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낙구의 집요함이 만들어낸 통찰, 여기는 부동산 계급사회!

부동산 계급사회10점
손낙구 지음/후마니타스

 2010/05/08 – [일기장/하루 하루의 기록] – 두리반 간담회 끝나고 나서
2010/05/05 – [생각하기/요즘 일어난 일들] – Fly, Hendrix, Fly 2010년 봄 번개, 그리고 <방 있어요?> (수정판)
2010/01/01 – [보고 듣고 읽고 그리고 느끼다/에세이] – 심상정이 드러낼 수 있는 이야기의 1% – 심상정, 당당한 아름다움

’17대 국회의원 심상정’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이헌재 재경부 장관을 KO 시켰을 때 그녀는 ‘운동권 정치인’에서 ‘데이터에 충실한 정책 전문가 정치인’이 되었다. 엄청난 실물경제 지표와 실증자료들, 그리고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통계지표들을 꿰고, 정책 자료들을 다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는 심상정은 국회 재경위에서 괴물 존재였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국회의원의 정보력은 말 그대로 ‘보좌관들의 노가다’에서 나온다. 그리고 또한 그 ‘노가다’는 그냥 그 수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통찰력을 주어야 한다. 자료를 찾아내고, 그것들을 ‘엮어내는’, 즉 ‘가공’의 과정이 중요한 것이다. 그 과정을 수행했던 선수가 바로 손낙구이다.

손낙구의 책 두 권을 사놓고서는 읽고 있지 않았었다. 한 권은 <대한민국 정치="" 사회="" 지도="">이고 또 다른 한 권이 바로 이 <부동산 계급사회="">이다. 전자는 너무 두꺼워서 사전처럼 보려고 쟁여두었고, 후자는 이상하게 계속 손이 안 갔다. 왜였을까? </p>

올 초부터 시작해서 ‘주거’의 문제, ‘도시’의 문제에 대해서 계속해서 고민을 하고 있기는 한데, 아직 집약적으로 그것들을 묶어내보지는 못했다. 다만 이번에 진보신당에서 ‘주거 기획단’을 맡으면서 좀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이긴 했고, 며칠 전 마포FM의 <이빨을 드러낸 20대>에 출연하느라 이 책을 집었다.

결과적으로 책을 읽다가 뒤로 넘어갈 뻔 했다. 정말 이 책은 ‘집요하다’. 단순히 ‘토건공화국’이나 ‘부동산 계급사회’라고 이름을 붙임으로 사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효과’들과 ‘원인’들에 대해 명쾌하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 기반에는 수 십 년치의 실증자료들이 깔려있다. 또한 그 자료들을 그냥 통계적인 ‘기술’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고 거기에는 적절한 해석들이 있다. 마지막으로 부정할 수 없는 것은 그 자료들이 단순한 몇 개의 ‘표본’ 집단 조사를 통한 테크닉이 아니라 대체로 다 ‘전수조사’에 입각했다는 것이다.

한국의 부동산은 해방이후 4차례의 폭등국면을 거치면서 지금의 가격구조와 소유구조를 만들었다. 여기에는 자본의 필요, 그리고 국가 산업정책과 소유에 관한 정책들이 맞물려 있다. 기본적으로는 부동산의 ‘거주권’과 ‘소유권’이 경합했을 때 지속적으로 ‘소유권’가 가장 절대적인 권리로 채택되었다는 근본적이 정책 방향 혹은 철학의 문제가 있다. 그런데 ‘자본의 필요’도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자본주의에서 기업이 뭐냐라는 질문과도 연관된다. “투기 무대의 주연은 경제성장의 열매를 독식하고 특혜 대출은 물론 은행까지 지배하며 막강한 자금 동원력을 행사했던 기업, 그중에서도
재벌이었다
“(p.72). “법인이 소유한 전체 토지 중 면적 기준으로 생산 용지로 활용되는 공장 용지는 4%에 불과하다. 64%는
임야, 논밭과 목장 용지가 9%, 대지가 6%에 달했다
“(p.73). 이러한 기업의 토지는 어떤 국가의 사업이 진행될 때의 보상금과, 임대수입으로 전용되는데,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라고 했을 때 그 버틸 종자돈이 된다는 것이다. R&D 투자와 생산을 통한 매출이 아니라, ‘불로소득’이 부의 원천이라는 것은 ‘혁신’을 말하는 기업들의 ‘지지부진함’을 설명하게 한다.

