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드릭스의 책읽기 #22] 하우스 푸어, 베이비붐 세대, 88만원 세대

하우스 푸어6점
김재영 지음/더팩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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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들어 주요 경제연구소들의 논조가 바뀐 부분이 있다. 바로 부동산 시장에 대한 전망들이다. “한국의 경우는 다르고~” 어쩌고 하더니 일본의 ‘버블’이 10년간 꺼져갔던 ‘잃어버린 10년’을 참조하며 경고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현대경제연구소도 그런 전망에 숟가락 하나를 더 얹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런 다른 방향에서의 전망은 사실 김광수 경제연구소와 손낙구 정도의 작업물들에서 나왔다고 봐도 완전히 과언은 아니다.

작년에 출간되었던 <위험한 경제학="">의 이야기가 있고, 그 토대에는 김광수 경제연구소의 실증자료들이 깔려있다. 다른 한 편 현재의 ‘부동산 계급사회’의 사회적 명암에 대한 손낙구의 진단이 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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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주장은 굉장히 간결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하우스 푸어="">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2006년까지 일어났던 부동산 버블의 피크점을 이미 우리는 지나갔고, 현재 ‘강남 불패’의 신화가 재건축 아파트로부터 시작하여 무너지고 있다. 실제로 부동산으로 ‘재미’를 봤던 최상류층은 이 시장에서 퇴각한 상태이다. “이른바 강남, 목동, 분당, 용인 등 ‘버블 세븐’을 비롯해 수원시, 고양시, 파주시, 김포시, 안양시 등 대부분의 수도권 주요 도시의 아파트 가격은 국토해양부 실거래가 기준으로 2006년 말~2007년 초 고점 대비 평균 20~30% 가량 떨어졌다. 그동안의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실질가격으로는 30~40% 가량 떨어진 것이다“(p.28). </p>

뭐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다른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김재영이 선대인의 이야기에서 조금 더 나아간 것은 바로 ‘부채’에 대한 이야기다. “주택의 자산가치가 떨어지는 가운데 주택담보대출 거치기간이 돌아오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한국은행 보고서는 원금 상환이 시작될 경우 추가 대출 없이 첫해에 즉시 부동산을 처분해야 하는 가구가 전체 부채 가구의 14.9%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p.35). 바로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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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실증을 위하여 김재영은 대치동 은마 아파트 전체의 등기부 등본을 떼는 무지막지한 작업을 수행했다. 그리고 그 결과를 MBC 에서 틀었던 것이다. 부채의 비율들의 ‘세대격차’가 존재하고, 최근에 들어온 사람들과 예전부터 살던 사람들이 다르다. 이미 버틸 수 있는 사람들은 외려 은마에 살지 않고 전세를 놓고 있으며, 은마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절반 가까운 빚을 끼고 재건축만 기다리면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p>

김재영이 또한 잘 보여주는 것은 그 재건축이 일어났을 때 그것들이 절대로 기존 살던 사람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재건축 사업이 시작될 때만 해도 이주비 걱정은 하지 않았다. 시공사와 조합은 이주비를 무이자로 빌려준다고 했었다. 하지만 번번히 계획들을 수정했고 부담금이 없는 것으로 계획됐던 것도 1억~2억 원의 부담금을 더 내는 것으로 바뀌었다“(p.137).

