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녀(2010)

하녀6점
임상수

하녀
감독 임상수 (2010 / 한국)
출연 전도연, 이정재, 윤여정, 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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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의 <하녀>를 보지는 못했다. 이야기만 줄기차게 들었을 뿐이다. 아무런 배경도 없이 전도연과 서우가 나온다는 사실, 윤여정이 훌륭한 여기를 보여주었다는 이야기를 가지고 영화관으로 갔다. </p>

‘유아교육과 출신’의 ‘착한’ 이혼녀 은이(전도연). 그녀의 이혼 사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은이를 채용하는 병식(윤여정). 병식의 아들은 ‘검사’란다. 은이가 도달한 집은 부부와 남이(안서현)의 집. 친절하기 그지없이 쌍둥이를 가진 남이 엄마 해라(서우)를 만난다.

<하녀>에 나오는 해라의 식구들은 굉장히 전형적인 부르주아 계급의 인상들을 풍기는 것 같다. 훈(이정재)은 뭐든 완벽하게 수행하려 하고, 그것에 흠집내려 하지 않으며, 전능한 가부장이다. 또 다른 한 편으로 장난기가 스며들어있는 데 이는 부르주아 남성의 도회적인 매력을 드러낸다. 이를테면 은이가 와인을 가져와서 해라와 훈에게 병을 따려할 때 구태여 빼앗아서 섬세한 손길로 병을 따려할 때 훈의 모습과, 피아노를 치는 훈의 모습과, 오럴 섹스를 강요하고 난 이후 느낄 때의 팔의 움직임. 날 것 그대로의 훈 자신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것은 위기의 국면에서 튀어나올 따름이다. 해라의 침착함과 친절함도 그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p>

드러나는 이러한 친절함과 전능해보이는 가부장성 등등의 가치들은 저항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 아니 밑바닥에 깔려있는 무의식은 권력관계를 매개로 하여 폭력으로 드러난다. 너무나 순수하기에 은이는 그것을 적나라하게, 투명하게 드러내준다. 은이가 자신에 대해 알 지 못할 때 은이에 대한 모든 일정은 결정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흘러가는 방식으로는 저항할 수도 없다. 해라 가족에게 덤빌 수 있는 아무런 ‘바깥’이 없을 것만 같다.

그렇지만 이러한 폭력은 순전히 해라 가족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그 가족의 ‘전능함’을 실현시켜주는 ‘집사’ 병식이 있기 때문이다. 병식의 파업은 가족을 마비시킨다. 사실 다시 생각해보면 해라 가족, 즉 부르주아 가족으로서의 강고함은 애당초 취약한 것이었다. 해라와 훈이 서로에게 “개새끼”와 “개 같은 년”을 외치는 순간, 그것은 어떤 위기 상황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잠시나마 튀어나오는 ‘현실계’를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다. ‘주이상스'(?) 사실 부부의 ‘사랑’의 매개없는 부부관계는 해라의 엄마를 통해 이미 여러 차례 드러나고 이는 ‘부르주아 가계의 재생산’이라는 과업과 맞물려 있다. 남편의 바람피는 것을 끝끝내 참아냄으로써 나이가 먹었을 때 모든 것을 다 누릴 수 있었다는 해라 엄마의 해라에 대한 설득은 이를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영화 안에서 은이와 해라의 딸 남이를 제외한 모두는 속물이다. 그럴듯한 제스처와 표현을 통해서 가리고 있지만. 그들은 속물들의 메커니즘으로 등장하는 위기들에 대응해왔고, 대체로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해라 가족은 그 문제들이 사실은 표출되고 있는 어떤 ‘외부인’ 때문 만이 아님도 알고 있다. 이를테면 해라의 엄마는 은이와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해 “나미 엄마 생각은 나미 아빠가 해야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문제의 해결은 은이의 ‘몸’을 통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하녀’ 은이의 순수함이 파멸을 향해 치달을 때, 아슬아슬하게 유지되어돈 해라 가족은 붕괴할 수밖에 없다. 물론 그 붕괴는 ‘영원한 붕괴’는 아니다. 또 다른 방식으로 재구축될 것이다. 다만 그 붕괴의 순간의 무기력했던 상흔이 그들에게 또 다른 방식의 공포와 더 ‘더러운 방식’의 방어체제를 구축하게 강제할 것이다. 이는 마치 노동자들의 몸을 던지는 불사름으로 만들어진 87년 체제를, 개별화된 관계로 바꿔버린 신자유주의의 양상에 비견될 것만 같다. 하지만 그렇다하여 그 ‘불사름’이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그 ‘불사름’의 기억들은 소멸되지 않고 계속, 잠복해 있다가 전환의 국면 혹은 위기의 순간에 튀어나온다. 어쩌면 영화는 ‘순수함’이 무기가 될 수도, 다시 더 끔찍함을 만든다는 ‘트로이의 목마’가 될 수도 있다는 ‘회의주의’를 보여주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끝 없는 씨니시즘.


어쨌거나 전도현의 몸과, 유혹의 제스처의 스타일을 보면서. 유혹의 선이 하나일 때의 매력도 또 발견하게 되는 것 같다. 뭔가 신비로운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발광하고 있는 상태의 매력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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