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문화연구. 글쓰기.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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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했다. 학기 중에 별로 바쁘지 않았으니, 방학의 한량함도 그리 크게 느껴질 지는 잘 모르겠다. 아니 한량하지 않게 만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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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학기(2010/03/02 – [일기장/하루 하루의 기록] – 2010. 3. 2)에 들었던 과목은 <문화연구입문>, <여성과 노동="">, <문화와 경제 – 문화연구워크샵>, <질적연구방법론></span>이었다.(질적연구방법론은 철회했다) 애당초 서동진 선생의 <문화경제학>을 들으러 중앙대로 다녔으며, 사이프로그램을 진행하고, 4과목 ‘수강’하는 것에 치여서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다가 가지 않기 시작했다. 근데 문제는 하나를 놓으니까, 다음에 별로 힘들지 않은 것도 놓아버리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상길 선생의 <질적연구방법론>도 철회해 버렸다.

사실 수업이 팍팍했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수업은 자리가 잡히자 널널해지기 시작했고, 학기초에는 조교였으나 <국가연구장학생>에 선정되어 열외되자 남는 게 시간일 정도였다. 공부하지 않는 나를 발견할 따름이었다. 공부하지 않는 나보다는, 외려 갈피를 못 잡고 부유하는 지식 소매상의 모습이랄까.

수업은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한국에서의 좌파 인텔리들이 어떤 생각의 지도를 짜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먼저 이택광 선생의 수업은 ‘문화연구’의 입문이라고 하기보다는 ‘문화이론’과 연동되어있는 현대정치철학의 주요논의를 정리하는 것이었다. 헤겔, 맑스, 루카치, 아도르노, 알튀쎄, 바르트, 라깡, 홀, 푸코, 데리다, 랑시에르, 바디우, 지젝 정도를 읽었으니 지도는 거의 다 한 번 열어젖힌 셈이다. 수업은 이론가의 텍스트 하나를 읽고 그것을 발제하는 식으로 진행되었고, 막바지에는 ‘실제 비평’으로 영화나 미드 등을 가지고 각자 써온 글들로 합평회를 진행했다. 처음에는 서로 말문이 트이지 않았으나, 좀 지나 ‘이택광식 이론 가이드’에 익숙해졌을 때 수업의 우리는 매번 자유롭게 수다를 떨거나 혹은 연찬을 할 수 있었다. 알튀쎄의 ‘개념의 당’이 우리 안에 도래했다(?). 다만 탈식민주의적 문제의식을 던지는 이론가들, 예컨대 스피박, 호미 바바 등의 이론이 궁금했으나 그 이론들은 삭제되고, ‘남성’, ‘좌파’, ‘맑스주의 전통’ 하에 있는 이론가들만 읽었던 것은 어느 정도의 한계로 느껴졌다. 매번 이택광 선생은 ‘탈식민주의적 포지션’이 아니라 ‘이론’이라면 같은 지평에서 싸워야 한다고 말했으나 다루지 않은 것은 어쨌거나 다루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인류학적 전통’ 이를테면 CCCS의 폴 윌리스 등부터 시작되어 오래동안 축적되어온 ‘현장 연구’의 전통이 분명 문화연구 안에는 있는데 그것들을 다룰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비평’으로만 빨려들어간 것은 못내 아쉽다. 물론 모든 것을 한 선생에게 바랄 수는 없다. 그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했을 따름이다.

두 번째, 김현미 선생의 <여성과 노동=""> 수업시간은 상식을 깼다. 수업을 들으러 온 사람들 중에 이화여대 대학원 여성학과 사람들이 많았다는 이야기는, ‘젠더’ 관점에서의 ‘노동’을 바라보려는 기대가 많았다는 이야기인데, 김현미 선생은 상식을 깼다. 첫 수업에서 했던 말을 잊을 수 없다.  “똑 같은 전제로 시작해서 똑 같은 결론을 내는 작업은 하지 않을 겁니다.” 전통적인 ‘여성 노동’ 분과의 지식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와 연동되어 노동의 체계가 어떻게 재편되는지를 살펴보았던 것은 굉장히 많은 통찰 혜안을 주었다. 그리고 엥겔스의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2010/03/06 – [헨드릭스의 책읽기] – 엥겔스의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과 여성)이나 조안 스콧의 <여성, 노동, 가족> 등을 읽으면서 ‘구체적 자료’의 힘을 다시금 깨달았다. 물론 엥겔스의 연구에는 많은 문화기술지적 오류’ethnographic error’가 있는데 그 부분도 짚어내면서 갔기 때문에 더 좋았다. 세넷을 읽고, 지금의 신자유주의적 노동 ‘통치성’의 측면에서 몸과 섹슈얼리티가 어떻게 거래되는지를 보여주었던 라는 책은 기회가 될 때마다 다시 볼 만하다. 수업 막바지에 홀거 하이데의 <노동 사회에서="" 벗어나기="">를 읽었던 것 등은 결국 수업의 지향과 내가 어떻게 함께 놓일 수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김현미 선생의 수업이 왜 연세대에서 가장 중요한 수업 중의 하나인지를 깨닫는 순간이다. 그리고 수업에서 진행했던 연구 – 필리핀 이주여성들의 영어교사로서의 노동 경험 -를 진행하면서 지금까지 이주여성들에 대해 가졌던 편견들을 확인하고 되돌아 보는 기회가 되었다. 문화연구자가, 인류학자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 지를 확인해주는 정말 알찬 수업이었다.

