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좌파 인텔리 남자의 연애 판타지 – 그 남자, 영풍문고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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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풍문고에 간다. 너무나 익숙하게 종각역에서 이어지는 지하 입구를 통해 서점에 진입한다. 정면 왼쪽에서 마주치는 것은 잡지칸. <문화과학>, <녹색평론>, <진보평론> 등의 계간지 철이 되었을 때 잠시 들른다. 그리고 월요일이나 화요일쯤에 갈 경우 <한겨레21>과 <시사In>, 그리고 가끔 가다가 <위클리 경향="">을 훑어본다. 보통 3가지 계간지 중 한 가지 정도는 구독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생활을 오래하다보면 돈이 많을리 없기 때문에 계간지를 사지는 않는다. <한겨레21>이나 <시사In> 정도를 산다.

그렇다고 좌파 인텔리 남자라고 하여 책만 읽는 건 아니다. 연애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더 강한 욕망이 침잠해 있을 수 있다(물론 그의 성적 지향에 따라 좀 다른 코드를 내포할 수 있지만, 편의상 이성애자라고 가정하자.). ‘착한 공대’남자가 아니고, 나름의 ‘댄디즘’에 빠져있을 ‘인문사회’계통 전공자 혹은 졸업자인 그는 자신이 어떤 책을 보고 있을지를 지켜볼 시선을 의식하면서 책을 만지작 거리고 있는 것이다. 이 생활을 오래하다보면 ‘비분강개’도 사라지게 된다. 예컨대 어떤 기사나, 논문을 읽으면서 사회적 현실에 분개하는 태도 따위 말이다. 인류학적인 태도가 습관화되어서 일 수도 있지만, 사실 그런 것보다는 비분강개하는 게 ‘촌스럽다’고 생각해서 이다.

보통 잡지 칸에 있는 여성들에 대해서는 ‘허당’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할 필요가 있겠다. 단순히 잡지를 본다고 해서 허당이 아니다. 여성지를 보더라도 를 집는 여성과 를 훑어보는 여자들과 을 집는 여자들을 어떻게 같다고 말할 수 있을까? 보통 서점 15년차 쯤 되는 좌파 인텔리 남자는 후자 그룹에 있는 잡지 보는 여자들을 주로 응시하곤 한다. 마찬가지로 내 분류가 정확하다면 , 그리고 을 읽는 남자의 감수성과 지적 능력, 그리고 취향은 전혀 다르다.

아, 그 외에도 몇 가지 건축이나 디자인, 그리고 미술 관련 계통에서 엣지 있는 잡지들을 읽고 있는 여성들에 주목한다. 하지만 그러한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원래 마켓 자체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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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칸 옆 칸은 예술 칸, 잡지 칸 맞은 편에는 문학 코너가 위치해 있다. 이 쯤에서 잠시 고민할 수가 있다. 그건 어떤 책에 대한 갈증이라기 보다 ‘문학도 여성’과 ‘예술하는 여자’ 취향 사이에서의 선호에 대한 갈등이다. 나 같은 경우는 먼저 문학칸에 간다. 신간 소설과 신간 비소설 칸에 있는 여자들을 한 번 훑어본다. 하지만 주로 머무르는 쪽은 <열린책들>의 책들이 모여있는 쪽이나, 국내 작가 중 좀 ‘개념’ 잡힌 저자들의 책들이 모여있는 ‘유명 작가’ 쪽이다. 먼저 <열린책들>의 책을 집는 여성들의 경우 파트리크 쥐스킨트를 좋아할 여성들은 좀 오묘한 매력이 있을 것 같고, 아멜리 노통의 책을 잡는 여성들은 페미닌한 자아가 강하면서 파멸을 손쉽게 선포할 지 모른다며 떨면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요새 같아선 목수정의 신간 <야성의 사랑학=""> 정도를 집을 여성들에게 시선이 꽂힐 수도 있겠다.

그러다가 잠시 ‘영화칸’ 정도를 들른다. 거기서 두 부류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한나래>, <커뮤니케이션북스>, <현실문화연구> 등에서 나온 책을 집는 사람은 전공자로, 그리고 <씨네21>에서 나오는 김혜리의 인터뷰집 등을 읽고 있는 여성들은 영화를 좋아하는 ‘영화 애호가’ 정도로 말이다. 미술 칸에서는 작가의 평전 정도를 보게 되는데, 그 중 마그리트나 클림트, 고흐, 램브란트 관련된 책을 읽고 있는 ‘초심자’들과 더 디테일한 어떤 범주의 책을 훑어보는 ‘애호가’들을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음악 칸에는 주로 음대생들과 교회반주자, 또는 남자들의 경우 기타 교본을 사러온 ‘홍대 키드’ 정도가 있으므로 여기서 오래 머물지는 않는다. 여기온 음대생들은 필요한 교본만 집어서 후다닥 가버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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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와 문학, 그리고 예술 칸은 어쩌면 ‘에피타이저’ 정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메인 메뉴가 남아있다. 그것은 ‘인문/사회’ 칸이다. 영풍문고 종각점의 ‘인문/사회’ 칸은 조금 독특한 구성을 가지고 있다. 교보 문고에서는 ‘인문학’과 ‘사회과학’이 정확하게 분류된다. ‘인문학’을 읽고 있는 사람들의 딜레탕트 같은 마음과 다른 한 편에서 의고적인 마음이 교차하고 있을 때, ‘사회과학’칸에는 호흡이 가쁘고 눈이 매서우며 날카로운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다. 그에 반해 영풍문고는 정치학(국방, 군사, 법학, 행정학 등 포함)을 제외한 나머지 사회과학들도 ‘인문/사회’ 칸에 모아놓았다.

