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경계를 흩어버리는 글쓰기, 그리고 일상감각으로 글쓰기
</p>
![]() |
문화와 진리 – ![]() 레나토 로살도 지음, 권숙인 옮김/아카넷 |
</span>
</span></div>
</p>
# 과학으로서의 인류학
확정적이고 합리적이며 구획이 명료한 상태로 무언가를 인지하는 것의 장점은 ‘속’이 편하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근대의 사회과학과 인문학은 그것을 위해서 명확한 구획을 나누고 경계를 확정적인 것으로 전제하고 그 안에서 가장 ‘객관적’인 지식을 탐구하는 경향을 가진다. 실증주의, 행태주의 그리고 그것의 연구 프레임이었던 ‘구조–기능주의’ 모두 그 연속선상의 사유 지평을 가진다. 인류학도 거기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참여 관찰’과 ‘현지 조사’에 나가게 되는 인류학자들은 자신들을 은연중에 ‘과학자’로 판단했다. 공평무사한 인식과 늘 ‘낯설게 하기’를 습관화하여 적절한 인류학의 연구 프로그램을 숙달하고 그것들을 가지고 ‘현지 조사’를 했으며, 거기서의 쟁점은 ‘원자료raw material’을 발굴해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보물을 노획하는 탐험가의 모습과 인류학자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현지 조사’를 정초했던 런던 정경대학의 말리노프스키 역시 ‘구조주의’적인 연구 모델을 채택하지는 않았으나 그가 보려했던 것 역시 ‘객관적 진리’였으며 그는 자신의 ‘객관성’과 이론적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애를 썼다. 그의 일기장에 나왔던 ‘노곤함’등은 그의 문화기술지에 포함될 수 없었다. 그와 약간의 시차를 두고 또한 현지조사를 진행했던 래드클리프 브라운은 말리노프스키의 ‘기능주의’에 에밀 뒤르켐의 ‘구조주의’적 모델을 덧씌워 ‘원자료’를 이론화했다.
좀 일상적인 말로 그들의 인류학, 혹은 ‘고전주의 인류학’을 말하자면 그들은 ‘속 편한’ 이론화를 원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과학적인 이론의 틀에 잡히지 않는 것들은 걸러내고, 관습적이고 규칙적이며 어떤 ‘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것들을 잡아내어 표나 그래프 혹은 다이어그램으로 만들어냈다. 어떤 부족의 장례식을 보면서 그들의 ‘비통함grief’에 공감하거나 구체적인 그들의 사연에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 ‘장례식’이라는 ‘의례’를 모델링하는 것에 집중했다. 물론 그러한 모델링은 어떠한 ‘사회’를 이해하는데 있어(사회 인류학), 그리고 어떠한 사회의 ‘문화’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많은 통찰력을 제공했고 그것을 인류학의 기여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학과의 대비(사실 사회학과 인류학은 한 뿌리에 있지만)를 통해서 말하자면 ‘문헌’이 아닌 생생한 ‘현장’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더 큰 효과를 발휘한 것도 역시 사실이다. (영국에서는 여전히 인류학에 비해 사회학은 소수이다. 지주형, 「영국 사회학의 사회학」, 경제와사회 2010년 겨울호 pp. 120-154)
#고전주의 인류학의 난점
하지만 이러한 인류학의 ‘고전주의적’ 접근은 여러 가지 난점들을 발생시킬 수밖에 없었다.
“기어츠에 의하면, 사회과학은 (a)분석대상, (b)분석의 언어, 그리고 (c)분석자의 입장과 관련해서 근본적인 변천을 겪어왔다. 한때 지배적이었던 이상, 즉 <가공되지 않은> 자료를 설명하기 위해 가치 중립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초월적인 관찰자라는 이상 대신에, 인간의 행위를 시간의 경과에 따라 전개되는 과정을 중심으로 분석하고, 그 행위가 행위자에게 갖는 의미를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가 등장하였다”(로잘도, 2000:p.82).
