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계급과 불평등 (2004) – 신광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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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계급과 불평등 – 6점
신광영 지음/을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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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07 – [헨드릭스의 책읽기] –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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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문화학과 10주년 행사에서 처음 ‘중앙대학교 문화연구학과 교수 신광영’이라는 방명록을 보고, 신광영 선생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계급론’ 하는 사람들이 좌파일 거라는 생각 정도, 그리고 좀 딱딱하겠지라는 생각 정도였는데. 여지 없이 그게 좀 어울리는 사람으로 보였다. ‘문화판’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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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에 이런 책이 나왔었구나.”가 내 인상의 90% 정도인 것 같다. ‘계급론’이라는 사회학의 분과가 도대체 뭐하는 건지 굉장히 궁금했는데, 이 책은 정말 재미가 없다. 아, 그렇다고 해서 글의 서술이 늘어진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냥 빨리 빨리 넘어가는데, 흥미는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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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10군데에 가까운 오타가 있다. 아직 초판 1쇄를 못 털어서 일까? 오타를 좀 잡았으면 좋겠다. ‘브르디외’라고 써있는 부분을 읽고서 갑자기 맥이 풀렸다. 한 두 번은 아니다.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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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말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있는데, <한국의 계급과="" 불평등="">에서 ‘문화연구’에 대해 쏟아내는 말은 좀 기가 막힌다.</font> </div>

1990년대 전반 계급에 관한 질적인 연구가 크게 활성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 이러한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는 전반적으로 계급분석에 대한 관심의 퇴조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었다. 사회구조에 대한 분석 대신에 문화 연구나 일상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하였다. 이러한 관심의 변화는 계급 연구를 활성화시킬 수도 있는 환경변화였지만, 문화 연구에 대한 관심이 계급문화 연구로 이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계급에 관한 질적인 분석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했다(p.102).

결과적으로 한국 사회학이 한국 사회 현실과 괴리되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에 한국 사회학의 무능함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결과는 1990년대 한국 사회학계의 다양한 포스트주의와 문화에 대한 과도한 관심이 낳은 결과이다“(pp.112-113).
이 말을 잘 분해해서 살펴보면, 일상과 구조라는 것들이 명확하게 분리된다는 이분법이 먼저 떠오른다. 일상의 결에서 ‘구조’를 발견할 수 없는 사람이면, 그걸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최소한 경의를 표하긴 해야 한다. 그리고 문화 연구에 대한 관심이 계급문화 연구로 이어지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는 전혀 알 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는 것 같다. 그건 아마 ‘문화 연구’라는 것이 ‘스타일’로서의 하위문화나 압구정 연구, 롯데월드 연구 뭐 이런 것만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런 차원의 논의들은 강내희 선생의 연구와 그 연속 선상에 있는 어떤 것들이었다. 다른 한 편, ‘계급문화 연구’가 이어지지 못햇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2010년 연세대학교 문화학협동과정의 김고연주 박사의 ‘신빈곤층의 10대 원조교제하는 청소녀’에 대한 연구를 보라. 다른 ‘현장성’의 연구는, 심지어 ‘계급 문화연구’는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계급과 젠더가 경함하는 것들을 ‘일상’의 차원에서 풀어헤치는 것이 ‘계급 문화연구’아니었던가? 거기에 젠더가 들어가면, ‘문화연구’ 전통에서 탈락하는 것일까? 
이상한 방식의 억측은 멈추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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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한국의 계급과="" 불평등="">에서 드러나는 저자의 ‘현실정치’의 인식도 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div>
노동계급의 조직적인 운동은 민주화운동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노동조합 조직 자체가 권위주의 국가에 의해서 강력하게 탄압되었기 때문에 민주화운동의 도전으로 국가권력이 위기에 놓이거나 약화되었을 때, 노동자들의 불만이 집단적으로 폭발했다. (……) 노동운동이 민주화운동을 주도한 것이 아니라 민주화운동이 노동운동이 발전할 수 있는 촉매 구실을 했다. (……) 특히 1995년 한국노총과는 다른 노선을 내세운 민주노총의 출발은 민주화 이행과정에서 등장한 노동계급 조직으로 최초의 전국적인 독립적, 진보적 노동운동을 대표하고 있다. (……) 아직도 노조 조직률은 낮은 편이지만, 대부분 대기업체에서 노조가 조직되어 있기 때문에, 구조적 차원에서의 노조가 지니는 위치적 권력은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p.35).
여기 나온 것들은 사실이 아니다. 1)먼저 ‘민주화운동이 노동운동이 발전할 수 있는 촉매 구실을 했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엄밀하게 사실이 아니다. 예컨대 서로의 ‘출발점’이 다르다. 노동운동을 견인했던 세력들과 학출 노동자들이 다르다. 재야랑 ‘급진노동운동 세력’을 똑같이 간주하는 것은 “우리가 남이가”의 진보세력 버전이라 말할 수 있겠다. 2)민주노총의 출발이 ‘최초의 전국적인 독립적, 진보적 노동운동을 대표’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그렇게 될 경우 전노협의 전통이나 그 앞의 전노운협(전국노동운동협의회)의 전통을 다 뭉게버리는 것이다. 게다가 ‘대기업-남성-정규직-육체노동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라는 혐의도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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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목적이 뭔가가 좀 궁금하긴 하다. 책에는 굉장히 많은 실증 데이터들이 있는데, 지금에는 정작 실효적이지 않은 자료들이 너무 많다. ‘돈’이 문제긴 한데, 사실 적실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시금 논문들의 통계들을 갱신하고 그 함의들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포함한 뭐가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우석훈/박권일의 <88만원 세대>에 대한 <경제와 사회=""> 지면에 실렸던 비판에 대해서 ‘갸우뚱’하고 더 관심을 갖게 되지 않았던 이유도 신광영의 논의가 가지는 방식들이 계속 궤적을 한 발자국 뒤에서 ‘추적’할 뿐 ‘전망’의 차원에 대한 언어가 별로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div>
기회가 되면 이 책의 방법론을 구상하는 에릭 올린 라이트Erik Olin Wright의 <계급론>을 읽어봐야겠다. 위스콘신에 강정구와 신광영이 함께 있었던 이유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라이트의 4계급론(자본가, 프티부르주아(자영업자), 중간계급, 노동계급)의 구분은 편리하고 경험연구를 함에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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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다리.
그래도 논문에 쓸 거리는 뽑아냈다. 대학원생에게는 온라인 ‘노트 파일’이 진ㅋ리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