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드릭스의 책읽기 #25] 꼭 이런 좋은 책은 안 팔리고..

 2010/09/05 – [헨드릭스의 책읽기] – [헨드릭스의 책읽기 #24] 신자유주의가 궁금하다구요? 그럴 때 읽을 책.
2010/08/14 – [헨드릭스의 문화읽기/문화연구의 시선] – 좌파 이론의 쓸모에 대해서 – 며칠간의 노-홍-한-레의 논쟁을 보고.
2010/06/27 – [헨드릭스의 책읽기] – [헨드릭스의 책읽기 #1]신자유주의 노동체제, 그리고 미라이 공업 下
2010/06/27 – [헨드릭스의 책읽기] – [헨드릭스의 책 읽기 #1] 신자유주의 노동체제, 그리고 미라이 공업 上
2010/06/22 – [헨드릭스의 책읽기] – 장사치의 경제학과 살림살이의 경제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10점
홍기빈 지음/녹색평론사

순식간에 읽히는 책이 있다. 바로 이 책이 그렇다. 사실 홍기빈의 모든 책은 잘 읽힌다. 밴드의 ‘보컬’ 출신이라 노래도 잘 하지만, 예적 감각과 나름 문청(문학청년)의 포스가 문장들에 나온다. (올 초 있었던 특강에서는 베르히트의 <사천의 선인="">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어쨌거나. 잘 읽힌다.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2010/06/22 – [헨드릭스의 책읽기] – 장사치의 경제학과 살림살이의 경제)가 그랬고, 지금 한 참 <거대한 전환="">을 읽고 있는데 원래 어려운 책이라 그렇지 문장은 편하게 읽힌다.

2006년 한참 한미FTA 이야기가 나오고, 이해영의 <낯선 식민지, 한미FTA>가 출간되고, 우석훈의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가 나오고, 그린비 출판사에서 <국민보고서>가 나오기도 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각자는 맡은 부분이 달랐는데, 이해영은 한미 FTA의 경제적 편익에 대해, 우석훈은 한미 FTA 협상에서 각 부처간의 협상이 왜 자꾸 엎어지는 지에 대해 말했다. 그리고 책의 제목대로 <투자자-국가 직접="" 소송제="">의 저자 홍기빈은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중심으로 이야기한다.

홍기빈의 관점은 잘 아는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네오-그람시주의자인 로버트 콕스, 스티븐 길 등과 연동되는 ‘지구정치경제Global Political Economy:GPE의 관점을 취한다. 그들의 이론적 관점을 간략히 말하자면, 사회적 관계로부터 역사적으로 눈덩이를 굴리듯 그 안의 경합들이 확장되어 세계 질서까지 상승하는 관점을 함께 다루는 관점이라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FTA나 WTO를 단순히 경제적 문제로 보는 것도 아니고, 정치적 문제적으로 보는 것도 아니고, 제도로 보는 것도 아니다. 그것들을 함께 연동해서 어떤 역사적 구조에서 등장하는지를 살피는 것들이 그들의 작업이다. 단순히 “시장이 원래 그래“식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이건 좌우파 공히 그럴 때가 많다). 거기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말해주는 것이 이 관점의 장점이다.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에서 가장 눈여겨 볼 표현은 ‘상인법 전통‘이다. 우리는 ‘법’하면 국가의 입법부(의회)에 의해 만들어지고, 국제법은 그러한 국가들 간의 법 체계 간 조율을 통해 형성된다고 생각한다. 국제공법 시스템은 예컨대 거래에 대한 국가간의 거래가 맞다. 하지만 상인법 전통은 다르다. 이는 애당초 상인들간의 분쟁을 ‘신속’하게 조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중재재판소’에서 이루어지고 국민국가의 입법절차 따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개별 상인들의 이익 조정이고 ‘쇼부’이다. 그리고 그러한 상인법을 뒷받침 하는 관념은 ‘소유권’에 대한 절대적 권리부여다. 개개인의 ‘이익’은 누구에게도 침해당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 책의 가장 탁월한 점은 그러한 ‘상인법’에 의해 ‘투자자-국가 소송제’가 작동된다는 점을 명료하게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국제 중재재판소의 목적 자체가 투자자의 이익이나 잠재적 이익에 대한 평가로 되어있기 때문에 국가의 ‘공공성’에 대한 방어 따위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FTA에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가 추가되면 곧바로 한국의 모든 투자자의 이익에 ‘잠재적’으로라도 영향을 끼치는 대부분의 정책들이 중재재판소로 올라갈 수 있다. 요컨대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는 투자자들의 최소 이익을 보전하기 위한 ‘방패’가 아니라 그들의 ‘창’이 된다는 것이다. NAFTA 덕택에 벌어진 멕시코의 환경 정책에 대한 메탈클래드 사의 분쟁, 캐나다와 마이어스 사의 사례, 마지막으로 UPS가 캐나다를 재소했던 사례들은, 한미FTA도 ‘창’이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참고로 한미FTA 또한 NAFTA PLUS로 진행될 뻔 했었다. 물론 지금 한미FTA는 2007년 협상이 끝난 상태이고, 투자자-국가 소송제는 합의 안에 포함되었다. 지금은 바뀐 오바마 정부의 입장 선회와, 몇 가지 난국 때문에 좀 멈춰있는 상태인데. 조만간 미국 정부는 자동차 분야에 대한 관세를 집요하게 공격할 것이고 한국은 협상판에서 투자자-국가 소송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수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여전히 값어치가 있다. 아직도 이야기가 끝난 것은 아니니까. 정권이 바뀌고 정신이 없어졌지만, 그 와중에 외려 ‘뒤’에서 더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잖나. 그리고 호주도 FTA를 중지시킨 경험이 있잖나. 이 책을 잡으면 눈이 잠시라도 번쩍한다. 근데 꼭 이런 책은 안 팔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