현재 하우스 푸어는 얼마나 될까? “기존 주택과 신규 분양 물량 매입을 통해 발생한 하우스 푸어만 수도권에서 95만 가구, 전국적으로는 198만 가구에 이르게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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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러한 ‘실제’와 상관없이 작동하는 부동산에 대한 판타지들이 있다. 미국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설문조사 결과는 위의 도표에서 알 수 있듯이 올랐다가 40%, 변함없다가 22%, 내렸다가 38%를 보였습니다. 그런데 실제 주택가치가 떨어진 주택의 비율은 77%였습니다. 77% – 38% = 39% 즉, 현실과 생각의 차이는 39%입니다”(pp.39-40). 한국에서 어떤 이야기를 해볼 수 있을까? 프로젝트 부동산에서 땅을 파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각해보자.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다 ‘땅값’이 뛰어 재미봤다고 광고하지 않나. 하지만 실제로 찾아보면 그런 사람을 찾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이를 김재영은 ‘인지부조화’라고 칭한다. 그런데 이러한 인지부조화가 생긴 것은 하우스 푸어들의 ‘착각’ 때문 만은 아니다. “2000년대 부동산은 이처럼 모든 것이 불안하던 시대에 유일하게 안정된 대상이었다. 부동산 재테크는 화수분처럼 돈을 묻어두기만 하면 끊임없이 돈을 만들어내는 대박 제조기요, 희망 제조기였다. 돈은 나무에서 자라지 않는다고 하지만, 2000년대 사람들은 돈이 집에서 자라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p.68). 여기에는 분명한 정부의 ‘개입 실패’가 존재한다. 예컨대 ‘선분양제’를 끝끝내 손대지 않고, 다른 한 편에서 DTI 비율을 갖고 만지작 거리며, 또 경기가 조금만 죽으면 ‘토건 경제’를 위하여 ‘경기부양’을 외치면서 부동산 규제를 풀고 마는 것 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나마 경기가 돌아갈 때 ‘땅’이 주었던 메리트는 실제 존재했던 메리트가 맞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본 것처럼 하우스 푸어가 양산되는 이유는 일반 가계의 단순한 판단 착오 때문이거나 탐욕 탓으로 돌려버리기에는 매우 구조적인 근원을 갖고 있다. 정부 – 금융기관 – 건설업체 – 언론 – 부동산 정보업체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위해 부동산 덫이라는 거대한 매트릭스를 만든 것이다. 그 같은 덫에 걸려든 상당수 일반 가계들이 지금 하우스 푸어로 전락하기 직전의 상태에서도 매트릭스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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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훈과 이야기한 적이 있었지만. 이 시나리오가 만들어내는 ‘사회적 효과’에 주목하게 된다. 책에서 깨나 흥미로운 부분은 90년대 초중반 학번 이야기였다. “어설프게 부동산 붐의 뒷자락을 잡았던 1990년대 초중반 학번들은 부동산 붐의 혜택도 누리지 못하고 ’88만원 세대의 복수’에 하우스 푸어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p.63). 한동안 내가 조병훈과 이야기했던 것은 베이비 붐 세대의 ‘동반 자살’이었는데, 난데없이 등장한 90년대 학번의 이야기는 좀 황당했다. 왜냐하면 90년대 초중반 ‘학번’이라는 표현 자체가 일단 한국 사회에서, 기껏해야  자신들의 또래집단의 20% 남짓 밖에 되지 않는 몇 명을 지칭하는데다가, 그들이 굉장히 많은 부와 권력을 지니고 있는 집단임을 망각하는 표현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현재 ‘가족의 계급 재생산’을 위해 돈을 다 꼴아박고 퇴직금과 연금을 취직 못한 88만원 세대 20대에게 쪼개주고 있는 베이빔 세대에 비해 훨씬 더 여유롭기 때문이다. 88만원 세대와 비교하면 더 황당한 결론이 나올 것 같다.

요컨대 90년대 초중반 학번은 ‘하우스 푸어’ + 정규직 직장인 거고, 베이비 붐 세대는 ‘하우스 푸어’ + 퇴직, 88만원 세대는 ‘하우스리스 푸어’ + 비정규직 or 무직. 인 상태인 건데. ’88만원 세대의 복수’라는 표현까지 써가면서 90년대 초중반 학번을 띄울 수 있을까? 물론 저자가 91학번이라는 점이 의미심장하긴 하지만.

안 그래도 요 며칠 전 90년대 학번 선배들을 만난 자리에서, 초중반의 선택이 좀 다르다는 걸 느끼긴 했다. 90년대 초중반 학번들은 다 집을 하나씩 끼고 있는데 안 올랐다는 ‘푸념’조가 많았고, 다른 한 편 97학번 정도부터는 다 ‘전세’에서 사는 게 너무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 미묘한 차이가 여기에 있는 것이었을까?

마지막으로 ‘하우스 푸어’가 어디까지 망할까? 책의 전망처럼 빚으로 간 집 때문에 다 죽어갈까? 그걸 잘 모르겠다. 일본에서 만났던 정남구 기자는 20% 선이 최고치라고 했었는데. 뭐가 더 맞을 지.난 지표를 읽을 줄 모르니..(그나마 DTI, LTV 개념을 좀 잘 알게 된 건, 이 책과 <위험한 경제학=""> 덕택인 것 같다.);;  그리고 ‘하우스 푸어’가 중산층의 미래일까??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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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이 책 자체는 굉장히 의미심장한 시점에 나왔고 한 동안 ‘워킹푸어’, ‘하우스푸어’에 이은 ‘푸어’시리즈가 계속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김재영의 문장이 아름답지는 않지만 ‘팩트’로 말하라는 저널리스트의 기본은 깨나 성공적인 책을 만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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