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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군 훈련 참관기
나는 군대를 싫어해서, 미루다가 천천히 늦게 길게 다녀온 덕분에 올해 예비역 1년차다. 대학원에 다니는 고로 학생예비군 훈련을 받게 되었다. 2010년 4월 9일 새벽 7시 30분에 연대 독수리 광장 앞에 집결시간이라 학교로 갔다. 친구의 집에서 자고 7시 15분쯤 비몽사몽 걸어나오기 시작했는데 길거리에 전투복과 전투화를 입은 예비군들이 늘어서 있었다.
나는 전투복을 입을 때 ‘갖춰’ 입고 나갔는데 역시 예상했던 대로 그렇게 입으면 ‘예비군 1년차’ 티를 내는 것이었다. 일단 전투복 상의를 빼서 입는 ‘예비군 기본 복장’을 갖추지 못했다. 난 늘 부대에서 하던대로 바짓단을 전투복 끝까지 올렸으나 대부분은 대충 내려서 ‘유격 모드’와 FM의 중간으로 하곤 했다. 부대에 있을 때 짬이 찬 병장들이 고무 밴드로 동여맨 바짓단을 점점 내리곤 했었는데, 예비군들은 절정에 이르러 있었다. 그나마 밴드를 하지 않은 이들도 많았다.
처음 봤을 때는 인적 구성이 생각보다 단조로와 보였다. 보통 동원 예비군에 대한 사람들의 인상이 ‘해병대’와 ‘非해병대’로 구분된다는데. 연대의 예비역들은 ‘공군’과 ‘非공군’으로 나뉘는 것 같았다. 파란색 계급장과 부대 마크 없는(공군은 부대 마크를 2006년 기준으로 다 떼기 시작했다) 군복. 그리고 나머지 군들이 있었다. 그런데 잘 살펴보니 육군도 굉장한 다양성을 보여주었는데. 그건 ‘부대’의 다양성만은 아니었다. 태극기를 전투복에 붙이거나 미군 군복을 입고 온 KATUSA들과, 신학대생으로 보이는 ‘군종’병들(그들이 꼬나문 담배가 묘한 기분을 주긴 했지만), 그리고 아무런 부대 마크도 없이 병장인 공익근무와 의무소방, 의경 등등. 알만한 육군 전투부대의 상징을 달고 다니는 예비군은 별로 없었다. 또 다른 한 편에서 육군 장교들이 좀 있었고, 나와 같은 공군 장교는 한 두 명 더 있었던 것 같고, 해군 장교는 한 명을 볼 수 있었다(더 있었을 수도 있다). 아마 육군은 ROTC와 학사인 것 같고. 학사와 ROTC 출신의 차이가 조금 느껴졌는데 ROTC 출신들은 보통 연대 본교출신이 많았고, 학사 출신은 이야기해보았을 때 다른 학교에서 대학원을 ‘갈아탄’ 경우가 많았다. 뭐 공군과 해군 장교는 모두 학사장교(사관후보생) 출신이었으리라.
어쨌거나 버스에 꾸역꾸역 예비군들이 들어가기 시작했고, 예비군 부대로 향한다. 버스에서 대부분은 자거나 같이 온 친구들과 이야기를 한다. 나는 별로 할 이야기가 없다.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예비군 훈련장에 도착하고 훈련 조교인 병사들이 인솔을 시작한다. 계급이 없이 ‘교관’이라고 쓰여있는 동대장들이 헤드셋과 부착된 작은 스피커를 통해 통제를 시작한다. 버스에서 내린 예비군들은 어기적어기적 담배를 물고 ‘노가리’를 시작한다. 군복 입고 훈련 받으러만 오면 아프기 시작하고 머리가 무겁고 무기력해진다는 이야기가 적중했다. 나 역시 간만에 신은 전투화가 무겁고 군복이 답답하고 온 몸에 먼지를 뒤집어 쓴 듯 목이 칼칼하고 무기력해지기 시작했다. 예비군들은 먼저 가방 따위를 반납한다. 그리고 자신이 쓰고온 전역모를 반납하고 단독군장과 총기를 지급받는다. 요즘은 예비군들에게 지급하는 병기에 대해 바코드를 붙여서 스캐너로 각자의 신상정보와 함께 그것들을 관리하더라.
