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경제학자의 마지막 고백 – 갤브레이스, 경제의 진실

경제의 진실6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지음, 이해준 옮김/지식의날개(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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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Kenneth Galbraith – Wikipedia

20세기에 마르크스주의자들을 제외하면 거의 가장 ‘역사적’인 접근, 즉 경제사적 접근과 통찰력 있는 접근을 했던 미국의 경제학자가 갤브레이스였을 것 같다. 그의 마지막 저작인 <갤브레이스에게 듣는="" 경제의="" 진실="">을 읽었다. 책은 가볍고 딱 정확하게 100페이지이고, 글자의 행간과 줄간격은 넓다. 즉 1시간 정도 가는 버스로의 이동이 있으면 왕복이면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학적 지식이 별로 없어도 읽을 수 있다. 정말 고등학교 졸업한 수준이면 이해할 수 있게 글을 쓴다는 것. ‘내공’에서 묻어나오는 것일 수밖에 없을 거다. 이 책은 ‘고백’이다. 자신이 겪었던 일들에 대한 ‘진심’이 여기 저기서 묻어 난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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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브레이스가 가장 강하게 성토하는 것은 ‘사기들’에 대한 것들이다. ‘신화’ 정도로 번역했으면 온건했을 테지만, ‘사기’라고 강하게 힘주니까 선동투가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약간 투박해 보인다고 할까. 그리고 그 ‘사기’에 대한 주요 주장이 좀 ‘밍밍’하다. “현대 경제 사회에서는 기업이 엄청난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 기업의 권력이 소유자, 즉 오늘날 투자자라는 우아한 이름으로 불리는 주주에게서 경영진에게로 넘어간다는 사실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p.11). 그리고 이 대기업-경영자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여러가지 ‘사기’들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기의 일부는 1)전통적인 경제학과 그 가르침에서 생겨났고 일부는 2)경제 생활의 타성에 젖은 태도에서 나왔다. 또한 이런 사기 행위는 3)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을 강력하게 뒷받침하는데, 특히 정치적으로 힘이 있으며 부유한 자들의 이익을 명료한 견해를 바탕으로 지지한다. 그래서 이 사기 행위는 4)일상적 지식 가운데서 권위를 획득한다. 이는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꾀하는 전략이 아니라 개인 또는 집단의 이익에 가장 잘 부합하는 것을 5)자연스럽고 당당하게 표명한 결과이다“(p.18, 숫자와 밑줄은 내가).

정리하자면 고전파 경제학의 문제, 일상의 경제화, 지배계급의 경제학(부르주아 경제학), 일상적 담론의 획득(회계기법과 경리기법의 일상담론화), 공공연한 프로젝트(공공연하게 주창되는 신자유주의적 담론) 뭐 이렇게 볼 수 있겠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몇 가지 문제들을 ‘에세이’를 통해서 지적하는 게 이 책의 윤곽이라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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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통찰을 주는 부분은 이런 것으로 보인다.

1)자본주의라는 말이 ‘시장경제’라는 아름다운 말로 대치되어서 그 ‘지배’와 ‘피지배’의 갈등의 권력관계가 소거되었다.
2)소비자 주권이라는 말이 외쳐지지만 그것은 허상이다.
3)한동안 미국에서는 ‘소비’가 중요하고 가처분소득이 중요했는데, 다시 ‘생산’의 시대가 되어서 GDP 등의 지표가 개발되고 ‘소비’의 중요성이 망각되었다.
4)근로에 대해 강조하는 이데올로기가 낙오된 자들을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기제가 되고, 공공부조와 복지의 대상을 탈락자로 만든다.
5)대기업의 관료주의가 여전히 강고하다. 그 핵심에 ‘경영자 자본주의’가 있다.
6)군산복합체가 강화되고 예산에서의 비중이 높아지고 정관계의 ‘회전문 인사’등을 통해 전쟁을 원하는 군비경제로 진행하게 된다.

그런데 이것들에 대해서 분석적으로 접근해볼 필요가 있겠다. 조금 따져볼 수 있는 부분이 2)항과 5), 6)항정도가 될 것 같다. 먼저 2)항을 따져보자면. 이렇게 질문할 수 있을 것 같다.

