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깡패같은 애인 (2010)

내 깡패 같은 애인
감독 김광식 (2010 / 한국)
출연 박중훈,정유미
상세보기
내 깡패 같은 애인 (2disc)10점
김광식 감독, 박중훈 외 출연/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2009/06/22 – [헨드릭스의 문화읽기/영화를 보다] – 똥파리 (2009) – ‘어쩌라고 씨발냄아’의 세계를 알아?

2010/09/06 – [헨드릭스의 문화읽기/문화연구의 시선] – [레디앙 – 진보, 야!] 면목동 중딩, 싸움을 못한다는 것의 의미?

2010/04/12 – [생각하기/가져온 글들] – [레디앙] 양아치와 진보정당

‘욕’에 대해서 어떻게들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대학교 4년을 다니는 동안 욕을 안 하고 산 적이 있었다. 뭐 여러가지 이유였다. 고등학교를 남자들과 다니다보니 좀 욕이 늘었다가, 대학에서 여자들과 또 함께 지내려다보니 ‘상스런’ 말들은 좀 자제하게 되었고, 또 후배와 고등학교와 다른 방법으로 관계를 맺고, 선배들과도 그 비슷하게 가다보니 욕을 안 하게 되었다. 덕택에 동네 친구들과 만나는 자리에서의 언어가 한 동안 익숙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가방끈 긴’ 체를 하느라 가장 정제된 세련된 말을 하느라 분주했고, 나중에는 아예 욕의 구사력이 좀 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가 육군 3사관 학교에서 입을 다시 ‘튜닝’했고 그 이후로는 사실 욕이나 상스런 말들 – 내 표현으로는 저잣거리 표준어 -이 더 익숙해진 편이다.

어쨌거나 그 이후 공군 장교라는 조금은 ‘상위 계급’이 모여있는 공간에 있었고, 욕을 좀 덜쓰게는 되었으나 내게 익숙한 언어는 부사관들이 구사하는 욕이었다. “씨발놈” 정도에 충격받으면 그 언어는 완전히 팔딱팔딱 뛰는 도미에게 겨누는 요리사의 사시미칼 같은 느낌일 것이다. 지금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가장 ‘먹물’스러운 언어와 가장 ‘저잣거리’ 스타일인 언어를 이중 언어bilingual처럼 구사하는 것이다. 그냥 욕이라고 열받을 게 아니라 그 맥락에 따라 잘 읽을 지어다. “잘 사냐, 씨발 년아!”의 정감어림에 대해서 잠시 생각. 제대 이후 ‘또 하나의 언어’를 배우고 있는데, 이 세 가지 언어가 늘 머릿 속에서 맴맴돈다. 나는 아직 3중 언어 구사자는 아닌 것 같다.

몇 달 전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를 보면서 든 생각이 있었는데, 지금 게임방에서 열심히 아이온을 하고, 당구장에서 마쎄이를 찍을 것만 같은 친구 J가 40살이 되었을 때의 모습이었다. 성질도 급하고 주먹도 생각보다 빨리나가는 경우, 그의 40살은? 물론 J정도면 깡패는 아니었는데, 어렸을 적 ‘조직’에 들어가네 어쩌네 했던 H나 P같은 녀석들을 떠올릴 경우 <똥파리>의 풍경이 그리 낯설 것 같지만은 않았다. 하여간.

<내 깡패같은="" 애인="">을 본다. 늘 정유미가 나오는 영화는 <폴라로이드 작동법="">부터 열심히 챙겨보는 편인데, 요 몇년간 홍상수 영화에서 찌질한 좌파 먹물들의 가면을 벗겨주었던 여성들, 예를 들면 고현정, 엄지원, 예지원 같은 역할에다가 조금 또 다른 매력을 더 보태고 있는 정유미는 늘 내게 매력적인 배우다. 박중훈이 나온 영화는 <라디오 스타=""> 이후 한 4년 만인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에는 이제 박중훈은 그냥 동네 양아치가 철들은 상태로 계속 나와도 좋을 것만 같다. 그의 ‘마쎄이’를 피우는 모습을 보라. ‘좆 같은 세상’이라고 샤우팅을 외칠 것 같은 박중훈과, 그 옆에서 “왜 그렇게 말을 해요?”하면서 뚫어져라 쳐다볼 것 같은 정유미가 보여주는 내러티브는 그 자체만으로 어떤 로맨틱 코미디와 전형적인 누아르의 문법을 따라가는 것 같다. 보다보면 웬지 <똥파리> 같은 결론이 날 것 같기도 하고, 물론 정유미와, 양익준이 지키려던 누나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리고 그 사이에 ‘신자유주의’ 대한민국의 부조리를 박중훈의 입으로 되뇌게 하는 것도 사실은 조금 식상하기도 하다. “요새 취직하기도 힘들다는데, 불황 아니냐. 불황.
우리 나라 백수 애들은 착혀. 테레비에서 보니까 거 프랑스 백수 애들은 일자리 달라고 다 때려부수고
개 지랄을 떨던데, 우리나라 백수 애들은 다 지탓인 줄 알아요. 지가 못나서 그런 줄 알고.
하, 새끼들. 착한 건지 멍청한건지. 다 정부가 못해서 그런 건데.
야, 넌. 너 욕하고 그러지 마. 취직 안 된다고. 니 탓이 아니니까.
당당하게 살어. 힘내 씨발.
당신 뭐라는 거임?
정유미는 처절한 ‘불확실의 시대’의 ‘불안정 노동’과 ‘청년 실업’에 대해 몸을 보여준다. 정유미가 손담비의 노래를 부를 때의 페이소스는 확실히 남다르다. 정유미의 씩씩함과 순수함이 강하게 몸으로 발산될 수록 마음의 짠함은 더 커지는 듯도 하고.
이러한 면접이 비단 여기 뿐일까?
어제 정리하고 있었던 세넷의 책에도 나오지만, 이 불확실성의 시대에 가장 확실한 무기는 어쩌면 ‘오프라인의 인맥-네트워크’라고 말할 수 있는데. 지방 4년제 졸업. 지방 대학원 졸업의 ‘여자’가 아무리 토익 점수가 상위 3%라고 한들, 경력 뿐만 아니라 몸까지 팔아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그 구현의 주체가 정유미일 따름이다. 우리는 덕택에 몰입할 따름이고. 영화가 막판에 우리에게 주는 결론을 보면서, 한국에서 여러 사람을 살리기 위한 감독의 결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작년 PIFF에서 봤었던 <특별시 사람들="">과도 비슷한 느낌. 어쨌거나 영화를 보고 난 다시 좀 어떻게든 어떻게든 산다는 것. 그리고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이 ‘내 탓’의 정치학이 아니라, 누구의 탓도 아니라는 주장을 지지하게 되면서 영화를 닫는다. 감독은 결국 따뜻한 사람이구나 싶기도 하고. 그나저나 계속 배운 녀자와 배운 남자의 최고의 선택지는 포말한 수트를 입은 직장인 밖에 없는 건가??
배운 녀자의 커리어우먼 패스?
</p>
어쨌거나 나는 가방끈 긴 사람들 바깥의 언어가 좋을 뿐이고. 그 톤으로 어떻게 하면 내가 배우는 것들을 번역할 수 있을까가 고민이긴 하다. 단순히 ‘쉬워지는 것’ 만이 해답은 아닌 것 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