이것 저것 장비 지급과 몇 가지의 절차를 확인하고, 겨우 겨우 연병장에 인솔을 마친 예비군들이 도착을 한다. 예비군 대대장과 함께하는 ‘입소식’이 있다. 사회자는 육군 대위. 아마 야전에 있다가 온 듯하다. 목소리에 중대장으로서 백 여명의 장병을 인솔해본 느낌이 나는 목소리였다. 트인 목소리. 육군 대위는 몇 차례 입소식 ‘예행 연습’을 한다. 예비군들은 들은척 만척하고, 이미 다 짜여진 대로 그 대위는 몇 차례 경례 연습을 반복시킴으로써 ‘주목’을 시킨다. 연습이 끝나고 이번 예비군 중에 군번이 가장 빠르고 가장 계급이 높은 육군 장교 출신의 어떤 사람이 예비군 대대를 지휘한다. “대대장께 대하여 경례” “훈시” “부대 열중 쉬엇” “부대 차렷” “대대장께 대하여 경례”. 내가 군번이 좀 더 빨랐으면 그걸 했을 수도 있다.
입소식이 끝나고 우왕좌왕 예비군들이 ‘귀차니즘’ 모드로 전환하기 직전 동대장들이 4개의 학급으로 나뉘어진 예비군들을 인솔한다. ‘분열’을 실시한단다. 대대장의 지시인가? 발맞추고 제식을 하고. 아직 이들은 ‘민간인’들이다. 발도 안 맞고 모두 “뭐야 씨발”하면서 대충 따라간다. 덕택에 대대장은 내가 있었던 2학급에게 다시 한 바퀴를 더 돌것을 지시한다. 훈련소가 갑자기 생각이 난다.
슬슬 발이 맞기 시작하고 학과장으로 이동한다. 처음 맞은 프로그램은 향방 훈련. 도심을 모형으로 한 훈련장에 북한군이 침입한 상황을 가정하고 그것에 대한 대응을 하는 훈련이다. 서바이벌 게임을 모형으로 한 것 같은데. 종종 사고가 나고, 또 서바이벌 총에 가스가 약하기 때문에 실제적인 훈련은 하지 않고 그 총으로 영점사격만 하겠단다. 페인트탄 6개를 놓고 채운다. 총탄을 발사한다. 4발째까지는 가스가 약해서 표적에 안 맞더니 5발째부터 겨우 맞는다. 사격을 마치고 10개의 목표 지점을 도는데. “약진 앞으로”를 외쳐도 약진하지 말고 걸어가라는 동대장 교관의 말이 재미있다. 어슬렁어슬렁 올라간다. 마지막 지점에 ‘하수도 통과’가 있는데 조교가 “선배님들. 여기는 교관이 안 쳐다보니 그냥 통과하십니다.” 해서 그냥 빠져나온다. 예비군들이 막 웃으면서 지나간다. 여기저기서 짬만 나면 예비군들은 일단 담뱃불부터 붙이기 시작한다. 연대생들의 흡연률이 그리 높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예비군의 흡연률은 70%를 상회한다. 핸드폰 꺼내고 통화하고. 그게 신기하다고 말하는 예비역 병장들 1년차들이 이야기하기도 한다. 핸드폰을 들고 다녔던 나는 전혀 신기하지 않았지만. 아무 곳에서나 담배를 걸어가면서 피워도 제지받지 않는 건 좀 나도 신기했다. 사실 군대가 ‘이런 곳’이겠지.
아직 11시 밖에 되지 않았다. 점심시간은 12시 30분이다. 막 짜증들을 내기 시작한다. 한 가지 프로그램. 각개전투가 기다리고 있다. 산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한다. 여기는 교관의 통제가 좀 더 빡세다. 각 지점에 지향사격 자세를 취하고 150m 코스를 올라간다. 다들 걸어올라가다가 교관이 막 뭐라고 하면 그제서야 뛰는 척들을 한다. 여기에는 또 옷을 더럽힐만한 ‘철조망 통과’가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교관이 쳐다보고 있고 옆으로 돌아갈 우회로도 없다. 다들 “씨발” “씨발”을 연호하면서 올라간다. 근데 생각보다 다들 포복은 잘 한다. 다시 현역병이 된 것만 같다. 혹은 훈련병이거나.
