화되어 나타나고 있다.

군대가 줄 수 있는 끔찍함 그 자체는 한국사회의 수 많은 남성들의 몸과 ‘기억’에 깊숙이 각인되어 있다. 그리고 곁에 있는 ‘가족’들도 그것에 대해 명백하게 알고 그것들은 ‘언어’로 더 정교하게 알고 있는 계급은 그것들의 ‘위험성’에 대해 명확하게 인지한다. 책에 나오는 대다수의 인터뷰이들의 사정이 그것들을 보여주기도 한다. 못 배우고 못 벌어서 아이들을 그렇게 보냈다는 그(녀)들의 사무침은 우연만은 아니다.

다만 ‘최루성’의 재현을 통해 ‘분노’ 혹은 ‘회한’을 이끌어내는 필자들의 인터뷰 방식에 대해서는 문제제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들의 죽음’에 대한 회한에 대한 조명은 ‘여전히 꿋꿋이 살고 있는’ 것을 손쉽게 가려버릴 수 있다. 그들에 대한 ‘선의’라고 말할 수 있으나, 인터뷰어들은 자문해봐야 한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이 ‘공감’인지 혹은 ‘공감’을 가장한 동정심인지.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을 주저앉히지는 않는지 말이다. 그 성찰의 지점에 대해 읽는 사람들 역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불쌍하다”가 이 책을 읽은 단상이라면 이 책의 목표는 완전한 실패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런 문제제기를 하기에 앞서 이제 군대에서 벌어지는 ‘의문사’들에 대해서 다시 재심을 요구하기 힘들어졌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2008년 12월 31일부로 <군의문사위원회>의 활동기간이 만료되었기 때문이다.</span> 위원회가 종료되었다고 군대에서의 ‘의문스러움’이 지워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그(녀)들의 목소리는 누가 들어주어야 하는가. 그 지점에 대해서는 함께 분노해 봐야 하지 않을까. </p>

천안함에서 죽은 원혼과, 여전히 무덤에서 눈감지 못하고 있는 억울한 혼령들의 넋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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