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풀무질 아저씨를 아시나요??
![]() |
풀무질, 세상을 벼리다 – ![]() 은종복 지음/이후 |
2007년 봄 쯤이었다. 중위 진급을 앞 둔 상황. 6일 근무를 하고 이틀을 쉬었다. 쉬는 날 중에 평일이 많았다. 원래 5일 근무하고 이틀을 쉬면 평균적인 샐러리맨의 일상과 비슷할테지만 좀 달랐다. 어쨌거나 쉬는 날마다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에 오면 보통 건대 도서관에 가거나 아니면 대학로나 홍대의 까페들을 찾곤 했다. 그 때 한참 온라인에서 블로그를 만들고 ‘잘 나가는’ 파워 블로거들의 블로그에 들어가곤 했는데 우석훈의 블로그와 ‘Orwellian’이라는 블로그가 눈에 띄었다. 그 당시 우석훈의 블로그와 Orwellian이라는 블로그는 모두 이글루스에 있었다.
어쨌거나 우석훈과 Orwellian의 블로그를 뒤지다가 <풀무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풀무질>. 언젠가 성대 올라가는 길에 한 칸짜리 비좁은 공간의 서점을 보긴 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아직 논장이 있을 때였기 때문에 별로 풀무질에 눈길을 주지는 않았다. 그들의 블로그에 나온 이야기는 <풀무질>에서 인문사회과학 서적 세일을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갔더니 세일을 하지는 않았다. ‘낚였다’. 그런데 가서 평대에 깔린 책들을 보는데 여전히 80년대의 배치로 쌓여있는 책들을 보는 것이 뭔가 다르긴 했다. 물론 건대의 <인서점>이라는 인문사회과학 서점에 자주 다녔으므로 인문사회과학 서점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를 모르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풀무질>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그것 이상이라고 해야할까. 뭔가 그 고집스러움이 느껴졌다.
그리고 은종복 풀무질 아저씨와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좋았다. 자주 가지는 못했지만 갈 때마다 아저씨와의 친근한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두 번 만났을 때 아저씨와 나는 이미 친구가 된 것 같았다. 또 아저씨가 나눠주는 글들은 기독교인들이 하는 QT처럼 매일 나를 명상에 빠지게 만들곤 했다. 몇 년동안 알음알음 A4 용지에 써서 책방을 들르는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던 그 글들이 출간이 되었다. 너무나 기쁜 일이다.
요즘 종종 가장 ‘비타협적인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라는 질문을 하게 되는데. 풀무질 아저씨를 보면서는 그런 질문을 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풀무질 아저씨가 가장 비타협적인 사람이다. 그건 그 아저씨가 가장 ‘맑은 눈’을 가졌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절절한 ‘호소문’을 쓰는 사람들의 ‘절절함’에 대해 종종 냉소적으로 반응하게 될 때가 많은데. 똑 같은 말을 해도 풀무질 아저씨가 하면 무조건 믿는다. 모기에 대한 아저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풀무질>에서 일하다 보면 내 책상 밑으로 모기가 한두 마리 날아다니는 건 늘 있는 일이다. 윙윙거리다 소리가 나지 않으면 내 몸 어딘가에 앉아 피를 빨아먹고 있다. 한 세 번쯤 물리고 나면 모기에게 다소곳하게 말을 건다.</span>
“애야! 내가 지금 아프다. 너 때문에 내 몸이 간지럽고 힘들어! 이제 그만 먹으면 안 되겠니?” 사람 피를 먹는 모기는 암컷이다. 그것도 뱃속에 알을 품고 있는 암컷. 모기도 사람 피를 먹어서 자기 새끼를 잘 낳으려고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웃을 것이다. 모기가 알을 잘 낳으라고 사람 피를 줘야겠냐고. (……) 이 땅에 목숨 있는 모든 것은 제 목숨대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이런 말을 할지도 모른다 .사람 목숨이 귀하냐, 모기 목숨이 귀하냐. 물론 사람 목숨이 귀하다. 하지만 사람은 모기 몇 번 물린다고 죽지 않는다. 하지만 모기는 사람이 때린 손에 목숨을 잃는다“(p.266).