여기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그래서 ‘하이브리드’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좌파 인텔리 남자들은 보통 정치학책보다는 사회학을, 그리고 종종은 이론적 쟁점에 있는 철학을. 아니면 요즘 한 참 핫 한 트렌디한 좌파 철학자의 책을 뒤지게 된다. 여기서는 종종 여성들에게 넋을 잃고 있지 않을 때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지젝, 고진, 바디우 등에 대한 팬심이 있는 좌파 인텔리들은 신간이 나오면 보통 ‘하악’거리기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인문-좌파 인텔리 남자와 사회과학-좌파 인텔리 남자가 구분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앞의 사례는 인문-좌파 인텔리 남자의 경우다. 나 같은 사회과학-좌파 인텔리 남자는 늘 ‘분석’에 더 꽂혀 있기 때문에 개념적으로 명료한 책들에 더 먼저 꽂혀서 사회학 책들을 먼저보고, 마르크스주의 책들을 좀 살펴보고, 그와 관련된 최근 논의를 조금 보고, 역사책을 보고, 철학책을 잠깐 보는 수준이 될 것이다. 종종 재미있는 책들이 인문학, 문화사, 사회사 쪽에서 신간으로 나오는 데 이러한 책들은 금방 절판될 수 있기 때문에 정말로 주머니 사정에 여유가 없지 않는 이상 사둔다. 예컨대 내가 하악 거리는 책은 리차드 세넷이나 푸코, 홍기빈, 그람시 혹은 문화연구자들의 책들이다. 인류학적 베이스가 있어야 읽는다.

잠깐의 ‘하악거림’이 멎었을 때 그제서야 좌파 인텔리들은 주위의 ‘여성’들을 쳐다본다. 보통 사회학, 마르크스주의, 여성학 쪽에 있는 여성들을 ‘스마트’ 한 여성이라고 생각하는데, 3월 초나 9월 초에는 그러한 시선도 잠깐 멈추는 편이다. ‘교재’를 사러온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10년차가 넘는 좌파 인텔리 남자들은 보통 특별한 취향에 있어서의 ‘편향’을 가지지는 않는다. 지젝을 잡고 있는 여성이 좀 재미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다가, ‘주이상스’의 과잉을 떠올리며 시선을 거두기도 한다.  옆에 있는 ‘문학비평’ 칸의 테리 이글턴의 책을 들고 읽는 척하다가, 인류학 책을 읽고 있는 여성을 보면서 그녀가 잡고 있는 책이 마빈 해리스의 책임을 깨닫고, <문화의 수수께끼=""> 따위를 훑어보게 된다. 혹은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나 <문명의 붕괴=""> 같은 생태학과 결합된 책들을 집어볼 수도 있는데, 이상하게 이런 종류의 책은 ‘감수성’이 없어보여 내려 놓는다. 그럴 때는 오히려 맞은 편에 있는 ‘교양사상’ 편에서 지젝의 정도를 집어주는 게 안전하다. 하지만 그녀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기색이다. 아무래도 정신분석학을 읽는 인간을 ‘미친놈’ 취급하는지 모르겠다. 다시 이럴 때는 ‘경험적 연구’의 책들을 읽을 때다. 루스 베네딕트의 <문화의 패턴=""> 정도를 집는 게 좋을 수도 있겠다. 아니면 폴 윌리스 정도를 잡으면서 좌파 ‘문화연구자’임을 밝혀주는 방법도 있겠다. 아, 머리가 복잡해지니 자신 있는 마르크스주의 쪽으로 이동한다.

요즘 대세라는 ‘레닌’을 다시금 읽어볼 때다. 그런데 곧 바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집으면 너무나 운동권 스러워 보이기 때문에, 요 얼마 전 출간 되었던 <민주주의는 죽었는가="">부터 슬슬 건들면서 정치철학에 엣지 있는 남성임을 표방하자. 그녀는 그람시의 <옥중수고>를 읽고 있다. 이럴 때는 간지나게 곧 바로 알튀세의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정도를 집으면 안전할 것 같다. 목졸라서 와이프 죽이지 않을 것 같은 점잖은 표정이 중요하다. 좀 더 ‘정치적으로 올바른’ 말투를 습관화 할 필요가 있다. 늘 <안티고네>의 윤리성에 대해 고민했던 것처럼.

자 이제 광교 쪽 출구쪽으로 나와 청계천 쪽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담배 한 대 피울 시간이다. 1시간 가는 건 금방이다. 아까 보았던 여자들 중 누구의 얼굴도 떠오르지 않는다. 누군가를 잡고 ‘야부리’를 막 털고 싶었지만 오늘도 실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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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인문/사회’ 칸에서 벌어진 일은 다 개드립이다. 실제로 이래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정말 가뭄에 콩 나듯 ‘엣지있는’ 인문학/사회과학 책들을 집는 여성들은 주로 30대 중반의 대학원 박사과정으로 보이는 언니들이다. 이제 겨우 서점 15년차에 이르는 좌파 인텔리 남자는 늘 20대 중반의 좌파 인텔리 여자를 기다리지만, 실제로 그러한 매칭이 성사된 적은 별로 없다. 거기다가 ‘외모 지상주의’를 온 몸과 마음으로 영접하고 있는 ‘댄디즘’에 빠진 좌파 인텔리 남자의 성에 차는 여자는 ‘불가능한’, ‘늘 미끄러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서점에 가는 좌파 인텔리 남자는 이러한 판타지를 안고 간다. 마치 내가 없던 시간에는 ‘필연적 우연’, ‘우연적 필연’의 매칭이 늘 성사되었다는 것처럼.

# 뱀다리

이 글은 오직 영풍문고 종각점에 대한 내 팬심을 담았을 뿐,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평가를 하자는 목적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