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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으로 간 대학생들, 학출 노동자, 그리고 현장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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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1 – [헨드릭스의 책읽기] – 진짜 좌빨들의 시대는 안 왔거든? – 이광일, 좌파는 어떻게 좌파가 됐나, 메이데이, 2008 2009/11/17 – [헨드릭스의 책읽기] – 386세대 경험의 재구성 – 김원, 잊혀진 것들에 대한 기억 2009/11/15 – [헨드릭스의 책읽기] – 6월 항쟁을 당신들이 했다고? 아니거든요? – 김원, 87년 6월 항쟁 2010/01/01 – [헨드릭스의 책읽기] – 심상정이 드러낼 수 있는 이야기의 1% – 심상정, 당당한 아름다움 2010/02/20 – [헨드릭스의 책읽기] – 노회찬의 재발견, 좌파 정치의 문을 열기 위하여 2010/01/15 – [헨드릭스의 책읽기] – 민주노조 운동, 아직도 대안일까? – 김원, 신병현 외 <사라진 정치의="" 장소들=""></a> 2010/01/12 – [헨드릭스의 책읽기] – 선진 노동자의 이름으로 – 1991년의 사회주의자들 2009/11/18 – [헨드릭스의 책읽기] – 그람시를 읽다가 발견한 인민노련 – 김현우, 안토니오 그람시 </td> </tr> </table>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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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하나와의 기억
2005년 봄. 서울대 정치학과 대학원에서 진행되었던 김세균 선생의 <헤겔과 마르크스의="" 정치사상=""> 수업을 수강했다. 수업시간에는 매번 침을 꼴깍꼴깍 넘겨야 하는 순간들이 많았다. 당시 인기가 많았던 들뢰즈의 개념으로 헤겔로부터 도바리치는(‘탈주’) 마르크스를 찾겠다는 인간이 있었고, 전통적인 구좌파 마르크스-레닌주의자가 있었으며, 발리바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마르크스를 좋아했으나, 마르크스가 못 했다고 여겨진 ‘글로벌’한 측면에서 어떠한 해법들을 찾고 싶은 입장이었다. 매일 매일 각 정파와 이론적 입장들 때문에 ‘차력 대결’이 이어지곤 했다. “맑스의 루이 보나빠르뜨의 …” “맑스의 헤겔 법철학 비판을 보면 …” “맑스의 독일 이데올로기를 보면 …” 등등. 어느 날엔가는 김세균 선생과 들뢰즈를 사랑하는 여학생간의 ‘사상투쟁’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김세균 선생은 결국 담배를 꺼내 물면서 열변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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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그러한 시대와는 묘하게 어그러지는 ‘낭만적’인 상황과 상관없이, 나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 중의 한 명, 매일 찬찬히 꼬박꼬박 잘 뭔가를 메모하면서 듣기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었다. 서울대 사회학과 대학원에 다니는 사람이었고, 1년 학부 선배 누나와 친한 사이었다. 종종 수업이 끝나면, 다른 한 명의 육군 학사장교 제대하고 나타난 남자 한 명을 포함해서 총 4명이 커피 한 잔을 곁들이며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군대에 갔고, 우여곡절 끝에 제대를 했고, 다시 대학원을 바꿔서 갈아탔고, 석사 과정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올 초 <학출>이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오, 하, 나’ 익숙한 이름이었다. 생각해보니 바로 그 사람의 석사논문이 출간된 것이었다. 출간되자마자 나는 책을 날름 사 두었지만, 보지는 못했다. 바빠서 만은 아니고 이상하게 손이 갈 여유가 없었다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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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민노련과 학출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우석훈 선생과 ‘인민노련’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인민노련에서 잘 드러나는 사람들을 떠올려보면 노회찬, 황광우, 전성, 주대환, 이재영, 권인숙 등등인 것 같다.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이름은 단 하나. ‘학생 출신 노동자'(‘학출’)라는 것이다. 서울대와 고대 정도로 이 인원들을 정리해볼 수도 있지만, 하여간 모두 다 ‘대학생’이었다. 도대체 “왜 대학생들이 공장에 갔을까?” 그게 늘 궁금한 바였다. 물론 녹취록과 그들의 기록이 담겨있는 수 십 권의 책과 자료들을 보면서 감을 잡는 부분이 있었지만, 이에 대한 정교한 분석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그건 ‘학출’에 대한 연구가 별로 없고, 그들이 늘 ‘노동운동’의 잔여 범주로만 다루어졌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이런 것들이다. “다시 말해 이 연구들은 ‘지식인=나약함’, ‘노동자=강인함’이라는 담론을 고정적인 것으로 전제하고 있거나 (……) 요컨대, 지식인이나 노동자에 대한 상image이 특정한 방식으로 고정되고 담론화되는 과정과, 그것을 학생 출신 노동자가 재해석하고 주관화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변화시키고 전략적으로 자기재현하는 것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p.98). 쉽게 설명하자면 학출에 대해 ‘뻔하다’라고 깔아두고 연구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늘 뻔한 대답만 있었던 것이 당연하다.