세 가지 층위에서 이야기를 해볼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인류학은 분석 대상에 있어서 엄격하게 ‘타자’를 설정했다. 거기에는 제국주의적 혐의가 있을 것이다. 식민지 경영의 목표와 인류학자들의 탐구에 대한 욕망이 반드시 등치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은 결과적으로 제국주의적 지식 담론 형성에 있어서 큰 기여를 했다. 식민화가 뒤따라올 수밖에 없었다. 더 문제는 인류학자들이 구획한 ‘문화’의 경계들이라는 것들이 제국주의의 ‘식민지 분할’과 연동된다는 것이다. 1945년 이후 아프리카 대륙의 국가들이 위도와 경도에 따라 분할될 때 난데없이 ‘상상의 공동체’들이 발생하고 그 효력이 발생하는 것과 인류학자들이 어떠한 문화, 문명을 구분하는 습관은 동형적이다. 인류학의 ‘전파론자’들이 그나마 그러한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지만 그들 역시도 엄격한 ‘경계선’에 대한 관념은 은연중에 내장할 수 있었다. 경계가 흐트러지고 어떠한 ‘대상’에 대한 일관된 서술이 어려워지는 것들을 인류학자들은 두려워했다. 그러한 연유로 엄격한 구획이 지어질 때, 그 지식들은 연구의 ‘대상’들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을 만들어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한 ‘접경지대’라는 로잘도의 개념은 ‘고전주의적 습관’에서 벗어날 단초를 제공한다. 접경지대가 포착되지 않은 ‘불안’의 장소가 아니라 가장 역동적인 문화발생의 공간으로 포착하는 일.
이러한 분석대상의 문제는 곧 이어서 분석의 언어와 분석자의 입장에 대한 문제들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다. 분석의 언어에 대한 이야기는 ‘재현’의 문제와 곧 바로 이어진다. 예컨대 선교사들이 가지고 있었던, 제국주의 행정가들이 가지고 있었던 ‘향수’와‘동정’의 시선을 말할 수 있다. 시간과 상관없이 화석과 같은 ‘원주민’의 문화에 대해서 애틋해하면서 그것들을 서구의 ‘합리적 지식’을 통해서 발전시키길 바라면서 동시에 그것들이 소멸되는 것에 대해 애틋한 ‘향수’를 가지고 있었던 역설들이 인류학의 언어에서도 등장한다. ‘과학’의 이름으로 중립성과 거리두기가 진행되면서도 그러한 감정선은 복잡하게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분석자의 입장. 로잘도는 ‘입장지어진 주체positioned subject’라는 개념을 정초한다. 누구의 눈으로 누구를 바라보냐의 문제. 다시 말하자면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과학’의 언어는 질문하지 못하게 방해했다. 아니 달리 말하면 질문하지 않기 위해서 ‘과학’이라는 알리바이를 동원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탈식민주의 인류학과 여성주의 인류학이 말을 했고, 그것에 대해서 마르크스주의가 이데올로기 분석을 통해서 밝혀냈지만 그것들은 서구–중간 이상 계급–남성의 눈으로 씌워진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아비투스habitus는 ‘분석대상’들에 대한 편향bias들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러한 인류학의 방법론들은 나름의 맥락에서 형성된 것이다. 그리고 로잘도가 말하듯이 지금 ‘다른 방식의 인류학’을, 그리고 ‘다른 방식의 문화기술지ethnography’를 작성하기 위해서 반드시 이러한 것들을 ‘거부negation’할 필요는 없다. 로잘도는 오히려 그것들을 배제되고 게토화된 텍스트들과 병치하여 다른 맥락으로 읽어내길 말한다. ‘문화 읽기’, ‘텍스트 읽기’의 문제가 여기에서 등장한다고 말할 수 있다. ‘어떻게 쓰느냐’ 못지않게 ‘어떻게 읽느냐’의 문제가 정치적이 된다. “다른 문화를 재현하기 위한 비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 표준화하는 서술은 사회적 실재의 여러 측면들을 드러내 보여주는 동시에 숨ㅅ길 수도 있다.고전적인 기준에 따라 씌어진 민족지들은 인류학에서 그저 추방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꼼꼼히 다시 읽혀야 할 필요가 있다. 거리를 두고 표준화하는 설명을 버리는 대신에, 인류학은 약간 다른 방식으로 그것들을 복원시켜야만 한다”(로잘도:p.117).
이러한 로잘도의 이야기에 기인하자면 ‘고전주의적 인류학’ 그리고 그에 기인한 습관들의 문제는 바로 다시금 ‘입장지어진 주체’의 문제와 연관된다. 그리고 그것을 ‘속 편하려는 마음’과 이어서 나는 생각하게 된다. 가장 ‘든든한 빽’으로서의 근대 합리주의에 기대는 것은 어쩌면 굉장히 속편한 일이었다는 것이다. 거기에서 ‘성찰성’의 문제를 제기해볼 수 있는 것이다. 패를 드러내고 자신이 어디에 서있는지에 대해 질문했다면 인류학자들의 겉으로 드러나는 ‘자신만만함’과 ‘과학주의’는 분명 상쇄되었을 것이나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어쩌면 거기에는 더욱 더 심연에 있는 ‘불안’이 작용했다고 말할 수 있다.
