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드릭스의 책읽기 #6] 자주적 청년의 군대 생활에 대한 문건?

반갑다, 군대야!4점
김삼석 지음/살림터

2001년부터 2002년까지 나는 자주파-민족해방파NL 학생회에 있었다. 그리고 그런 성향을 갖는 노래패에서 활동을 했다. 매번 내가 부딪히는 곤란함이란 이들이 과연 ‘진보’ 혹은 ‘좌파’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미국’과 관련되거나 ‘한나라당’, ‘조선일보’와 관련된 이슈에서 그들은 늘 반대편에 섰기 때문에 보여지는 면으로 그들은 ‘진보’적이었지만 다른 측면에서 그들은 도대체 진보적이지 않았다. 여전히 섹슈얼리티에 대한 순박한 이해가 있었고, 종종 농활의 현장에서 성희롱은 은연중에 벌어지곤 했다. 그중 ‘품성’을 잘 갖추었다고 평가되는 사람들은 ‘절제의 미학’을 통해서 사건들을 중재하고 해결했지만 그들도 선후배간의 위계에 대해서는 여전히 그냥 그랬다.

뭐 다른 면들을 가지고도 이야기해볼 수는 있는데, 내게 또 하나 의문은 ‘병역거부’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였다. “군대를 갔다와야 사람된다”라고 말하는 습관은 그대로 관철되었고, 개중 조금 더 진보적인 사람들은 ‘미제 군대’에 갈 수 없다고 말하곤 했다. 또 다른 사람들은 군대를 다녀와야 ‘일머리가’ 는다며 예찬하기도 했다. 군대를 갈 때는 어느 집단에서나 그렇듯 ‘서글픔’과 ‘억울함’, 그리고 여타의 감정들이 교차하곤 했는데. 그러면서도 ‘이념적’으로 우파가 될 까봐 걱정하곤 했고 그러면서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선배들이 들려주곤 했다.

김삼석의 책은 딱 그 선배가 들려주었을 법한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먼저 한국 군대가 얼마나 ‘자주적’이지 못하고 미제의 속박에서 자유롭지 않은지를 이야기한다.

훈련병들은 최초 2~3일 간 급격히 변화된 생활로 인해 불안해하고 허둥지둥하다가도 이내 생활에 적응한다.
놀라울 정도로 빨리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그들 스스로의 결의와 행동을 통해 개척해 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군을
지배하는 외세의 요구대로 자기의 모습을 외형적으로 바꿔가는 과정이다
“(p.33).

한 편, 그래도 잘 살아남아야 한다며 ‘자기계발’ 혹은 ‘생존’의 전략을 술회하고 있다.

예컨대 “입대를 앞둔 젊은이들은 이제 자신의 군생활에 대한 설계를 새롭게 짜보아야 한다. 애국하는 군인, 즉
군대를 바로 세우려는 군인이 되기 위한 준비를 말이다. 그럼 지금부터 우리 군대가 얼마나 잘못 기울어져 있는지, 어디를 어떻게
심하게 다쳐서 쓰러져 있는지 의사의 눈으로 봐 보자. 입영해서부터 병영생활을 차분히 살펴보자. 우리 군대의 아픈 모습을 올바로 볼
때, 왜 우리 군대가 바로서야 하는가를 이해할 수 있다
“(p.16). “외적의 침입을 막고 민족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할 순간이 올 수도 있음을 생각할 때 유비무환의
의미가 있다. 일정한 위치가 되면 자신의 노력에 따라 중대 무기체계 전체를 몸에 익힐 수 있으므로 성실한 자세만 있다면 군대교육을
재미있게 활용할 수 있다. (……) 수리분야 등의 몇몇을 제외하고는 사실 고도의 기술을 사병에게 가르쳐 주려고 하지도
않지만, 업무 전반을 익힌 사병은 간부와의 관계가 부드러울 수밖에. N세대 사병들은 해당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p.76).

이러한 측면에서 김삼석이 주조하고 싶은 ‘N세대 사병’으로서의 인간은 어떤 모습일까? 먼저 ‘연애’라는 눈으로 보자.  “생활에 충실한 군인, 주인다운 자세를 견지하는 군인, 그리고 사랑과 신뢰, 자신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한
여러 형식을 찾는 데 게으르지 않은 군인은 성공적인 연애를 지속할 자격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p.109). 또 이런 모습은 계급별 인간형에 대한 묘사로도 등장한다. “자기 계급이 이등병이라 하더라도 언제나 조국에 대한 불타는 사랑과 사람에 대한 애틋한 정을 가슴에 안고
있는 사람, 그는 중대장, 대대장, 아니 장군 앞에서도 내면적으로 더 당당하고 스스로가 자랑스럽다
“(p.37).

