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정치적인 글로벌 금융을 이해하기 위한 개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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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드 머니 – 8점
수잔 스트레인지 지음, 신근수 옮김/푸른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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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8 – [헨드릭스의 책읽기] – 저널리즘이 쓴 최고의 신자유주의 분석 – 나오미 클라인, 쇼크 독트린
2010/04/17 – [헨드릭스의 책읽기] – 록펠러에서 빌 게이츠로, 단병호에서 이랜드 아줌마들로
2010/09/05 – [헨드릭스의 책읽기] – [헨드릭스의 책읽기 #24] 신자유주의가 궁금하다구요? 그럴 때 읽을 책.

# 한갓진 평가를 넘어서</font></div>

세상에 참으로 한갓진 평가들이 많다. 먼저 글로벌 경제의 도래를 손쉽게 ‘포스트 모던’으로 해석하는 경향들이 존재한다. 다른 한 편으로 ‘신자유주의’가 그냥 손쉽게 도래했다고 말하는 경향들이 있다. 심지어 이러한 주장들을 하는 사람들은 우파가 아니라 좌파들이다. ‘계급투쟁’으로 뭐든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노동자주의’적 경향을 가진 사람들의 투박함이 그리울 정도다. 이를테면, 뉴타운 투쟁 내내 별 일 없이 있다가 십 수 년이 흐르고서 ‘도시의 재개발 사업’에 의해서 생겨난 뉴타운들이 마치 자연스럽게 생긴 것처럼 묘사하는 것도 그런 방식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0년 후에도 눈을 부릅뜨고 뭐라고 말하는 지 쳐다볼 거다.)

그러한 한갓진 평가들을 넘어서 신자유주의에 대해서 말했던 사람을 생각해보니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나오미 클라인이다. 서구의 ‘포드주의 축적체제의 위기’의 탈출구로 불가피하게 내부에서 신자유주의가 개혁의 일환으로 제기되었다는 주장에 대해 나오미 클라인은 ‘Bull Shit!’을 외친다. 밀튼 프리드만과 미국의 신자유주의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쇼크 독트린’의 정체를 보여주는 것이다. 저절로 오는 ‘악’은 없다. 그 사이 사이에는 결정적 국면들과 그 싸움의 승패 혹은 권력의 분포에 의한 효과들이 존재한다. 그것들을 누락하면 바로 ‘소설’이 된다.

이번에 읽은 책인 수잔 스트레인지의 <매드 머니="">는 다른 방향에서 글로벌 금융에 대해서 언급한다. 예컨대 글로벌 금융 – 레버리지가 풀려버린 고삐 풀린 망아지가 그냥 도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아무도 ‘그냥’ 도래했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이것들의 ‘정치적’ 해석은 잘 하지 않는다. 1970년대의 오일 쇼크와 유로 달러의 범람이 브레튼 우즈 체제를 붕괴시키고 변동환율제를 만들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에 더불어 자연스레 정보화로 인해 ‘글로벌 금융’이 완성되었다는 이야기. 이러한 주장에 대해 수잔 스트레인지는 적극적으로 공박한다.</font> </div>

# 글로벌 금융에 대한 ‘정치적’ 평가
번역은 조악하기 그지없지만(지금의 눈으로 그렇다). 하여간 수잔 스트레인지는 굉장히 명료하게 자신의 주장을 전개한다. 지금의 ‘매드 머니’ (미친 돈)이 돌기 시작하게 만든 5가지의 ‘정치적 비결정’, 5가지의 ‘정치적 결정’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과거 10년에 있어서(1988~1998) 열쇠를 쥔 결정과 10년간 국제정치경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5가지 변화를 설명한다. 이는 굉장히 명쾌하고 지금 글로벌 금융이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한 선명한 그림을 그리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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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 경제를 만든 비결정

1)1950년대 초, NATO(북대서양 조약 기구)의 방위 부담을 분담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유럽이 거부한 것이다. 유럽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미국이 제공하는 핵무기와 미국 육공군의 방위선에 의한 안전 보장에 무임 승차하는 무임 승객이 되는 것을 선택함으로써, 그 이후 미국이 그 방위 부담에 상응하는 보상을 과세 이외의 형태로 요구하는 것을 인정하는 완벽한 구실을 주게 되었다(p.21).

2)1957년 개발 도상국들의 유엔 원조 재분배 요구를 거부한 것이다.

