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드릭스의 책 읽기 #1] 신자유주의 노동체제, 그리고 미라이 공업 上

MBC 스페셜에서 미라이 공업을 취재한 이후 한 동안 야마다식 ‘유토피아 경영’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왔던 것 같다. 이제 좀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생각해봐야 할 부분들이 있다. TV 프로그램으로 보고 한 동안 잊고 살았다가, 방학도 된 겸 머리를 식히는 차원에서 ‘활자가 촘촘하지 않은 책’을 읽자고 생각해서 예전에 사두었던 이 책을 잡았다. 선풍기로 이름을 날려 승진을 결정하고, 선착순으로 신입사원을 채용하고, 연공서열로 임금을 지급하고, 70세까지 끄떡없으며, 1년에 1600시간만 일하고, 휴가를 1년에 140일 주면서도 흑자를 계속 유지하는 기업. 미라이 공업. 야마다 사장의 글을 통해 읽게되는 미라이 공업의 ‘진실’이랄 것이 있을까?

# 예비작업 – 비교 우위와 경쟁 우위

경제학사를 조금 읽어본 사람이 있겠지만, 고전학파 이래 자유주의 경제학을 공부하는 지식인들이 하는 자유무역의 근거는 ‘비교우위’였다. 이를테면 보르도에서는 양모를 생산하는 것보다 포도주를 생산하는 것이 유리하고, 마찬가지로 랭카스터에서는 포도주를 생산하는 것보다 양모를 생산하는 것이 유리하다. 따라서 보르도에서는 포도주를 생산했고, 랭카스터에서는 양모를 생산했다. 모두다 자기가 잘 하는 것을 하면 행복하고 이익도 많이 얻게 된다. 이러한 주장은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전환되어(사실 담론/이데올로기적 짝 없이 정치와 경제가 작동할리 없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끼리 문호를 개방하고 무역을 시작하면 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진행되었다. 물론 이 말은 순전히 ‘거짓말’로 증명이 되었다. 그 예를 드는 것은 별 의미가 없으리라. 대처는 왜(!) ‘자유민주주의 국가’ 아르헨티나와 전쟁했나? 로 끝나는 것 같다.

다만 경제학에서의 ‘비교우위’는 다음 이야기를 위해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고전학파들은 생산의 주요 요소로 자본, 노동, 토지(부동산)을 설정했다. 어쨌거나 여기서 우리는 변하지 않는 것들을 발견한다. 자본과 노동과 토지는 그 ‘양’에만 상관을 받을 뿐, 대체로 정해져 있었다. 노동은 ‘단위 시간’만 남고, 자본은 더 말할 것도 없고, 토지야 움직이지 않는 것 아닌가. 따라서 몇 시간을 노동자들을 통해 부려먹을지만 결정하면 되었다. 물론 맑스는 같은 노동 시간을 일한다고 해서 똑같은 노동량이 아님을 알았다. 그리고 이렇게 생산된 물건은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가격메커니즘에 의해서 적당한 균형을 맞춘다는 것이 고전파 경제학의 공리였다. 거기다가 세이가 발견한 ‘세이의 법칙’은 공급이 가격을 결정한다는 엄청난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냥 만들면 알아서 산다. 또 다른 한 편, 비교우위론까지 얹으면 서로 각자가 잘 하는 것을 만드니 ‘조화’는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걍 두면 될 것 같은 자본주의가 계속 삐그덕 되게 된 것이다. 공황이란 왠 말인가? 맑스주의를 위시한 사회민주주의자들과 케인즈주의자들의 대응은 일단 넘어가고, 여기에 대해서 신고전학파(신자유주의자들)이 대답한 바를 떠올려 볼 수 있다.

바로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라는 말이 그것이다. 자본주의의 공황 메커니즘이라는 것이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에 의해 ‘필연적’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는 받아들이면서도 슘페터는 그것이 기업가의 ‘창조적 파괴’라는 ‘혁신’을 통해서 다시 바뀔 수 있음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거기에 이어서 노동이라는 것이 단순히 단위 시간이 아니라 ‘희소한 자원을 획득하기 위한 선택’이라는 미시적인 합리적 선택 이론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한계 혁명’이 일어나면서 효용에 대한 계산이 등장한다. 또한 게리 베커는 범죄 같은 것들도 비용 대비 편익으로 계산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노벨 경제학상을 받는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푸코의 를 읽어보면 된다.) </p>

이제 더 이상 걍 두면 경제가 굴러가는 것이 아니라 ‘혁신’하는 자기-경영의 주체의 필요성이 요청된 것이다. 이 상황에서 등장한 말이 바로 마이클 포터의 ‘경쟁 우위’ 개념이다. 이제는 단순하게 규모의 경제로 결정나는 것이 아니라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처럼 ‘혁신’을 통해서 새로운 뭔가를 갖고 등장하는 이들이 ‘살아남는다’. 경쟁을 통해서 우위를 창출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시대가 신자유주의 시대이다. 단순히 경영인의 마인드 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 모두 자기-계발/자기-경영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경쟁우위를 획득해야 한다.