# 전태일 되기
지난 번 레디앙에 기고했던 글에서도 이야기했었지만(2010/11/08 – [헨드릭스의 문화읽기/문화연구의 시선] – [레디앙-진보, 야!] “양아치는 대치동에도 있었다”) 학출 노동자들이 아무리 혁명에 대한 관념을 가지고 들어간들 ‘혁명’은 그리 간단하지 않은 일이었다. 일단 노동자가 되어야 했고, 노동자가 되었다고 멈추지 않고 노동자 그 ‘이상’이 되어야 했다. 내가 쓰는 개념대로 하자면 이 두 가지를 포괄해서 ‘전태일 되기’라고 말할 수 있다. 그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첫 번째는 노동자로 몸을 바꾸는 문제였다. “학습 과정에는 사회과학이나 노동운동과 관련된 내용 말고도 노동현장의 실태를 조사하거나 노동자 문화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예컨대 80년대 중반 당시 노동현장 체험 프로그램 안내서의 준비 학습 커리큘럼에는 ‘(노동자들의) 수기, 르포, 현장체험 활동 수기, 노동자 문화’등이 포함되어 있었다“(p.99). 그런데 이렇게 이것저것 읽는다 한들 그리 상황이 간단하지 않았다. 그 전까지 그들은 모두 ‘학삐리’ 냄새를 지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말투와 옷차림 모두가 문제였다. 자신들은 다 ‘노동자’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입는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현장의 노동자들은 그들을 금새 파악하곤 했단다.
두 번째 문제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학출들이 생각했던 ‘노동자의 상image’ 그 자체였다. “보편적이고 혁명적인 계급이라는 노동자상을 가지고 현장에 들어간 학생 출신 노동자들은 현실의 노동자들에게서 그런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을 때, 회의하거나 실망을 하고 활동을 중단하는 경우가 있었다“(p.132). 실제로 ‘혁명적 계급’ 노동자는 공장에 없었다. 문제는 그 상황에서 학출들이 그러한 ‘환상illusio’ 때문에 계속적으로 자학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학생들은 노동자들의 내면에 자리잡은 “진정한 의식”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나아가 노동자들의 노동 행위를, 충실한 삶을 사는 “진정한 노동자적 태도”라고 해석하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인의 속성을 자아비판하고 있다. (……) 즉 상상적 형태의 이상적 노동자상은 현장 활동을 성공적으로 지속하기 위해 버려야 할 것이었다기보다는, 오히려 학생 출신 노동자라는 주체를 지탱하는 환상이었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하다는 것이다. (……) 결국 현실 노동자의 모습에 실망하고 노동현장을 떠난 학생 출신 노동자들은, 노동자에 대한 특유의 관점을 포기함으로써 현실에 직면하기를 회피하고 ‘학생 출신 노동자라는 주체’를 포기했던 것이다“(p.134).
# 반지성주의
내가 지난 번에 이야기 했듯이 나는 그들이 가졌던 ‘혁명적 생각’이 문제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문제는 이러한 ‘환상’에 기반을 두고 그들과의 생활에서 학출 노동자들 자아의 ‘소진burnt-out’이 발생해서 현장에서 떠나버린 그 자체라고 본다. 사실 알고보면 학출에 대한 공격들은 대부분 다른 입장을 가졌던 ‘노동 운동가’들로부터 나오거나 NL 정파의 학출들의 ‘대중운동론’에서 나온 것이었다. “노동운동에서 급격하게 헤게모니를 확보해나가고 있던 대중주의 노선은 이렇듯, 부정적인 방식으로 지식인의 속성을 고정시키는 담론들을 만들어냈다. 즉 노동자-대중을 경시하는 노선은 지식인의 것이며, 노동운동의 대중주의는 그 근거로 지식인상을 부정적으로 담론화했다“(p.74). ‘노동자’들의 ‘당사자 운동’을 외쳤던 인간들은 사실은 ‘지식인들’이었고, 그들의 반지성주의의 폐해는 정말 끔찍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말을 쉽게 하는 것과 생각을 안 하는 것은 다른데, 종종 ‘가슴’에만 호소하는 방식의 끔찍함에 대해서 운동가들은 잊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고 운동가들을 탓하자는 것이 아니다.
어쨌거나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동자들의 자율성이 강해지고, 내부적으로 노동자들의 자신감이 상승한 상태에서 ‘대중주의 노선’이 학출들에게 어떻게 작용했는지는 불보듯 훤하다. 1987년 이후 학출들은 ‘노동자’가 아니라 ‘실무자’ 혹은 ‘활동가’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일상을 살펴보는 구절은 눈물이 핑돌게 만든다. 그 눈물은 내가 인텔리라서 흘리는 눈물일까? ““내가 운동하는 건 좋은데 내 자식이 저렇게 친구들 중에서 가장 후줄근하고. 그 전까지 그런 고민 안 하다가, 충격을 받고 그만두게 되죠. 내 자식만큼은 밥 먹여 살리는 운동을 하겠다. 운동을 포기한 건 아니었는데, 결국은 운동 포기가 된 거죠.”“(p.202) 1990년대의 현장을 떠난 사람들을 쉽게 비난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떠난 상황 자체가 문제적인 것과 그 ‘주체들’을 모조리 싸잡아 비난하는 태도(김규항식 태도)는 전혀 다르다.