3)국제적 채무 처리의 사후적인, 케이스 바이 케이스의 절차를 선택한 것이다.

4)선진국이 수출 경쟁에 있어서 저리 융자나 수출 신용 보험 등의 보조를 함으로써, 강력하고 포괄적으로 이를 금지하는 합의를 할 수 없었던 일이다.

5)전후 두 번째의 영국 노동당 정부하에서 해롤드 윌슨(Harold Wilson) 수상이 시티(City: 런던의 금융가)를 국제 금융의 장소로 재개방하는 결정을 한 것이다(p.22).

카지노 경제를 만든 결정

1)미국이 외환 시장 개입으로부터 철수했다는 것이다. (……) 보통 이것을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깊이 생각한 끝에 결정한 사보타주였다. 그것은 외환 시장에 대한 개입을 완전히 정지한다는 1972년의 재무부의 결정이었다.

2)대중과 전문가의 의견을 기만하고 국제 통화 개혁이 국제적으로 여전히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는 것처럼 믿게 하는 형태를 취한 것이다.

3)역시 미국의 결단이었는데, 석유 생산국과의 교섭을 거부한 것이다. (……) 석유 가격과 금융 시장 간의 긴밀한 관련성, 그 양자와 저개발국(LCD) 채무와의 관련성 등은 그 후의 국제 금융의 전개에 있어서 정치적, 경제적인 중심을 형성하는 것이었다.

4)OPEC(석유 수출국 기구)과 거래를 거부함으로써 나타난 결과였다. 그것은 에너지 가격 앙등으로 타격을 받은 개발 도상국을 위해 프랑스가 선도하여 시작한 CIEC(국제 경제 협력 회의)에 맞서서 1974년에 시작된 미국의 방해 전략이다.

5)1974년에 일어난 뉴욕의 프랭클린 내셔널(Franklin National) 은행과 서독의 헤르슈타트 은행(Bank Herstatt)의 파산에 대처하기 위해서, 각국의 중앙 은행 간에 은행 규제자와 최후의 대출자라는 두 가지의 중요한 역할에 대한 협력이 강화되었다(p.24).

과거 10년에 있어서 열쇠를 쥔 결정?

1)1987년 10월의 ‘블랙 먼데이’라고 불리는 주식 시장의 폭락 후에, 시장에 대한 지나친 개입은 삼간다는 암묵적 결정이 있었다.

2)1988년에 일본을 포함한 선진국의 정부는 BIS를 통해 은행의 활동을 통치하는 룰의 몇 가지를 표준화(공통화)하기로 결정했다. – 바젤 합의Basle Accord

3)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후에 구사회주의 경제권의 장래에 대해 여러 가지 결정이 내려졌다. 동독은 서독으로 재통합되었다. 그러나 다른 동유럽 국가들이 동독처럼 서구에 재통합되는 것은 실현되지 않았다.

4)과거로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1988년에 은행 규제를 위해 합의된 공통 기준에 있어서의 자기 자본 비율의 개념이나 산정 방법은 부정확했고, 따라서 잘 기능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이 1996년의 BIS 제 2차 규제 때까지 암묵적으로 합의되어 있었다.

5) G10 선진국들은 곤란에 빠진 아시아 경제에 대하여 구제 자금을 제공함으로써 현대의 국제 금융 시스템에 있어서 파산이 이제는 선택지로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보여 주었다. (……) 그 나라를 위해서가 아니고 보다 큰 세계 시스템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 주권을 가진 국가라는 외관은 유지되었어야 했다(p.27).

10년 동안 국제 정치 경제에 영향을 준 가장 중요한 변화 5가지

1)기술적 변화 – 급속한 기술 혁신

2)규모 – 각종 시장의 규모, 거래량, 가능한 거래의 종류, 새로운 금융 센터의 수, 직접 간접으로 국제 금융 업무 현장에 고용되는 사람들의 수 등 모든 것들이 커졌다. 여기에는 잠재적인 피해자, 즉 카지노에 대한 비자발적 참가자가 포함된다. 잠재적 피해자의 수도 증가했다.

3)’은행의 종언’ – 예금을 받아 대출을 하는 금융 중개가 은행의 전통적인 기능이지만, 이제는 그것이 은행의 주업무가 아니다. 상업 은행은 투자 은행화되었고, 자기 계산 거래, 즉 자기의 자본을 카지노에서 내기하는 것과 같은 형태로 급속하게 변하고 있다.

