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드릭스의 책읽기 #23] 로맨티스트 글쟁이 김선주의 40년 글쓰기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10점
김선주 지음/한겨레출판

 2009/03/16 – [헨드릭스의 책읽기] – 칼럼. 이렇게 써라 – 이대근,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위하여=""></a>
2009/09/26 – [헨드릭스의 책읽기] – ‘내 말’ 찾기 두 번째: 『글 읽기와 삶 읽기』 1, 2권
2009/09/14 – [헨드릭스의 책읽기] – 겉도는 이론, 헛도는 삶을 벗어나기 위한 지도 – 조한혜정, 한국의 여성과 남성
2010/08/28 – [헨드릭스의 책읽기] – [헨드릭스의 책읽기 #20] 20대 저자론의 밑천에 대해서. </td> </tr> </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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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칼럼쟁이라고 지금까지 존경했던 사람은 2명 정도였던 것 같다. 바로 정운영과 이대근이다. 정운영이 ‘르네상스적’ 지식인으로 칼럼에서도 사유의 깊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칼럼을 내게 보여주었다면, 이대근의 글쓰기는 늘 ‘자객’ 혹은 ‘해결사’의 글쓰기였다. 간결한 문체로 슥슥삭삭 잽을 날리다가 갑자기 묵직한 게 느껴질 때쯤에는 이미 한 방 먹은 듯한 글을 쓰는 이대근의 글쓰기는 ‘저널리스트’의 글쓰기의 규준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여성 ‘칼럼쟁이’는 떠올려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한겨레를 1999년부터 열심히 본 것 같다. 1998년 라는 서비스로 인터넷을 하면서 <안티조선 우리모두="">라는 사이트에 기웃거리게 되고, 강준만의 책을 읽고, 진중권의 책을 읽고, 또 <월간 인물과="" 사상="">과 <아웃사이더> 등을 탐독하게 되었던 나는. 한겨레를 집게 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그 때 당시는 ‘그냥’ 한겨레면 되는 것이었고, 한자를 못했던 내게 한글전용이 너무 맘에 들었다. 당시에 칼럼을 정규적으로 쓰던 사람들을 떠올려보면 정연주, 김선주, 손석춘 등이었을까? 외부 필진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 중 손석춘 칼럼은 굉장히 내게 강렬한 칼럼이었다. ‘임비곰비’ 등 알 수 없는 ‘순 우리말'(만났을 때는 다 국어사전에 있다고 하여 내 기를 죽였다)을 구사하는 칼럼인데다가, 손쉽게 적을 썰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선주의 글쓰기는 내게 별로 기억이 남지 않는 글쓰기였고, 지금까지도 그녀의 칼럼을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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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여성 필자에 대한 큰 갈망이 있는 편이다. 조병훈과도 한동안 이야기했었지만, 한국에서 ‘젊은 여성 좌파 필자’가 누가 있을까? 거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80년대생 근처에는 김현진 정도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조금 어린 축에서 한 명을 언급했지만, 그녀의 글쓰기가 어떻게 될 지 아무도 모르며, 그녀의 펜을 꺾어버릴 잠복적인 요소가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익명의 그녀에게 다가올 구조적/개인적 모순을 떠나서 다른 질문이 더 컸던 편인데, 문제는 ‘그룹’으로 필진이 형성이 되어야 하는데, 지금 ‘여성 좌파’ 혹은 ‘여성 진보’의 그룹이 얼마나 구성될 수 있는 생태계인가에 대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내가 끌고 가는 건 예컨대 “오빠한테 배운 페미니즘”, “강남 좌파한테 배우는 맑스주의” 식의 이상한 역설에 빠질 수가 있기 때문에 더 나아가지는 않는 편이다. 걍 나는 내 또래의 로자 룩셈부르크나 주디스 버틀러를 기다릴 따름이다. 그리고 어쩌면 ‘여성 어쩌구’가 등장하지 않는 것이 더 맞다. 여성이거나 남성이거나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야 하니까…

어쨌든 김선주의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를 읽으면서는 그녀의 20대가 자꾸 떠올랐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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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20대가 자꾸 떠오른 것은, 이를테면 이런 내용 때문이었다.

20대 때 신문기자를 한답시고 술 마시고 늦게 귀가했다가 아침이면 정신없이 출근하던 시절, 밤에 들어오면 나의 방은 항상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널려 있던 책은 책꽂이에, 레코드판은 나란히 제자리에, 마구 벗어놓은 옷들은 옷장에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재떨이는 깨끗이 비워져 물로 씻겨 있었다. 나는 그것이 어머니가 한 일로만 알고 있었다. 내가 담배를 피우는 것을 어머니는 알고
있었지만 아버지는 모르시리라 생각했는데, 어느날 내 방을 치워놓은 사람이 아버지라고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매일 내가
출근하고 나면 내 방에 들어와 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하고 재떨이를 물로 씻으시면서 어머니에게 “우리 막내딸이 남자로 치면 한량
중의 한량이다”라며 웃으셨다고 한다
“(p.371).

