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던 환대의 공간 – 두리반 락 페스티벌



작년에 데리다의 『환대에 대하여』를 읽었다. 기억에 남는 것은 ‘절대적 환대’와 ‘조건부 환대’. 쉽게 정리하자면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는 절대적 환대의 기준은 현실에서 실현 불가능하지만 조건부 환대를 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성찰의 지점이 된다는 것이었다. 또한 조건부 환대라는 것이 현실 속에서 존재하는 환대의 ‘법들’이라는 측면 덕택에 하나로 환원되지 않고 나름의 환대들이 가능하다는 이야기.

데리다의 책을 읽고 나서는 어떤 비관주의들이 떠올랐다. 절대적 환대는 마치 맑스와 엥겔스가 『공산당 선언』을 통해서 기획하려 했던, 또 레닌과 그람시, 그 이전과 이후에도 꿈꾸어진 ‘혁명’의 유토피아의 기획과도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동시에 역사적으로 존재해왔던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 등등의 기획은 조건부 환대들이 맞물렸다. 그렇다면 현실에서는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는 ‘환대’는 불가능하고, 마찬가지로 ‘혁명’도 불가능한 것일까? ‘절대적 환대’가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데리다의 말을 나는 처음에는 비관적으로 읽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며칠 전 데리다의 ‘차연’(혹은 차이Differance)을 읽었다. 목소리(로고스)로는 같지만, 문자로는 다른 Difference와 Differance. 들리는 목소리는 같지만 문자로는 다른 차이. 이 차이 혹은 ‘차연’이 바로 대체보충. 같은 소리가 남에도 불구하고 다른 의미라고 이야기할 때는 대체보충으로서의 ‘문자’가 필요하다는 이야기. 그 ‘문자’는 바로 어떠한 물질성, 혹은 어떤 물질적 조건이라는 이야기였다. 나는 ‘절대적 환대’와 ‘조건부 환대’가 온전히 동일해질 수 없다는 점, 즉 달리 이야기하면 ‘절대적 환대’가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이 유토피아적인 기획처럼 들리는 아포리아의 지점에서 이 대체보충으로서의 ‘물질적 조건’ 혹은 ‘물질성’을 떠올렸다. ‘절대적 환대’가 불가능한 것은 어떤 ‘조건들’ 때문이 아닐까. 결국 문제 삼아야 하는 것은 환대를 가로막는 어떠한 사회적 조건들, 그리고 그것들이 뒤섞여 있는 근대라는 커다란 조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환대를 하는 이에게는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환대를 베풀기 위해서는 그 공간 안과 바깥을 구분하는 문지방을 허물어야 (혹은 그 문지방이 허물어져야 하고) 한다는 점. 또 다른 한 편에서 이방인의 눈으로 사회를 봐야한다고 하지만 그 이방인이 실제로 공격적이라면? 이 두 가지 아포리아가 강의 중에 지적되었다. 그런데 나는 외려 다시 말해 데리다가 그 ‘조건들’에 대해 사유하는 것을 요청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공간’에 대한 소유 관념과 이방인의 ‘공격성’이라는 것 자체가 사실은 역사성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학자들이 여러 측면에서 밝혀낸 것이지만 ‘공간’에 대한 소유관념은 늘 존재해 온 것이 아니고 ‘전쟁’ 혹은 폭력이 수반되는 ‘적대’라는 상태도 엥겔스의 주장과 그것을 지지하고 있는 모건의 주장을 따라서 생각해본다면 인류 처음부터 있었던 행위는 아니다. ‘근대적 조건’ 하에서 우리는 이방인에 대한 포비아를 느끼고 그들에 대한 인종주의적 수사들을 구사하게 될 뿐, 다른 조건에서는 그러한 행위들이 벌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이야기는 철저하게 현학적인 것일 수 있다. 다만 데리다가 ‘절대적 환대’를 통해서 성찰의 지점을 만들라고 했던 것처럼, ‘조건들’에 대한 사유 역시 반대로 환대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대한 어떤 ‘인격적 비난’이나 ‘열폭’의 정서를 피해 성찰할 수 있는 지점을 줄 수 있지 않을까.

