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남을녀를 위한 사회과학 – 우석훈, 나와 너의 사회과학(2011)

 2009/08/27 – [헨드릭스의 책읽기] – 우정과 환대의 지식 공동체 – 조한혜정 외 : 교실이 돌아왔다, 2009
2009/01/21 – [헨드릭스의 책읽기] – 88만원 세대의 간지나게 살아가는 법 – 허지웅, <대한민국 표류기=""></a>
2008/08/20 – [헨드릭스의 책읽기] – 발칙한 좌파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
2008/06/20 – [헨드릭스의 책읽기] – 직선들의 대한민국 – 문제는 우리들의 미학이다!
2008/06/16 – [헨드릭스의 책읽기] – 우석훈, <촌놈들의 제국주의="">, 2008</a>
2008/02/25 – [헨드릭스의 책읽기] – 희망을 말할 준비를 하자(우석훈 지승호, <우석훈, 이제 무엇으로 희망을 말할 것인가>, 시대의창, 2008)
2008/02/25 – [생각하기/가져온 글들] – 우석훈과 지승호의 대화중.. 20대, 지식인에 대한 대화..
2008/02/13 – [헨드릭스의 책읽기] – 우석훈의 퍼즐 읽기 – <음식 국부론 – 도마 위에 오른 밥상>, 2006
2007/12/06 – [헨드릭스의 책읽기] – 이 시대를 그나마 버티게 하는 힘 </td> </tr> </table> </p>
나와 너의 사회과학 – 10점
우석훈 지음/김영사

# 우석훈 그리고 나

군대에 있던 2007년 우석훈을 알게 되었다. 한참 파릇파릇하던 ‘중위 1년차’. 시간은 많았고 읽고 싶은 책이 별로 없어 매일 무료했다. 당시에는 매주말마다 서울에 올라와서 종로 영풍이나 교보문고 같은 서점에 들러 주말에 읽을 책을 사고 술을 마시고 토요일에는 부대끼는 속을 아메리카노로 적시면서 학교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는 게 보통이었다. 어쩌다가 한참 한미FTA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기사를 <한겨레21>이나 <시사In> 어디인가에서 읽었던 것 같은데 그 때문에 우선 이해영의 <낯선 식민지="" 한미FTA="">를 사서 읽게 되었다. 그리고 기사에 또한 인용되어있던 우석훈의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를 사서 읽게 되었다. 구글링을 해서 우석훈의 몇 개의 블로그들을 찾게 되었다. 대자보에 나온 ‘비나리’의 칼럼들을 읽게 되었다. 어느 순간 우석훈의 블로그 덕질을 한참 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88만원 세대>가 출간되었다. 여러 가지 출판 사고가 있어서 책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고, 게다가 주중에는 부대에 묶여 있는 몸으로 책을 구하기는 더 쉽지 않았다. 종각 반디 앤 루니스에서 <88만원 세대> 5부 정도가 아직 평대에 정리도 되지 않은 상태로 있을 때 냅다 집어서 사고 부대로 돌아오는 길 버스에서 반쯤 읽고 다음 날 출근을 해야했음에도 밤 중에 다 읽어버렸던 기억이 난다. </p>

그 후로 자타공인하는 ‘우석훈 오타쿠’가 되어서 군생활의 나머지 기간을 보냈다. ‘한국경제 대안찾기’ 시리즈였던 <88만원 세대>, <조직의 재발견="">(원래는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 <촌놈들의 제국주의="">, <괴물의 탄생="">을 부대에서 읽었다. 그 와중 간간히 나오는 <지금 무엇으로="" 희망을="" 이야기할="" 것인가="">라는 지승호와의 인터뷰를 읽고,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칼럼집을 읽었다. 그 외에도 우석훈이 추천했던 책들을 잽싸게 사다가 읽기 시작했다. <위기의 학교="">를 읽고,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읽었다. </p>

