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해도 바뀌지 않는 인생들의 이야기

4천원 인생10점
안수찬 외 지음/한겨레출판

 2010/05/28 – [생각하기/요즘 일어난 일들] – [미디어스] 당신이 욕망하는 정치와 노회찬
2010/05/24 – [생각하기/논의들] – [레디앙] 우파 찍은 동네 아줌마들의 욕망을 아나?
2010/05/22 – [보고 듣고 읽고 그리고 느끼다/사회과학] – 손낙구의 집요함이 만들어낸 통찰, 여기는 부동산 계급사회!
2010/05/13 – [일기장/하루 하루의 기록] – 연세대 미화노동자 아줌마와의 짧은 대화
2010/05/14 – [보고 듣고 읽고 그리고 느끼다/에세이] – 착한 급진주의자의 분노를 넘어서야 하지 않을까
2010/05/09 – [생각하기/논의들] – 노회찬의 선거 개소식 연설

1970~80년대. 대학생들이 공장으로 위장 취업을 하려고 폭풍처럼 밀려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들이 ‘만난’ 노동 계급은 그들이 책에서 ‘읽은’ 노동
계급과 어떻게 마주칠 수 있었을까.  여러가지 이론들은 이미 우리에게 신자유주의적인 질서가 팽배해버린 한국사회의 노동이 얼마나
끔찍한지에 대해서, 심지어 그것을 빠져나올 줁비에 대한 여러가지 말들을 흩뿌려 놓곤 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론들의 정합성을
떠나 거기에는 지금 이 현장을 겪고있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부재했다. ‘신자유주의’라는 말을 쓰는 것이 촌스러워지는 시점에,
신자유주의는 가장 고점에서 광풍으로 사람들의 몸을 바꿔버리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2008년 경제위기가 ‘신자유주의의 종언’을
이론의 장에서 점차 외치게 만들고 있지만, 몸으로 신자유주의적 질서를 겪는 사람들에게는 더 잔인한 세계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누군가에게 충격이 될 것 같다.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울면서 읽었다”라고 말하는 걸 보니 말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알 수 있지만, 그냥 지나다보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여기에 있다. 그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하여 그들이 소수인 것은 아니다. 비정규직의 숫자가 절 반을 훨씬 넘어버리고, 모든 노동이 불안정해버린 지금, 이들은 사실 우리의 절대다수의 이야기다. <4천원 인생>은 그 ‘잔인한 세계’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단순히 그들을 취재하려고 마이크를
들이대거나 펜과 종이를 들고 취조하듯 묻는 게 아니라, 함께 일을 경험하면서 관찰하면서 느낀바를 함께 전한다. 그들이 영원히
바뀌지는 않았으되 그 순간에 자신이 비정규직 노동자가 된 순간, 그들의 목소리는 힘을 가진다.

가난의 원인이 아직도 열심히 일하지 않아서라거나, 혹은 눈높이를 낮추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들은 여전히 힘을 발휘한다. 그 ‘가난’을 면하기 위해서는 계속 자기 자신을 혁신해야 한다고 누차 강조한다. 그리고 책에 나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슬프게 가슴을 후벼파는 것은 그것들을 본인들이 인정한다는 것이다. 책에 나오는 시급 4천 원짜리 인생들은 세상이 공평하다고 말한다. ““세상은 공평한 것 같아요. 학교 다닐 때 저는
공부를 안 했으니까.” 철수는 두 번 대학을 들어갔다. 충청권의 지방대학에 입학했으나 금세 그만뒀다. 군대를 다녀와 A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다시 수도권의 2년제 대학에 들어갔다. 네 번에 걸쳐 350만 원씩, 모두 1400만 원의 등록금을 모두 제가
번 돈으로 냈다. 수업은 저녁 시 이후에 있었다. 2년 동안 그는 잠을 서너 시간만 잤다.
“(pp.99-100).

공평하지 않다고 받아들인 이들도 그것들의 해결을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우는 ‘분배’나 ‘정치’ 혹은 ‘노동조합’을 통해서 할 수 있다고 상상조차 하지 않는다. 마트의 노동자들은 답답한 상황에서 ‘강남’사람을 예찬한다. 누구 말마따나 그 사회의 이데올로기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다. “그는 좋은 편이 누군지 안다고 말했다. “강남 사람들은 품질이 좋으면 값 따지지 않고 무조건 사간단 말이야.” 그는 A마트의 강남
지점에서 일한 적이 있다. “강북 것들은 무조건 깎아달라 덤으로 달라 그런다고. 강남 사람들은 쇼핑하는 태도부터 달라. 눈이
반짝반짝해. 사람들한테서 빛이 난다고, 빛.”
“(p.94) 정치에 대한 혐오를 보라. “정치가 보호막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그들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언제 무슨 선거가 있든지 무슨
상관이에요. 어차피 일하느라 투표도 못한단 말이에요.” 지방 선거 이야기를 꺼냈더니 영희가 잘라 말했다. (……) 당장의
월급을 주는 사장에게 그들은 더 강하게 끌렸다. 정부, 정당, 언론, 노조가 힘이 되어준 기억이 그들에겐 없었다. 차라리 장차
뒤를 봐줄지도 모를 대학원 졸업생과 친해지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p.133).

