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드릭스의 책읽기 #7] 어느 개혁적 ‘보수주의자’의 군대 개혁 이야기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6점
표명렬 지음/동아시아

 2010/07/06 – [헨드릭스의 책읽기] – [헨드릭스의 책읽기 #6] 자주적 청년의 군대 생활에 대한 문건?
2010/07/05 – [헨드릭스의 책읽기] – [헨드릭스의 책읽기 #5] – 군가산점제와 여성 징병제에 대한 이야기

표명렬을 실제로 본적이 있었다. 그 현장은 아이러니하게도 2008년 촛불집회 때문에 나갔던 시청광장이었다. 난 당시에 집회에 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으나, 시청 광장 한 켠에 모여있는 ‘평화 재향군인회’ 사람들을 보면서 힘이 나기도 했다. 찾아가서 꼭 인사를 해야만 할 것 같았다. 이전에 <인물과 사상="">이나 <한겨례> 등의 기사로 보았던 표명렬은 당시에는 크게 내게 의미가 없었지만, 현역이던 내 상황에서는 굉장히 커 보였으므로. 찾아가서 “표명렬 장군님 아니십니까?” “그렇지요.” “고생이 많으십니다.” “고생은 무슨?” “인사를 드려야 될 것 같아서요. 저는 지금 공군 중위입니다.” “아, 역시 공군에 엘리트가 많았어! 하하.” 사실 인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조금 실망스럽긴 했었다. 조금 더 ‘진보적’이고 ‘학벌’ 따위에서, 혹은 ‘출신’을 운운하지 않기를 기대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p>

어쨌거나 그리고 그를 잊어먹고 살았고, 그가 종종 언론에서 ‘평화’를 말할 때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던 것 같다. 그러다가 군대에 대한 담론들을 정리하는 도중 표명렬의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를 발견했다. </p>

표명렬이 바라보는 한국군은 애당초 생길 때부터 ‘민족적’이지 않았고, 쿠데타에 굴종했으며, 민주적이지 않다. 그리고 그 결과 지금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상황에서도 ‘비효율적’이다. ‘비효율’과 ‘민족적’인 것이 어떻게 상관관계가 있을지 예상이 잘 되지 않지만, 한국 군의 이념을 ‘홍익인간’과 ‘방어적 전쟁’에서 찾는 표명렬의 관점에서 그것들은 일관되기 이어지는 흐름을 갖는다. 그렇기 때문에 ‘개혁’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다만 똑같은 이유로 ‘비민족성’이 군 개혁을 망친다. “군 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은 권력의 눈치를 보며 정권의 안보를 위한 일에 급급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그런 논리에 세뇌되어버린 사람들이라는 생각이다. 부끄러움도 없이 시대착오적인 생각과 말을 늘어놓으면서, 본인들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이며 군을 가장 잘 알고 걱정하고 있다는 분들의 착각이 군 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p.45).

그는 ‘진보주의자’이거나 ‘좌파’이지 않다. 그는 엄격하게 보수주의자다. 다만 지금까지 ‘수구’로 지칭되는 사람들의 ‘보수주의’에 동의하지 않을 따름이다. “군을 보수집단이라고 정의하는 의미는 첫째, 군은 현존하는 정권에 절대 순응한다는 뜻이다. 진보적 성격의
정당이 집권을 하건 보수적인 정당이 정권을 잡건 상관없이 내내 그 정부하에서 군대는 동일하기 존재한다. (……) 둘째,
우리 국군은 민족의 군대라는 점에서 강력한 보수성을 특징으로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의미이다. (……) 특히 세계화 시대에는
이런 면에서의 보수성이 더욱 두드러지게 된다. 다른 어떤 조직보다 ‘국가’와 ‘민족’을 강조해야만 하는 집단이기
때문이다(p.107). 지금까지 우리가 말해왔던 “군은 보수적이야”라는 말은 이런 군 고유의 특성을 중심으로 한 의미를 담고 있지
않다. 다만 군의 정치적 진보성을 배제한다는 수구적 의미로 사용되어 왔을 뿐이다
“(p.107). 한국 바깥에서도 프랑스의 드골주의자를 생각해보면 이러한 이미지에 부합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보수주의자이기 때문에 참여정부와 국민의 정부에 동의했던 것도 이해할 수 있다. 표명렬이야 말로 ‘이기는’ 군대를 바라는 사람이다. 천안함 사태를 보아라, 전통적인 패러다임의 군대가 얼마나 허술했던지. 표명렬이 바라는 것이야 말로 군의 ‘합리화’라고 말할 수 있다.

군이 조금 더 민주화되길 바라고,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한 그의 ‘개혁’에 대해 지지는 반드시 하지 않더라도, 이해할 수는 있다. 다만 재미있는 것은 일본에서 ‘우정국’을 혁파하기 위한 ‘개혁’의 논리로 신자유주의적 민영화가 도입되듯이, 인권의 군대를 위해서 표명렬이 제안하는 것이 ‘다면평가제’, ‘투명성’, ‘창의성’ 등이라는 것이다. 서동진(2010/06/30 – [헨드릭스의 책읽기] – [헨드릭스의 책읽기 #2] 서동진과 푸코, 그리고 자기계발하는 주체)의 책에도 나오듯이 이러한 논리들이 손쉽게 ‘신자유주의적 주체화’의 과정을 만드는 것은 이미 알려진 바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을 해보면,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메커니즘’이라는 것이 보수적인 효과들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인지되었을 때 또 다른 가능성들에 대한 요청도 등장하리라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세상은 엄청난 속도로 변하고 있다. 구성원들의 정신 자세와 행동양식이 조직의 성패를 좌우하는 시대다.
무한한 상상력과 도전 의식에 기초한 창의력과 아이디어의 발현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역량이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진정한 힘이 되는 시대다
“(p.105). 여기에서 ‘경쟁’이라는 것을 제거한다면? 이런 식의 상상도 군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군대의 훈련소에서 ‘평등주의’가 강하기 때문에 주는  ‘해방감’이 분명 있지 않나.

어쨌거나 지금까지 한국군이 얼마나 황당했는지에 대해서 알고 싶으면 표명렬이 보여주는 예화들을 잘 참조하기만 해도 대체적인 윤곽은 다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최근에 군에 다녀온 한 젊은이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하루 종일 돌담을 허물고 새 길을 내는 미화작업을
했다. 그러나 다음날 돌을 본래 위치로 옮겨 원상 복구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유는 돌을 옮기기 전의 상태를 사진으로 찍어 상부에
보고해야 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p.15).

하지만 군대에 대한 이야기를 여기에서 멈출 수는 없다. 표명렬의 이야기에는 소수자도, 군대 바깥의 여성들도, 그리고 또 군대 때문에 힘들었던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 없다. 또 다른 한 편에서 거기에는 구체적인 ‘병들’의 이야기도 별로 없다. 위에서 내려오는 ‘개혁’이 아니라, 밑에서 제기되는 문제의식들을 통해서 다시금 군대 이야기를 구성해야 할 법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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