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드릭스의 책읽기 #21] 옛 그림 읽기와 인문학

이야기 그림 이야기8점
이종수 지음/돌베개

내 책 읽는 호흡은 엄청나게 ‘가쁘다’. 시간 당 100페이지를 안 읽으면 마치 달리다가 갑자기 브레이크를 건 느낌 마냥 뭔가 답답함이 느껴진다. 덩달아 내 말하기도 엄청나게 ‘가쁘다’. 한 동안 말하기가 좀 차분해 졌다고 누가 그랫었는데, 요새들어 다시 말이 엄청 빨라졌단다. 내가 느끼기에도 그렇다.

내 책 읽기와 글 읽기, 그리고 글 쓰기와 말하기의 호흡이 가빠지는 것은 아무래도 내가 ‘무엇을’ ‘어떻게’ 읽고 있느냐와 쓰고 있느냐, 그리고 말하고 있느냐의 문제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예컨대 내가 주로 읽는 책들은 사회과학과 철학, 혹은 인류학, 또는 어떤 르포와 같은 것들이다. 여백이 있는 글들. 예컨대 ‘시詩’는 안 읽고(1000권 읽는 중 한 권 정도?), 에세이를 읽더라도 문장의 맛을 느끼는 글보다는 달리면서 쓰는 글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소설 읽는 취향도 그렇게 간다.

<이야기 그림="" 이야기="">라는 책을 집었다. 옛 그림을 인문학적으로 읽게 해준다는 책이다. 그런데 영 책의 내용이 잘 들어오지가 않았다. 보통 책을 많이 읽는 공간이 도서관이 아닐 때에는 카페나 버스일 때가 많은데. 이 책을 집었던 공간은 버스였다. 덜컹 거리는 버스에서 이 책을 잡고 읽는 것은 굉장한 고역이었다. 271번 버스를 혜원 여중고 정류장에서 타서 이 책을 들고 졸다가 중랑교 앞에서 내려 272번으로 갈아타 다시 결의를 다지며 집어서는 신설동도 채 가지 못해 졸고 말았다. 눈을 떠보니 이대부고 앞이다. 결국 10페이지 남짓을 읽고 말았던 것이다. 도서관에 가고, 카페에 가서 다시 이 책을 집기 시작했다. 처음에 맥을 놓쳐버리고 나니 도통 이해를 할 수가 없다. </p>

저자는 나 같은 문외한을 위해 “아무래도 그동안 사용해온 대화법을 조금 바꾸어야 할 것 같다. 옛 그림 읽기는 대체로 ‘궁서체’를 고집하는 어르신 같았다. 부담 없는 ‘필기체’는 어떤가. 아니, 저마다의 독해법을 따라 ‘오이체’나 ‘가지체’로도 쓸 수 있을 것이다. 지루할 것이라는 막연한 선입견을 버리고 만나보자“(p.7)며 말을 걸었는데 나는 대화에 실패한 듯 싶다. 권/축/병풍/삽화의 4 가지 형식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빨리 익힐 수 있었지만, 그것들을 설명하는 인문학 텍스트와 그것들이 보여주는 그림 두 가지가 내 감각에 부딪히지는 않았다.

텍스트의 길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회화의 영역으로 넘어온 이상, 이야기의 속도와 강약은 화가가 생각한 ‘서사적 전개’를 따르게 마련이다. 어떤 그림이 두루마리로 그려졌다면 ‘시간의 흐름’을 존중해달라는 화가의 요구가 담겨 있다고 보아도 좋겠다.“(p.16) 근데 ‘속도’와 ‘강약’, 그리고 ‘시간의 흐름’을 존중하지 않는 독자였던게 문제였으리라. 조식이 썼던 시, 김홍도의 재기발랄함. 등만 기억에 남길 수밖에 없다.

다음 기회에 조금 호흡이 가라 앉으면 다시 읽어 봐야겠다. 동양화를 이렇게 많이 본게 처음이기도 했으니까. 간송 미술관에서 한 번 뭔가를 전시하면 가봐야 겠다는 생각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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