4)아시아의 번영, 머니 런더링, 마약 거래의 증대

5)시장에 대한 감독과 규제에 관한 중앙 은행 간 협력의 기초에 중요한 변화. BIS와 가맹 중앙 은행은 은행이나 비은행권에 의한 자기 규율에 의거하도록 변화된 것이다(pp.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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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분석이 가능한 것은 그녀가 원래 기자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평생 그녀는 엄청 까칠하고 포스가 넘치는 사람이었단다.)


# 결국 문제는??
신자유주의와 글로벌 금융 등에 대한 문제를 ‘기술적’ 차원으로 돌려놓을 경우 모든 논의는 (우파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몫이 되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수잔 스트레인지의 ‘역사적’인 분석을 통해서 확인하는 것은 그러한 쟁점들 곳곳에서 ‘정치적’ 문제들이 핵심적이었다는 것이다. 아무 것도 결정할 수 없었을 때 누구도 비난할 수 없지만, 실제로 그러한 사안은 아무 곳에도 없어보인다.

지금도 여전히 ‘국가의 일’이 존재하고 그것들을 방기하는 국가에 대해 책임을 추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스트레인지의 인식과 대체적인 국제정치경제IPE(International Political Economy) 학자들이 금융과 무역을 다룰 때 약간의 불만이 있다. 그것은 자본의 속성에 대한 이분법적 분할이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에도 나오지만 자본의 본성은 기본적으로 ‘축적’이고, 거기에는 ‘실물 부문’이나 ‘금융 부문’이나 큰 차이가 없다. 산노동의 착취에서 출발하는 것이 근본적이긴 하지만, 금융 자본이 특별히 ‘실물 부문’에 비해 더 큰 문제라고 말하는 것에는 어느 정도의 ‘주의점’이 있어 보인다. 예컨대 국가가 산업 부문을 통제하는 것보다 금융에 대한 통제가 어렵다는 지점에서 금융에 대한 강조는 할 만 하지만, 그것이 ‘금융’의 레버리지를 푼 것이 지금 21세기 글로벌 경제의 신자유주의의 모든 문제를 설명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는 없다. </font>신자유주의화는 그것보다는 복잡한 메커니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div>

그렇다하여 스트레인지와 다른 ‘현실주의’, ‘신자유주의-제도주의’ 관점을 가지고 있는 국제정치경제학자들을 동렬에다가 놓을 수는 없다. 스트레인지는 ‘현실주의자’들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분석을 하며, 구성주의자들이나 자유주의자들 못지 않게 ‘협력’이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규범도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하게 스트레인지를 어떤 포지션에 던질 수는 없을 것 같다. 예컨대 E. H. Carr 등에 대해 이름 붙이는 이라는 명명도 어울려 보이지는 않는다. 스트레인지는 그냥 스트레인지다.</font> </div>
어쨌거나. 여전히 ‘경제’는 ‘경제’이고, ‘정치’는 ‘정치’라는 말을 많은 우파들은 주장하곤 하고. ‘정치’는 비효율적이고 ‘경제’는 효율적이라는 발상도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가 목격했던 2008년과 1997년에 그 ‘경제’ 영역의 사람들은 입 꽉 다물고 아무런 ‘죄’가 없는 이들의 희생을 볼모로 하여 회생했다. 한국에서의 회생은 ‘고통분담’이라는 이름 하에 정당화되었지만, 그 뒤에 있었던 것은 회생된 기업들의 주식 시장에서의 선전을 위한 구조조정이었다. 2008년 미국의 투자 은행들을 죽이지 않을 때 들어간 공적자금은 순전히 평범한 사람들의 세금이었지만, 그것들이 미국 노동시장에서의 ‘신자유주의적 관행 – 비정규직’을 역진시키지는 않았다.

그래놓고 경기가 조금 살아나자 다시 자본은 강짜를 부리기 시작한다. 결국 문제는 다시금 ‘정치적’인 어떤 시선의 변화를 노정하게 되는 것이다. 수잔 스트레인지는 10년도 전에 이미 더 엎어져봐야 정신을 차린다고 말한다. “우리들은 새로운 종류의 정치 조직을 창안해야 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기능하는가를 아직 상상할 수 없으며, 따라서 아마도 머니가 정말 지금보다도 훨씬 더 매드(mad)하고 배드(bad)하게 되어야만 비로소 그 경험에 의해서 우리들의 선호가 변화되고, 정치도 변할 것이다“(p.3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