NL 정파 주위에 있으면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어야 하는 ‘자주적 인간’이 전형적으로 재현되는 것이다. 그런데 길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 ‘자주적 인간’은 주체적이지 않다. 근대성의 핵심인 ‘주체적 인간’은 여기에 없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대충 얼버무려 비난하는 투에서 ‘자주적 인간’이 얼마나 ‘공동체’에 종속적인지를 잘 보여준다.

문제는 내무반의 비민주성의 해소 내지 완화이지 규율의 파괴는 아니지 않는가? 우리 군대의 성격에서
비롯되는 억압적 규율을 민주적 규율로 바꾸자는 것이지, 현재의 내무반 구조가 갖는 집단주의적 측면을 이기주의가 판치는 개인주의로
바꾸자는 말이 아니다
“(p.46). 집단주의에 대한 ‘예찬’은 또 이어진다. “이것은 하급자들이 스스로 상급자들을 존경하고 신뢰하는 가운데 자신들의 이익과 상급자들의 이익이 결국
같다는 점을 통해서 이겨낼 수 있다. 따라서 내무반 안에 사랑과 신뢰의 기운이 가득하고 가족적인 분위기가 넘치도록 힘써야
한다
“(p.47). ‘가족적인 분위기’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그들의 가족적인 분위기의 ‘폭력성’은 물론 그들이 알바가 아니다. “그렇다면 입대 뒤 “군기가 빠졌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야 민주적인 군생활에 가까운 것으로 되는가? 그렇지
않아. ‘군기’는 명령체계 안에서 기계적으로 즉각 반응하는 상태 외에도 성실성, 용감성, 민중에 대한 봉사정신, 전우애, 불굴의
기개 등 군인 본래의 미덕, 군인 본연의 올바른 품성과 자세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p.93). ‘불굴의 기개’를 가지고 ‘군인 본래의 미덕’, ‘군인 본연의 올바른 품성과 자세’를 잘 가지면 된다. 군대가 본질적으로 ‘폭력’과 마주해있다는 사실은 이미 망각되었다. 그 ‘폭력’이 ‘자주적 인간’을 억압하고 있다는 논리적 귀결에 대해 따지지도 묻지도 않는게 전형적인 주사파 논리니까. 뭐 ‘폭력’은 미제에게 종속된 국군이 만든거니까, 다른 측면에서 본원적으로 ‘폭력’이 등장할 공간은 없는 거다. ‘민주’와 ‘폭력’이 공존하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써야하는가. 그 모순들이 책 전체에 깔려 있다.

‘N세대’라는 ‘새로운’ 범주로 이야기를 하지만 80년대나 2000년대나 그들의 논리에는 큰 변화는 없다.

하지만 그런 모순의 여부와 상관없이, 이 책이 얼마나 팔렸는가와 상관없이 대체로 주사파의 ‘학생사회 육성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그들은 ‘애국시민’으로, 전문성을 갖춘 ‘모범 장병’으로 자신들을 위치시켜야 한다고 계속 강변했고 특별한 이념적 ‘제한’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군대에서 ‘좌파’의 신념을 갖고 있어서 실제로 피곤한 시절도 김대중 정부까지였던 것 같다. 문제는 군대가 원하는 것은 신체의 규율을 통한 시스템이다. 그 몸의 변화들이 더 완고한 ‘학생문화의 수직성’을 만들어냈던 것이 아닌가. 물론 그에 대해서도 지금은 좀 변하고 있지만. 주사파의 프로젝트는 평균적인 ‘민주당’ 정도 지지하면서 나름 ‘개혁적’으로 보이는 중간계급들을 만들어냈다고 보면 될 법하다. 386의 이념적 주류가 주사파였듯이. 그들의 창은 운동을 할 때는 ‘미국’을 겨냥하고 있지만 나이가 들고 ‘중간계급’의 계급성은 그들의 눈을 바꾸고 몸을 바꿨다. ‘반미’만 버리면 되는 것이었으니까.

많은 자료들이 유용하지만, 이 책이 ‘지시’하는 바를 보면 씁슬한 단상 몇개만 떠오르게 하는 책이다. 그리고 문투도 완전히 ‘자기계발서’다.

또 다른 한편 김삼석은 지금 뭐하나? 하는 생각이 들라다가 “별로 관심 없어”로 정리되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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