작년에 나는 굉장히 내 지도교수의 이야기를 들을면서 놀랐던 적이 있는데. 그건 전통적인 ‘희생’의 상징인 가부장제 모성과 좀 다른 경험을 한 여성들이 내 엄마의 윗 세대에 ‘그룹’으로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김선주도 그러한 경우로 보인다. 약간의 호구조사를 하자면 1947년생 서울 출생. 그리고 서울에서 초중고와 대학을 다닌 김선주. 1948년생 부산 출생이지만, 중학교 때 서울로 올라와 ‘명문 여고’를 나온 내 지도교수. 혹시 둘이 알 수도 있겠지? 지금 베이비붐 세대보다는 조금 앞 자락. 예컨대 남자로는 김훈, 홍세화 등이 떠오르긴 하는데. 그 때 서울토박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물론 그녀들도 그 또래에서 굉장히 ‘특권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던 계층의 여성들임은 틀림없다. ‘결핍’의 부재와 함께 살아왔던 내 지도교수와, 재떨이를 치워주는 아버지의 막내딸.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녀들만이 가질 수 있는 ‘공간들’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고, 그 공간의 소중함을 조한과 김선주의 글로부터 발견하다고 하면 너무 많이 나간 이야기일까? 게다가 김선주의 이모의 이야기는 ‘너무’ 멋있었다.

이모는 소설가였다. 생활이 어려워 잡지사 기자도 했고, 다방을 한 적도 있다. 어머니는 화장을 할 때
립스틱을 손에 조금 묻혀서 눈에 안 띄게 입술에 살짝 발라줄 뿐이었다. 이모는 새빨간 립스틱을 통째로 입에 대고 입술선을 따라
정성을 들여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다시 가운대로, 위 아래로 짙게 발랐다. (……) 이모가 딸깍 핸드백을 열고 담뱃갑을
꺼내면 나는 얼른 성냥과 재떨이를 바쳤다. 내가 담배를 일찍 배우고 여자가 담배 피우는 데 거부감이 없었던 것은 지적이고 아름다운
작가인 내 이모가 담배를 피우던 매력적인 모습 때문이었을 것이다
“(pp.374-375).

물론 이런 여성들에 대한 지지는 오로지 내가 가지고 있는 ‘모던 뽀이’와 ‘모던 껄'(신여성)의 시대에 대한 동경 때문일 수도 있으리라(2008/12/05 – [헨드릭스의 책읽기] – 모던 뽀이 구보 성장기 in 서울 – 1
2008/12/05 – [헨드릭스의 책읽기] – 모던 뽀이 구보 성장기 in 서울 – 2
2008/12/11 – [헨드릭스의 책읽기] –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 김진송, 현실문화연구
2008/12/17 – [헨드릭스의 책읽기] – 여자들의 ‘오래된 현재’ – 신여성을 읽다 ①
2008/12/17 – [헨드릭스의 책읽기] – 여자들의 ‘오래된 현재’ – 신여성을 읽다 ②
2008/12/23 – [헨드릭스의 책읽기] – 황금의 지식시대를 넘어서! – 천정환, <대중지성의 시대=""></a>)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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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이야기 말고 ‘근처’의 이야기를 하는 김선주의 글에서 빛났던 것은, ‘구체적인 일상’을 통해서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이었다. “글을 쓰면서 지켜온 원칙이 있다. 나의 일상에서, 내가 보고 느끼고 경험한 일이 아니면, 그것이 우리 모두의 삶을 억압하는 문제와 맞닿아 있지 않으면,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p.377). 요컨대 ‘이건 내 이야기다’라고 말하면서 시작하기 때문에 가지는 힘. 나도 그걸 굉장히 지지한다. 그녀의 러브호텔에 대한 이야기가 압권이다.

러브호텔이라니…… 거참, 뭐랄까 싱숭생숭해지고 야릇하게 흥분되고 뭔가 불순한 것 같고, 예순 살 전후의 중늙은이 네 명이 러브호텔에 들어간다니 해괴망측하기 짝이 없다는 기분이 들면서도 은근히 호기심도 발동했다“(p.327).맞다. 호텔이란 잠도 자고 러브도 하고 회의도 하고 쉬기도 하는 곳이지 러브하는 곳, 자는 곳, 부부가 가는 곳, 연인이 가는 곳, 관광객이 가는 곳이 달라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p.329). 스스럼 없이 뛰어들어보면서 하는 자신의 ‘권력’에 대한 성찰을 지지할 수밖에 없다. 난 ‘면벽수련’을 지지하지 않으니까.

동시에 ‘맹물’처럼 절대 그녀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모두다에게 ‘선생’하면서 다 들어야 한다는 ‘선문답’을 하지 않고 틀리더라도 일단 베어버리는 그녀의 문투가 더 좋은 것이다.