책을 읽으면서 첫 장이 가장 가슴을 후벼팠는데, 그것은 자궁에 물혹이 생겼으나 일을 그만두지도 못하고, 하루 종일 묶여서 일을 하는 감자탕 집의 아줌마 때문이었다. 관리인이 찾아왔을 때 행정처리를 해야했을 때 집에 있는 남편이 보여주는 태도가 모든 것을 말하고 있는 듯 했다. “한걸음에 달려가서 받고 싶었다. 하지만 주방 언니는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감자탕집에 묶여 있는
몸이다. 그는 남편에게 전화해 근로장려금에 대해 알아보라고 했다. “난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으니까 니가 알아서 해.” 전화를
통해 흘러나오는 남편의 말에 언니는 폭발했다. (……) 집에 김치도 떨어지고 이튿날 싸울 애들 도시락 반찬도 없다.
식당에서 일하는 언니는 걱정이 산더미다. 의자 제작 공장을 하다가 5년 전 부도를 맞은 남편은 지금껏 일용직을 전전한다. 일을
못하는 날이 더 많다. 그래도 그는 여전히 김치를 담그지 못한다. 아이들 도시락 반찬을 만들지는 못한다. 하지만 남편을 욕해도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p.73). 겹겹이 꼼짝도 못하는 감자탕 집 아줌마의 파멸을 읽고 있는 내 손이 떨렸다. 사실 욕할 수도 없었다. 여기 내 친구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매일 공장을 다니면서 학교 마쳐서 집에 와 밥을 먹을 아이들의 저녁을 챙기는 내 엄마의 이야기가 여기에 있었다. 아파트에 살고, 부모의 용돈으로 스펙을 쌓고, 커피 전문점에서 4~5천 원짜리 커피를 마시면서 ‘믿을 구석’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모두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말도 이미 끝났다는 것을 이 책은 명확하게 보여준다. 이제 교육은 ‘계급 상승’의 통로가 아니다. 중산층 이상의 계급 재생산 통로일 따름이다. “자녀를 공부시켜 가난을 벗는 시절이 있었다. 그 모형은 어느덧 과거형이다. 지낸해 전국 초 · 중 · 고
학생의 75.1%가 사교육을 받았다. 이들의 월평균 사교육비는 31만 원이다. 성적이 상위 10%인 학생의 사교육 참여율은
87.7%에 육박한다. 하위 20%는 절반이 사교육을 못 받았다. 갈수록 계층 간의 벽이 견고해진다. 식당 아줌마의 아들딸들이
다시 식당일을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자녀가 다시 비정규 노동의 수렁에 빠진다
“(p.58). 고등학교를 졸업한 봉제공장 노동자의 자식들이었던 내 친구들의 이야기가 계속 떠오른다. 그들에게 ‘회복’은 불가능한 것일까.

사실 이 책은 더 이상 충격적이지 않다. 책에 나오는 한 문장의 결에 상처받는 심약한 인텔리들을 제외하면 이건 너무나 평범한 이야기다. 다만 그 ‘평범한’ 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그러한 일상의 이야기 곁에 ‘출세한’ 엄친아들의(사돈의 팔촌과 동창 전체를 동원해서라도) 이야기들을 여전히 활용하고 있고 그 ‘희망 고문’이 여전히 버티고 있는 게 지금의 대한민국의 상황으로 보인다. 이러한 체제가 계속될 수 있을까? 언제까지 갈 수 있을까. 지금 고민해야 할 지점들은 이 보이지 않게 무너져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가지고 뭔가를 하는 것일텐데, 여전히 세상의 모든 구도가 두 개의 전선으로만 보이는 이들은 이 문제를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정치를 떠올릴 수 없는 사람들의 표면적인 정치에 대한 불신을 단순히 ‘개새끼 국민’의 행태로 하는 시도는 여전히 변하지 않아보인다. 그러는 동안 말할 수 없고, 말하지 않는 사람들은 점차 더욱 무너져내리고 있다.

어느 지점에서든 그들이 ‘몫’을 주장해야 될 것 같은데, 그 지점은 어떻게 가능할까. 하여간 확실한 건 여전히 세상 근심 다 지는 듯하게 말하는 부류의 먹물들은 영원히 모를 것이라는 거다. 지금 4천원을 받는 인생은 아무런 변화없이는 계속 더 먹물들이 바라는 정치적인 각성을 하기는 커녕, 계속 정치를 쌩까서 보복하고 투표에서 연예인이나 찍음으로 보복할 것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일해도 바뀌지 않는 인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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