마지막으로 조한의 <문화와 경제="">. 이 수업은 <근대의 장례식="">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었고(2010/03/20 – [생각하기/가져온 글들] – 근대의 장례식을 누가 치를 것인가?), 진행 방식은 콜로키움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엄기호, 한재각, 김순천, 김영옥, 김현경, 백영경, 김애령, 홍기빈, 하승우, 고병권, 전효관/강원재가 각자 한 강(1시간)을 진행하고 한 시간을 질의 응답으로 진행했다. 나머지 한 시간은 콜로키움 이전에 수업을 듣는 수강생들의 토론으로 진행되었는데, 각자의 지적인 맥락이 다르기 때문에 논쟁이 될 법 했으나, 그러한 ‘차이’는 서로를 좀 침묵하게 만든 감이 있다. 마지막 순간에 수업을 마치면서 든 생각은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였다. 언제까지 온실에서 살 수 있을 것일까. 나름의 현장을 가지고 활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은, ‘이론가’들의 수업보다 종종 더 큰 ‘울림’을 주곤했는데 이를테면 내게는 김순천이나 고병권의 강의가 그랬다. 이론가이면서 현장에서 움직이고, 몸으로 느끼는 지식과 ‘담론의 질서’를 잘 연동시키는 것이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지식인이 아닐까, 혹은 근대를 장례치러낼 ‘주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수업은 끝끝내 ‘주체’의 문제를 짚어내고 있었다는 걸 수업이 끝나고야 알아버렸다. 나도 참..

나는 이 수업에서도 엄청나게 헤맸는데, 거기에는 ‘악다구니’와 ‘지도 없음’이 존재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이제 여정은 끝났고 나는 다 걸러져 남은 알갱이를 쥐고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방학의 목표가 아닐까.

좀 계보를 짜서 책을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늘!) 한다. 내일은 방학의 일정을 좀 짜고, 밀려있는 다이어리 정리(사실 내 역사의 정리 -_-;)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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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서평 블로거’로서의 내가 있기 때문에 나는 ‘입력input’이 많지 않으면 많이 ‘출력output’하지 못한다. 사실 어떤 사람들에 비해서 내가 ‘공정process’의 기간이 짧은 편이긴 한데. 글이 잘 안 써지곤 했다는 것은 내가 별로 안 읽거나 많이 경험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들게한다. 선거와 관련하여 진보신당일을 잠깐 하고 선거와 관련된 글들을 좀 써보기도 했는데. 지금 20대 논객들이 펼쳐내는 프레임을 가지고 나까지 구태여 할 필요가 있나 싶다는 생각을 한다.

차라리 레디앙에 쓰는 <진보, 야> 칼럼이 훨씬 내게는 ‘해방적’이었다(2010/04/12 – [생각하기/가져온 글들] – [레디앙] 양아치와 진보정당

2010/05/04 – [생각하기/정치사회비평] – [레디앙]빨갱이 서울을 꿈꾸면 안 될까?

2010/05/24 – [생각하기/가져온 글들] – [레디앙] 우파 찍은 동네 아줌마들의 욕망을 아나?

2010/06/21 – [생각하기/정치사회비평] – [레디앙] 필리핀 아줌마, 왜 한나라당 찍었나?)

레디앙 칼럼은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3주에 한 번씩 끊지 않고 쓸 계획인데, 이 글들을 통해서 진보담론의 구속복 바깥의 이야기들을 최대한 많이 펼쳐볼 생각이다. 물론 내가 여전히 많은 구속복에 갖혀있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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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책 읽기.

지금 끌리는 것은 푸코의 전집을 다 읽거나, 맑스-엥겔스의 전집을 다 읽는 것인데. 어떤 것이 더 좋은 독서일까. 그리고 학부의 계절학기로 열리는 미적분 수업을 들을 계획인데. 확실히 나는 싸이언스라는 무기가 정치철학보다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그런 측면에서 차라리 생물학사나 물리학사를 공부해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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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아.. 써야지.. 이놈의 자료..

다시 이 섹시한 남자가 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