2008년이 되자 우석훈과 나는 ‘아는 사이’가 되었다. <촌놈들의 제국주의="">와 관련한 강연이 영풍문고에서 있었는데 나는 그 때 우석훈을 처음으로 ‘실물’로 보게되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덕스러운’ 외모에 잠깐 충격을 받았던 것이 기억난다. 그 전에 그나마 실물에 가깝게 본 얼굴이 에서 한미FTA 이야기하러 나왔던 우석훈이었는데 수트 입은 우석훈과 추리닝 바람으로 나온 우석훈은 전혀 다른 사람 같아 보였다. 그리고 좀 지나 나는 우석훈에게 ‘진로 상담’을 하게 되었고,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다(2009/04/13 – [일기장/하루 하루의 기록] – 2009. 4. 6-12 2009/06/01 – [일기장/하루 하루의 기록] – 연세대학교 대학원 문화학 협동과정 합격). 곧 이어 우석훈과 조한혜정의 조교가 되었다. </p>

# 사회과학 방법론

이 책에 대해서는 서평을 하는 것보다는 이 책의 ‘맥락’에 대해서 내 기억들을 반추해 보는 게 더 유익해보일 듯하다. 내가 이 책의 ‘초안’을 접했던 것은 2009년 여름이었다. 여름 연세대학교 빌링슬리관 110호에서는 ‘사회과학 캠프’가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열리고 있었다. 제대하고 얼마되지 않았던 내게 우석훈은 헤겔의 <정신현상학> 2권을 다 읽고 오라고 했다. 한참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을 읽고 있었고 그것만으로 머리가 팽팽 돌고 있었는데 5일 만에 <정신현상학>을 다 읽고 오라니. 생각해보면 2004년 학부 4학년 때 <정신현상학>을 한 학기 동안 ‘서문’만 다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쨌거나 우석훈은 강의를 시작했다. 헤겔을 이야기하다가 마하가 나오고 비엔나 학파가 나왔다가 왔다갔다 정신이 없었고 그래도 나름 대학원을 다녔던 ‘가닥’으로 쫓아가보려 했지만 깨나 빡셌다. </p>

그리고 2학기가 시작하자 <생태인류학> 수업의 조교를 맡게 되었다. 그 수업은 역시 ‘사회과학 방법론’의 초안과 같은 이야기였다. 나는 도대체 ‘생태’는 어디있고, ‘인류학’은 어디에 있나 싶었는데 학기를 갈무리하게 될 즈음에 나는 이 수업이 왜 <생태인류학>인지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고, 왜 ‘사회과학 방법론’이 여기에 동원되는지를 파악할 수 있게되었다. </p>

수업 외에도 우석훈과 2009년 가을을 함께 다닌 일이 많았다. ‘인민노련’ 프로젝트 때문에 그러기도 했고,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때문에 생겨났던 대학 강연들을 따라다니기도 했다. 사회과학 전공하는 대학원생으로 궁금했던 여러가지를 찔러본 적이 한 두 번이 아닌데, 그 때마다 우석훈이 대답했던 이야기들 모두가 뇌리에 남았다. 그 때는 우석훈의 이야기가 너무 맥락 없어 보인다거나 ‘야부리’ 수준에서 끝난다는 생각이었는데. 어쨌거나. 지금은그런 방식으로 우석훈을 독해하는 것에 반대한다. </p>

# 우정과 환대의 공간

‘우정’과 ‘환대’라는 말을 2008~9년에 썼던 적이 있다. 한 때 우석훈은 ‘우정과 환대’의 ‘공간’이라는 말 자체를 엎어버리자고 했었는데, 끝내 그 끈이 끊어졌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그리고 2010년 우석훈은 스스로 ‘슬럼프’라고 말했었는데, 이제 <디버블링>과 <나와 너의="" 사회과학="">으로 그 슬럼프가 끊어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한다. 우석훈의 이 책이, ‘생태경제학’ 시리즈가, 또 ‘문화 경제학’ 시리즈가 얼마나 팔릴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이야기들을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습작당’ 덕택인 것 같다 </p>

“</span>사회과학이라는 게 한편으로는 예술과 같은 속성을 갖기도 하지만, 또 어던 면에서는 수다쟁이의 속성을 갖습니다. 아주 수다스러운 동네 아줌마처럼, 얘는 이렇고 쟤는 저렇고 하며 끊임없이 수다를 떠는 것이어서 듣고 있다 보면 뭐가 이렇게 복잡해, 그런 불평이 절로 나오죠. 그러나 현실에서 시행착오를 겪고 돌이킬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몰리는 것보다는 불평을 견디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p.222).</p>