5월 1일 메이데이. LG라는 거대한 재벌 자본의 건설사에 의해 재개발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버티면서 싸우고 있는 두리반에서 인디밴드들의 락 페스티발이 열렸다. 입구에서 친구 조병훈이 “블랙 메탈”을 외치면서 음반을 팔고 있었다. 옆에는 ‘친구의 친구’가 있었고 나는 스스럼없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담배 한 대를 바라는 그녀와 담배를 나눠 피웠다. 여자 친구도 함께 있었는데 그녀는 처음 보는 이들이 청할 때마다 담배를 나눠 주었다. 조병훈은 내게 밥 먹었냐고 묻고 “아니”라고 대답하자 자기들이 치킨을 사러 갔다며 같이 먹을 거냐고 물었다. 치킨이 왔을 때 나와 여자 친구도 같이 먹긴 했는데, 지나가다가 음반을 사는 사람들도 같이 나눠 먹었다. 음식이 떨어지자 또 어떤 녀석이 다가와 먹을 것을 건넨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누구 것도 없었다. 데리다가 말했던 아포리아 중 하나가 손쉽게 깨졌다. 또 동시에 서로가 공격하지 않을 것을 알았다. ‘자본’의 표찰만 달고 완장을 차고 다가와서 공격하지 않는다면야 이 공간에서는 서로 즐겁게 춤추고 노래할 수 있음을 알아버렸다. 아니 서로 그럴 수 있게 만들어 갔다. ‘환대의 공간’이 잠시 열린 것만 같았다.

공연하는 밴드들, 꽃을 꽂은 여자, 민방위 모자를 쓰고 치마를 입고 바지를 입은 어떤 남자 히피, M2 같은 일렉트릭 댄스 클럽에 갈 것 같은 차림으로 온 여성들, 정장을 입고 와서 쭈뼛대면서도 흥에 겨워 들썩대는 아저씨. 또 안산이나 군포 같은 공업 단지가 많은 도시에서 왔을 법한 이주노동자들. 우리는 서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만약 다른 장소였다면 아마 우리는 명함을 건네야 했을 테고, 명함이 없었다면 그 상황을 통해서 나름의 위계를 만들어보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행사가 끝난 후에 어떤 시공간이 주는 배치 안에서 분명 그 배치에 걸맞은 행위를 수행했을 것이다. ‘살아야 하니까’.

하지만 촛불이 그랬듯이 51party는 ‘절대적 환대’가 가능했던 조건들을 만들어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번 ‘환대의 공간’들은 일상적으로 ‘출현’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사건’으로 출몰하는 환대의 공간(조한의 표현으로는 ‘일시적 자율 공간’)들은 그 공간 안에서 사람들의 몸을 바꾸고 기억을 재배열 한다. 물론 알튀쎄가 말했던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ISA)의 힘은 세고, 또 동시에 아감벤이 말했던 늘 ‘동물적 삶’만 가능하게 하는 신자유주의적 조건들은 당장 크게 변함이 없지만 그러한 체제의 견실해보임은 위에 언급했던 데리다의 ‘대체보충’처럼 늘 취약할 수밖에 없다. 사실 difference와 differance의 차이는 기껏해야 10 글자 중 한 글자에 지나지 않는가. 하나만 바뀌어도 크게 바뀔 수 있음. 물론 그것들을 포획하는 자본과 근대의 힘은 강력하겠지만, 틈새를 벌려내는 출몰하는 ‘순간들’은 계속 필요하지 않을까. 자본과 근대의 힘이라는 강력함을 한 방에 때려 부수려는 생각은 얼마나 가능한 것일까. ‘절대적 환대’는 출몰하는 것, 그리고 그 ‘환대의 공간’을 체험하는 것이 ‘조건부 환대’가 변하지 않으리라는 비관주의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