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어디스와 감정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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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3 – [헨드릭스의 책읽기] – 감정 노동, 비물질 노동, 젠더위계

제주도 여행길, 이스타 항공의 저가 항공을 탔다. 부대에 있을 때 한성항공과 제주항공 정도를 기억하고 있었는데, 2009년 1월에 김포-제주간 첫 취항을 했다고 하니 내가 제대 준비에 여념이 없는 동안 취항하고 다녀 왔나보다. 어쨌거나 아담한 B-737 항공기에 탑승을 하고 제주도까지 향하는 동안 내가 관찰한 것은 스튜어디스였다. 올 초 굉장히 충격적으로 읽었던 앨리 러셀 혹실드의 『감정노동』에서 저자가 자신의 연구의 참여자로 했던 집단이 바로 이 스튜어디스였기도 했기 때문이다.

혹실드의 이야기를 간단히 정리하자면, 대다수의 스튜어디스 등의 ‘여성 직군’에 있는 직업에서 상시적으로 벌어지는 ‘감정 노동’은 크게 보면 두 양상이다. 하나는 객관적으로 고객의 요구customer’s needs에 맞추기 위하여 매뉴얼대로 고객을 상대한다. 하지만 늘 상 사람이 웃는 낯으로 사람을 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두 번째 단계로 자신에게 가장 좋았던 기억을 계속적으로 상기하면서 즐거운 상황이라고 자신을 연극무대에 던져놓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도식적인 두 단계로 서비스 업종에서 ‘감정 노동’을 수행한다 하여 반드시 그것들이 ‘성공적’일 수는 없는 일이다. 압도적 다수의 ‘감정 노동’의 수행자는 여성들이고, 예컨대 몸의 컨디션에 따라 그 날은 도저히 인상을 피기도 힘든 날이 있을 수 있다. 그러한 상태에서 감정 노동을 수행하다보면 소진(쇠진)burnt-out 상태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어떻게 감정 노동을 재생산할까? ‘감정 노동’이 원활하게 수행되지 않는 날, 항공 업체는 그녀들을 어떻게 대했을까? 그 날에 대해서 휴가를 주거나, 그러한 수행 실패에 대해 관용tolerance을 베풀었을까?

물론 아니었다. 항공 업체들은 그럴 때 ‘정리 해고’와 ‘노조 파괴’ 등의 수단을 썼다. 그리고 상시적인 직원들의 ‘직무수행평가’를 도입했다. 일에 대한 긴장도를 높이고 ‘안정성’을 허물었다는 것이 혹실드의 주장이다. 왜냐하면 위에 언급한 ‘정리 해고’와 ‘노조 파괴’ 등의 수단으로 ‘유연화된 노동’을 만들면서, 계속적으로 노동시장에서의 ‘산업 예비군’으로서의 스튜어디스 지망생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어차피 “예쁘고 싹싹한 젊은 여자들”이 많기 때문에 소진된 고참 스튜어디스는 괜스레 노조나 만들라고 하고 일에 있어 ‘택택’대기나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조종사들은 파업했지만 스튜어디스들은 잘 파업하지 못했다는 것. 전통적인 여성노동시장에서의 문제들을 혹실드는 그녀들의 구체적인 경험과 엮어 잘 설명한다.

이스타 항공의 스튜어디스들은 전통적인 업무는 당연히 수행했다. 캐비넷이 제대로 닫혔는지를 확인하고, 음료수를 서빙하고, 진상 손님들의 비위를 맞추고, 안전 띠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손님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웃는 낯’으로 제지했다. 어린 아이가 울면 가서 어르기도 한다. 모든 일은 몇 십 초 안에 벌어진다. ‘긴박함’과 ‘여유’가 공존한다. 심지어 그 외에도 ‘엔터테이너’ 업무도 수행했다. 제주로 가는 50여 분의 비행동안 그들은 ‘게임’을 진행했다. “가위 바위 보” 게임을 통해 상품권을 주는 행사였다. 게임을 진행하는 동안, 마치 시내 어느 뷰티 샵 근처에서 내레이터 모델들이 보여주는 표정을 그녀들은 지었다. 몇 가지 정해진 손동작과 몸동작으로 흥을 돋우고 승객들의 관심을 유발한다.