구태여 민감한 ‘모성’ 이야기를 하고 싶진 않지만 그의 엄마 이야기를 들으면 또 가슴이 뭉클해지고 은종복이라는 사람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어머니는 한글도 어디서 따로 배워 익히지도 않았고, 야학도 한 번 안 다니셨다. 그랬는데도 그냥 살면서 조금씩 자연스럽게 익히셨다. 지금도 글 읽을 때 술술 읽지는 못하지만 사는 데 크게 지장은 없다. “얘, 내 머리에는 10원도 안 들였지만 판사 앞에서도 말할 수 있고, 검사 앞에서도 말할 수 있고, 대통령 앞에서도 말할 수 있다.” 이 분이 바로 우리 어머니시다“(p.107). “어릴 때 가정 통신문에 어머니 학력 쓰는 곳이 있었다. 거기에 ‘무학’이라고 쓰면서 참 부끄러웠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어머니는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손발이 부르트도록 일하며 배웠다. 그것은 고스란히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졌다. 난 우리 엄마가 참 좋다“(p.112).
아저씨가 정치에 가진 생각들, 그리고 민중에 대해서 가진 생각들에 다 동의하긴 힘들다. 이를테면 북한이라는 국가와 북녘에 있는 어린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여전히 섞여 있고, 미국에 대한 맹목적인 반대들이 섞여있는 게 문제적이라고 생각할 때는 있다. 하지만 그래도 아저씨의 마음에는 동의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인간에 대한 애정, 그리고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애정. 굶는 아이들에 대한 애정. 결과적으로 늘 전쟁을 만들어온 사람들과 국가에 대한 반대하는 마음. 모두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가 한미FTA가 체결되는 당시에 울분을 통하면서 아이들과 생명들에 이야기할 때 그 이야기는 나를 울렸다.
그가 이론적으로 ‘정합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었다면 그는 책방을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버텨온 것이고 그의 경험을 어떻게 이론의 언어로 재단할 수 있을까. 만약 이론적으로 그게 가능하다 하더라도, ‘합리성’에 대한 이론으로 그를 설명할 수는 없다.
한동안 성균관대에서 운동권들이 해체되는 일들이 있었다. 2001년 이후 성균관대는 총학생회부터 시작하여 ‘뉴라이트’ 혹은 재계와 연관된 이익집단들의 ‘학생 인재 양성소’ 같은 곳이 되어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풀무질>은 계속 그 자리를 지켜왔고, 한 칸의 책방은 반지하이긴 하지만 더 넓은 곳으로 이전했다. 여전히 <풀무질>에는 책을 사랑하고 사람을 만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지켜주고만 싶은 장소로 잘 버티고 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목소리라는 것들이 풀무질 아저씨의 글들과 더불어 같이 상징적으로 나왔다. 이 책은 왜 <풀무질>이 지금까지 버틸 수 있는지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고, 더 많은 가능성들이 계속 나올 수 있는지에 대한 이유가 된다.
내 나이 마흔이 되었을 때도 <풀무질>이 있고, 또 풀무질 아저씨와 같은 꿈을 꾸고 그것들이 실현되는 와중에 있는 작은 인문사회과학 서점들이 몇 군데 더 생겨난다면 세상이 조금이나마 좀 더 누군가에게는 꿈꾸었던 ‘혁명’에 가까이 와 닿지 않을까. “사람이 사람을 못살게 하고 사람이 자연을 파괴하는 사회가 국가보안법, 헌법에서 말하는 ‘자유 민주적 기본 질서’라면 비록 다시
갇히는 몸이 되더라도 거기에 따르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괴롭히지 않고 자연과 조화롭게 사는 세상이 ‘사회주의’라면 나는
그것을 따를 것이다“(p.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