누가 화해와 용서를 말하는가. 죽은 권력에 난도질을 하고, 시정잡배로, 길거리 건달로, 그가 사는 흙집을 아방궁으로 묘사하며 모욕했던 언론이 제일 먼저 나서서 화해와 용서를 말한다. 죽음의 본질을 흐리게 하려는 짓이다. 화해를 먼저 청하는 것은 속이 뜨끔한 세력들이다“(p.91). ‘화해’의 ‘전제’가 생략되고, ‘배움’의 ‘전제’가 생략되지 않기 때문에 그녀가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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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 내가 이 책에서 그녀의 다른 부분의 이야기는 다 동의가 되었지만, 또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도 98% 정도 동의가 되었지만. 2% 정도 잘 동의 안 되는 부분이 바로 이런 곳이다.

요즘 세대들은 이러한 것들에 무감동하고 무감각하지만 실은 요즘 젊은 세대들이 누리고 있는 자유는 하나도 거저 얻어진 것이 없고 모두 투쟁과 희생의 결과로 얻어진 것이다“(p.169). “나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여성들 모두가 페미니스트들한테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사람들은 현재 자신이 누리고 있는 권리나
자유에 대해 무심하다. 당연히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 번쯤은 그것이 기득권 세력의 저항과 반대를 무릎쓴 투쟁에서
얻어졌으며, 거기에는 그런 일을 시작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p.170).

난 한국 여성운동의 역사성을 부정하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다. 하지만 김선주가 책에 씌여있는 내내 신경쓰려는 ‘입은 닫고 지갑은 여는’ 상황과 완전히 배치된다는 점에서 이 부분은 지적할 수밖에 없다. 예컨대 70년대에 여성으로 부딪혔던 문제들과,  80년대에 부딪혔던 문제들, 그리고 90년대, 2000년대를 경유하면서 부딪히는 문제들에는 ‘연속성’이 있고 다른 한 편에서 ‘단절’의 지점들이 분명 존재한다. 예컨대 ‘간통죄’를 ‘입법’시키려 했던 것이 여성 운동의 목표였던 시절에서 ‘폐지’가 목표가 되는 시절로의 변화가 분명 존재한다. 내가 보기에 ‘각 시대의 여성들’은 각 시대의 문제로 싸우기 마련이다. 게다가 싸우지 못한다고 한 들 거기에는 나름의 맥락이 있고, 어떤 문제를 풀려고 생각한다면, 그들이 움직이지 못하는 ‘맥락’을 건드려주는 것이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김선주는 그 지점을 놓치지는 않는다.

하지만 “현재 자신이 누리고 잇는 권리나 자유에 대해 무심하다. 당연히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식의 발언은 어떤 의미인가. 그것은 ‘힐난’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나름’의 ‘일상투쟁’에 서 있는 여성들을 주저앉히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말하려면. 나는 일단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빚’지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되며, 계속 계보를 타고 올라가다보면 단군에데고 ‘빚’을 지고 있다. 일련의 경로는 상승하여 ‘정통’에 대한 신기루를 만들어낸다. 맑스가 말했듯이 옛 귀신들이 지금 세대의 가슴팍을 쥐어누른다. 나는 ‘역사’에 대해 낙관하기 때문에, 혹은 부채의식을 느끼기 때문에 싸우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답답하기 때문에 싸우는 것이고, 예전의 역사를 통해 그랬던 사람들과의 ‘공감’을 느끼는 것일뿐 그들에게 어떤 부채를 느껴야 하는 가에 대해 굉장히 회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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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이야기는 김선주를 만났을 때 어떤 자세로 만나고 싶은가와도 직결되는 것 같다. (혹시 만날 수 없을 수도..) 나는 그냥 다리 꼬고 옆에서 하고 싶은 말 편하게 할 수 있는 ‘동료’로 그녀를 만나고 싶다. 무릎 꿇고 경직되게 ‘사사’받으려는 자세가 좋은지 전혀 잘 모르겠다. 난 그녀에게 ‘빚’을 잘 모르겠고, ‘우정’이라면 만들고 싶을 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건 또래의 내 지도교수에게도 마찬가지.

그녀의 문장은 그녀가 좋아했던 세대의 케루왁, 사르트르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의 재떨이를 닦으면서 아빠를 생각할 때 나오는 문장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문장을 읽고 있는 것에서 ‘구름’을 발견하지 않고 굳건히 딛고 있는 ‘땅’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늘 조금은 떠오르고 싶은 ‘로맨티스트’로서의 그녀의 감성들은 앉아서, 혹은 서서 날아다니는 것의 심상을 떠오르게 한다. 아. 1200자의 예술. 어쩌면 그게 적절할 지 모르겠다. 싸우면서 한 합의 예술을 만드는 예술가.

그녀의 ‘김선주 학교‘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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