2)”대중이 과연 ‘조종’만 당하는가?” 내가 묻는 것은 대중이 능동적이고 소비자 주권의 시대가 왔다고 이야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분명 여러가지 상징들과 고액의 모델들, 그리고 여러가지 장치들을 통하여 기업들은 자신들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조종’ 기제를 극대화하고 이를 통해 이윤을 창출한다. 그것은 분명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해석할 경우 어떤 경우에 ‘소비자 운동’이 성공적으로 어떤 분야에서 작동했었는지를 설명하지를 못한다. 구체적 사례없이 ‘소비자 주권’이 망했다 혹은 흥했다라고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물론 이 책은 ‘에세이집’이고 어떤 데이터가 뒤에 있을 수도 있고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5) 이것을 과연 ‘경영자 자본주의‘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예컨대 사모아 펀드 등으로 조성된 ‘초국적 자본’은 경영자들을 자신들의 힘으로 선임하고, 끌어내리기를 반복한다. 회사에 대한 전망들을 통해서, 구조조정에 대한 평가들이 경영자 개인은 물론, 기업 내부의 ‘경영자 관료제’를 흩어버리고 있는 것이 지금의 기업정치가 아니었던가? 물론 미국의 주요 대기업이라고 설정할 경우 이야기가 조금 달라질 수 있지만, 단순화된 아이디어가 좋은지는 모르겠다. 즉 자본의 구성을 소거한 상태에서 누가 주인인지를 따지는 것이 무의미 하다는 것이다. 금융화된 신자유주의의 메커니즘에 대해 우리는 좀 더 정교하게 볼 필요가 있다.

6) 조금 더 명료하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이 ‘군산복합체‘일 텐데. 간략히 이야기하자면, 이제 정계의 힘보다 자본의 힘이 정계를 디자인하는 방향으로 가버린 것 같다(2009/12/18 – [헨드릭스의 책읽기] – 신자유주의적 전쟁 – 피터 W. 싱어, 전쟁 대행 주식회사). 힘의 배분을 고려해야할 것이다.

물론 2), 5), 6)항에 대해 최근의 연구들이 있고 각자의 길들을 잘 가는 중이고, 후학의 몫이기도 하다. 이건 오로지 내 ‘독서 능력’ 향상을 위한 분석일 따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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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2008년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신자유주의적인 입장들이 한 번 물을 먹었을 때 아마 갤브레이스를 잠시라도 조명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이 책에도 그런 통찰은 조금 보인다. 물론 ‘너무나 일반적’이라 그 만의 주장이라고 말할 수도 없지만. 그는 케인즈주의자의 전제와 처방을 가지고 있다. “기업 체제의 실적, 특히 호황과 경기 침체가 언제 교대되고 기간은 얼마나 될지는 예측할 수 없다. 또한 그 원인과 그 다양한
파급 효과를 미리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이 글에서 미지의 것을 묘사하고 싶지는 않다. 반면에 치유할 수 있거나 혹은
피해를 입히는 행위들은 밝힐 수 있다
“(p.96). 정부의 재정정책이 취해야 할 처방이 이런 것으로 귀결된다. “경기 침체에 대해 전적으로 확실한 한 가지 구제책은 소비자 수요가 굳건하게 지속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흐름이 중단되는 현상이 바로 경기 침체다“(p.97). 결국 문제는 ‘유효 수요’가 된다. 온건하면서도 가장 확실한 효과가 있는 유효 수요. 문제는 그 ‘재원’이고 증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야 하는데 그것에 대해서 특별히 갤브레이스의 언급은 없다.

그래도 밀턴 프리드만 등의 시카고 학파들의 ‘조감도’를 이용한 신자유주의자들이 설칠 때 그나마 개념을 잡고 통시적인 접근을 할 수 있던 몇 안 되는 갤브레이스가 있었기에 미국 경제학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고 지금까지 겨우 살기라도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물론 곧 다 싹 우파 경제학이 죽을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이 늙은 경제학자의 초상은 간지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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