겨우 겨우 코스를 돌고 정상에 올라가니 교관이 “담배 한 대씩 피우시고, 화장실도 다녀오시고. 천천히 있다가 갑니다.” 시간은 11시 반도 안 되었는데. 또 예비군들은 담뱃불을 붙이고 노가리를 풀고 여자친구한테 전화를 건다. 교육장에 내려가니 다들 전화 통화, 숙면, 노가리 모드이다. 1시간 정도 교관의 ‘정신교육’을 들었다. 요새 30살까지 엄마 아빠들이 키우느라 뺑이를 치고. 예전엔 평당 500만원이면 집을 ‘샀는데’, 지금은 전세가 평당 1200만원이라 도대체 애들이 취직해도 집을 나가주지 않는다. 뭐 다 동의하다가, 교관의 마지막 말이 좀 웃겼는데. “그러니까 여러분은 한국의 0.1% 엘리트니까 대졸의 ‘괜찮은 직장’ 임금 2800만원의 세, 네 곱절로 벌어서 빨리 집사고 집에서 독립하라”는 결론. 다들 졸고 있다가 웃음 소리가 나면 잠깐 깨고.
점심시간이 된다. 난 도시락을 단체로 시켜먹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식중독 등등의 문제로 <예비군 회관="">이라는 곳에서 먹기 되었다. 서대문구와 민간 업체가 계약을 한 걸로 봐서 부대에서 먹었던 ‘장교 식당’ 정도를 떠올릴 수 있었다. ‘짬밥’은 안 먹겠구나 싶어 다행이었다. 반찬은 어묵과 김과 밥과 김치와 토란 장아찌 그리고 ‘육개장’. 맛있게 먹기 시작했는데 다 먹고나서 정면을 쳐다봤을 때 원산지 표시가 있었는데 “소고기 : 미국산”이라는 글자에 눈 튀어나온다. “아, 곧 죽겠군”하고 짜증이 난다. 이제 군부대에도 미국산이 들어온다더니 이 지경이 되었군. 내가 현역일 때만 해도 ‘호주산’이 들어왔었는데.예비군>
식사를 마쳤을 때 두 줄이 생겼는데. 한 줄은 식사 퇴식구로 향하는 줄이었고, 다른 한 줄은 ‘군것질’을 하기 위해 매점으로 향하는 줄이었다. 난 일단 퇴식만 하고 화장실에서 손 좀 씻고 볼일 좀 보고 나와서 다시 매점으로 향했다. 그랬더니 이미 매점에 있던 많은 아이스크림 중 대다수가 없어지고 원래 먹으려했던 ‘월드콘’은 먹지 못하고 대신 ‘붕어 싸만코’를 살 수밖에 없었다. 드글드글 먹을 것에 걸신들린 예비역들. 결제는 보통 요즘 부대에서 가능하듯 카드도 가능했고 많은 이들이 카드로 2~3천원씩을 결제했다.
휴식할 수 있는 계단가에 앉아 혹은 널부러져서 자는 예비군들. 통화하는 예비군들. 같은 과에서 단체로 온 이들은 노가리를 무한으로 털기 시작했다. 며칠 전 보았던 <남녀탐구생활> 예비군 편과는 좀 다른 게 여기는 대체로 같은 학교에서 왔기 때문에 모르는 이들에게 구태여 말을 걸 유인이 없었다. 이미 아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서로 명함을 건내는 행태는 거의 없었다. ROTC 선후배에다가 같은 ‘반'(학부 안의 구성된 학급 같은) 선후배 사이인 어떤 예비군 두명의 모습이 웃긴다. 선배를 계속 졸졸 따라다니며 ‘장교단의 전역 후 자세’에 대한 설교를 듣는 후배의 모습을 보면서, 데먼데먼하게 대충 쌩까고 있는 공군장교들. 서로 존대말 하며 ‘외교적’으로 대화하는 모습과의 대조를 느꼈다.남녀탐구생활>