#운동과 혁명
또 다른 한 지점에서 오하나의 책이 주는 통찰은 ‘운동’과 ‘혁명’에 대해 말했던 연구참여자들의 이야기였다. ““운동하는 사람들 전부는 아니겠지만 많은 학생 출신들이 혁명을 꿈꿔 왔던 거고, 그런데 노동자 출신들은 사실 그거는 아니었어요. 우리는 운동이었어요.““(p.155) 아까도 위에 언급했던 ‘현장’의 문제에서 목적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당장 내일 아무 일도 안 벌어질 것이 명료함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레닌주의/스탈린주의의 교의들은 노동자들을 ‘지도’하는 지도자로서 학출들을 자리매김하게 되었고, 이러한 상황에서 지식인/노동자의 대립하는 구도가 연출되고 그 주체들 간의 틈새가 생겨났다고 보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노동자는 필연적으로 노동을 해야 하며, 따라서 노동이 진행되는 노동현장, 나아가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존재의 기반이었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보기에 때때로 학생 출신들은 그 기반을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것 같았고, 그 이유는 학생 출신들의 삶의 조건이 자신들과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p.164).
문제는 ‘급진주의 이론’ 만이라기보다는 현장에서 구체적인 대응을 방기하게 만들어버린 그들의 ‘교조적 신념’, 그리고 그것을 추동한 ‘지도부’의 성급함이 아니었을까 한다.
결국 현장에 여전히 남아있는 사람들은 ‘혁명’을 당장 내일 몰아닥치듯이 하려는 사람들이 아니었고, 현장에 발을 붙이고서 그 안에서의 고민을 계속 해온 사람들이었다. “관념이나 이념만 가지고 운동을 한 학생 출신 노동자들은 사회주의 국가의 붕괴가 던져준 충격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반면 같은 학생 출신이면서도 자신은 그런 관념성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운동을 지속할 수 있었고, 또 자신이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현실의 노동현장에서 결코 유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p.189). 나는 오히려 후자가 ‘전태일 되기’에 성공한 운동가들이라고 본다. 그들은 지금도 ‘거창한 목표’를 제시하지 않고, 노동운동가로, 그리고 지역사회에서 생협 운동 등을 계속하고 있고, 환경운동연합의 활동가들의 초창기는 이러한 모습들이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학출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여전히 유효한 시대에 한국사회가 와 있다고 생각한다. 레닌의 혁명의 아이디어가 아니라도, 이제 구체적인 일상의 장은 공장이 아니어도 충분히 끔찍하고 비탄할 만한 상황에 놓여있다. 20대들, 불안정고용에 노출되어있는 비정규직, SSM에 털리게 생긴 자영업자들, ‘4천 원 인생’으로 대표되는 모든 ‘갑남을녀’들. 지금 요쳥되는 것은 “더 급진적이고 정합적인 이론”이 아니라 ‘더 작고 구체적인 운동’들의 합이 아닐까. 그 중심에는 ‘끔찍함’에 대한 예민함으로 공장으로 들어갔던 대학생들의 감수성에서 상상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이론적으로 누가 누굴 지도하고, 누가 누구를 대표하는 것 자체가 말같지 않다는 것에 대한 합의는 끝난 상태이다. 그리고 모두 공장으로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다 아는 이야기다. 포스트모더니즘 몰라도 골똘이 생각해보면 머리크고 다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앞에서 그러한 방식의 대화법은 “닥쳐! 좆나 잘난척 하네.” 혹은 “흥, 지랄!” 하는 반응 말고는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것을 누가 모르나? 오히려 문제는 그러한 사람들과 ‘함께’ 잘 지내는 법을 익히고 함께 대화를 해가는 과정 그 자체로 보인다. 그리고 그들의 맥락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그것들을 밖에서도 들어먹을 수 있는 말로 만들기가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되뇌이면서 주변의 일상에서부터 뭔가를 조직하면서 가는 것. 우석훈 선생이 언젠가 “Think First, Act Together“이라고 말했던 것 같은데. 여전히 그 말은 유효해 보인다. 생각하면 가서 ‘함께’ 하는 거다. 거기에는 위아래가 없다.
# 뱀다리
오하나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기는 할텐데. 먼저 인류학적인 방법으로 문화기술지를 작성함에 있어서 연구 참여자가9명이라는 건 조금 적은 숫자로 보인다. 10인이 표준 요건이고, 논점이 방대하고 통시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좀 더 많은 연구 참여자가 있어야 했을 것 같아 보인다. 둘 째로, 그들의 현재와 과거의 사회경제적 조건들(생애사를 구성하는 가족 구성과 그들의 학력/계급 등)을 좀 더 잘 살펴서 분석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마지막으로 오하나도 명확하게 알고 있지만, 그들의 ‘젠더’가 어떻게 경합했는지가 없이는 권인숙 등에 의해서 제기되었던 운동사회의 ‘가부장제’가 굉장히 큰 요인이었다는 점을 감안해 보면 입체적 분석이 조금 덜 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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