과소 대표된 사회적 주체들이 보다 전면에 나설 수 있는 방법으로 저는 20대들이 더 많은 책을 쓸 수 있기를 기대하고, 30~40대 주부들이나 직장 여성들이 자신의 소신을 체계화하여 사회과학의 저자로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이건 단순히 정권을 바꾼다거나, 한국 사회를 질적으로 성장시키는 것보다 훨신 더 크고 근본적인 변화를 희망하기 때문입니다“(p.224). </font>


늘 우석훈이 바랬던 것은, 한 번에 ‘학파’ 단위로 사회과학하는 인간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었는데, 그 꿈은 ‘대학생’이 아니라 ‘주부들의 집단’에서 가능한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것이 내 ‘습작당’ 관찰의 결론이다. ‘사회과학 방법론 강의’에서 시작되었던 ‘습작당’은 우석훈의 슬럼프를 끊고, ‘우정과 환대의 공간’의 기획을 다시금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p>

공부라는 게 혼자 하면 힘들지만, 일종의 선단 같은 것을 형성해서 같이 해나가면 단독 항해보다는 훨씬 편하다. 동료가 있다는 것, 그리고 같이 시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은 생각보다 큰 행복을 준다. 사회과학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가? 이 어처구니없는 일을 몇 달 사이에 내가 목격한 셈이다“(p.227).

뭔가 알고 싶고, 글을 써서 표현하고 싶고, 사람들에게 그걸 보여주고 싶다는 근본적인 욕망이 사람들의 표정을 밝게 해줄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유쾌하면서도 지지 않는 싸움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아니겠는가. 한때 대학을 가득 채웠던 사회과학 공부 모임들이 이 사회에 다시 생겨날 수 있을까? 어쩌면 그럴 수 있을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지난 여름에서 겨울 사이, 나는 처음으로 보았다“(p.230). 

그리고 이제 우석훈의 ‘대인 기피증’과 ‘우울증’을 넘어서 본인이 그리도 고대하던 ‘명랑’의 기획을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매번 말하는 “우리는 절대 지는 법이 없습니다.”가 어떤 조건에서 가능할 지에 대해 상상력을 발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석훈의 사회과학 방법론에서 내가 발견하는 것은 사회과학의 심오한 ‘논리’보다, 그가 생각하는 세상을 바꾸는 법에 대한 상상력이었다. 그리고 그의 수리적인 분석 옆에서 리쾨르의 ‘해석이론’의 ‘이해’라는 측면이 등장하고 따뜻한 인간과 세계에 대한 시선이 느껴지는 동시에 그의 ‘로망’에 대한 판타지가 등장할 때에 바로 곁에 있는 이론적 개념화, 레이어 짜기에 대한 빽빽한 ‘머리싸움’이 느껴진다.

이제 나도 한 권의 책을 건사해야 할 상황에 임박했는데 우석훈의 책을 읽을 때마다 약간 좌절하게 되는 구석이 있다. 책을 쓰는 입장에서 우석훈의 모든 책의 한 단락마다 평균적으로 한 두 권의 책의 프레임이 깔린다. 이건 도무지 따라할 수가 없다. 한 동안 ‘좌파 먹물들’에게 나왔던 ‘우석훈 허당론’이 얼마나 허당인지를 깨닫는 순간이다.

우석훈의 12권 구상은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구상과 같았는데, 나는 우석훈에게 에코 모델을 따르라는 조언을 들은 바 있다. 그러면 100권이다. 물론 내가 100권을 쓴다는 보장도 없지만, 내가 100권을 쓸 수 있고, 그걸 읽을 수 있는 사람. 그러면 동시에 그걸 ‘까’는 사람도 있고, 사회과학 자체가 프랑스의 ‘빵’처럼 팔리는 상황이 온다는 것인데 그런 세계에서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은 늘 가슴을 뛰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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