# 미라이 공업의 우위

미라이 공업에 대해서 한국의 경제지들을 포함한 미디어는 그 ‘유토피아 경영’의 결과들만 읽어내는 것 같다. 물론 그러한 지점이 있다. 하지만 무엇으로 미라이 공업이 ‘경쟁’에서 승리했는지에 대해서 세심히 살펴봤는지는 잘 모르겠다. 야마다 사장의 이야기 역시 세심하게 경영-기술에 대해 논하기 보다는 어느 정도는 ‘경영자의 긍정의 에너지’ 식으로 이야기하는 감은 있지만 그래도 몇 가지는 짚어내고 있고 이는 좀 살펴볼 지점이다.

먼저 신기술이다. 물론 다 아는 이야기다. 하지만 아이디어 하나 당 5천 원씩을 지불할 정도로 신기술에 집착했던 것은 간과할 수 없다. “실용신안과 의장 등 현재 미라이 공업이 가지고 있는 공업소 유권 수는 신청 중인 것까지 포함해서 총
2,300건이 넘는다. 그리고 그 중 90% 이상은 시미즈 쇼하치가 직접 개발한 것이다
“(p.120). 더 중요했던 것은 그것들을 ‘표준화’시켜서 인증을 받아냈다는 것이다. “모든 제품의 규격화가 마무리될 무렵, 나의 예상은 현실이 되었다. JIS 규격 제품이라면
공공사업에 사용되는 것이라해도 회사 이름에 상관없이 사용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당시에는 JIS 규격 제품을 만들고
있던 지방의 생산회사가 미라이 공업뿐이었다
“(p.192). 그리고 이 지점에서 누가 이 것을 할 수 있고 없고의 문제보다 더 중요한 ‘제도’와 국가적 맥락을 따질 수밖에 없는데. 굉장히 많은 한국의 중소기업들이 ‘벤처’ 정신으로 ‘신기술’과 ‘표준화’에 매달린다. 그것들이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를 잘 알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중소 벤처기업 A가 특허나 실용신안 등을 등록하려고 한다면? 곧 털리고 하청으로 전락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여전히 한국에서 신기술에 대한 ‘산업 스파이질’에 대한 규제는 굉장히 취약하다. 그에 대한 판결은 늘 솜방망이에 그친다. 다른 제도로 돌아가서 미국만 해도 ‘반독점’에 대한 제도적 집행은 엄격하다.

두 번째는 롱테일 경제학이다. “필요 없을지도 모르지만 필요할지도 모른다면 그럴 때는 언젠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긍정적인 사고다.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고 고민만 하는 것은 부정적인 사고에 불과하다
“(p.167). 반드시 가장 잘 팔리는 상품만 내놓는 것이 아니라, 그의 계열로 구비해놓는 라인업. 1만 원짜리 나이프가 더 ‘경제적’이지만 2만 원짜리 나이프도 만들어 놓는다. “덴코마크 판매량의 90% 이상은 신기하게도 2만 원짜리다. 역시 프로들도 ‘이왕이면 기능적인 쪽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렇게 잘 팔리기 위해서는 선택사항을 만들어 두는 것도 중요하다
“(p.148). 하지만 이 역시 초기 전략으로 가능했을지에 대해서는 미심적은 부분이 있긴 하다. 공장을 확장하고 몇 만 평의 부지를 확보했을 때에도 재고 때문에 새로운 재고관리 시스템(SCM)을 동원해야 했던 점을 감안한다면 이 부분은 야마다의 사후해석 같아 보인다.

세 번째는 유연한 위계이다. 이는 사실 ‘팀 시스템’으로 이야기되는 신자유주의적 노동 체제와 맞물리는 주장이기도 하다. 물론 이는 기업 내에서 ‘고용 안정’이 보장되고 연공서열이 되며, ‘성과급’이 없다는 점에서 굉장한 차이가 있다. 그러한 주장은 다음과 같은 문장에 핵심적으로 모여 있다. “나는 영업에서만큼은 프로지만, 그 외 분야에서는 아마추어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술’적인 일은 기본적으로 각 부서 사원에게
맡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p.39). 신규 휴대폰의 성능을 확인하기 위해 집어던져 보시는 대기업의 총수와는 전혀 다른 지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야마다 공업의 새로운 공장 부지는 직원들이 직접 결정해서 사장에게 통보만 하고, 도장을 직접들고가서 담당자가 곧 바로 결재해버릴 수 있다. 사실 이러한 주장은 신자유주의적인 노동 경영 담론에서 이미 많이 주장되었다바다. 하지만 목을 칠 작두가 있냐 없냐에서 굉장히 다른 주장이 된다. 팀제 노동을 말할 때 매 프로젝트에서 ‘성과’의 표준화된 평가들은 팀의 일원들을 평가하고 그들의 고용을 결정한다. 리처드 세넷이 주장하듯이 이러한 상황에서 팀원들이 어떤 ‘메리트’를 잘 느끼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잘 눈치 살살 보고 과격하지 않은 주장을 하면서 자신의 위치를 잘 유지하는 것이 개인의 최적전략이 된다. 도전을 해도 잘리지 않고 월급에 큰 문제가 없다고 하기 때문에 미라이 공업에서는 ‘혁신’이 가능한 것이다.

(이어서)

2010/06/27 – [헨드릭스의 책읽기] – 신자유주의 노동체제, 그리고 미라이 공업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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