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와 현장 (문화연구학회를 마치고)

2010/08/14 – [헨드릭스의 문화읽기/문화연구의 시선] – 좌파 이론의 쓸모에 대해서 – 며칠간의 노-홍-한-레의 논쟁을 보고.
2010/11/05 – [헨드릭스의 책읽기] – 사회과학자의 글쓰기, 어떻게 할 건가? – 하워드 S. 베커
2010/10/26 – [헨드릭스의 문화읽기/문화연구의 시선] – 연세대학교 문화학협동과정 10주년 학술 행사!
2010/12/04 – [헨드릭스의 책읽기] – 그람시, 문화, 인류학 – 케이트 크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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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입견(preconception)이라는 말을 뜯어서 살펴보다보면, 이미 가지고 있는 ‘개념’이라는 것들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확인할 수 있다. 어떤 ‘견해’는 어떠한 ‘세계관’을 재현한다. “알만하다”라는 말에서 여러가지를 확인할 수 있다.
사실 ‘문화연구’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을 때 가졌던 선입견, 그리고 그것들이 다른 사람들의 말에 의해 무너졌을 때의 선입견들이 존재한다. 그것들은 내 머릿속에서는 나름의 유기적인 세계를 이루고 있었다.
‘문화’를 유물론적으로 연구한다는 것이 주었던 매력.
‘페미니즘이 빠진’ 문화연구이기 때문에 반쪽짜리일 것이라는 불편함.
그리고 몸으로 맞딱드린 세계에서의 말과 제스처, 그리고 말이 벌어지는 마당의 모습은 이미 가지고 있던 세계관을 허물어뜨렸다.
결국 ‘검증’은 문화연구자에게 숙명이다. 발을 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다른 영역의 학문을 하고 있는 것이 된다. 이건 어떤 학제discipline의 규정이 아니라, ‘현장연구’로서의 문화연구의 숙명이다. 스튜어트 홀Stuart Hall이 처음 만들어냈던 문건들은 대개 노동자들의 교육과 결부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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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에서의 발표는 만족스러웠다. 전 날 시간을 재보고 원고를 구성했고, 그 대로 발표했다. 별로 떨리지 않았다. 이상한 푸근함이 있었다. (2010/12/18 – [헨드릭스의 문화읽기/문화연구의 시선] – 신자유주의 군대와 자기계발의 기획) 발표를 마치자 조금 밍밍하기는 했다. 이택광 선생의 질문을 제외하면 아무런 질문이나 코멘트가 없었고 그냥 앉았다가 일어나니까 심심하기는 했다. 이택광 선생은 ‘주체화’에 대한 질문, 그리고 군대가 늘쌍 그런 방식으로 작동했던 측면이 있지 않았냐며 몇 가지 사례를 들며 질문했고, 나는 거기에 적당히 조응하는 대답을 했다.
흥미로운 것은 대체로 모든 주제가 정말 수렴한다는 점이다. 지금 탁 멈춰서 어떤 지점에서 교착에 빠졌는지가 선명해지는 것이 주니어 섹션의 성과였다고 본다. 모두다 분해되고 있는 이 상황에서 어떠한 ‘주체’ 혹은 ‘행위자’를 세우거나 구성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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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세션은 Senior 연구자들의 발표였다. 심광현 선생의 발표가 있었다. 여러가지 첨단 과학 이론들이 등장했음에도 깨나 재미있는 강의였다. 네그리의 다중 개념을 ‘경험적’으로 활용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그 이후에는 3명 선생들의 라운드 테이블이 있었다. 강내희, 김현미, 고정갑희. 이름이 주는 압도감이 있었다. 다만 강내희 선생의 경우 한 달 전 연대 문화학과 10주년에서 좀 ‘어려운 주제’를 가지고 발표를 했기 때문에 이 번에도 또 그럴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기우였다. <문화과학>을 처음 잡았던 때의 그 느낌이 생각나는 내용의 글이었다. 나중에 들었는데, 그 글은 <문화연대> 10주년 때 썼던 글이라고 했다. </div>
‘문화의 시대’는 내게는 아련한 10대의 추억이다. 나는 그 판을 유유하게 타고 다녔던 탈학교 청소년도 아니고, 그저 Channel V 이본의 프로그램이나 KBS 위성에서 진행했던 가요 프로그램에서 보여주었던 “언더 그라운드” 밴드를 그저 동경했던 어린애였다. 나는 ‘향유자’ 이상을 넘어가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판을 깔았던 ‘문화판 쟁이’들의 어떤 향수 같은 것들이 난데없이 떠올랐다. 강내희 선생의 강연은 사실상 ‘문화민주화’, ‘문화민주주의’, ‘문화사회’에 대한 이론적 탐구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향수가 묘하게 일었을 즈음, 나는 ‘멋대가리 없이’ 문화의 개념에 대해 강내희 선생에게 질문을 했다. ‘문화’라는 개념의 인류학적 정의와 문화연구그룹의 정의를 준거로 볼 때 ‘문화(예술)’이라는 정의는 너무 협소한 거 아니냐며… 어쨌거나 나는 향수에 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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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강내희 선생의 주제가 ‘전통적’인 문화연구자의 질문이었다면, 김현미 선생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강연과 고정갑희 선생의 ‘적-녹-보라'(코뮨주의, 생태주의, 여성주의) 연대 혹은 공동 행동에 대한 구성은 전혀 다른 차원에서의 문제제기였다. 김현미 선생의 강연이 늘 내게 굉장한 지적 짜릿함과 동기부여를 주는 것이었다면, 고정갑희 선생의 강연은 말 그대로 ‘문제제기’. 보지(알지, 듣지) 못한 것들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갖춰야 하는지를 질문하게 만든다. 스피박의 ‘Can the Subaltern Speak’의 질문이 계속 맴맴거리게 만든다.
하나의 관점으로 묻고 대답할 수 없을 때의 다른 관점으로 물어보고 대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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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의 술자리는 너무나 흥겨운 것이었다. 내게 너무나 ‘어려웠던’ 그리고 ‘아저씨들로 간주되었던’ 선생들은 모두 ‘주책바가지 형’들로 변신하였다. 그리고 S 선생님은 너무나 ‘따뜻한 키다리 아저씨’였다. S의 책에 대해 힐난을 했던 내 ‘신중치 못함’에 대해 잠깐 자책할까 했지만 발랄/발칙함은 내 힘이었기 때문에 난 다시 내 평정을 회복했다.
역시 재미있었던 것은 강내희, 신광영 선생과 Yan Wenli와의 대화였다. 왜 우리에게 현장이 중요한 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론’을 너무나 사랑햇던 내가 지금 바뀌게 된 연유도 따져묻게 되었고, ‘지금 여기, 내 현장!’이라는 질문을 공유하게 된 것에 정말 기뻤다. 지난 번 연대 10주년의 효과였을지도…
간만에 맘 놓고 밤을 새고 싶은 술자리였으나, 발치한 나는 유자차만 무한으로 마시면서 앉아 있었다.
다음에는 또 다른 방식의 ‘우정’과 ‘환대’에 대해 말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