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 냉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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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살부터 24살까지 정치학을 공부했다. 정치학을 공부했던 건 여러가지 명분을 붙였던 것 같으나, 1학년 1학기에 수강했던 <정치학 개론="">과 <정치학의 이해="">라는 수업에서 A+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교수가 출제했던 문제는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Max Weber의 <3 Types of Legitimacy>, Giovanni Sartori의 , Lipset & Rokkan의 정도 였던 것 같다. 뭐 써머리를 열심히 외워서 요약하는 것이었으니 내가 가지고 있었던 ‘정치학’에 대한 ‘학문적 자질’을 판단하기는 어려웠을 법하다. 하여간 성적이 좋았으므로 나는 정치학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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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 수업에 들어가면 보통 4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다. 1)정통(?) 정치학도 2)정치학에 별 관심 없는 정치학과 생 3)운동권 4)정치에 관심있는 사람.

나는 예측가능하듯이 3 그룹에 있었다. 보통 3 그룹의 인간들은, 특히 주사파들은 2 그룹에게 ‘계몽적’으로 발화하고, 4 그룹과 싸우고, 1 그룹을 존중하곤 했는데. 나는 그러한 상황에 늘 심사가 뒤틀렸다. 2 그룹 에 대한 ‘계몽적 발화’와 1 그룹에 대한 ‘존중’이야 말로 “강자한테 약하고 약자한테 강한” 비굴한 인간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4 그룹과 싸우는 것의 ‘진정성’을 믿을 수가 없었다. 왜냐면 둘이 싸워봐야 대놓고 기성 정치권에 가겠다고 하는 것과, 그들을 까고 있다가 나중에 몸값을 부풀려 가겠다고 하는 것의 차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3 그룹에 있으면서 늘 바깥으로 삐져나가려고 했던 것 같다. 예컨대 내 전략은 이런 거였다. 2 그룹과 같이 친하게 지내고. 4 그룹에게 공부하지 않는다고 지랄하고, 1번 그룹과 이론적인 논쟁을 했다. 3번 그룹에 대해서는 4 그룹에게 하는 것과 거의 비슷하게 했다. “공부하지 않는 좌파는 쓰레기다!” 어쩌면 쓰레기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 적도 많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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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평균적인 정치학과 생들은 2 그룹이 대다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그룹은 3 그룹도, 4 그룹도 아니고 1 그룹이었다. 그것은 철저하게 ‘합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전공을 잘 공부하는 1 그룹이 나눠주는 ‘써머리’가 그들에게 가장 유용했기 때문이다.

덕택에 1 그룹이 보통 갖게 되는 ‘편견’들은 전혀 필터링되지 않고 그대로 이식되곤 했다. 그리고 대체로 젠틀하고 정직해 보이고, 마치 플라톤의 공화국에 나오는 ‘철인 정치인’ 같은 느낌이 그들에 대해서 2그룹이 느끼는 바였다. 뒷담화는 늘 가능했지만 3 그룹에 의한 1 그룹에 대한 비판은 거의 힘들었다. 도덕적 헤게모니를 쥐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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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정치학 공부에 매진할 수밖에 없었다. 통상 3 그룹의 학생들이 읽어내는 ‘문건들’을 열심히 읽는 것은 당연히 중요했지만, 1 그룹이 수업과 연동하여 읽는 텍스트도 꼼꼼히 읽을 수밖에 없었다. 예컨대 <서양정치사상>에서 마키아벨리를 읽으면 나는 수업 텍스트로 선정되어 있는 <군주론>를 다 읽고(이건 1그룹도 마찬가지), 루이 알튀세르가 쓴 <마키아벨리의 가면="">을 읽는 식. 그런 식이었다.

“현실정치라는 것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키아벨리즘 …..” 어쩌고 1 그룹이 말을 하면 나는, 옆에서 씩 비웃으면서 “하지만 마키아벨리즘이 작동했던 맥락이 있지요. 그것은 <로마사 논고="">의 기획과 <군주론>의 기획의 어그러짐을 볼 때에도 그렇고, 알튀세르가 읽어냈던 마키아벨리의 맥락을 보아도 그래요. 심지어 그람시도 그렇지 않나요?”라면서 꼭 한 마디를 쳐 줘야 했다. 그들이 알튀세르와 그람시를 읽었을 리 없다고 확신했고 대체로 그랬다. 잘난 척을 해야만 되는 게 내 성미에 맞았기 때문일 수 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어느 날 1 그룹의 J와 ‘현실정치realpolitik’에 대해서 논쟁했던 것이다. 홉스의 ‘자연상태’를 통해 ‘사회계약론’을 도출하는 교과서의 진도와 달리 나는 그 ‘자연상태’가 야바위라고 했던 것 같다. 마치 그것은 완전무결한 시장을 상상하는 자유방임주의laissez-faire의 ‘실험실 상태’와 같다고 했다. 그랬을 때 J는 ‘현실정치’에서 국가를 제외하고 무엇이 있냐고 물었고, 나와 J는 국가가 뭐냐면서 수업 시간의 10분 여를 둘이 한 바탕 하고야 말았다. J는 마키아벨리와, 홉스를. 나는 루소와 맑스를 들었던 것 같은데 자세한 내용은 별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물론 이러한 ‘잘난 척’이 내 대학교 학점을 보장해주고, 다른 방식으로 생각할 여지들을 만들어준 것까지는 맞았는데, 그것들이 1 그룹에 대한 공략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냥 나는 내 ‘자기보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이미 ‘좌파’인 후배들한테 ‘꼰대질’하는 위치에 있었을 따름이다. 예컨대 내가 할 수 있었던 가장 적극적인 활동은, 학과 학술제의 ‘연구분과장’. 즉 연구를 책임지는 자리에서 이른바 ‘좌파 정치학’적 입장을 가지고 주제를 견인하는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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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이 지나 내 동기들 중 1그룹의 일원들은 군대에 갔고, 다녀와서는 각종 ‘고시’에 올인했던 것 같다. 나는 학부를 졸업하고 군대를 갔기 때문에 대학원에 진입을 했고, 계속 ‘정치학도’라는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한동안 “<정치학 개론="">은 좀 읽고 와라”라고 이야기하는 ‘대학원생 꼰대’가 되어버렸다.

내가 군대에 가고 1그룹은 다시 컴백했고, 똑같은 방식으로 “정치학을 잘 공부하는 법”을 후배들에게 이야기하며 열심히 두꺼운 정치학 고전들을 들고 다님으로 자신들의 엣지를 세우곤 했다고 한다. 써머리를 열심히 나누어주고 ‘정치학 한다는 것’에 대한 자신들의 정리를 ‘표준화된 방식’으로 후배들에게 세웠다고 한다. 난 이게 여전히 문제적이라고 생각하긴 한다. ‘정통 정치학’이 도대체 무엇인가. 미국화된 방식의 보수적 정치학이 아니었던가. 그 구체적 양상은 없고, 그것에 ‘정통’의 권위를 씌우는 것이 황당하다.

만약 내가 학교를 1그룹과 계속 다녔다면 똑같은 방식으로 ‘좌파 버전’의 ‘잘난 척’을 하면서 옆에서 찔러댔을 것 같다. 거기에는 냉소주의도 좀 있는 것 같고, 동시에 ‘좌파 엘리트’라는 이상한 방식의 오만함도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꼭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데, 내가 만약 지금의 상황으로 그들과 이야기했다면 어떻게 말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