또 자료가 잘 갖춰져 있다는 것은 쓸데없는 ‘억측’이나 ‘회의주의’를 막아주는 장점이 있다는 것인데, 이 책은 그 장점을 십분 잘 살린다. 이를테면 자본주의 경제이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집값의 상승이 필연적이라는 주장 말이다.  “똑같이 산업화를 거친 자본주의 국가이면서도 인구밀도가 우리나라(km2당 483명)보다 13배나 높고,
도시화율 100%로 모든 국민이 도시에 사는 싱가포르나 홍콩에서는 부동산 투기나 소수 부유층에 의한 부동산 독점이 일어나지
않는다
“(p.69). “선진국을 포함해서 땅값이 안정된 대부분의 나라는 땅값 총액이 GDP와 비슷한 수준이다. 세계적으로 땅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일본도 2001년 현재 땅값이 GDP의 2.6배 규모다. 2007년 말 현재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이 901조 원이다. 따라서
2008년 1월 1일 기준으로 정부가 발표한 3,227조로만 계산해도 땅값 총액이 GDP의 3.6배에 달한다
“(p.38).

부동산이 ‘계급’으로 작동함으로써 ‘사회적 효과’들이 산출되는데, ‘아파트 가격과 서울대 입학률’, ‘아파트 가격과 사망률’ 등은 개략적으로 감만 잡고 있었던 것을 명쾌하게 잘 보여준다. 한국에서는 부동산이 곧 계급이다. “아파트 등 집값이 7억 이상인 강남구 · 서초구에서는 고3 졸업생 1,000명당 평균 25명을 서울대에 합격시켰다. 집값이 평균 8억8,000만 원인 강남구는 3년 동안 총 634명을 서울대에 입학시켜 졸업생 1,000명 당 28명이 합격하는 가장 높은 진학률을 보였다. 집 1채당 평균 가격이 7억7,000만 원인 서초구는 312명을 합격시켜 1,000명당 22명꼴로 뒤를 이었다. 집값이 나란히 5억6,000~5억7,000만 원인 송파 · 용산구의 1,000명 당 서울대 합격자 수도 나란히 12.1명과 12.5명으로 평균 12명이었다“(p.163).

한국사회에서 ‘집’이 왜 부담인지도 명쾌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이는 ‘소비자물가’와 ‘실질소득’과 비교해보면 된다. “1963년부터 2007년까지 서울 땅값은 1,176배, 대도시 땅값은 923배가 올랐다.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는 43배가 올랐다.
물가에 비해 서울 땅값은 27배, 대도시 땅값은 22배가 더 오른 것이다. 1965년부터 통계를 낼 수 있는 도시근로자 가구
월평균 실질소득은 1965년 24만 809원에서 2007년 350만7,091원으로 15배 증가했다. 따라서 대도시 땅값은
실질소득의 60배 이상, 서울 땅값은 70배 이상 더 오른 셈이다
“(p.25). 게다가 책을 쓸 때의 기준으로 주택 보급율은 108%인데 왜 100만 명 이상에게는 집이 없는지도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대한민국 최고 집 부자는 혼자서 1,083채를 소유하고 있다. 2위는 819채, 3위는 577채,
4위는 512채, 5위는 476채, 6위는 471채, 7위는 412채, 8위는 405채, 9위는 403채, 10위는 341채를
각각 소유하고 있다
“(p.241). 매달 사글세와 월세를 전전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집 수십채를 거느리거나, 임대 수입을 누리기 위해 다주택을 가지고 있는 이들의 추이가 이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최고 집 부자’는 그러한 경향의 정점을 드러낸다.

다만 책을 읽는 동안 마지막 장의 ‘대안’에 대한 이야기들이 어렵게만, 요원하게만 느껴지긴 했다. 이를테면 ‘택지 국유화’에 대한 계획이다. “1가구당 2주택까지를 제외하고 3주택부터 택지를 국유화한다 하더라도 집 부자들은 저항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집투기를 통해 불로소득을 벌어들이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부당한 저항은 꺾어야 한다. 더 이상 사람이
사는 집이나 땅으로 투기 장난을 치며 떼돈을 버는 일은 후손을 위해서도 중단시켜야 한다. 그렇다고 집 부자들에게 부당한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번 돈으로 만족하고 적절한 시점에 3채 이상의 주택 택지에 대해서는 정부에 팔고 그 돈을 가지고 쓸데
쓰면 되는 것이다. 다만 투기만 하지 말라는 것이다
“(p.300). 어떤 ‘의지’는 발견하는데. 글쎄 이걸 어떻게 실효성 있게 관철할 수 있을까. 조금 더 정교하고 ‘집요한’ 계획은 ‘정책’의 형태로 뭔가 있을 것 같긴 한데.

물론 이 책에 나오는 정책들은 국회에서 ‘진보정당’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진보정당이 집권한다는 것, 혹은 유의미한 대안세력이 된다는 것은 ‘가치’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의 패키지’이기도 하고 손낙구의 이 책은 ‘구체적인 진보’에 대한 퍼즐 중 일부를 보여준 것이라 말할 수도 있다.

좌파는 가치의 전쟁에서도 이겨야 하지만, 정책의 장에서도 끊임없는 긴장있는 전투를 해야한다. 그리고 그 ‘총알’들이 중요해지는데, 이제서야 읽지만, 손낙구의 자료를 보면서 생각해 볼 지점들을 만난다.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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