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낮의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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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집 앞 단골 미용실 <가위 세상="">에 머리를 깎으러 갔다. 30대 후반 정도의 아저씨와 그 보다 확실히 나이가 더 든 아내가 함께 운영하는 미용실이다. 종종 부부의 아내가 와서 컴퓨터를 하고 있을 때가 있다. 손님은 뜨문뜨문과 와글와글 딱 중간 정도인 것 같다. 아저씨는 멋쟁이다. 직업의 계통상 헤어 스타일과 코디하는 스타일의 화려함이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이고, 더불어 그가 더 멋진 이유는 기타 때문이다. 내가 그 미용실을 처음 갔던 2년 전, 아저씨는 요새 별로 재미있는 일이 없다고 했었다. 원래 여기저기서 ‘방언’이 터지기 시작하면 내 이야기를 막 늘어놓는 편이라, 대학 때 기타를 한참이고 쳤었는데 신났었다고 말했다. 아저씨가 끄덕끄덕 했었다. 그로 부터 두 달쯤 후. 그러니까 내가 그 미용실에 다니기 시작한지 2~3번 째쯤 되었을 때부터 아저씨는 “키타 치기 시작했”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div>
어느 날엔가는 G 스케일과 C 스케일을 물어보았고, 또 어느 날부터는 으레 그렇듯 스케일을 묻는 게 아니라 타브 악보를 가져와서는 “이거 겁나 힘들더라고요” 하면서 머리를 긁적거리기 시작했다. 기타를 치면서 ‘간지’가 난다는 넘버들을 건드리기 시작한 건 올해의 일이다. Eric Clapton의 을 치고, Eagles의 를 치고, 이번 주에는 와 Extreme의 를 치노라고 이야기한다. 몇 달 전 쯤 미용실에 갔을 때 너무나 황홀한 기분을 느꼈었다. 미용실에 들어갔는데, 내가 들어간 지 모르고 아저씨와 그의 아내가 함께 기타 반주와 함께 Mr. Big의 를 부르고 있는 것이었다. 폴 길버트의 기타가 엉망이 되어 표현되었다고 말할 것도 없었다. 단 한 명을 위한 노래를 부르는 탑 밴드의 보컬과, 딱 한 자리만 마련된 그러한 객석에 앉아서 노래를 듣는 보컬의 사랑하는 이. 튜닝되지 않은 기타도, 트이지 않은 답답한 목소리도 곧 잊혀졌다. 내가 들어와 한참을 쳐다본 후에야, 갑자기 부끄러운 듯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어서 오세요”하는 부부가 너무나 귀여보였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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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동대문으로 향해 글로브 하나를 샀다. 예전에 누군가가 내게 주었던 왼손잡이용 글로브가 집에서 사라진 지 10년은 된 것 같고, 나는 야구를 안 한지 10년이 되었다. 예전 같았으면 글로브를 동대문 운동장 건물에서 샀을 법한데, 야구용품 가게들은 다른 골목 쪽으로 몰려있었다. (예전부터 거기에 있었을 수도 있다.) 몇 군데 들어갔던 가게들에서 글로브 시가를 확인하고 잠깐 머리를 굴리기 시작한다. 처음 예상 가격은 10만 원이 채 되지 않았으나, 만져서 손에 딱 쥐어지는 모든 글로브는 15만 원을 상회했다. 결국 입술을 깨물면서 피를 흘렸다.
아침을 먹고 한참 지났고, 아침 먹자마자 자전거를 타서 한참 배고팠기 때문에 뭔가를 먹어야 했다. 원래 계획은 Hello APM 쪽에 있는 어디 패스트푸드 점에서 햄버거 세트나 하나 먹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까 글로브 가게를 찾으려고 헤매다가 신평화시장 쪽에서 ‘김치 칼국수’ 집을 발견한 것이다. 칼칼한 국물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 더 걷자 아줌마들이 ‘잰’ 걸음으로 식판을 들고 뛰어다니는 분식점들이 보였다. 글로브를 사자마자 5분 여를 걸어서 신평화시장 쪽으로 걸었다. ‘김치 칼국수’ 집 앞에서 잠깐 서성거리고 있었다. 다른 곳에 가서 비빔밥 같은 것을 먹을지 아니면 여기서 수제비를 먹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경상남도 ‘통영’이나 ‘진해’쯤 될 법한 사투리를 구사하는 아줌마가 들어오라고 부른다.
아줌마는 아주 정성스레 메이크업을 한 얼굴이었다. 서울에서 자란 ‘되바라지지 않은 아이’인 나는 약간 머뭇거리고 있고, 아줌마는 곧 바로 교통정리를 한다. 어느 쌍둥이 자매와 그 자매의 엄마 옆에 있는 빈 테이블로 앉으라 지시한다. “네~!” 하고 갑자기 큰 소리로 외쳐버렸다. 이는 마치 훈련소에서 소대장의 지시를 따르는 것과 같았다. 어쨌거나 앉아서 뭘 먹을까 30초 정도 고민하고 있었는데, 아줌마는 머뭇거리는 것을 보자마자 “우리집 김치 칼국수 맛있는데.”하고 ‘조언’보다는 훨씬 강한 조언을 한다. 나는 “네, 그럼 김치 칼국수 하나 주세요.”하고 말해버린다. 생각해보니 아까 먹고 싶었던 것은 ‘김치 수제비’였는데.. 아줌마 덕택에 혼이 나가버렸다.