제주도에서 돌아오는 길, 아시아나를 탔다. 서울에 비가 너무 많이 와 2시간가량 연착된 항공기였기 때문에 사람들의 ‘짜증’이라는 변수 하나가 추가되었다. 돌아가는 목적지가 김포 공항이었기 때문에 특별한 ‘이벤트’는 존재하지 않아 변수 하나가 삭제되었다.

먼저 비행기가 출발하기 전 40대로 보이는 남자 승객하나가 ‘신문’을 갖다달라고 요구한다. 탑승구 쪽에 신문이 없었던 것을 볼 때 정당한 요구일 수 있다. 그 남자는 “경향신문”을 달라고 한다. 내 옆에 위치한 스튜어디스는 중앙의 부스로 가서 신문 하나를 가지고 온다. ‘한국경제’였다. 그 남자는 화를 낸다. “경향신문 없어요?” 스튜어디스는 대답한다. “네, 지금 경향신문은 없습니다. 다른 걸로 갔다 드릴까요?” “네, 그러면 한겨레로 갖다 주세요. 난 조중동 안 볼라고 하는 건데?” 그 남자의 일행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낄낄댄다. 스튜어디스는 다시 부스로 가서 ‘동아일보’를 가지고 온다. “아놔. 조중동 안 볼라고 한 건데.” 스튜어디스는 뭐라고 뭐라고 그 남자에게 친절하게 설명한다. 사실 21일 신문을 발행한 곳은 ‘동아일보’와 ‘한국경제’ 정도였다. 다른 신문을 구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 역시 그 남자의 책임은 아니다. 있으면 달라는 말 정도였을 테니까. 쩔쩔매는 사람이 스튜어디스였을 뿐.

20대 중반의 그리 높은 직위는 아닌 것으로 추정되는 스튜어디스는 곧 이어 평정을 찾는다. 그리고 ‘기본 업무’인 캐비닛 상태 살피기와, 아이 어르기, 안전 띠 체크, 음료수 서빙 등을 수행한다.

나는 어쩌다 스튜어디스 석 옆에 앉게 되었다. 이륙 직전 그녀는 간신히 내 옆에 위치한 그녀의 자리에 앉는다. 비행을 알 만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륙하는 과정은 늘 상시적인 위험이 존재하기 때문에. 자신의 자리를 잘 지키고 안전띠를 착용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스튜어디스는 기내의 상황에 따라서 당장이라도 뛰어갈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었다. 어쨌거나 상황은 곧 정리되고 그녀는 항공기가 활주로로 들어서 이륙하는 과정까지 앉아있을 수 있었다. 그 때 또 하나를 발견했는데, 그녀가 이륙시에 보여주는 ‘표정’이다. 그녀는 정말 ‘프로필 사진’을 찍는 얼굴 표정과 포즈로 앉아 있었다. 누가 봐도 “아시아나의 얼굴이다”라고 할 표정이었다. 그녀를 바라보는 모든 시선은 가장 ‘안전’과 직결되는 그 순간에도 작동하고 있었고, 그녀는 그에 맞춰서 자신을 훈육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악천후 덕택에 터뷸런스(난기류)가 발생하여 음료수 서빙이 종료되고, 또 한바탕 승객들의 푸념이 이어진다. 고참 스튜어디스가 죄송하다는 멘트를 기내에 전달하지만 잘 수그러들지는 않고, “아, 이거 뭐 이래?”하는 소리가 잠시 나온다.

좀 지나 김포 공항에 도착했고, 몸은 분명 편안한 여행이었는데, 맘은 복잡해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