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영희 선생에 대한 단상

[한겨레] 시대의 실천적 지식인 리영희 선생 별세

#
고등학교 때 읽었던 <인물과 사상="">에는 강준만에 의한 리영희 선생에 대한 평이 있었다.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엇겠지만, 그런 건 하나도 기억나지 않고 마냥 꼬장꼬장해보이던 그의 사진이 떠올랐다. 99년 쯤인가? 선생이 중풍에 쓰러져 병마와 싸우고 있다는 이야기가 <미디어 비평="">에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태인이 찾아가고 뭐 그런 이야기였던 것 같은데. </div>
스무살, 깨나 속물스러웠던 내게 리영희 선생이 놀라웠던 것은. ‘학부’ 졸업이 최종학력이었다는 것이었다. (한국해양대학 졸업) 그 학력으로 ‘한양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였다는 것이 신기했다. 도대체 뭐가 있길래 싶어서 리영희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 잡았던 책은 <동굴 속의="" 독백="">이었다. 그 책은 짧은 글들의 연속이었다. 그의 글을 보면서 ‘글’의 힘이라는 것에 대해 계속 강박적으로 생각할 수박에 없었다. 어느 날인가 김만수라는 사람이 썼던 <리영희, 살아 있는 신화>라는 책을 읽었던 기억도 난다. 마지막으로 읽었던 리영희의 책(?)은 임헌영과의 <대화>였던 것 같다. </div>
2000년대 중반이 되었을 때 ‘신화’가 되어버린 리영희 선생에 대해 늘 생각했던 것은 “선생님,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세요.”였던 것 같다. 중풍에 쓰러졌다던 리영희 선생이 2000년대 초반에 살아서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2003년인가, 2004년인가 반전집회에 갔다가 리영희 선생이 지팡이를 짚고 와서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해 발언하던 모습을 잊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물론 그 판이 주사파들이 만든 판이라는 게 늘 불만이었다.)
또 언젠가 경향 신문의 이대근 등이 선생의 집으로 찾아가 그에게 ‘한 수’ 배우는 대담 기사도 즐겁게 읽었었는데, 그것도 벌써 2년은 지난 이야기인 것 같다. 
#
<동굴 속의="" 독백="">을 읽으면서 아내의 ‘처녀성’ 때문에 고마웠다는 이야기에 실소를 금치 못했던 23살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어떻게 ‘사회주의자’가 그럴 수 있냐면서 혼자 분노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정치적 올바름’을 리영희 선생에게 곧 바로 들이대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가 하고 생각도 해 본다. 그는 60~70년대에 뭇 사람들이 모두 ‘예민해’ 하지 않던 모든 문제에 대해 예민한 감수성과 철저한 분석을 통해서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게 했던 사람이 아니었나.  </div>
리영희 선생과 주한 미국 대사의 ‘광주 민중항쟁에서의 미국의 역할’에 대한 논쟁도 떠오르고. 어느 사람의 주례엔가에 ‘국가’에 대해 봉사한다는 말을 ‘사회’로 바꿨다는 문구도 떠오른다. 사르트르에게 코멘트 하던 ‘동시대’의 지식인. <뉴 레프트="" 리뷰="">를 60년대 부터 읽던 지식인. 뭐 여러가지가 떠오른다. </div>
일관성 없고 산만한 이런 글을 써보는 것은 오롯이 선생을 직접 뵙지 못했다는 아쉬움에서 나오는 것이다. 병마와 싸우던 병원이 바로 집 앞에 있는 ‘녹색병원’이었다니…… 아.. 난 참..
어쨌듯, 지금이야말로 다시금 다른 방식의 ‘비판적 지식인’들의 출현이 필요한 시간이 되었다. 리영희의 주장은 ‘한미관계’와 ‘동북아정세’에 대한 진보적인 입장이었다는 것에서 충격적인 것이 아니었고, 당시에 아무도 제기하지 않는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했다는 것, 그리고 가장 ‘구체적’인 방식으로 시대를 읽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었다. 또 선생은 그것들을 몸으로 구현하는 지식인이었다. 리영희는 늘 담론적으로도 충실한 사람이었지만, 기본은 늘 저널리스트의 몸이어서 그랬을까 ‘구체성’에 있었다. 인류학에서 내가 가장 많이 배운바도 바로 거기에 있다. 현실의 ‘비틀어짐’과 ‘긴장’들을 드러내기.
독재정권 때문에 몸과 정신이 황폐해야 했고, 그 이후의 ‘민주’ 정권들의 황당한 짓거리에 또 한 번 애를 태우셨을 선생. 게다가 다시 돌아온 ‘반동’의 시대에 슬퍼하셨을 선생. 늘 걱정거리가 많으셨기에 긴장을 놓고 살아보지 못하셨을 선생.
돌아가신 날이 마침 ‘한미FTA’가 체결된 날이니, 돌아가시는 날에 전전긍긍하지는 않으실까 걱정도 해본다.
선생님. 이제는 편안하게 보내세요. 하늘 나라에서 만난 사르트르와 ‘만담’도 좀 하시고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