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와 함께 세상을 뒤집어 엎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책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10점
S.D.알린스키 지음, 박순성 외 옮김/아르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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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는 내 몫이 아니다. 이 책은 순전히 자신의 ‘현장’이 있는 활동가 혹은 조직가 또는 혁명가를 위한 책이다.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의 ‘규칙’은 규칙이라기보다 ‘현장’에 발을 붙이고 뭔가를 할 때의 피해야할 것들에 대한 점검이다. 규칙을 지키지 않고 나름의 준거를 통해서 뭔가 할 수 있다면 그냥 하면 된다.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출간 시점(1971년)을 생각할 때 지금에서는 전혀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지금 어떤 ‘현장’을 가지고 있는 활동가이거나 혁명가도 아니기 때문에 이 책에 대한 구체적 평가를 할 수 없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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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살, 21살 때 학생회 서가에 굴러다니던 책중에는 <대중운동론> 따위의 책들이 있었다. 그 책들에는 이런 문구들이 씌여 있었다. ‘민중에 대한 사랑’, ‘조국통일에 대한 결의’ 등등. 물론 거기에 나온 실천 ‘전략’들은 굉장히 ‘현실적’으로 보였던 것 같지만. 그 밑바닥에 있는 ‘원리’들은 늘 특정한 목적을 향하고 있었다. 물론 목적들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 목적들은 활동가가 파악한 거시적/미시적 상황 판단을 통해서 제출되어야 할 것들이 아닐까. 그리고 자신의 그룹의 목적이라 한 들 그 역시도 그 내부의 끊임없는 토론과 경합을 통해 제출되어야 할 것들이 아닐까. 어쨌거나 내 선배들 중 많은 경우는 선배들에게서 ‘운동론’을 학습받곤 했는데, 그런 ‘운동론’을 학습받은 선배들이 내게 했던 말 중에 좀 멋있는 것들이 있기는 했다. 예컨대 그들은 내 ‘인격’에 대한 결함을 지적하지 않았다. “이 나쁜 새끼야.” 혹은 “이 개념 없는 새끼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넌 왜 그렇게 멍청하게 하냐. 운동가란 말이야!” 하는 식이었다. 내가 마치 애초부터 가지고 있었을 내생적인 지점을 통해서 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활동가의 단계의 어느 지점에서 나를 바라보는 것이 신기했다. 물론 지금 어떤 ‘현장’과 현장 안의 ‘억눌린 자들’과의 활동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나는 그런 ‘전략적 판단’ 혹은 ‘단계론’을 잘 쓰지는 않는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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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도시산업선교회’ 등의 흐름들은 지속적으로 빈민, 노동자들의 문제를 제기했고, 그러한 흐름들은 크리스찬아카데미(현 대화문화아카데미) 등의 ‘자유주의적 노동운동’을 경유하여 1980년대의 쏟아지는 ‘학출 노동자들’의 흐름과 함께 노동운동의 르네상스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70년대의 김혜경, 최순영 같은 선수들이 바로 크리스찬아카데미의 선수였다. 분명 그들은 급진주의자들이었지만, 그들의 급진주의는 전통적인 ‘자유주의’도 아니고 ‘맑스주의’도 아니고 구체적 현실에서 도출되는 것이었다. 현장에서 도출되는 이념들. 물론 여기에 대해서 ‘사회 구조’에 대한 성찰의 문제와 결부하여 유아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 그러한 주장은 활동가들에게는 크게 유의미해보이지는 않는다. 그들이 70년대에 읽었던 책이 바로 알린스키의 책들이다. 오바마가 시카고에 빈민 운동하러 들어가 매번 언급했던 것도 알린스키였다.

(알린 스키에 대한 자세한 해석은 Who Was Saul Alinsky 참조)

“이념이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으면 현장을 통해 이론을 구성하면 되는 거다.” 맑스의 이론보다 레닌의 이론, 혹은 그람시의 이론이 거대 이론으로 잘 가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싸우는 사람의 글쓰기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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꽂혔던 몇 구절.

“우리의 대학 캠퍼스 안팎에 있는 행동가들과 급진주의자들, 변화를 헌신하고 있는 바로 그러한 사람들은 완전한 방향전환을 해야만 한다. 아주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 우리의 행동가들과 급진주의자들은 우리 중산계급 사회의 산물들이자 동시에 반란자들이다. 모든 반란자들은 그들 사회의 권력계급들을 공격해야만 한다. 우리의 반란자들은 중산계급의 가치와 생활방식을 부례한 태도로 거부했다. 그들은 중산계급을 물질주의적이고 퇴폐적이고 부르주아적이고 이미 타락하였고 제국주의적이고 호전적이고 야만적이고 부도덕하다고 비난했다. 그들은 옳다. 그러나 변화를 위한 권력을 세우려고 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 시작해야만 한다. 권력과 일반 대중은 거대한 중산계급 다수자들에게 속해 있다. 그러므로 행동가가 자신의 과거를 자신의 뒤편에 던져 버리는 것은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제멋대로의 행동이다. 그 대신에 그는 자신의 중산계급 경험이 지닌,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를 깨달아야만 한다.“(p.265)

갑자기 ‘민중’이 되어버렸다고 믿었던 486들. 그리고 여전히 지금도 순식간에 자신의 몸이 ‘민중’이, ‘프롤레타리아트’가 ‘이미’ 되어버렸다고 믿고 있는 대학의 활동가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이다. 이념의 급진성은 땅과 딛지 않으면 하늘의 관념론이 되고야 만다.

“혁명의 본질이 이원주의적 관점에서 이해되고 나면, 우리는 혁명에 대한 단일 관점에서 벗어나서 혁명을 그것과 분리할 수 없는 반혁명과 짝지어진 것으로 보게 된다. 우리가 불가피한 반혁명을 받아들이고 예상할 수 있게 되면, 혁명과 반혁명의 역사적 패턴을 이보전진 일보후퇴라는 전통적인 더딘 방식에서부터 후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pp.58-59)

조직가는 지역의 설화들, 일상사들, 가치, 관용어들을 배운다. 그는 조그마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는 지역문화에 맞지 않은 어구들을 쓰지 않으려고 한다. ‘백인 인종주의자’, ‘나치 돼지새끼’, ‘망할 놈’과 같은 너절한 단어들은 구토를 일으킬 만한 말들이고, 그런 단어들을 사용하는 것은 지역 주민들의 부정적 경험 속에 들어 있기 때문에 나쁜 결과만 가져올 것이다. 지역 주민들은 그런 단어들을 내뱉는 사람을 ‘그런 종류의 까다로운 사람들 중의 하나’로 인식하고 더 이상 그와 소통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조직가는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조직가는 아는 체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그는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pp.122-123)

# 뱀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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