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학과 글쓰기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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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학 – 8점
박성창 지음/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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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학 잘 모른다. 기호학 잘 모른다. 그런데 항간에 떠돌아다니는 담론들을 분석하려 하니 계속 수사학과 기호학의 필요를 느낀다. 문화연구가 애초에 생겨날 때, 인류학, 사회학, 기호학, 수사학, 영문학, 신문방송학 등의 학제간 연구였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나야 말로 정말 ‘맘대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인류학과 사회학 편향적인 공부를 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물론 생각해보면 인류학도 1970~80년대의 ‘문화적 전환Cultural Turn’을 겪는 동안 그러한 미세한 ‘결’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면서 성장했다).

자꾸 투박하게 ‘세상’에 대한 이야기에 집착하다보니(사실은 뭐가 ‘세상’인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중요하지만) 실제 그 결을 살펴볼 생각은 별로 안하게 되는 경향이 강해졌다. 구체적이지 않고 전략적이지 않으며 ‘거대 담론’에 집착하는 글쓰기들이 싫어진 것도 이러한 습관을 만드는 데 기여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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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엄기호와 술을 마시면서 논문 이야기를 하다가 ‘수사학’ 책을 한 번 읽어보는 게 어떠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나서 그가 추천해주었던 수사학 책 몇 권을 사 놓고 쟁여두고 읽지는 않은 채 몇 달이 흘렀다. 군대 분석을 시작했다. 수많은 ‘수사’들이 떠돌아 다녔다. 대체로 이게 다 ‘야부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저 프랑스의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와, 저 독일 출신의 사회과학자 칼 마르크스가 이야기했듯이, 그 야부리들은 나름의 ‘물질성’, 즉 어떤 힘을 가진다. 그냥 다 무시할 수 있는 게 전혀 아니었다. 게다가 ‘민주화’된 상황에서의 야부리들은 ‘제도’로 전환되거나 어떤 중요한 국면들에서 중요한 결정에 있어서 핵심적인 요인이 된다.

결국 그 맥락과 그 수사 구사의  전략, 그 의미, 효과 등에 대해서 고려해야할 필요를 느꼈고 처음 잡은 수사학 책이 바로 이 <수사학>이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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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수사학은 투박하다. ‘레토릭’, ‘미사여구’, ‘수사’라는 말에 붙이는 혐의와 달리 수사학을 ‘정립’했다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을 훨씬 더 ‘지적’인 행위이자 ‘진리’에 다가가는 행위로 정초하길 바랐다. 철학과 논리학에 준하는 학문으로서의 수사학의 정초. 수사학의 키워드는 ‘미사여구’가 아니라 ‘설득’이다. 설득을 위해서 여러가지 전략을 구사할 수 있고, 우리가 알고 있는 ‘문체style’와 ‘문채’는 그 중 하나의 전략에 불과하다. 지금처럼 수사학이 ‘레토릭’에 관한 문제가 되어버린 것은 20세기에 ‘신수사학’의 바람이 불고 나서이다.

수사학은 민주적이다. 우리는 ‘선전선동(프로파간다)’을 떠올리며 그 선전선동의 수사가 얼마나 전체주의에 기여했는지에 대해 규탄하곤 한다. 하지만 실제로 수사학은 특정한 장소(토포스)에서 작동하며 그에 걸맞는 장르들을 만들어낸다. 1)재판적 장르(법정): 풀어야 할 질문 또는 문제를 명확히 할 때. 2)토론적 장르(의회), 3)첨언적 장르(각종 경조사에 관련된 모임들: 운동 경기, 환영식, 장례식)(p.70). 이러한 상황에 걸맞는 언어의 구사.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언어가 대중에게 순전히 파토스를 통해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논거(로고스)가 있어야지만 통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논거의 기술이 바로 귀납법적인 예증, 연역법적인 생략된 삼단 논법이다. 생략된 삼단 논법에서는 모두 알 법한 대전제는 생략하는데, 그러한 생략은 ‘사기’를 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청중이 그것을 들음으로써 자신이 해석하면서 퍼즐의 빈 부분을 맞추는 과정을 통해 논의에 공감시키기 위해 존재한다.

그렇기에 수사학이 전제하는 대중은 오히려 훨씬 더 잘 ‘교육’된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법정, 의회를 떠올려 보면 알 수 있지 않나. 오히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에서 또한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설득의 과정에서 논증과 에토스, 그리고 파토스를 자극하기 위한 기억술(말의 영역),  연기술이다. 발성의 방법은 곧 바로 웅변과 연결되고, 기억술은 어떤 기호들이 주는 효과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 물론 ‘표현술’이 있고 그것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수사학’의 이미지를 결정했는데 실제로 이 자체는 가장 큰 비중이라 말할 수 없다. 20세기 수사학을 복권시키기 위해 표현술을 강조했다고 말할 수도 있고, 다른 한 편 ‘제도권 교육’ 안에 수사학이 표현되면서 테크닉이 수사학에서 중요해진 로마시대의 경향도 이에 일조했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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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서두에 나와있지만, 지금 경합하는 수사학은 ‘문채의 수사학’과 ”논증의 수사학’이다. 페렐만 등이 다시금 ‘논증’의 중요성을 앞세우면서 논증의 수사학을 복권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게 어떤 경향인지에 대해서는 좀 다른 책들을 읽어보면서 따져볼 일이다. 내가 필요로 햇던 것은 ‘문채의 수사학’, 그리고 스타일로서의 수사학이었는데 전혀 다른 맥락에서 수사학에 대한 접근법을 얻은 셈이 되었다. 물론 ‘논증의 수사학’ 부분도 내 글쓰는 스타일의 허술한 논증 구조를 생각해보면 중요한 부분이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어떤 방식으로 ‘쓸 것인가’의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따져보지 않은 셈이다.

한동안 기호학에 대한 책들과 수사학에 대한 책들을 읽어볼 계획인데 이것들을 통해 어떤 ‘분석’의 도구를 벼려낼지에 대해서는 좀 고민을 해봐야 겠다. 이 책 자체는 개론의 성격이 강하고 그 구체적인 수사학의 내용 자체는 다른 책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더 좋은 책에 대한 추천은 차후에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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