#비확정성과 인류학, 그리고 불안
일롱고트족의 ‘능동성’을 해석하는 로잘도의 이야기는 이러한 난점들에 대한 흥미로운 돌파구를 제기한다. 즉흥적이고 그 때 그 때 가장 적절한 답을 찾아낼 수 있는 감각. 그것은 어떠한 ‘정해진’, ‘주어진’ 답안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어떠한 능력(네그리 식으로 말하자면 활력puissance)에 대한 파악과 맞물려 있을 것이다. 그것을 ‘비확정성’이라고 포착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리처드 세넷과 지그문트 바우만의 이야기도 이와 맞물려 있어 보이는데, 즉 근대를 끝까지 밀어붙인 상태인 ‘후기 근대’의 상황에서 자신의 ‘즉흥적’이고 때때로 대응할 수 있는 기민함을 상실하게 만드는 것이 신자유주의라는 비판이다. ‘자기계발’을 끝까지 밀어붙이고 ‘역량competency’를 갖춘 ‘인재’가 되라고 명령하지만 그 역시 개인들의 활력을 보전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경제가 만들어내는 프레임 안에서의 ‘무한경제에서 도태되지 않는 인간’이라는 틀 속으로 가장 내밀한 방식의 통제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몸은 계속 dislocation과 disembodiment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야기를 비단 대중들의 ‘표류’와 엮을 뿐만 아니라, 인류학자들이 느꼈던 ‘불안’과 연동지어서 사유해볼 수 있을 것이다. ‘비질서nonorder’에 대한 공포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비질서에 대한 두려움은 심지어 가장 다이내믹스를 갖춘 연구를 수행했던 빅터 터너에게서도 발견되곤 했다.
과학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 그리고 가장 ‘중립적’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 대상과의 거리두기. 그러다보니 문화기술지를 쓸 때에‘사소한’ 것들을 놓치게 되고, 맥락에서 벗겨버리는 지식을 생산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인류학에 대한 로잘도의 ‘전환점 만들기’는 마르크스주의와 페미니즘 그리고 ‘접경’에 있는 다른 학문들과의 결합, 그리고 현장에 대한 ‘다른 감각’과 마주침을 피하지 않았던 것에서 출발했다. 물론 ‘경험’적으로는 아내의 죽음이라는 ‘극한 상황’ 혹은‘원체험’과도 연관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떠한 상황을 경험하는 것보다 어떠한 ‘감각’으로 그것을 읽어내고 해석하고 개입하며 전환시키느냐의 문제가 더 커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데 기존의 이론들이 가졌던 패러다임은 어떠한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을까? 나는 여기에 오히려 가장 ‘과학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진화과학과 생태학 등의 툴을 동원하여 더 풍부한 이야기를 ‘명료하게’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먼저 진화론을‘목적론’으로 오해하지 않는 이상 각 문화에서의 변이들을 파악함에 있어서 훌륭한 도구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한 편 생태학에서의 ‘돌연변이mutant’에 대한 해석을 차용한다면 접경지대에서의 문화생산에 대한 통찰력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로잘도는 ‘시간’이라는 변수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데 이를 진화 다이내믹스의 개념으로 포착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최근의 네트워크 이론이 전제하는 ‘연결성connectedness’의 개념을 잘 활용하자면 접경지대에 대한 그림들을 달리 그려낼 수 있는 통찰력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구조주의의 폐해가 발견되고, 거기에서 역동성을 발견하고 싶다면 생태학의 ‘열린 체계open system’과 ‘닫힌 체계closed system’에 대한 개념을 차용해도 되고, 닫힌 체계를 열어주거나 열린 체계를 닫게 해주는 요인(lock-in)에 대해서 탐구해볼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즉 이론화를 위해서 좀 더 세련된 최근의 사회과학의 경향을 차용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문제 말이다. 그것이 리쾨르가 말했던 ‘읽기’의 문제, ‘해석’의 문제에서 도망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전제에서 말이다.
이러한 공상 바깥에서 다시금 ‘현장에 대한 감각’의 문제는 남아있고 이에 대해서 ‘몸 바꾸기’라는 연구자의 과제는 여전히 살아있다. 이러한 것들은 어떻게 합쳐볼 수 있을까. 나는 좀 다른 길을 가보려 한다. 로잘도는 경계를 흩어버리는 글쓰기를 수행하고,동시에 일상감각으로 글쓰는 것을 보여주었는데 그것들을 ‘또 다른 언어’로, 그리고 더 효과적인 소통의 도구로 벼릴 수는 없을까?
</span></span></div> </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