어쨌거나 또 그렇게 점심시간이 끝나고 어기적어기적 교장으로 향한다. 오전에 몸으로 뛰는 수업이 끝났기 때문에 남은 것은 <안보 교육="">과 <사격> 뿐이다. 안보 교육이 먼저였고 강사는 ‘나라사랑 운동본부’의 장창연이라는 사람이었는데. 공군 대령 출신이었다. 물론 소개만 듣고 잤다. 좀 꼼꼼하게 듣고 반론을 머릿속에 그릴 수도 있었으나 귀찮았다. 부대 안에서 들었던 이야기와 별 차이가 없을 것이 분명했으므로, 제목도 “2010년 북한의 핵무기 위협과 한반도” 뭐 이런 것이었으므로. 푹 쉬고나니 신나는 “사격”시간이 돌아왔다. 예비군들이 갑자기 ‘현역’이 되기 시작한다.사격>안보>
줄도 슬슬 잘 맞기 시작하고 이 상황에서 누군가 ‘군가’라도 부르라고 했다면 정말 부를 것만 같았다. 사격장에 들어서서 몇 가지 순서를 또한 진행한다. PRI(Preliminary Rifle Instruction:사격술 예비훈련. 하지만 보통 피나고, 알배기고, 이가 빠질 것 같은 혹은 아픈으로 이해된다), 총기분해결합, 안전조치 등을 마치고 사격에 임한다. M16A1. 육군들은 보통 K2를 사용하는데 공군은 나머지 ‘잔여 병기’를 수령하기 때문에 M16A1을 사용해서 공군에게는 익숙한 총기이다. 6발의 실탄을 주는데, 총기들이 ‘영점’이 맞지 않아 있고 ‘사고’의 위험 때문에 자신들이 지급받은 총기가 아니라 훈련장에서 ‘셋팅’해 놓은 총을 쓴다. 다들 신이 난다. 물론 ‘집총거부’ 혹은 ‘사격거부’를 한 사람이 있었다. “꿈자리가 사나워서”와 “아파서”가 경합을 했고 모두 인정되었다. “돈 주고도 못 쏘는데 좀 쏘시지 그래요?”라고 교관이 ‘회유’했으나 그냥 쏘지 않았다. 한 5~6명 정도가 그랬다. 난 권총만 쏘면서 군생활을 했기 때문에 쏘아 봤다. 귀마개를 꽂고 노리쇠 후퇴전진. 탄창 장전. 조종간 반자동. 사격 개시. 6발 중에 4발이 맞았다.
그런데 누가 맞추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들 싱글벙글하다. 0발~6발까지 표정은 모두 ‘전사’가 된 듯하다.
이제 모든 순서가 끝이 났다. 다들 집에 가려고 분주한데 줄을 맞추지는 않는다. 일단 군장과 총기를 반납하고 자신들의 물품을 다시 찾아가야 ‘수료식’이 시작하는데. 이제 다시 당나라 군대가 되었다. 5시 반이면 모든 순서가 끝나고 집에 갈 것이라 동대장이 이야기했었으나 역시 실패. 무적의 ‘예비군 모드’가 다시 발동이 걸린 것이다. 한참을 헤매다가 겨우 수료식을 한다. 하지만 하루간의 ‘군사화된 신체만들기’는 성공했는지 경례소리가 오전에 비해 훨씬 경쾌하고 커졌다.
집에 갈 시간. 대대장의 ‘수료식’ 훈시에서 뛰어가면 사고나고, 버스에 자리가 충분히 있다는 말이 거짓임이 증명된다. 모두들 뛰어갔고 뛰어간 사람들만 대절해온 버스에 탈 수 있었다. 나는 다행히 공군장교 선배의 차에 ‘카풀’해서 함께 타고 돌아왔다. 돌아오면서 우리는 ‘현대정치철학’, ‘아감벤’, ‘문화연구의 현재’에 대해 토론을 한다. “아. 정말 난 공군장교 갔다왔구나. 훈련을 마치고도 이런 이야기를 해야하다니.” 별 생각이 다 들다가 학교에 도착을 한다.
여자친구가 군복입은 나를 보고 “오빠 아닌 것 같아”라고 말한다. 빨리 가서 옷 갈아입어야지. 온 몸에 흙냄새와 담배냄새가 배어있다. 많은 예비군들이 끼리끼리 모여 삼겹살에 소주를 먹겠다던 그 이유가 납득이 갔다. 난 집에 가서 엄마의 밥을 먹고 뻗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