아줌마는 순식간에 물 한 잔, 김치 한 접시, 단무지 한 접시를 내 테이블 앞에 내려놓는다. 옆의 두 쌍둥이 자매는 둘 다 싱글인듯 했으나 친구들은 다 결혼한 모냥이었다. 내 나이랑 비슷해 보였다. 뭔가 엄마는 계속 톡톡 쏘아붙이고, 그에 질세라 자매는 그에 실드를 치는 모습이었는데 무엇이 화두였는지는 확인이 되지 않았다. 그것은 그 엄마가 워낙 조용히 말했기 때문이다. 무슨 이야기하는지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식당 아줌마가 ‘척’하고 김치 칼국수를 내어놓는다. 김치 칼국수는 좀 달고 조미료 맛이 강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젓가락지를 멈추지 않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국물을 마시고 싶진 않지만 젓가락질은 계속 유인하는…
내 대각선 테이블에는 30대 중반 정도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머리 까지기 시작하고 배 나오기 시작하고, 얼굴살이 피둥피둥해진 전형적인 ‘아저씨’였다. 그 아저씨는 <스포츠 조선=""> 하나를 왼손으로 쥐고 오른손으로는 김치칼국수를 먹으려 젓가락질에 집중하고 있었다. 내가 김치 칼국수 한 그릇을 먹고 있는 동안에 주문을 했던 아저씨는, 내가 김치 칼국수를 다 먹기 전에 ‘후루룩’ 하고 나가버렸다. </div>
그 와중 굉장히 인상적인 순간이 있었다. 그건 역시 가게 아줌마의 ‘연기’였다. 주변의 ‘티켓’ 끊는 다방에서 배달 주문이 온 것이었다. 아줌마는 “어쩌죠. 낮에는 조금 늦는데.. 괜찮으시겠어요?” (…..) “한 30분 걸려요.” (……) “죄송해요.” 전화를 끊자마자 주방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냥 안 된다고 하지!” 아줌마는 한결 ‘우월한’ 표정으로 가르치듯 말한다. “이런 오입하는 년놈 가게라도 전화로는 그렇게 말하면 안되지.” 그리고 곧 바로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표정으로 가게 앞에서 서성거리는 나 같은 ‘샌님’ 손님들에게 “얼른 들어오세요. 우리 칼국수 맛있어요.” 콤보를 날린다.
남자들이 어느 날 갑자기 ‘멀티태스킹’을 요구받게 된 오늘 날, “정신없어 죽겠다”라면서 앓는 소리를 엄청나게 하고 있는데, 몸으로 한 번에 5~6가지 일을 수행하고 있는 “30년 정통 칼국수”집 아줌마는 너무나 우월하게 ‘앓는 소리’ 하는 남자들을 떡주무르듯이 주무르고 있었다. 김애란의 <침이 고인다=""> 소설에도 나오지만, 엄마는 늘 그렇게 우월한 존재들이었다. </div>
사실 늘 내가 뭔가 맥이 빠지고 기진맥진할 때 동대문의 ‘잰’ 걸음으로 악다구니로 “망할년”하고는 쓰읍하고 다시 돌아가서 야무지게 일을 해내는 아줌마들을 보려는 건 바로 그런 ‘우월함’을 보고 싶어서 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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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에 들러, ‘한국애들’과 ‘일본애들’이 뒤섞여, 거기다가 ‘중국애들’도 섞여 한 판이 벌어져 있는 거리에서 얼렁 옷 가게에서 사려고 찍어둔 것들을 집어서 도망나온다. 여기는 동대문과 마찬가지로 부산하지만, 동대문에 있는 그 ‘빠리빠리’하면서 ‘상스러운’ 아줌마들이 별로 안 보인다. 여기에는 고용된 ‘장인 정신’없는 알바들이 계속 어디에선가 버벅거리면서 매장들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것만 같다. 좀 일 좀 할만 하다 싶으면 알바는 싸우고 나가고, 그들은 박봉을 올리지 못하고, 또 박봉으로 맴돌 뿐이다. 어차피 알바를 ‘아무도 돌봐주지’ 않으므로 또 다른 현장을 찾는 것으로 자신들의 노동 서사를 만들 뿐이다. 조금만 더 그들이 엉덩이를 붙이게끔 만들어주면 될 텐데, 그것을 고민하는 고용주도 별로 없는 것 같긴 하다.
내가 간 옷장의 알바는 내가 찾아달라는 사이즈를 찾느라 10분을 헤매고, 돌아와서도 계속 동동동 발만 구른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고. 아마 그래도 책임은 알바가 져야 하는 것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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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도망쳤고, 오늘도 명동 교자 앞에는 20분 이상을 걸릴만큼 줄을 서 있다. 이제 집이다. 이제 또 나가야 겠다. 오늘은 평화시장 칼국수 아줌마처럼 바지런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